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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557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9권 0호 (2010)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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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성에 내포된 의미를 가운데 현대라는 시간, 산업사회에서의 도시라는 공간, 진정한 삶을 위해서는 벗어나야 할 굴레라는 부정적인 인식 등은 근대 이전 우리 선인들의 일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외의 의미를, 예컨대 하이데거가 말한 잡담·호기 심·애매함이 현대 일상성의 존재양식이라는 것, 레비나스가 말한 향유를 통한 일상적 주체의 확립, 르페브르가 말한 현대의 일상성은 양식이 부재한 소비와 광고의 사회를 특징으로 한다는 것 등은 고전시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존재양식은 잡담과 호기심, 그리고 애매함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고전시가 〈쌍화점>, <사룡>, <사룡〉류의 시조들에서 확인되었다. 레비나스가 일상성의 토대라고 한 집이라는 거주공간이, 송순의 시조와 오규원의 현대시에서는 자연과 분리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공간으로 표현되었다. 요컨대 그들의 작품에서 자연세계는 소유물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양식이 부재한 현대의 일상성은 소비와 광고의 사회라는 르페브르의 진술을 바탕으로 고전시가인 〈한림별곡〉과 함민복의 현대시 〈광고의 나라〉를 대비시켜 본 결과, 전자의 경우 당대인의 삶과 문학작품에 형식과 주제의 양면에 걸쳐 양식이 있었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 그것이 부재함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현대의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도 고전시가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 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일상성의 개념에 기댈 때 고전시가와 현대시 사이에도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일상성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고전시가는 현대시의 토대가 되고 있음이 검증되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사족층의 시조와 일상성 담론

임주탁 ( Ju Fak Y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37-66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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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지어 부르는 행위는 작가의 일상을 이룰 수 있지만, 시조는 기본적으로 공적 발화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문학으로 자리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시조는 작가의 `실제적인 일상`을 핍진하게 드러내기보다는 `규범화되고 이상 화된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논문에서는 `일상성 담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일상성에 대한 조선시대 시조 작가의 인식 내용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시조 문학과 일상 성의 관계를 논의해 보았다, 첫째, 맹사성과 황희는 각각 사족층과 농민층이 일상적으로 실천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제시하였는데, 그 핵심은 자연적 순환질서와 그에 상응하는 국가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과도한 욕심은 버리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었다. 둘째, 이현보와 이황, 이이 등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태도와 방식을 수용하되, 이현보는 자기수양을, 이황은 진리 학습 과정으로서의 독서를 이이는 진리 탐구 및 발견 과정으로서의 학문을 사족층의 일상생활의 중심에 둘 것을 아울러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은 사림파 중심의 국가 사회 질서가 공고히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셋째, 중앙 정계에 진출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이홍유와 위백규는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비슷한 시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노래를 통해서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즉, 이홍유는 비록 향촌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를 비롯한 사족층은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일상 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함을 노래한 데 비해, 위백규는 농사를 중심으로 사족을 비롯한 인 민이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노래로 제시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사족에게 시조 문학은 일상성 담론 곧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 가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는 장으로 기능하였다 따라서 시조 문학의 일상성은 담론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담론은 실제 사족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족의 일상에 대한 담론이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하고, 그것이 국가 사 회의 구조를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면 시조 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성에 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이 논문은 그러한 관점에서 시조문학에 함축된 일상성 담론을 분석해 본 것이다. 이 논의가 조선시대 사족의 시조 문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규방가사에 나타난 가사노동의 의미와 "일상성"의 문제

백순철 ( Sun Chul Paik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67-9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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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여성들의 삶은 공/사의 구분이 심화되지 않은 까닭에 그 전부가 일상의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본고는 규방가사에 나타난 `일상성`의 양상과 그것이 여성들에 의해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를 고찰한 논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사노동이다. 이것이 어떻게 여성의 일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여성의 삶과 의식에 관여하는지를 살피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여성들이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대해 어떠한 감정과 태도를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은 주관적인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규방가사와 `일상성`의 관계를 주로 가사노동의 성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크게 여성들에게 긍정되는 부분과 부정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가사노동의 성격은 크게 가족력의 재생산을 위한 것과 인간상호적 관계를 위한 것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비중도 높고 가시적인 부분은 음식, 의복, 청소 등과 같은 재생산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은 여성들의 삶에 별다른 변화를 안겨 주지 못하며 단조롭게 무한반복되며 감정의 소외만을 낳는다. 특히 자신의 시/공간과 신체가 철저하게 통제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은 지극히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녀, 시부모 등 가족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종의 관계적 노동의 경우는 비자발적으로 수행되기는 하지만 여성들에게 상당한 의식의 변화와 새로운 경험들을 안겨 준다. 자율성과 친밀감의 형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읽을 수 있다.

