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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557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7권 0호 (2014)

근대계몽기 시가의 역사의미론적 이해

이형대 ( Hyung Dae Lee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7-3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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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통시대의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나 근대의 공론장(public sphere)에 편입된 근대계몽기 시가를 역사의미론적(historical semantics)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역사의미론적 탐색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대 행위자들의 내면 의식을 좀 더 면밀하게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근대세계의 탄생과 관련하여 언어혁명의 의미를 근대계몽기 시가에 부여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개념사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근대계몽기의 역사 행위자를 주목하고, 그들이 남긴 근대계몽기 시가에서의 기대지평과 경험공간을 파악해보고자 하였다. 근대계몽기에 출현한 다수의 새롭고도 선험적이며 미래연관적 개념들이 근대를 추동한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근대계몽기는 코젤렉이 말한 바, ‘말안장 시대’에 해당되는데, 계몽지식인 공론장과 평민공론장이 출현하여 상호연대하고 공명하였던 시대이다. 계몽시가 작품들은 전통시가의 의미를 재맥락화하거나 변형 또는 새로운 양식으로 창안되어 일제의 식민지배 야욕의 청산과 근대국가 건설을 향한 열망을 담아내었다. 근대계몽기 후반부부터 현실 역사의 흐름은 식민지 지배가 가속화되는 방향으로 치달았지만, 당대의 행위자들은 역사를 근대 문명화를 향한 진화 과정으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기대지평 속의 새로운 개념들을 끊임없이 수용, 창안하거나 변개시키며 새로운 정치적 행동공간을 열어 갔다. 본고는 계몽시가가 이처럼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언어혁명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하고자 하였다. 군주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던 역사상황 하에서 새로운 근대국가에 대한 꿈을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계몽시가에서의 경험공간과 기대지평 사이의 격차는 컸다. 그러나 이 시대에 제출된 숱한 미래연관적 개념들과 밝고 씩씩한 어조의 노래들에는 사회진화론적 논리구도를 뛰어 넘을 정도의 강렬한 사회변혁의 열망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미래의 경험 영역들을 창조하고 있었다. 역사는 결국 이러한 기대와 경험의 격차를 좁히며 근대로 이행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몽기시가는 미래의 경험을 노래하였다고 할 만하다.

도래하는 "대조선(大朝鮮)", 귀환하는 "영지(靈地)" - 최남선 『조선유람가』의 문화정치학 -

최현식 ( Hyun Sik Choi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33-83 ( 총 51 pages)
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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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남선의 『조선유람가』(1928)의 문학사적·문화정치학적 가치와 의미를 동시에 제고하기 위해 작성된다. 장편창가 『조선유람가』는 1920년대 중반 ‘조선주의’와 ‘불함문화’를 널리 표방하기 위해 작성된 시조집 『백팔번뇌』와 기행문 『백두산근참기』 『심춘순례』 「풍악기유」(『금강예찬』) 등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조선유람가』는 당시로서는 퇴조기에 접어들던 ‘영사’ 형식을 빌려, ‘대조선’의 영웅과 역사, 인문과 자연 등을 예찬하는 장편창가, 곧 ‘만들어진 전통’이었다는 것이 본고의 입장이다. ‘대조선’의 소환은 서사시적 과거의 기억과 현재화, 그를 통한 조선적 정체성의 확립과 미래로의 투기를 도모하는 탈식민 혹은 저항의 문화정치학이었다. 요컨대『조선유람가』는 실제 여행과 그에 대한 정서의 기록과 표출을 목표하는 시조집이나 기행문과 달리, 과거(역사)와 지리 정보를 자유롭게 통합, 배치함으로써 ‘조선주의’의 폭넓은 확장과 심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되고 기대되었다. 본고는 이런 사실들을 논구하고 증명하기 위해 ≪동아일보≫본 『조선유람가』와 이를 수정·보완한 한성도서본 『조선유람가』를 비교 분석하였다. 특히 전자에 수록되었으나 후자에서 탈락한 경성의 창경원 부분, 후자에 보충된 측우기, 활자등을 중심으로 경성과 궁궐을 둘러싼 공간의 지배를 향한 일제의 식민주의 및 그에 대한육당의 탈식민적 저항의 면모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또한 『조선유람가』의 핵심으로 생각되는 백두산과 영웅 서사, 당시 조선 투어리즘의 핵심 장소 금강산과 경주에 대해서도 복합적으로 검토했다. 먼저 이것들을 ‘조선주의’와 ‘불함문화’의 근원적 장소로 예찬하는 육당의 심미적 시선과 태도를 주목했다. 또한 이것들을 식민지의 폐허화된 유물 내지 식민지 본국의 성스러운 자연에 비해 그 가치가 미약한 공간으로 바라보았던 일제의 식민주의적 시선 역시 고찰함으로써 육당의 탈식민적 문화정치학의 가치를 입체화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실린 요약본 창가 『조선유람별곡』을 살펴봄으로써 육당이 조선의 역사와 영웅, 자연 등의 우수함을 대중들이 보다 쉽게 체득할 수 있도록 노력했음을 다시 한번확인하고자 했다.

