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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557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8권 0호 (2015)

고전시가 연구와 교육의 지표

김대행 ( Dae Haeng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7-21 ( 총 15 pages)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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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전시가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까닭은 그것이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말’에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며 행동은 예나 이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이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그래서 옛사람들의 말인 고전시가는 연구하고 교육할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고전시가 연구와 교육은, 애국애족의 강조, 객관적 분석에의 골몰, 계급을 앞세운 투쟁적 삶의 일반화 등 당대의 삶이 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이를 돌아보면서 이제 개인적존재이자 사회적 존재이며, 그 삶의 본질이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보람이 있도록 고전시가의 연구와 교육은 인간의 감정이입적 이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고전시가가 연구하고 교육해야 할 내용으로 지식, 경험, 수행, 태도의 네 가지를 두루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유교(儒敎)에서 교(敎)의 맥락과 시교(詩敎)의 이해 -공자의 시교(詩敎)를 중심으로-

신창호 ( Chang Ho Shin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23-48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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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양의 詩歌가 왜 교육적으로 중요한지, 공자의 詩敎를 통해 구명한 것이다. 시교를 논의하기 위해 敎의 문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교는 이미 세계를 접촉하고 있는 학습자에게, 세상의 사물에 대해 공부하라고 교수자가 손짓하며 재촉하는 모습이다. 그런문자적 속성을 바탕으로 유교에서 교육은 늘 日常이라는 생활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때 교육의 핵심 내용은 六藝이다. 시교의 중심 내용인 詩經은 六藝를 가장 함축적이고 비유적으로 담고 있다. 詩敎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우주 자연과 인간 세계의 모든 일에 대해, 시에 농축되어 있는 내용을 마주하여 깨닫는 작업이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에 대한 기록인 노랫말을 통해 우주자연을 인식하고 삶의 세계를 파악하여,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공자는 論語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詩敎정신을 구가하였다. 하나는 인간의 자기이해이자 개인교육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인식과 정치적 응용을 통한 공동체 교육의 측면이다. 인간의 자기이해 차원에서 詩敎는 敬을 통한 修己에 중점을 두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詩敎는 克己와 같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인을 넘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사회 전체의 규범, 제도, 체제 등이 건강하도록,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꾀한다. 공자가 강조하는 詩의 효용은 개인의 도덕적 수양, 사회 윤리, 정치외교 활동, 지식습득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그 중점은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敎化에 있다. 이런 점에서 詩敎는 인간교육이자 사회교육을 특성으로 한다. 그것은 間學問的 統合敎育이자, 소통의 敎育美學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의 양식이다.