향가의 제재로서 화랑 형상의 문학사적 의미

서철원 ( Cheol Won Seo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93-119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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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죽지랑가〉와 〈찬기파랑가〉에 형상화된 화랑은 역사학을 통해 기억된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화랑에 대한 두 가지 인상, 이를테면 통일에 기여한 군사적 영웅 또는 문화 창작의 주체로서 풍류객의 모습을 띠고 있지는 않다. 그 대신 통일 직후와 전제왕권 지향이라는 당대의 동향과 관련된 성격이 각각 `重士風味`와 `其意甚高` 라는 구절로써 부여되었다. 〈모죽지랑가〉가 창작되었던 7세기 후반은 삼국통일이 완수된 직후였다. 이 시기 군주의 통일 위업을 찬양한 『문무대왕릉비문』을 보면 그 군사적 위업을 드러내기에 앞서 전설적인 聖君의 덕성을 갖추었음을 먼저 부각시키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영웅`에게 요청되는 덕목으로 군사적 위엄보다는 윤리적 덕성을 우선시한 것이다. 화랑단 몰락의 반영 또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낭도를 구하기 위한 명분과 위의에 신경 쓰는 한편 현실적 융통성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던 죽지랑의 행동을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죽지랑의 일생을 통해 축적된 정치적 경력의 소산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두루 遍在함으로써 시간을 초월한 죽지랑의 성격은 이를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찬기파랑가〉가 창작된 8세기 중반의 경덕왕대는 전제왕권에의 지향과 모색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충담사에게 경덕왕이 요청하고 기대했던 것은 국왕에 대한 조력이거나 조력자의 역할이었다. `(<찬기파랑가〉에 표현된) 기파랑의 뜻이 높았다면 안민가를 지어라`는 조건의 맥락은 기파랑의 `意`가 결국 `安民`이라는 이념의 토대 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파랑의 실체는 확인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의 이미지가 초월적·추상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기에 역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遍在하는 神格에 가까운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경덕왕이 기대한 바람직한 신하의 형상을 죽지랑이나 기파랑으로부터 찾음직하다. 죽지랑과 기파랑은 각각의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었던 인물 형상이 `화랑`의 이름으로 향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인물을 의도적인 방향으로 묘사하기 위한 작가의식을 근거로 이루어졌기에 歷史像으로서의 화랑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그리고 그 의의는 문학사적 제재로서 시대적 요구와 긴밀하게 조응하는 새로운 인물 형상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계 박인로의 경제적 기반과 문학적 형상화

손대현 ( Dae Hyun Son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121-156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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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경제적 기반과 생애는 작품의 해석과 문학적 성과를 해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요, 중요한 토대라 할 수 있다. 노계 박인로의 경제적 기반에 관한 최근의 논란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본 논문은 노계 박인로의 문학을 해석하고 그 성과를 해명하기 위해 그의 경제적 기반을 해명하고 이를 어떻게 형상화하였는가를 고찰하자 하였다. 행장을 중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사항들을 점검한 결과 노계는 성장기에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점차 사정이 안 좋아져 말년에 이르러서는 끼니를 걱정 해야 하는 향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관직생활을 마감하고 향촌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유력 사족 및 거유들과의 유대 강화와 유학에의 침잠을 통해 한미한 처지와 경제적 궁핍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사후 도계사우 건립과 향사 논의를 통해 비로소 향촌의 존경 할 만한 인물로 인정받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계의 작품에서는 가난한 삶의 모습과 유학적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이 형상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두 측면이 한 작품에서 동시에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이는 한미한 처지와 빈약한 경제적 기반으로 인해 현실의 완강한 힘을 끊임없이 느껴 왔으며 유학적 세계에 대한 몰입을 통해 향촌의 유력 사족으로 인정받고자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노계의 문학에서는 관념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는 유학적 세계에 대한 지향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품의 구조와 더불어 당대 유력 사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궁고지상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완곡한 표현으로 수정한 『노계집』의 편찬 과정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노계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혼란한 시기를 살아간 사람이며 한미한 처지와 경제적 곤란 속에서도 당대 현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계 문학을 재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체제 순응적이고 보수적인 면 또한 전대 사족들의 그것과는 달리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그의 작품에서 서술되고 있는 피폐한 현실의 모습을 더욱 정치하게 살핌으로써 노계 문학의 성과와 문학사적 의미를 올바르게 구명하여야 할 것이다.

