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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6권 0호 (2013)

간독(簡牘)을 통해 본 박세당의 삶

이희재 ( Hee Jae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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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의 간독은 편지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말할 수 없는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나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박세당의 삶에 있어서 즐거움은 시서화(詩書畵)를 감상하는 일과 자연속의 삶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간독에는 서화를 감상하고 즐기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독서와 토론을 좋아하고 그것이 진리를 찾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늘 서신에서도 유교적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접근에 익숙하지 않은 지인들은 박세당의 탈주자학적 경전해석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국정에 참여하고 있었던 처남 남구만과의 서신교환을 통해 박세당은 눈치를 보는 지도자가 되지 말고 옳고 그른 것은 분명히 하여 옳은 정책을 소신껏 추진하는 것이 바른 길임을 늘 말하고 있다. 아들 박태보의 죽음은 박세당의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고통중의 하나였다. 숙종의 심문에 굴하지 않고 충언을 하다 고문에 의해 세상을 떠난 비통한 심정을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에 관련된 간독들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나눈 사람은 주로 윤증과 남구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냉정한 이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자가 아니라 항상 예리한 지성으로 세상을 보았다. 풍수지리설이 허망하다는 견해는 제자들과의 편지에 지성의 일단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서계박세당(西溪朴世堂)의 불교인식(佛敎認識)과 시세계(詩世界)

임준성 ( Jun Sung Lim )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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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 동안 西溪 朴世堂(1629~1703)의 불교인식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다시 검토하여 그가 儒佛 會通에 지향점을 둔 사상가이자 시인임을 밝히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의 排佛論의 주요 근거로 삼았던 「論韓歐排浮屠」는 儒學에서 異端에 대한 대처방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排佛의 旗幟를 위해 세운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유학에서 말하는 異端 중에서 불교는 그중 악취가 심한 것이라고 했을 뿐, 이는 西溪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당시 유학자가 바라보는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또한 「竺敎」라는 시는 西溪가 불교의 근본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역대 祖師와 禪師들의 깨달음을 향한 영웅적인 행위에 대한 시적 감상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하였다. 西溪의 불교인식은 우호적이었으며, 그가 남긴 불교관련 55편의 시세계를 조명해볼 때 그가 儒佛 會通 지향에 있음은 더욱 분명해진다. 西溪는 漢陽 郊外 水落山 石泉洞에 은거하면서 梅月堂 金時習의 追崇하고 宣揚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는 西溪가 매월당의 삶을 동경하고 儒佛仙 三敎를 會通한 그의 사상을 본받고자 하는 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儒佛 會通의 대표적인 사례인 東晉 때의 惠遠法師의 ‘虎溪三笑’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하면서 자신이 佛僧과의 지속적인 교유관계는 惠遠法師가 당대에 처했던 상황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西溪 박세당은 유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西溪는 유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老莊은 물론 불교까지 포용하는 관용적인 태도로 대했다. 이는 그가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지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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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제(課製)는 성균관 유생이나 홍문관 등의 문신들이 경전을 중심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전고(典故)의 탐독을 통해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으로 제술(製述)을 통해 경전을 학습하고 환로(宦路)의 신진 관료들을 독려하는 방편이었다. 과거에 급제한 초기 유생과 신진문관들을 중심으로 실시했기 때문에 유학 경전을 심화학습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검토하는 시험의 장으로 삼았다. 이러한 이유로 일정기간 동안 과제를 짓지 않는 문신은 파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조선의 과제 주제는 성리학적 주자학의 팽배로 인하여 노장(老莊)과 관련된 글제는 배격되었다. 과제의 주제와 제재는 사서삼경의 경구(經句)는 물론이거니와 『춘추』 『전국책』 『좌전』 『사기』 등에 등재된 사건과 인물이 두루 채택되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역사의 인물을 더듬어 현재의 위정자들을 경계하고 유학을 실제 실행할 수 있는 학문으로 조형해가는 과정이 과작(課作)을 통해서 드러났다. 이러한 작업들은 조선 지식인들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17세기 실학자 박세당의 과제시문 30수에 제시된 과제의 전고를 그가 어떠한 의도로 수용하였고, 그가 표출하고자 했던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하였다. 아울러 일방적이고 관념적 학문을 주도했던 정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적 유자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었다.

