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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검색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25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2권 1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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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 한국체류 1888~1927)의 고소설 번역과 그의 번역을 둘러싼 ‘통국가적인 문맥’에 관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게일은 40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개신교선교사이며, 또한 <춘향전>, <구운몽>을 번역하여 서구권에 소개한 한국의 고전번역가이기도 하다. 캐나다 토론토대 토마스피셔 희귀본 장서실에 남겨진 <게일 유고>(Gale, James Scarth Papers)에는 출판되지 않은 다수의 고소설 영역본이 존재한다. <게일 유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이자 핵심은 각 권이 대략 200쪽 분량의 책자형 자료, 총19권의 친필 <일지>(Diary)이다. 특히『일지』18~20권에는 게일이 19세기 말 수집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경판 본 국문고소설에 대한 번역물이 보인다. 본고는 이 자료들을 통해, 게일의 선교와 고소설 번역이란 두 실천이 지닌 상관성을 살피고자 했다. 첫째, <일지> 소재 고소설 번역본이 지닌 특성을 고찰했다. <일지>(Diary)에 수록된 <운영전>, <춘향전>, <심청전>, <토생전> 영역본에는 게일의 치열한 교정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게일 유고>속에는 4편의 번역물과 관련된 타자기로 작성된 또 다른 교정원고가 존재한다. 이는『일지』의 친필원고를 근간으로 게일이 활자화[재번역]한 자료였다. 즉, 이 일련의 번역물은 단순히 게일의 초역물을 집적해 놓은 것이 아니라, 교정 및 재번역 과정을 거쳐 활자화 혹은 출간을 지향한 게일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자료였던 것이다. 그 속에는 1917년 이후 고소설을 번역 출간하고, 1910년대 이전 근대화되기 ‘옛 조선’의 문명을 보존하려 게일의 지향점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둘째, 게일의 출간물 및 유고 속에 보이는 1917년 이후 게일의 고소설 번역 실천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았다. 게일의 번역적 실천은 고소설이 근대의 고전으로 정립되는 역사와 고소설의 언어가 고전어로 변모되는 흐름에 부응한 것이었다. 그의 고소설 번역은 한편의 문학작품 번역이라는 지평 속에서 원본의 감각을 충실히 직역하려는 번역적 지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주재한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이처럼 변모되는 고소설의 위상에 조응할 수 있었고,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번역수준을 보인 셈이다. 그 근간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에서 고소설을 수집하고 읽고 번역했던 그의 한국 체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또한 한국의 개신교선교사라는 그의 정체성이 있었다. 게일은 이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근대문학을 내면화한 서구인 독자란 입장을 고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19세기말 ~20세기 초 한국의 언어-문화 속에서 성서, 찬송가 등을 한국인 독자에게 한국어로 번역해야 했던 개신교 선교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소설은 한국인을 이해하고 한국어 학습을 위한 교과서이자, 동시에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할 중요한 문학적 형식이었던 것이다.

번역, 공동의 글쓰기 -표절 현상 속의 번역 규범

정혜용 ( Hye Yong Jung )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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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학계에서 생산된 표절에 관한 이론적 담론 대부분은 윤리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윤리적 관점을 고수할 경우, 번역윤리의 부재를 보여주는 표절은 윤리적 단죄의 대상이 될 뿐이어서, 왜 표절 관행이 한국 번역의 역사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는지, 표절이라는 복잡한 번역현상 속에서는 어떠한 번역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지, 선행번역본을 단순 모방한 표절본과 선행번역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개선한 표절본을 표절이라는 단일한 카테고리로 묶어도 되는지 등, 표절이라는 복잡한 번역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로 나아가는 길 자체를 막아버리게 된다. 이 글은 윤리적 관점에서 벗어나 표절이라는 특수한 번역현상을 한국 번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봄으로써,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표절이 근대 계몽기에 형성되었던 독특한 번역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교영화연구의 방법과 과제