근대시 형성 과정의 제문제

유성호 ( Sung Ho Yoo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85-108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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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근대성 논의는 고전문학 연구자들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해명되고 문제 제기되어 왔다. 그 대표적 견해들은 사설시조나 잡가 등을 근대시의 전사(前史) 혹은 맹아 상태로 보려는 시각을 담고 있다. 이는 한결같이 문학사를 일종의 내재적 연속성에서 파악하려는 민족주의적 충동을 담고 있고, 문학사가 고대 - 중세 - 근대로 선형적 이월을 했다는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 가장 뚜렷한 사례로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를 근대시의 동일 연속체로 간주하는 시각이 대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은 다분히 심정적 자문화 중심주의를 짙게 반영한 것임을 후세대 연구자들이 여러 차례 증명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근대의 단초를 사설시조에서 찾기 위해 몇몇 오도된 샘플링이 있었고, 그 추인 과정도 잇따랐다는 점이 여러 차례 비판된 것이고, 그러한 담론적 실증성이 놀라우리만치 축적된 것이다. 그리고 근대문학 연구 쪽에서는 더 많은 사례가 축적되어 있다. 최근 연구사는 크게 보아 사설시조 연원설, 개화기 시가양식의 혼재설, 최남선의 신체시의 영향설, 주요한이나 김억의 시에서 비롯하였다는 설 등 네 가지 정도로 근대시 이행기에 대한 판단을 개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근대성 논의는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대개 내용상의 개성 발견 그리고 형식상의 자유시 구현에서 근대성의 징후를 찾아내는 현상 기술적인 단계에서, 그것들이 진정한 근대성의 성취에 값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미학적 탐색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 초기의 시가 그 자체로 ‘개성’과 ‘주체적 판단’을 근거로 하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주지만, 시대 상황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주체로서의 정립 과정에는 현저하게 미달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시적 주체들은 과도기적 성격에 머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세적 형식의 탈피라든가, 세계사적 문명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려는 근대적 의욕의 진원지로서 이 시기의 문학사적 몫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시의 초기 양상은 1920년대를 전후하여 가장 왕성하고도 세련된 동인지 시대를 맞아 근대시의 확연한 착근과 확충의 시기로 이어진다.

향가(鄕歌)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본 신라인의 내세 관념

서철원 ( Cheol Won Seo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109-138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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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국유사 』 설화와 향가를 통해 신라에서 내세 관념이 성장하고 내세와 현세의 관계 인식이 심화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유사 』에는 죽음과 내세 관념 관계 설화가 다수 있다. 이들은 정토와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일순간에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을 지녔는데, 현존 향가에는 이와 동일한 정토 관념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환생한 존재가 전생의 자신이 추구했던 목표를 지속한다거나, 내세로 떠나더라도 혈육의 정이 지속되는 등의 화소가 보이는데, 이는 <모죽지랑가> 전승담과 <제망매가>의 “미타찰”을 떠올릴 만한 것이다. 7세기 중엽의 <풍요>와 <원왕생가>는 공덕과 수행의 성과로서 정토 관념을 내재화했던 단계에 해당하는데, <풍요>는 양지가 조각한 불상과, <원왕생가>는 16관법, 쟁관법 등의 수행 원리와 더불어 향가 향유층이 정토 관념을 이해하게 했다. 7세기 후반의 <모죽지랑가>는 그 전승담에서 죽지령 거사가 죽어 내세에서 미륵불이 되고, 그 미륵불이 죽지랑으로 환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환생의 양상은 죽지랑의 신성성과 ‘선업’이 현세와 내세에 두루 걸치는 모습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8세기 중반에는 <제망매가>를 통해 현세 인연의 내세 지속 문제가 “미타찰”의 공간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을, <찬기파랑가>에서 <모죽지랑가>와 <제망매가>에서 이루어진 인물의 형상화와 수사방식이 다시 시도된 모습을 찾아보았다.