이로움과 당위

임헌규 ( Heon Gyu L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101-130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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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존재로서 인간에게는 당위적 차원의 道德 혹은 倫理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도덕 혹은 윤리를 인식하여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존재자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자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여, 어떤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알맞고 올바른 것일까 하는 문제가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오랜 과제였다. 인간의 올바른 윤리적 선택과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는 역사상 명멸했던 여러 학파들마다 견해와 입장을 달리하였다. 일반적으로 전통시대의 형이상학적 체계에서는 타율적인 ‘명령의 윤리학’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자연주의에 입각한 쾌락주의 윤리학도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타율적 명령의 윤리학과 쾌락주의적 윤리설이 거의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현대적 상황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윤리성이 있으니, 바로 “선이란 이익이 되는 것, 유익한 것이다.”는 공리주의 윤리설이다. 이 논문은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로움’의 개념을 유가에서는 어떻게 정립하는 지를 윤리학(當爲)과 연관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1) 『설문』에 나타난 利자의 형성배경, 가장 오래된 『書經』 「대우모」에 나타난 ‘正德 利用 厚生’의 의미, 그리고 『周易』 「乾卦, 文言傳」에 나타난 元亨利貞에서 ‘利’자의 원초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하고 한다. 그런 다음 2) 四書에 나타난 유가 윤리학을 재구성하면서 이와 결부되는 利자의 의미를 義개념과 결부하여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유가의 윤리학이 지닌 의미를 여타 윤리학, 특히 행복론적 윤리학과 칸트의 형식주의 윤리학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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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 丁若鏞(1762-1836)은 天 즉 上帝가 인간의 마음에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自主之權을 주었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상제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 功過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孟子要義』에 나타난 것으로서 『天主實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잘못된 도로서 천에 아첨하면 천이 분노하여 그의 衆神이 인간에게 복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글은 『論語古今註』에 나타난다. 또한 『梅氏書平』에서 天道는 賞善罰惡, 『尙書古訓』에서 천은 벌로써 악을 징계한다고 나타나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주지권을 부여한 상제와 다른 것이다. 그 관계는 모순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단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상제가 인간의 선악에 대하여 상벌을 내린다고 말하면 인간은 기복신앙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정약용은 인간이 잘못 된 도로서 천에 아첨하면 천이 분노하여 그의 명령을 받은 神들이 복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 賞善罰惡 등은 기복신앙이 나타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상제가 인간에게 자주지권을 주었다고 말했고, 圖?에서 상제를 찾지 말고 본심에서 찾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또한 상제가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주권을 인간에게 주었다면 인간이 이익이 된다면 악행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제와 직통되어 있는 본심에서 상제를 찾아 선을 실천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선악에 대하여 천은 상선벌악한다고 여겼다. 그것이 바로 정약용의 진의였으며 그의 관점에서 그것은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정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사상은 『天主實義』와 선진유가경전을 융합한 독창적인 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성혼과 이이의 수양론과 그 현대적 의의

이영자 ( Young Ja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159-197 ( 총 39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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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healing)’이 현대 사회 최대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이다. 힐링의 선결조건인 자기조절, 자기절제의 대안이 유학의 수양론이다. 유학의 목적은 내성외왕이며, 그 시작은 자기성찰 곧 수기(修己)로부터 시작된다. 성리학에서는 ‘성경(誠敬)’을 통한 행위 주체의 도덕적 각성과 확인을 더욱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기절제를 더욱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한 수양의 실천을 공고히 한 대표적 성리학자로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를 들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들의 삶과 수양론을 비교해 보고, 힐링의 관점에서 그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성혼은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과거를 통한 입신을 포기하고 수기, 은거, 수교를 통한 성현을 기약한 내성적 삶을 살았다면, 이이는 과거를 통한 입신, 행도, 대동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외왕적 삶이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러한 삶과 학문적 지향은 수양론에 있어서도 성인관이나 거경, 궁리의 관계 등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삶의 태도와 수양론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힐링법을 배울 수 있다. 성혼의 향내적 힐링법과 이이의 향외적 힐링법이 그것이다. 성혼처럼 내부적으로는 독서나 학문을 통해 성찰과 자기절제를 최대화시켜 마음을 단련시키는 반면, 외부적으로는 사람들과의 경쟁을 최소화하면서 상처를 덜 받고 평정심을 최대한 유지하여 화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이처럼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화도 내고 상처도 받겠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터득하며 성숙된 자아로 완성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양자의 힐링법을 잘 조화시켜 나간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8~9세기의 조선조 『도덕경』 주석 고찰

김학목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199-218 ( 총 20 pages)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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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은 개국초기부터 불교와 함께 도교도 부정했다. 그런데 성리학이 절정에 오르는 16세기에 『도덕경』 주석이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에서 비롯되니 그것이 『순언』이다. 이이는 관료들이 절정에 오른 성리학을 바탕으로 서로 政爭을 벌이는 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도덕경』에서 마음 비움과 절제에 관련된 구절들을 발췌하여 『순언』을 편집?주석했다. 이어지는 서계 박세당(1629~1703)의 『신주도덕경』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이라는 큰 국난을 당하고도 민생과 국익을 돌보지 않고 명분론에 빠진 조정을 질타하기 위해 원시유학의 문질빈빈을 기준으로 박을 강조하는 『도덕경』을 주석했다. 성리학의 단점을 보완 또는 비판하기 위해 시작된 『도덕경』 주석은 박세당 이후에 세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성리학을 부정하니, 이것이 본고에서 다룰 주된 내용이다. 보만재 서명응(1716~1787)의 『도덕지귀』는 가치론 위주의 의리학을 벗어나 상수학?선천학 등의 관점에서 주석되었다는 점에서 주자성리학과 결별을 고한다. 강화학파 초원 이충익(1744~1816)의 『초원담노』는 노자의 무위를 기준으로 주석되었다는 점에서 성리학은 물론 원시유학까지 벗어난다. 연천 홍석주(1774~1842)의 『정노』는 주자성리학에서 성리학을 제거하여 주자학을 원시유학으로 복귀시킨다는 점에서 성리학을 이탈한다.