하승우 ( Seung Woo Ha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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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비교영화연구를 위한 이론적 틀의 정립을 시도하는 글이다. 미래의 비교영화연구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방법론은 번역의 방법이다. 이를 살피기 위해 이 글에서는 사카이 나오키가 『번역과 주체』(2005)에서 제시한 번역 개념을 살펴보면서, 번역 개념이 비교영화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사카이는 두 개의 상이한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를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번역 과정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의 경우, 영어와 한국어간에 번역상의 오류와 오해가 발생하리란 것은 통념적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 상의 오류는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가정되는 공동체 내부에도 역시 존재한다. 다시 말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없으리란 보장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카이의 주장이 비교영화연구를 위한 중요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와 동시에 비교영화연구를 세계체계적 맥락 속에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세계체계의 맥락에서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의 문제틀을 비판적으로 참조할 것이다. 세계체계 하에서 문학 텍스트의 생산이 외부적 형식과 지역적 소재의 협상과 타협에 의해 형성된다는 모레티의 주장은 세계문학 및 비교문학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유용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형식과 지역적 소재의 대당 관계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외부적 형식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와의 조우에 의해 대체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비교영화연구에 관한 폴 윌먼(Paul Willemen) 의 선구적 연구를 검토하면서 비교영화연구의 기초적 기반을 외부적 형식 대 지역적 소재의 대당 관계 대신에, 하나의 지역적 문화 텍스트가 자본주의와 조우하는 과정으로 여기고자 한다. 비교영화연구의 기반을 자본주의와의 관련성 혹은 역사의 ‘작동들’(workings) 속에서 사고하는 윌먼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이 논문은 우리가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는 각각의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조건, 즉 자본주의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시도들이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에서 실제로 어떻게 행사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영화 <오발탄>(1961)을 비교영화연구의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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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는 필자의 독자적인 관점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논문은, 그 유형 중 ‘남성인물의 필터화와 전이된 욕망의 영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논문이다. ‘서술-초점화’를 ‘서사구조’ 및 ‘시간구조’와 연관시켜 분석하고 여기에서 영화서술학적 해석을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해석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라깡의 욕망이론과 전이 개념을 활용하였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 유형의 영화에 해당하는 것은 「생활의 발견」(200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해변의 여인」(2006)이다. 이 유형의 영화들은 무초점화의 양상을 보이면서도 각 영화에서 특정의 남성이 필터화된 인물이 되어 서사내용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홍상수의 영화는 서술학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대개 일상에 대한 미세한 관찰이라는 자연주의적 태도에 모더니즘적 미학의 방법론이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이 유형의 영화에서는 자연주의적 태도가 두드러져 모더니즘적 미학의 방법론은 다른 유형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다. 필터화된 남성인물의 전이된 욕망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이 유형의 영화 중 「생활의 발견」은 서사구조상 두 개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필터화된 남성인물인 경수의 연애여행이 드러나 있고 이에 따라 시간구조도 선형적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서사구조상 한 개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제지간의 욕망을 포함하고 있어 필터화된 남성인물인 문호의 아슬한 성적 욕망이 드러나 있고 이에 따라 시간구조도 선형적인 형식에 플래시백에 의한 시간착오가 결합되어 있다. 「해변의 여인」은 서사구조상 두 개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필터화된 남성인물인 중래의 연애가 같은 해변을 배경으로 반복되고 이에 따라 시간구조도 선형적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세 영화 모두 남성인물의 욕망이 바라보는 위치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전이를 통함으로써 실현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 유형의 통시적인 궤적은 이 세 영화가 다른 유형의 영화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비록 실제감독의 의도가 영상주의 욕망까지도 관찰하는 데에 있긴 하지만, 남성인물의 필터화와 전이된 욕망 때문에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유형의 영화와 비교해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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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한국슈퍼히어로물의 서사원형을 한국고전서사에서 찾고 이를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과 비교하여 서사코드적 차이를 규명함으로써 한국슈퍼히어로물의 고유한 서사적 정체성의 일단을 규명하고자 했다.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에서 세계의 문제는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부모·형제 트라우마(trauma) 문제로 치환되어 있다. 세계의 일부인 적대자는 내 가족의 일부인 부모이거나 형제이며, 나의 개인적·집단적 가치의 실현은 부모·형제 트라우마에 의해 촉발된다. 부모 트라우마는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다. 자식인 영웅의 일생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트라우마에 대응하여 그것을 치유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어떤 식이든 부모가 세계의 질서에 대응하는 방식은 자식의 영웅적 과업 성취 과정 내내 일종의 카운터 파트(counter part)로 작용한다. 부모 트라우마는 현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형제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치유된다. 형제 트라우마는 영웅인 자식의 이념이 형제의 그것과 충돌하는 데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다. 형제와 나는 부모의 자식들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현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이념이 서로 상반된다. 나는 부모가 만들거나 주도하는 세계의 법칙을 전복시키고자 하고, 형제는 그것을 수호하고자 한다. 내가 히어로인 자식이 되고 나의 형제는 안티히어로인 자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에서 영웅인 내가 부모·형제의 이념에 대립각을 세우며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이념은 민중적인 지점에 입각해 있다. 여기서 민중은 내 부모·형제와 남의 부모·형제를 포함한 집합체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다. 일종의 부모·형제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민중 지향적 확산이자, 집단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일부로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헐리우드 슈퍼히어로와 코리안 슈퍼히어로의 차이점은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야기하고 나와 대결하는 악당이 세계질서의 이념만 달리할 뿐인 반대의(opposite)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각자 구축하거나 따르고자 하는 이념의 질서를 달리하는 영웅이 아니라 순수한 악(pure evil)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악당들은 내 부모와 이념을 달리하며 세계의 주도권을 먼저 쥐는데 성공한 남의 부모가 아니다. 의사가족관계(擬似家族關係)로 치환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악당들은 주인공인 영웅의 유사형제들이 아니다. 나의 트라우마로 전이된 부모 트라우마의 극복 과정이 형제 트라우마의 극복 문제로 연계되는 코리안 슈퍼히어로물과는 달리, 절대 악으로 존재하는 빌런들은 이념을 달리하는 의사(擬似) 영웅형제들로 치환되지 않는다. 악당들과의 대결을 통해 구원하는 대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헐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악당들로부터 구출해 내는 대상은 물리적·정신적 측면의 약자인 시민이지 계층적·사회적·정치적 측면의 약자인 민중이 아니다. 상층출신의 귀족영웅들도 계급적 약자인 민중을 구원하는 위민(爲民)의 이념 지향성을 보여주는 코리안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다. 부모·형제 트라우마가 집단의 문제로 확산된 계급적 차원의 민중성은 코리안 슈퍼히어로물의 서사코드적 전유물인 것이다. 게다가 코리안 슈퍼히어로는 민중을 넘어서 민족적인 차원의 총체적인 집단 트라우마 극복의 문제까지 껴안는다. 당연히 헐리우드 슈퍼히어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점이다.