근대시의 인식과 언문풍월 -국문으로 가능한 시(詩)의 모색-

박슬기 ( Seul Ki Park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49-71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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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시의 저급한 패러디양식으로 간주되었던 언문풍월이 개화기의 국문 의식과 신시 의식의 교차 속에서 국문-시의 한 가능성으로서 추구되었으며, 전통적인 시의 이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의 양식을 창안하고자 했던 1920년대 시 담론의 한 기원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형식과 언어, 내용의 차원에서 각각 전통을 계승하고 결별하는 지점을 달리 설정했던 개화기의 세 가지 신시 의식의 토대 위에서 언문풍월은 ‘순국문으로 쓰인 한시’라는 ‘신시’로 창안되었다. 언문풍월이 현상공모전을 통해서 그 형식을 가다듬어 갔다는 점, 공모문에서 항상 ‘순국문’과 ‘한시 형식’을 강조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언문풍월은 대중의 언어 유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의 당당한 한양식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의지에 의해 추인된 장르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1920년대의 가람의 시조 형식론과 김억의 격조시형론에 이어지며, 언문풍월을 통해 국문-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했던 시적 인식은 한국 근대시의 한 기원을 이룬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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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행 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보이는 향가 교육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이의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크게 어학적·문학적 부문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어학적 부문의 경우 향찰이라는 차자표기의 기본 원리에 대한 설명에 큰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향찰표기는 원래 ‘正用字[일반한자] + 借用字’로 어절이 구성되며 정용자는 ‘音讀字’와 ‘訓讀字’로 세분되고 차용자는 ‘音借字’와 ‘訓借字’로 세분되는데, 현행 교과서에서는 음독자와 음차자를 동일시하고, 훈독자와 훈차자를 동일시하여 수록함으로써 교사와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에서 연원하여 ‘음차자’와 ‘훈차자’가 구사되는 문법적 위치 또한 ‘음차자는 語頭에, 훈차자는 語末에 온다’고 제시함으로써 교육현장에서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본고는 향찰에 쓰인 字를 ‘정용자 /차용자’로 대별하고 정용자는 다시 ‘음독자와 훈독자’로, 차용자는 ‘음차자와 훈차자’로 나누는 것이 향찰표기의 기본 원리이고 교육 또한 이에 준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했다. 문학적 부문의 경우 찬기파랑가의 ‘적惡希[냇가 자갈밭에서]’에 대한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소창진평이 ‘적’을 ‘냇가 돌무덤’의 의미로 正解한 이래 많은 연구자들이이에 동조했었는데 교과서에서는 연구현장의 성과를 정당히 반영하지 않고 ‘조약돌’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는 현황을 비판했다. 교과서에서 이를 ‘조약돌’로 풀이한 후, ‘기파랑의 인격’과 관련지어 교육하고 있는데 그렇게 된 연원을 되짚어 이것이 양주동의 설을 誤認하여 생긴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적’의 정확한 의미를 보여주는 여러 자료를 발굴하여 학계에 보고하게 된 것도 하나의 소득이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풍류의 한 양상

박상영 ( Sang Young Park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101-140 ( 총 40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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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사설시조에 나타난 풍류의 양상을 고찰하고 이것이 미적 범주와 어떤 상관성을 맺으며 이 갈래만의 미학적인 특징을 드러내는가를 한번 살펴본 것이다. 사설시조의 풍류는 전대 시가의 풍류와 일면 비슷하기도 하지만 전대와는 또 다른 풍류 상들을 보여주면서 조선후기 새로운 문화적 지형도를 제시해 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크게 ‘자연 친화’, ‘음주가무’, ‘성적 일탈 및 쾌락’의 세 가지 키워드를 미학적 차원에서 풍류 개념의 핵심 요소로 보고, 시조문학 전체에서 발견되는 풍류 양상과 그 속에 담긴 풍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먼저 사설시조에 나타난풍류의 한 양상을 고찰하였다. 우선, 사설시조에는 자아의 풍류와 타자의 풍류가 발견된다. 전자는 시적 화자가 풍류 현장의 주체인 경우로, 대체로 자연과 더불어 物我一體하는 여유롭고 한적한 풍류, 육체적 悅樂과 일탈에서 오는 쾌락적인 풍류, 삶의 고단함과 결합된 인생무상과 취락의 풍류 등 다양한 양상을 드러낸다면, 후자는 시적 화자가 풍류 현장을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로서, 작품에 제시된 풍류는 ‘너’의 풍류이자 목격된 풍류라는 특징을 보인다. 대체로 욕망 결핍과 부재의 정서, 하나의 화제로서 장면 속에 삽입되는 방향으로 제시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 풍류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의 미학적 질서를 보여준다. 하나는 자연합일, 歌舞와 宴樂, 풍류 대상과의 동일화 등에서 오는 풍류와 우아미(수평적인 웃음)의 미적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 및 ‘성적 담론’에서 오는 풍류와 골계미이며, 마지막 하나는 노는것 자체의 추구와 타자의 풍류를 욕망하는 가운데서 제시되는 희비극성이 바로 그것이다. 우아미를 미적 기반으로 하는 풍류에서는 주로 도가적 초월 의지, 삶의 여유 및 閑寂, 동일화, 서정시적 성격 등을 읽을 수 있다면, 골계미와 희비극성을 미적 기반으로 하는 풍류에서는 난장판의 한 문화, 삶에의 긍정성, 낙관주의, 소통과 화합, 다원주의 세계관, 열림의 미학 등을 읽을 수 있다. 이 중, 우아미와 결부된 풍류가 대체로 양반들의 풍류, 중세적인 풍류, 정태적인 면모 등을 보여준다면, 골계·희비극성과 결부된 풍류는 기존의 미학적 질서와는 다른 방향, 곧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의 생기발랄함, 동태적인 세계관, 서민들의 풍류, 축제성, 근대적인 일면 등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볼 수 있다.