19세기 전반 가곡 가집 『시가전(詩歌典)』의 특성과 계보

권순회 ( Soon Hoi Kwon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157-179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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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신발굴 가집인 『詩歌曲』을 학계에 소개하고 주요 특성과 계보에 대해 고찰한 논문이다. 『시가곡』은 시조 사설 419수, 가사 3수가 수록된 가곡 가집이다. 필사본 1冊 楮紙에 총 67장으로 구성되었다. 편찬자, 혹은 편찬 집단을 알려주는 단서는 찾을 수 없다. 편찬 연대는 1816~1819년 전후로 파악된다. 사설은 줄글 형식으로 배열하되 가곡의 형식에 따라 章을 구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체 작가 정보를 수록하지 않고 악곡별 배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가곡』의 수록 가곡은 19세기 전반 가곡 연행의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조와 계면조에 따라 창곡을 배열한 점, 여창의 존재를 분명히 한 점, `두거`, `반엽` 등 19세기 전반에 파생된 창곡의 존재 등이 그것이다. 특히 『시가곡』은 `두거`가 독립된 창곡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이다. 아울러 `솔낭이`, `산락(散落)`, `긴농` 등 다른 가집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창곡명이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처럼 『시가곡』은 19세기 전반 파생곡을 온전하게 수렴하고 있는 가집이다. 『흥비부』와 더불어 19세기 전반에서 『가곡원류』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가곡 연행의 특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4장에서는 『시가곡』이 『歌譜』(국립중앙도서관소장)의 善本이라는 계보학적 사실을 밝혔다. 『가보』는 19세기 전반 가곡 가집의 특성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조와 계면조의 분류에서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다른 가집에서 볼 수 없는 생소한 창곡명이 등장하여 연구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가집이다. 대교를 통해 두 가집이 이본 관계이고 그 가운데 『시가곡』이 선본이라는 사실과 창곡명 표기에 다소간의 혼란이 있을 뿐 『가보』 또한 정연한 체제를 갖추고 있는 가집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녀창가전(女唱歌典)에 나타난 애정의 양상과 의미

김진희 ( Jin Hee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181-208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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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唱歌曲은 여성 唱者를 위해 따로 모아 놓은 일련의 가곡 작품들로서, 19세기 가집들에 수록되어 있다. 그 동안의 연구에서는 이를 19세기 유흥 문화와 관련된 감상적 산물로만 규정하였다. 그러나 여장가곡에는 이러한 측면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특징적 면모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들은 여장가곡의 일반적 주제인 애정의 형상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즉 前代 유사애정시의 전통과 변형, 口語를 활용한 자의식의 표현, 과감한 비유를 통한 환희와 열정의 표현 등이 그것이다. 여장가곡의 이러한 애정 형상은 동시대 남창가곡에서 보이는 감상적이거나 희극적인 가벼운 애정 양상과는 달리 진지함을 그 특정으로 한다. 이러한 진지함은 여장가곡이 19세기 妓房 문화의 수동적 산물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이상적 애정의 가능성을 통해 계급적 한계의 초월을 꿈꾸었던 여장가곡의 가창 주체들, 즉 기생의 삶과 정서가 녹아 있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여장가곡은 "여성적"인 것에 대한 당대 통념의 산물만이 아니라, 실제 여성의 현실과 경험을 독창적 형식을 통해 표현한 "여성의" 노래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가집 『성악원조(聲樂元組) 가전(歌典)』의 성격

신경숙 ( Kyung Sook Shin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209-234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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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성악원조 가곡』 (서울대중앙도서관 소장)을 처음으로 발굴·소개하고, 나아가이 가집을 가집사상에 위치짓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성악원조 가곡』은 1897년에 靑荷浪人에 의해 편찬되었다. 이 가집에는 가곡, 시조, 가사, 단가, 잡가, 시창 등 다양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이 중 110수로 이루어진 `가곡` 부분만을 조명하여, 가곡 가집으로서의 성격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가집은 모본이 되는 `어떤 가집`을 베꼈다. 둘째, 이 가집의 악곡 편제는 기존 가집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 특징은 20세기 초 활자 본 가집 『대동풍아』와 상당히 유사하다. 셋째, 작품 수록 순서가 『대동풍아』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두 가집은 동일 모본을 보고 제작한 것이다. 넷째, 이 가집은 서울지역 상층 인사 혹은 그 주변에서 향유되었다. 다섯째, 『가곡원류』와는 전혀 다른 『성악원조 가곡』 계열의 새로운 가집 계열이 존재했다. 이는 19세기 후반 가곡사가 현재 알려진 것보다 더 풍부했음을 알려준다.