김명순 시에 나타난 신여성 의식 연구

김윤정 ( Yun Jeong Kim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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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신학문을 교육한 여성 1세대로서 나혜석, 김일엽과 함께 1920년대 신여성을 대표한다. 김명순은 당시의 신여성답게 전통 사회에 저항하여 여성의 새로운 자아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김명순은 근대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고 여성을 질곡하는 가장 주된 요소가 여성을 희생적이고 종속적 존재로 간주하는 봉건적 대가족제도라고 여겼다. 김명순을 비롯한 신여성들이 주창한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은 이러한 봉건적 대가족제도를 무너뜨리고 근대적 가족 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매개에 해당되었다. 김명순은 여성이 남성 중심적인 제도에 의해 억압되지 않으며 여성의 이상과 재능을 실현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이러한 신여성으로서의 의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김명순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고 하는 피해의식을 지니게 된다. 그는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하나 이를 방해하고 가로막는 특정 존재가 있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의식은 김명순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김명순은 그의 시에서 사회의 부조리함과 부패함을 비판한다. 더욱이 김명순에게 사회의 부조리는 전통적인 사회로부터 내려오던 여성 소외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김명순에게 근대화된 조선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로 다가온다. 한편 여느 신여성들에게 그러하듯 김명순에게 역시 자유연애와 사랑은 여성의 해방을 위한 방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김명순은 사랑에 대해 숭고함과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사랑에 관한 이상주의적 관점을 지닌다. 그러나 김명순을 비롯한 신여성들의 이와 같은 관점은 현실의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곧 한계에 부딪힌다. 신여성들이 이상으로 여겼던 자유연애와 사랑은 관념일 뿐 현실과 조화되지 못하고 만다. 김명순의 시에 나타난 내면의식들은 신여성으로서의 자의식과 함께 그것들이 당시 시대와 일치하지 못하였음을 잘 말해준다.