고전문학의 교육 목적과 가사문학 교육 방안

박연호 ( Yeon Ho Park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141-166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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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가사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어떤 기반지식이 필요하며, 가사문학을 통해 문학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가사문학은 고전문학의 일부라는 점에서 가사문학의 교육 목적은 고전문학의 교육 목적과 다를 수 없다.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은 문학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교육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고전문학은 근대 이전에 창작된, 즉 시간적으로 먼 과거에 창작된 타자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현대문학과 다르다. 때문에 같은 교육 목표라고 하더라도 고전문학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수 있는 교육 목표가 있다. 필자는 그것이 타자에 대한 이해와 소통, 문학사의 이해 등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사문학은 대부분 중세라는 시기에 유학을 신봉하던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중세는 단 하나의 이념(종교적 차원)만이 허용되던 시기라는 점에서 다양한 가치가 허용되는 근대와 구별된다. 중세의 보편적 특성에 대한 이해는 시간적 거리가 있는 과거뿐만 아니라 공간적 거리가 있는 다른 나라의 문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한 시각이다. 사대부는 유교를 신봉했던 중세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창작한 가사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가에서 요구하는 사대부의 가치관과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대부에 대한 이해는 가사문학의 흐름(나아가 조선시대 문학사)를 이해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기반지식이라 할 수 있다.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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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9 개정(2011년 고시) 교육과정 문학교과서 11종에 수록된 고려속요의 내용을 살핌으로써 고려속요의 교육방향을 모색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2009 개정 문학교과서에 수록된 고려 속요 작품은 8편으로 이전 교육과정의 10편에 비해 2편이 줄어든 수치다. 작품은 본문과 학습활동에 각 1~2편을 두었는데 대개 교과서별로 3편 내외를 수록하였다. 고려속요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교과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고려속요는 고려시대에 민간 가요가 궁중으로 이입된 것으로, 조선시대에 전승되는 과정에서 국문으로 기록되는 한편 남녀상열지사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 위축되었으며, 민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의 정서를 많이 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개별 작품의 수록 형태는 원문 혹은 현대어역, 전문 혹은 발췌 등을 보이는데 작품의 원문을 수록한 교과서에서 간혹 오류를 빚기도 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나타난 문제점으로는 내용 상 애정 중심의 작품만을 선별하였고, 작품 수 또한 적게 수록한 점, 고려속요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으로 서술한 점 등을 들수 있다. 현전 국문 고려속요는 20편이며, 악부체 형태까지 포함하면 60여 편에 이르며 내용 또한 애정, 송축, 충 등 다양하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의 노래들을 골고루 포함할때 고려속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속요에 대한 부정적 평어인 ‘남녀상열지사’는 원래의 의미가 부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과서는 이를 근거로 고려속요를 낮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고려속요는 법전 궁중 악서, 역사서 등에서 긍정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평가는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고교 과정에서 고려속요의 교육은 ‘고려속요를 다양한 기원을 가진 노래로, 고려전기부터 형성되어 고려 및 조선의 궁중 연향의 일부로 예술사적 가치가 있는 노랫말’로보고, 적합성의 원리에 따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2015 개정 교육과정은(2018년적용) ‘창의’와 ‘인성’을 강조하는데 이에 부합하는 갈래가 고려속요라 생각하며, 앞으로 편찬될 교과서는 이 점에 주목하였으면 한다.