조선후기 사행가사의 창작 과정과 언어적 실천의 문제

김윤희 ( Yun Hee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235-26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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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의 사행가사가 한문일기를 토대로 창작된 정황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국문가사로의 변환이라는 문학적 실천의 측면에 유의하여 그 실제를 분석한 후 이를 근대적 글쓰기의 문제와 연계하여 살펴볼 것이다. 특히 한문과 국문이라는 언어 표기의 차이에 따른 언어적·문학적 특질을 비교해 봄으로써 국문가사로 창작되는 과정에서 생성 된 새로운 문학적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해 보았다. 일차적으로 한문으로 된 사행 일기를 가사문학으로 창작한 실천적 행위는 `모어`를 통해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당대인들의 문학적 욕망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창작 주체는 한문과 국문 사이의 대칭적 구조와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변환 과정에서 자국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어휘를 선택하고 통사 구조 및 문단 단위에 따른 체계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등 가사 문학적 향유 맥락에 따른 언어적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변환의 과정에서 국문 언어의 구체적 감각이 확보된 어휘들이 선택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는 자국어만의 가치와 효용성을 전제로 한 문학적 실천 행위라는 점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동장유가〉에서는 자국어 어휘의 고유한 미감이 선택·활용된 문학적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유일록〉의 경우 한문 일기와 비교했을 때 체계적이고 사실적인 장면화를 통해 언어적 전달 효과가 강화된 측면이 확인 되었다. <셔유견문록〉의 창작 과정에서도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자국어가 활용되어 가사문학의 미감이 생성된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무자서행록〉의 필사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듯이 사행가사 작품들의 이러한 언어적 실천 행위는 가내 소통은 물론 다수의 지적 욕망 및 호기심을 충족케 하는 층위에서 작품들의 효용성이 생성·발휘된 문학적 향유 맥락을 짐작케 한다. 사행가사의 창작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선후기의 이러한 문학적 현상이 양적 부족 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그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하는 것은 근대 문학과의 단절적 논의를 지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0세기 초반의 국문이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당위적 명분과 관련하여 그 담론과 실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어와의 관계망 속에서 조선어만의 특질이 강조되는 글쓰기가 근대에 와서야만 실천·실험·발견되기 시작했다는 단절적 논의는 보다 섬세한 층위에서 재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고의 시각이다. 조선후기의 경우 이념적 기제로서 `국어`가 담당한 사회적·정치적 기능이 발휘·강조되지 않았을 뿐 자국어로 된 문학의 언어적 특질과 그 실천적 의의는 한문 기록과의 대비를 통해 매우 선명하게 포착됨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고의 試論的 시각이 다양한 고전시가 작품들에 대한 실증적인 접근으로 확대되어 당대인들의 욕망과 세계관이 자국어 문학의 실천적 측면과 연계되어 발현된 문학적 특질과 효용성을 거시적으로 조망케 하는 논의로까지 심화·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에 대한 일고찰 -교류와 통합, 공존에 주목하여-

김은희 ( Eun Hee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29권 0호, 2010 pp. 269-303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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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양`이라는 공간을 형상화하는 18~19세기 작품들의 공통적 특정 중,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당대인들의 인식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 시 창작자들이 `한양`을 형상화하는 양상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 관점의 특징과 변화를 살피는 데 주력하였다. 시조·가사·한시의 세 분야 작품을 대상으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 `한양`에 드러나는 문학적 의미를 그 형상화 양상에 중심을 두어 살핀 것이다. 특히 도시의 발달과 상업화에 따른 여항-시정 공간에 주목하여, 상층의 고급문화와 하층의 서민문화가 상호 교류하면서 공존·통합하는 양상을 시적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19세기 시가작품들에서 `한양`은 상층 사대부의 공간, 윤리적 유가적 공간을 노래하기도 하고, 하층 民의 공간,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하기도 하지만 이 두 대립적 지향이 이 시기 새롭게 대두되는 공간인 市井에서 화합하고 상생하며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양상은 (1) 동일 작가의 작품들에 유가적 격조와 여유를 지향하는 공간과 세속적 욕망의 공간을 형상화한 두 경향이 공존하기도 하고, (2) 신분상 상층인 전형적인 사대부 작가가 전형적 상층 갈래인 漢詩에 시정의 세속적 인물과 세태를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상하문화가 융합하는 문화의 수평적 전환을 보이기도 하며 (3) 한 작품 내부에 조선왕조 송축이나 도성으로서의 자긍심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이념적 태도와 시정풍경의 생기발랄한 통속성이 공존하기도 하였다. 市井은 상업적 공간이다. 바로 이 조건이 새롭게 발달된, 물류와 문화의 교류 혹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토대가 되며, 따라서 公衆的 공간이며 현실적·구체적 공간이다. 시적 공간으로서 `시정`은 18~19세기에 교류의 공간, 화합의 공간, 공존과 상생의 공간, 수평적 전환의 공간, 多衆의 공간으로 형상 화되어 있음을 일부분 확인하였다. 이 글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에서,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은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거나, 혁신을 주장하기보다는 교류의 공간인 시정의 활기와 낙관에 힘입어, 기존의 유가적·이념적 가치와 현실적·세속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상생하고 공존하며 통합하는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다만 자료적 참신성의 부족과 폭 넓은 자료 제시가 미흡하여 18~19세기, 시적 공간으로서의 한양 전반에 대한 고찰에 이르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논의를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18~19세기 시가의 시적 공간에 대한 고찰이 보다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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