김춘수의 무의미시의 현상학적 특징 연구

문혜원 ( Yun Jung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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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나타나는 현상학적인 특징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꽃’ 연작으로 대표되는 존재론적 탐구는 현상의 발견에 따르는 사유의 과정이었다. 현상의 나타남과 사라짐에 주목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상 이면에 있는 본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존재에 대한 천착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존재론적 탐구가 존재(본질)와 현상의 짝에서 존재의 측면에 주목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무의미시는 현상의 측면에 주목하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의미시는 현상학적인 사유를 김춘수 자신의 창작에 작용한 결과이다. ?인동 잎?처럼 대상을 사생적으로 묘사하는 시들은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함으로써 현상학적 환원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과 관련된 의미들이 개입되면서 ‘현상학적 판단중지’는 실패하고, 이후 무의미시는 대상의 현실적인 관련들을 삭제하고 심리 상태만을 드러내는 ?대지진?과 같은 시로 나타난다. ?처용단장? 제2부의 주문이나 울림과 같은 시나 제3부의 음절 단위로 해체된 시 등은 순수 심리 상태만을 보여주기 위한 극단적인 실험들이다. 이러한 실험성이 강조된 결과 무의미시는 종종 의미의 부정, 언어 해체와 같은 과격한 시도라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처용단장? 제 1부와 제3부, 제4부는 실험적인 성격보다는 오히려 시인의 기억이나 트라우마와 관련된 의미적 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 이 시들은 의식의 지향성을 드러내면서 그러한 심리 상태를 형성하게 된 실제적 경험들을 나란히 배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년의 실제 풍경을 묘사하고 거기에 관련된 인상을 표현하는 방식의 시들이 그 예이다. 이들은 현상학적 환원 후에 대상을 다시 재구성하는 것으로서 대상을 제거한 이전 단계의 무의미시와는 구별된다. 현상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지평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때 지평은 대상을 중심으로 한 외부적 환경인 ‘외적 지평’만이 아니라 대상과 관련된 주관적인 의미 맥락인 ‘내적 지평’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대상을 다시 의미의 맥락으로 환원시킨다. 따라서 지평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처용단장? 제3,4부의 시들은 이전의 무의미시와 단절되었거나 혹은 실패한 무의미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학적 귀결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무의미시 이후 김춘수의 후기시가 실제적인 체험들을 바탕으로 한 의미 영역으로 회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헌구 비평 연구

최윤정 ( Yun Jung Choi )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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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헌구 비평이 식민지 시대 우리 문학의 지형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할 만한 여러 가지 주체적 민족 담론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들은 카프와 국민문학파로 양분된 문단 지형의 구도 속에서 그 의의와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함몰하고 만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헌구를 바라보는 관점도 카프에 의해 규정된 해외문학파에 대한 평가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헌구의 비평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는 식민지 시기 카프나 국민문학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점과 우리 민족문학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전통부정과 국민문학파의 부르주아적, 비민중적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행동주의를 선포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는 달리 행동주의 아래서 민족을 주체로 하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국민문학파의 민족주의가 조선적인 것의 귀환을 욕망하면서 과거의 것으로의 회귀에만 초점을 둔 것에 비하여 우리 것에 대한 주체적 호명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우리 전통에 대한 새로운 계보 쓰기를 제안한다. 이외에도 이헌구는 제국과 거리를 두고 주체적인 의식을 갖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이행하며, 세계문학화를 지향함에도 조선적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민족현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예술의 사회학적 비평의 관점에서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현실 도피적 경향을 경계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헌구는 우리 민족문학이 주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다각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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