<보현시원가>에 나타난 시적 자아의 성격

전재강 ( Jae Gang Jeon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139-17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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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보현시원가>에 나타난 시적 자아의 성격을 그 근거 작품인 『화엄경』의 <보현행원품>과 그 번역 작품인 <보현십원송>의 경우를 상호 대비하여 시적 자아가 가진 목소리의 성격, 시적 자아의 지향 의도와 그 실현으로서의 표현 내용, 의도의 실현을 위하여 사용한 표현법 등 세 가지 기준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자아의 목소리의 성격에서 산문과 운문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보현행원품>의 자아가 산문부분에서는 서사적 작품 내적 자아, 운문에서는 시적 자아로 나타났고 경전의 성격상 이 두 자아는 교시적 성격을 가졌고, <보현시원가>의 자아는 근거 작품의 성격을 수용하여 교시성을 가지면서도 시적자아로서 정서적 감동을 유발하는 서정적이라는 성격을 가졌고, <보현시원송>의 자아는 시적 자아로서 <보현시원가>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원가를 칭송하는 지향을 보여 교시적, 서정적 성격 위에 송도적 성격을 더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아의 지향 의도에 따라 작품의 중심 내용에서 <보현행원품>의 자아는 지향한 의도가 교시였기 때문에 중생 제도라는 교시할 내용을 길게 담아내는 특성을 보여 주었고, <보현시원가>의 자아는 지향한 의도가 교시에 기초한 감동이었기 때문에 성상융회, 법계연기의 철리를 새로운 내용으로 제시하고 정서적 표현을 두드러지게 하는 특성을 보여 주었고, <보현시원송>의 경우에는 작품 전체적으로 칭송 지향의 의도를 가졌기 때문에 <보현시원가>의 핵심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면서 그 가치를 드러내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내용을 보완하거나 직접적 칭송의 내용을 보여 주었다. 표현방식에서는 일정한 성격의 자아가 <보현행원품>에서는 교시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교시의 내용을 나열하고, 과장하거나 강조하는 수사를 구사하고, 모르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설명, 인물간의 대화, 설명, 비유 등 수사를 사용하고 있었고, <보현시원가>에서는 근거작의 수사를 최소화하면서 영탄법, 은유, 비유, 상징, 역설법 등을 주로 사용하여 함축을 통한 감동이라는 서정의 효과를 높이고 있었고, <보현시원송>에서는 칭송을 위해서 대체로 <보현시원가>의 표현방식을 따르면서 율시의 특성으로 나타난 대구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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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小倉進平와 梁柱東을 두 축으로 1930년 전후 향가 연구의 원풍경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帝大 출신’의 이점을 가진 小倉는 대학에서 습득한 학풍대로 철저히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를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다. 학창시절에 접한 『삼국유사 』에서 ‘고유 신라어’ (향찰)로 적힌 향가를 발견하고, 이를 일본 고대어의 풀이 방법을 원용하여 해석해 냈다. 그러나 한자 용법상의 착오, 의미 불통의 해독, 어법과 어휘상의 착오 등이 많이 나타났는데, 梁柱東은 이 같은 小倉의 단점을 재빨리 극복한 연구자였다. 특히 末音添記의 개념을 세워 임한 해독은 향가의 시가성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우리말 구조의 핵심에까지 근접하였다. 이런 성과에 대한 小倉의 구체적인 언급은 끝내 없었다. 필자가 小倉의 기증 도서 가운데서 발견한 自筆 메모는 이 같은 사실을 보다 분명히 입증해 준다. 小倉는 본인 소장의 『鄕歌及び吏讀の硏究 』에 30여 종의 책과 자료에서 인용하여 모두 69군데에 메모를 붙여 놓았다. 이는 원저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하였을 것이다. 1934년에 간행된 『雜考 』 (鮎貝)가 인용 자료로 포함되어 있으므로, 작성은 그 이후의 일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小倉의 메모를 소개하면서 그것이 지닌 성격과 의의를 정리한 바, 이를 이용한 정치한 小倉 연구 분석은 관련 연구자의 몫으로 미룬다. 다만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하여 메모 안에 梁柱東의 언급 유무를 확인하였다. 결과적으로 없었는데, 小倉 해독의 문제점을 정면에서 조준한 양주동의 연구 성과를 그는 어쩐지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자료는 향후 연구에서 小倉의 학문적 궤적을 다시 고찰하는데 크게기여하리라 본다.

