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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4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8권 0호 (2019)

『열하일기』의 음악대담 「망양록」 연구

김수현 ( Kim Su-hyun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9-54 ( 총 46 pages)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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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음악에 관한 토론을 벌였던 기록인 「망양록」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전통시대에 유일했던 ‘한·중 음악 대토론의 기록’ 연구로서 「망양록」의 음악대담의 내용이 어떤것인지 주제별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 논문은 본론을 두 장으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망양록」서술 배경과 대담자들에 대해 살펴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별로 본 「망양록」의 음악대담이다. 「망양록(忘羊錄)」은 악률에 대한 토론에 몰두해 있느라고 쪄 놓은 양고기가 식을 때까지 대담을 벌였던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 연행 도중 열하에서 만난 학자 곡정(鵠汀) 왕민호(王民皥)와 형산(亨山) 윤가전(尹嘉銓)과 나눈 음악에 대한 토론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열하일기』에 포함되어 있다. 악률과 음악이라는 주제만을 가지고 장시간에 걸쳐 토론하고 그것을 기록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박지원과 중국음악학자들이 음악이론에 매우 밝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제별로 본 「망양록」의 음악대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는 악률과 악조에 대한 대담을 살펴보았다. 오음과 육률의 개념을 확인하고 왜 음악에 고금의 차이를 보이는가, 왜 아악과 정성이 구별되는가에 대해 논의한 것과 음에 선악이 있는가에 대한 대담이다. 또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우조의 개념의 다른 점에 대한 대담이다. 둘째는 악기와 악곡에 대한 대담을 살펴보았다. 중국에 양금이 들어온 유래와 조선의 금슬, 즉 거문고와 가야금에 대한 대담과 대성악 등의 악곡이나 장르에 대한 대담이다. 셋째는 고악과 『악경』에 대한 대담을 살펴보았다. 고악이 중국에 남아 있는지 『악경』이 조선에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대담이다. 여기에서는 당시 궁정에서 하는 연회 음악과 청대의 아악의 실상, 그리고 아악사에 대한 대담이 전개되었다. 이 「망양록」 연구를 통해 조선 후기 지식인을 대표하는 연암의 악률에 대한 생각도 읽을 수 있고 청대 학자들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 이들 대담자 모두 음악학자들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음악의 원리나 운용에 매우 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 있다. 연암은 이미 청대의 학술과 문예에 매우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수준 높은 필담을 나눌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연작 회인시(聯作 懷人詩)의 사적 흐름과 제 양상

박종훈 ( Park Chonghoon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55-85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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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가를 필두로 연작 회인시는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대상 인물은 師弟나 同學, 혹은 친인척이 대부분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에서 창작된 것이 바로 연작 회인시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밝지만은 않은 삶이 깃들어 있다. 知音과 연대의식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고뇌의 흔적이 연작 회인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내 문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통해, 당대 문인들의 네트워크는 물론 학술 경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개화, 을미사변, 경술국치, 의병 등의 혼란한 시대상도 담겨 있으며,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당대 지식인의 다양한 노력도 연작 회인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제적인 교유와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이나 일본 문인을 대상으로 한 연작 회인시도 지어졌다. 역관 등의 중인 계층이 그 주축이 되어 문화교류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당대 중국의 학술 경향을 파악했으며, 그러한 경향이 그대로 조선에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중국 역시 청일전쟁, 아편전쟁 등으로 인해 혼란한 상황이었고 난국을 타개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이를 직접 목도한 조선 지식인은 차츰 국제적인 안목과 식견을 갖추게 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대안을 제언하기도 했다. 본고에서 소개한 연작 회인시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연작 회인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이를 통시적 혹은 공시적으로 엮어 읽는다면, 당대 문인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당대 국내외의 상황을 들여다보는데 유용한 창이 될 것이다.