"호방" 관련 단어와 대하소설 호방형 남성주동인물의 개념

장시광 ( Si Gwang Ja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219-259 ( 총 41 pages)
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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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하소설에 나타난 호방형 남성주동인물을 본격적으로 살피기 위한 전단계의 글이다. ‘호방’과 그 유사 단어의 용례를 살펴, 이른바 호방형 인물의 명칭과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호방’을 비롯하여 그 유사 단어인 호일, 호탕, 호협, 호종, 호매, 호걸, 호준, 영웅, 풍류의 10가지를 선택하여, 각 단어에 대해 먼저 사전에서의 정의를 살핀바, 이들 단어는 ‘호방’류와 ‘영웅’류, 풍류의 세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문헌에서의 용례와 대하소설에서의 용례를 살폈을 때, 이들 단어는 사전에서의 정의를 보완할 수 있는 의미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방’류 단어는 ‘호방’으로 통칭할 수 있는데, 이 단어가 지닌 의미는 ‘호색’, ‘기상’, ‘방탕’, ‘외모’, ‘비례(非禮)’를 핵심 자질로 하고 ‘과단’, ‘해학’, ‘강직’, ‘음주’, ‘시문’을 부가 자질로 한다. ‘영웅’류는 대하소설 인물의 실상과 달리 긍정적인 자질 위주이며 ‘풍류’는 대하소설에서 문헌의 용례와는 달리 ‘음악’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였다. 대하소설에서 이른바 호방형 인물은 긍정적 자질과 부정적 자질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에 가장 부합하는 용어는 ‘호방’이라 할 수 있다.

경판본 『흥부전』 에 나타난 수(數)의 의미 -<박사설>을 중심으로-

하성란 ( Seong Ran Ha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261-289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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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경판본 『흥부전』의 ‘박사설’에 나타난 數의 의미를 탐색하는 가운데 흥부전의 구성 원리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경판본 『흥부전』은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병리현상, 특히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폐단과 財貨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작품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를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수와 돈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흥부전』에는 1ㆍ2ㆍ3ㆍ4ㆍ5ㆍ7ㆍ10ㆍ13 등의 수가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 흥부박은 4개이고 놀부박 13개이고, 놀부박에서 나온 인물들은 놀부에게서 돈을 앗아가는데 그 돈은 100냥ㆍ500냥ㆍ5000냥이며, 그것이 3의 패턴으로 반복된다. 또한, 놀부박에서 나와 놀부에게서 돈을 앗아가는 인물이 모두 10명이고, 그 중에서 8번째 박에서 나온 사당거사만이 전답문서를 빼앗아간다. 흥부박에서는 현물이 주로 나오는 가운데 7번째 순서에 돈이 나온다. 이러한 수는 무의미하게 산재한 듯 보이지만, 사실 매우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수들은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연관되어 있던 숫자에 대한 관념과 화폐와 현물에 대한 긍ㆍ부정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숙종조 기로 연향악장 <유천지곡(維天之曲)>

신경숙 ( Kyung Sook Shi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6권 0호, 2013 pp. 291-314 ( 총 24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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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기해년(1719년) 59세에 기로소에 입소한다. 이를 축하하는 연향이 두 번 열렸다. 먼저 같은 해 4월 기로소 대신들을 위해 하사한 석연이 열렸고, 이어 9월에 임금께 연향을 드리는 진연의식이 열렸다. 이 연향에서는 모두 <유천지곡>이라는 악장이 불렸다. 그러나 <유천지곡>의 이름만 보일 뿐, 작품은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본고는 이 악장 작품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이 작업은 세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먼저 기해년 두 연향의 목적을 재점검했다. 연향의 목적은 기로소 입소 기념이었고, 기로소 입소는 어첩에 존호를 써서 영수각에 봉안(안치)하는 일이다. 이에 숙종이 어첩에 쓴 존호를 언제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로 숙종이 존호를 받은 때가 즉위40주년을 기념하는 1713년이었음을 발견하였다. 당시 존호를 받는 의식을 거행했고, 이 의식을 위해 악장 <유천지곡>을 지었다. 세 번째로 <유천지곡>이 노래한 존호와 기해년 기로소 입소에서 쓴 존호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1713년의 존호악장이 1719년 석연과 진연의 악장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의식 거행에서 악장을 부른 사람과 의식에서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상과 같이 숙종조 기로연의 핵심은 존호에 있기 때문에, 존호악장, 즉 <유천지곡>이 사용되었다. 이로써 의식의 성격이 악장의 내용과 쓰임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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