음사 수록에서 교화담론의 한계와 그 이면의 의미 - 김천택과 풍몽룡의 경우 -

조성진 ( Seong Jin Jo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213-246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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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천택과 풍몽룡이 편찬한 가집의 서발문을 중심으로 음사 수록에서 교화담론이 지닌 의미와 한계, 그 이면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교화담론이 음사 수록을 두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지만 작품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그리고 김천택의 「만횡청류」 수록과 풍몽룡의 악부민가집 편찬이 기본적으로 이항의 노래와 이어(俚語)를 긍정하고자 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끝으로, 교화담론이 겉으로는 음사 수록을 정당화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그 이면에는 ‘정과 욕’의 시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밝혔다. 아울러 이 같은 시학의 변화가 情의 의미 변화와 일정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논문은 음사 수록이라는 문학적 실천의 이면에 깔린 의미를 파헤치고 이를 통해 조선후기 시학의 주요한 변화를 포착하여, 우리 시가사의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만횡청류」 수록을 새롭게 평가하고자 한 데에 의의가 있다.

≪만언사≫의 복합적 성격과 현실적 맥락에서의 의미

최현재 ( Hyun Jai Choi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247-27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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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세기 후반 別監 安道煥이 창작한 ≪만언사≫의 성격과 지향점, 현실적 맥락과 결부된 작품의 의의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유배가사뿐만 아니라 가사 전체로 보더라도 ≪만언사≫는 상당히 많은 이본을 산출할 정도로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며 소설에도 삽입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또한 가사 작품 여러 편이 이어진 연작의 형식이라는 점도 이채로울 뿐만 아니라 몇몇 이본들에는 작가와 창작에 관련된 정보를 담고 있는 후기도 덧붙여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유배가사로서의 성격 이면에 내재한 규방가사 내지는 교훈가사의 성격을 드러내고, 이를 창작 당시의 정치현실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하였다. 그 결과 ≪만언사≫ 연작은 작가의 유배형이라는 외적 환경에 의해 작품의 창작이 촉발되었지만, 유배를 계기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개과천선을 다짐하는 쪽으로 나아가 결국 작품의 성격이 규방가사 내지는 교훈가사로 기울어지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대부분의 유배가사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을 술회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작품 후기의 내용처럼 규방의 부녀자와 임금까지도 관심을 표명할 만한 요소들을 더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와 처자 등에 대한 효성과 그리움의 정서를 짙게 드러내고 지난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한 개과천선에의 의지를 다짐한다는 것이 그러한 요소들에 해당하는 구체적 내용이라 할 것이다. 특히 효성에 대한 강조와 일가에 대한 그리움은 그 당시 임금인 정조의 통치 강령과 정책 기조인 효치사상과도 상당히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작품에 이목을 집중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본고의 관점에서 볼 때, ≪만언사≫의 ‘萬言’은 유배가사로서의 임금에 대한 충성에다가 교훈가사로서의 삶에 대한 자성과 성찰, 규방가사로서의 부모와 처자에 대한 그리움 등이 한데 버무려진 상태, 곧 유배 당시까지의 인생 역정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정의 술회와 새로운 앞날을 위한 각오와 의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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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가람본 『청구영언』 (이하 『청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19세기 초반의 가곡 문화를 탐색하는 것이다. 