鼠鼯傳評釋

柳奇玉 ( Yu Gi-ok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87-109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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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鼠鼯傳>은 작품 제목 아래 ‘著作者前進仕徐達增鎭安’이라고 유일하게 작자가 명기된 한문본 鼠流訟事型寓話小說이다. 창작시기는 18세기 말 이후 19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본고는 <鼠鼯傳> 관련 기왕의 논문 발표 이후 추가로 확인된 徐達曾(1773~?)의 사돈인 朴應壽의 후손에 의해 전해 온 累世行錄에 의거 작가론적인 논지를 보완하고, 특히 작품의 원문과 역문 및 주석을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전반적인 작품의 評釋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추가 확인된 자료와 기왕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작가론을 보완하고, <鼠鼯傳>의 譯文및 상세한 註釋을 첨부하여 작품의 구체적인 면모를 학계에 처음 소개하는 데 그 의의를 찾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부패하고 무능한 관원과 양반 토호들의 횡포를 비판하고 부정부패로 만연된 향촌사회의 계층갈등과 모순을 사실적으로 재구하여, 이상적인 통치체제와 유능하고 덕망 있는 구원자적 牧民官을 기대하는 鄕班으로서 이상적인 지도자의 관념세계의 일단을 표방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관련된 언행록을 참고할 때, 어려서부터 곧을 直자를 자신의 신조로 삼아 올곧은 신념으로 평생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올곧게 처신하려 했던 작가 의식이 작품 속에 잘 반영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장차 관심 있는 연구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미진한 작업을 보완할 기회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가정 폭력의 실상과 해석의 간극, 그리고 효 담론의 작동 방식 - < 장화홍련전>을 중심으로 -

서경희 ( Seo Kyung Hee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111-142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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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장화홍련전>에 나타난 폭력의 실상과 해결 과정,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시선에 주목하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인 배좌수의 권력은 집안의 이익에 따라 구성원들에 대한 처분을 일방적이고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러한 폭력 행사에 의해 장화 자매의 존재가 파괴되고 부정되는 피해가 발생하지만, 박인수본에 비해 구활자본에서는 가장이 가해의 책임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친 생부의 처벌이 경감되고,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원인제공자로서의 혐의를 온전히 벗지 못하며 가장이 져야할 가해의 책임까지 모두 계모에게 지운다. 또한 향유층의 해석이 반영되는 후기 이본에서는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적 폭력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상징적 악인을 징치하고 가정을 복원하는 것이 흡족한 결말로 자리잡게 된다. 이처럼 서사가 조정되면서 장화 자매는 가해자인 부친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여 가부장제의 존속에 기여하는데, 이는 향유층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효 담론을 거슬러 가장을 정조준하여 고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환경임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장화자매의 자기모순적 발언은 부모의 잘못된 행실을 드러내면서도 공동체로부터 비난받지 않을 수 있었던 생존 전략이다. 이러한 자기 보호색을 갖추어야만 장화 홍련은 여전히 피해자로 남을 수 있고 국가 이념의 테두리 내에서 선한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발굴 자료 <긔묘년 조대비 입궐일기>의 서지와 그 내용

이수진 ( Lee Su Jin ) , 박재연 ( Park Jae Yeon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143-168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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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새롭게 발굴한 궁중 일기 자료 <긔묘년 조대비 입궐일기>를 소개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긔묘년 조대비 입궐일기>는 계녀가류가사 <발몽인교가>와 국문 야담 <김공필젼>과 함께 하나의 두루마리안에 필사되어 전한다. 전체 402행으로, 매행 12~16자로 단 구분 없이 세로쓰기 되어 있다. <긔묘년 조대비 입궐일기>는 기묘년(己卯年)인 1819년(순조19)에 풍양조씨 가문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의 딸인 훗날 조대비(趙大妃)가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궐하는 과정을 담은 국문 일기 자료이다. 자료의 내력을 담은 발문이 없어 작품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두루마리에 함께 수록된 <발몽인교가>와 그 이본 자료 <경부록>을 검토한 결과, 조대비의 어머니인 은진 송씨 집안에서 세자빈으로 간택된 가문의 경사를 기록해 둘 목적으로 생성을 주도하여 전승시킨 것으로 보인다. 자료의 내용은 일기 자료답게 일자별로 기록되어 있지만, ‘긔묘 팔월 초구일 초간’, ‘십일 간’, ‘십일 간 잇튼날’, ‘간 사오일 뒤’, ‘팔월 념팔일 간’, ‘(구월) 구일 도습녜’, ‘구월 염칠일 봉’, ‘(구월) 염팔일’, ‘(구월) 염구일 가례날’, ‘그 잇튼날 폐예’와 같이 혼례 과정을 그날그날 일정한 규식에 맞게 기록하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특정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서술하였다. 자료의 전반부에는 초간택·재간택·삼간택의 간택 과정을, 후반부에는 혼례 의식 중에서도 책봉과 친영례 과정을 주로 표현하였다. <긔묘년 조대비 입궐일기>는 효명세자와 세자빈의 혼례 절차 및 그에 따른 소요 물품과 복식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어 궁중 풍속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공적 일기자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변 인물들의 내면 의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국혼 당시의 이면을 살필 수 있는 큰 가치를 지닌 자료이기도 하다.

단군조선 관련 재야문헌(在野文獻)에 대한 남·북한 연구 성과의 현 단계

이도학 ( Lee Do-hack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169-204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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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관련 재야문헌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명백히 僞書인 서적들이 상당히 확인된다. 다만 『규원사화』의 경우는 깡그리 위서로 단정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었다. 그러기에 『규원사화』 위서론의 근거를 꼼꼼히 검토해 보았다. 특히 ‘文化’라는 용어의 사용 문제를 주목하였다. 그 결과 ‘文化’는 근대적 용어인 Culture의 번역이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文治敎化’의 略語로 지목하는 게 온당할 듯하다. 그리고 단군의 중국 堯임금에 대한 治水지원 기록은 1901년에 英文월간지 『Korea Review』에 기고한 헐버트의 글에서 보였다. 그 내용은 재야문헌의 기술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줄거리는 대략 부합하였다. 따라서 『규원사화』와 같은 재야문헌은 卓上案出이기 보다는 底本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규원사화』가 1910년대에 나온 僞書라는 주장과 배치된다. 물론 헐버트의 『한국사』가 출간된 1905년 이후에 그 내용이 재야문헌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헐버트가 1907년에 추방된 이래 그의 英文저서가 유포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재야문헌을 집필할 수 있는 이들이 英文해득 능력을 소지했을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兩者間의 영향 관계는 상정하기 어려운 현실성 없는 추론으로 보겠다. 그렇다고 『규원사화』 위서론이 허구라는 결론은 아니었다. 바로 단군조선과 관련한 직접적인 사료가 전무한 상황에서 북한 학계의 『규원사화』에 대한 선별적 수용은 사료 이용의 폭을 확대시키려는 苦肉策의 산물로 해석되었다. 단군조선에 대한 인식이라는 大命題속에서 『규원사화』는 중차대한 비중을 점하고 있다. 그럴수록 『규원사화』에 대한 냉정한 접근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남·북한 학자들 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한층 긴요하다고 본다.

「자장정률(慈藏定律)」에서 확인되는 자장(慈藏)의 최후기록에 대한 분석

염중섭 ( Youm Jung-seop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205-23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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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은 계율을 통해서 신라불교의 기틀을 확립하고, 문수신앙과 舍利숭배라는 획이 굵은 행보들을 보인다. 이는 자장이 『삼국유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고승이 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자장이 한국불교사 안에서 최고층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자장과 관련된 자료들 중 중국문헌과 국내문헌 간에는 관점 차이가 크기 때문에 통일된 인식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본고는 국내자료에만 수록되어 있는 자장의 만년 태백산 행에서부터 石南院의 입적 부분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자장 溟州행의 종교적인 목적인 문수친견에 다층의 혼란스러운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점. 이는 자장이 경주에서 김춘추계에 밀려나 명주를 찾아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다는 점에 대한 한 타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자장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는 둘째 석남원에서의 비극적인 최후와 화장 후 納骨되는 내용으로 연결된다. 이 기록은 고승의 입적기록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므로 이의 원자료는 자장이 재평가되는 신라하대 이전의 기록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또 납골에 대한 측면은 자장의 석남원 입적의 사실성을 변증해주는 유적이 된다. 결론적으로 자장의 최후기록은 다소 혼란스럽지만, 이 문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자장의 석남원 입적이 사실에 기초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생애와 학문여정 ― 위정 2:4 의 주석을 중심으로 ―