『청영』 은 19세기 중반에 완성되었지만 그 내적 체계는 그보다 이른 시기인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가곡 흐름에 더 견인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19세기 초반, 다양한 악곡이 분화·파생되어 가던 양상이 잘 반영된 가집으로 드러났다. 논의 결과를 정리하면, 먼저 『청영』 은 가집 이름과 체계가 진본 『청구영언』 으로부터 시작된 18세기 가집 편찬의 전통을 대체적으로 따르고 있지만 ‘김천택 중심의 가곡 문화권’에서는 벗어난 가집이었다. 그리고 각종 서·발문과 음악 기록들이 다수 실려 있어 여러 항목을 갖추고자 한 가집 편찬자의 수집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청영』 이 완성된 시기로 추정되는 19세기 중반 가곡의 가장 큰 특징은 ‘평조, 평조계면조, 우조, 우조계면조’라는 4개의 악조에서 ‘우조, 계면조’라는 양조로의 정착인데이 가집에는 이러한 조짐이 보이지 않아 우·계면 정착 이전 시기의 문화가 반영된 가집으로 파악되었다. 당대 보편적 가곡 문화와 상반된 흐름은 중대엽 항목에서도 나타났다. 18세기 후반~19세기 초·중반 편찬된 대개의 가집에서 중대엽은 악곡별로 1수 정도 수록되는데 반해 『청영』 에서는 악곡별 수록 작품이 증가했음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중대엽 항목이 쇠퇴해가는 시기에도 나름의 명맥을 유지하며 가창·전승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청영』 의 이삭대엽 항목은 불규칙적인 편제 양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지속적인 보충·보완을 통해 이삭대엽을 완비하고자 한 편자의 노력을 의미한다. 또한 농·낙·편 계열의 다양한 악곡이 생성되면서도 선호도는 이삭대엽을 비롯한 본가곡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만횡 낙시조 편삭엽 농가’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흔히 ‘소가곡’이라 이르는 농·낙·편의 악곡은 이미 분화되었으나 해당 악곡별 레퍼토리가 확정되지 않아 『청영』 에는 이들 악곡명이 하나로 묶여 수록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가집이 향유된 문화권에서 이삭대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에 당대에 파생되기 시작한 악곡별 맞춤형 노랫말을 굳이 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가집(歌集) 편찬과 『동국가사』 의 가치

김태웅 ( Tai Woong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7권 0호, 2014 pp. 305-327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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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편찬된 가집인 『동국가사』 의 ‘우조 삭엽’과 ‘계면조’의 의미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이 가집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동국가사』 의 명칭은 일반적인 가집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가집들이 ‘영언’(『청구영언』 등), ‘가요’(『해동가요』 등), ‘가곡’(『가곡원류』) 등과 같은 명칭을 사용해 그 책이 노래와 연관된 것임을 분명히 나타낸 것과 같이 『동국가사』 또한 ‘가사’라는 명칭을 붙여 노래책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구성에 있어서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 보다 앞선 시기인 18세기 중반 가집인 『해아수』 는 초중대엽, 이중대엽, 삼중대엽, 북전, 삭대엽, 만횡청류 등 6개 악곡만 나타나고 있어 기존의 가집들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조와 계면조로 악조가 두 개로 고정화 현상이 나타난 후 가집의 악곡은 더 세분화 되었는데 『동국가 』 초중대엽, 이중대엽, 삼중대엽, 우조 초삭엽, 우조 삭엽, 소용(반엽 포함), 계면조, 낙시조 등 9개 악곡만 나타나고 있어 동시기의 가집과는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이 가집의 특징은 ‘우조 삭엽’과 ‘계면조’인데 이 부분은 ‘삭대엽’ 계열의 악곡으로 이 악곡들은 후대 가집에 ‘두거’, ‘평거’, ‘중거’ 등 ‘이삭대엽’의 파생곡으로 나타나는 바 『동국가사』 는 파생되기 바로 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가집임을 이것을 통해 파악하였다. 이렇듯 『동국가사』 는 기존의 가집과는 다른 형태의 가집편찬을 보이며 ‘삭대엽’ 계열악곡이 파생악곡으로 정착되기 바로 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독특한 가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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