임헌규 ( Heongyu Lim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235-269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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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의 여행”이라는 주제 하에 기획된 본 논문은 『논어』「위정 2:4」의 공자의 언명을 중심으로 관련 자료의 해독을 통해 공자의 생애와 학문여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자의 생애와 학문여정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공자의 생애를 4단계로 나누어 제시했다. 먼저 공자의 탄생과 유년기에서는 공자 탄생의 상황(“가문과 모국, 이중의 영광과 몰락”)에 대해 제시했다. 下學시기(지우학~불혹)에서는 공자가 말한 지우학, 이립 그리고 불혹의 의미를 여러 주석을 통해 살펴보면서, 이 당시에 공자는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떻게 성장하였는지에 대해 여러 관련 자료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上達시기(지천명~종심소욕불 유구)에서는 공자가 말한 지천명, 이순 그리고 종심소욕불유구의 의미를 여러 주석들을 통해 살피고, 이 당시 공자의 문제의식과 도달했던 경지, 그리고 그 실천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귀향과 죽음에서는 말년의 공자의 상황과 업적, 그리고 그 삶의 기록에 대해 논구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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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러셀’이나 ‘A. 토플러’ 등과 같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은 산업화와 기계화로 대변되었던 18~20세기까지가 서구중심의 체제로 유지될 수는 있었겠지만, 21세기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세계의 중심국과 주변국이 뒤바뀔 수 있는 개연성과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터넷 문명은 세계 각국을 매우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지식과 정보는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매번 이 같은 인류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사회는 경이로움보다는 두려움과 공포, 심지어는 ‘내 일자리’마저 빼앗기지는 않을까 라는 불안감에 사로 잡혀 왔었다. 실제, 많은 직업群의 변화를 거치면서 숱한 발전도 있었겠지만, 반목과 갈등도 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인류사의 전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동안 사람들이 해오던 일자리도 인간로봇(AI)이 등장하며,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직업群의 변화와 다양한 가치관들이 열리는 인류사회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인류는 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인간 간의 유대관계를 버리고 기계와의 관계지향을 모색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상상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해오는 것은 물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마저 소유하게 될 경우, 사람과 인간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친구지간’의 공동운명체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성적 사랑·동성애·가족애·결혼제도까지 바뀔지도 모른다.(물론 이것은 현재에도 이미 변화되고 있음) 우리 유교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인간관계의 윤리를 나타내었던 五倫이 무색해질 수 있으며, 인간과 기계간의 관계, 또는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六倫’이나 ‘七倫’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네 인간들이 지금부터라도 다시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반문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전통 유교사상에서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해서도 이용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었듯이, ‘나’ 이외의 것을 수단대상이 아니라 공존해나가는 ‘동반자’로 설정해왔다. 따라서 인공지능과 지식정보가 공유화된 현재와 같은 시기일수록 사람에 대한 가치와 인간행위의 도덕원칙을 설정하고 ‘인간다움’의 실현에 귀추를 주목시켜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 인간을 어떠한 입장에서 眺望해야할지, 그리고 어떤 것이 인간냄새를 풍기게 하는 교육인지를 전통유가와 왕양명의 교육관에 입각하여 고찰해 보았다.

19세기 금강산도의 일면 - 개인소장 ‘금강산도 10폭병풍’ 고찰

고연희 ( Kho Youenhee )
온지학회|온지논총  58권 0호, 2019 pp. 303-338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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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10폭병풍(金剛山圖10幅屛風)≫(개인소장)은 파노라마식 거대화면을 보여주는 구도에 산봉우리의 의인(擬人), 의물(擬物)로의 표현이 세밀한 19세기 금강산도이다. 이 화면의 구도는 금강내산(金剛內山)전도(全圖)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이며, 의인, 의물의 산표현은 조선시대금강산 형상화를 주도한 전통의 수용이면서 왕실화원화가들을 거치며 지속된 표현의 적극적 반영이었다. 이 그림은 전통의 구도와 표현을 수용하면서, 19세기에 유행하게 된 왕실용 규모의 대병풍(大屛風) 프레임을 적용하며 거대한 파노라마식 화면을 보여주는 새로운 유형의 금강산도로 탄생하였다. 또한 그림에 적힌 명명(命名) 중 ‘황류담(黃流潭)’은 19세기 중반에 풍양조씨 문인그룹에서 동의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으로 구칭 ‘황천강(黃泉江)’이나 안동김씨 그룹이 개명한 ‘옥경담(玉鏡潭)’을 거부한 명칭이었다는 점에서 반불가적(反佛家的), 반속(反俗)의 명칭이며 안동김씨의 그룹에 대항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림 위‘수왕성(首王城)’의 표기는 신라를 기리는 표현으로 조선후기 왕실과 관료학자들이 주장하는 역사관이 부각된 표현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 일군의 관료사회의 요구로 제작된 새로운 프레임과 내용을 담은 금강산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모사한 병풍의 존재(국립민속박물관 소장)는 이 그림이 일군의 관료그룹에서 거듭 요구되고 제작되었던 정황을 알려준다. 즉 ≪금강전도 십폭병풍≫은 18세기의 금강산도 문화와 결을 달리하는 19세기 학자들의 금강산도 문화를 보여주면서, 아울러 근대기 대형파노라마식 금강산도와의 사이에서 위치를 점하는 19세기 금강산도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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