한국시가사 시대구분 시안(試案)

성호경 ( Ho Gyong Seong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193-224 ( 총 32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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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체계적이고 충실한 한국시가사 서술의 바탕이 될 수 있을 시대구분의 시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시가사의 적절한 시대구분은 역사 시대구분의 의의를 구현하면서 시가사의 실상과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시가사의 범위를 한민족이 이루어낸 시가들의 총체로정하고, 시대구분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살펴본 뒤, 기존 시대구분들을 검토하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시가 장르들의 발달과 정치적·문화적 환경 그리고 주요 변화의 시기들을 고려해서, 시가 장르의 사적 발달에서의 진행과 변화 위주로 시대구분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도솔가>, 불국토의 선언

김기종 ( Ki Jong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225-250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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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행연구의 문제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 논의와는 다른 측면에서 <도솔가>의 문학적 성격에 대해 논의하였다. 특히 선행연구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꽃’·‘미륵좌주’의 시어와 ‘日怪卽滅의 이유’ 등을 미륵삼부경과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도솔가>는 미륵삼부경의 미륵 형상화와 미륵 친견의 방법 및 불국토 관념을 수용하고 있다. ‘꽃’과 ‘미륵좌주’는 『미륵상생경』의 ‘꽃자리 위에 앉아 있는 미륵’에서, ‘꽃’과 ‘자리’를 분리한 것에 다름 아니다. <도솔가>의 화자가 꽃에게 미륵좌주를 모시라고 명령한 것은, ‘꽃’과 ‘자리’의 결합을 의미하고, 이러한 ‘결합’은 미륵불의 출현을 강조한 것이 된다. 여기에, ‘오늘 이곳에(今日此矣)’의 노랫말까지 고려하면, <도솔가>는 지금 이곳에 미륵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륵불이 지금 바로 여기에 있음을 노래한것은, 현재 이곳이 미륵이 머물고 있는 佛國土이고, <도솔가>를 짓게 한 경덕왕이 전륜성왕이라는 사실을 환기한 것이 된다. 곧 <도솔가>는 ‘꽃’과 ‘미륵좌주’의 분리·결합을 통해, 가창의 현장에 미륵이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함으로써, 현재의 신라가 불국토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륜성왕이 통치하고 미륵불이 常住하는 불국토에, ‘二日병現’과 같은 정치적·사상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는 있을 수가 없고, 설령 있더라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도솔가>는 ‘이일병현’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문학적 대응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처해 있던 당시의 신라인들에게 현재의 이 땅이 미륵이 머물고 있는 불국토임을 선언한 희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 결과는 <도솔가>를 경덕왕을 찬양하는 악장이나, 도솔천으로부터 미륵을 모셔오는 주술가요로 파악하고 있는 기존 논의와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영조(英祖)의 국문시가 향유와 어제 <권선지로행(勸善指路行)>에 대한 연구

김승우 ( Seung U Kim )
한국시가학회|한국시가연구  38권 0호, 2015 pp. 251-284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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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어부사>, <도산십이곡>, <권선지로가> 등 국문시가 작품에 대한 영조의 관점과 평설을 고찰하고, 그와 관련된 어제를 발굴 및 검토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영조는 국문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론, 사대부가나 왕실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있으며, 특히 수신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보았다. 이러한 국문관을 감안한다면 국문시가에 대한 그의 기호 역시 도학에 대한 지향이나 자기 성찰의 기조를 띤 고아한 작품들에 대개 경사되어 있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영조는 잠저시에 <어부사>를 얻어보고서 탄복하여 국한문으로 등사하였고, 이후 <도산십이곡>과 <권선지로가>를 그 아래에 붙여서 소장하였다. 당초부터 이황을 흠모해 왔던 영조는 이들 작품을 모두 이황이 지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국문시가에 대한 그 같은 관심이 개인적인 애호를 넘어 대내외에 보다 분명하게 표출되는 계기는 <권선지로가>를 통해 마련된다. 재위22년 6월 무렵에 영조는 자신이 애호했던 국문시가 작품들이 실제로 이황의 소작이라는 전언을 듣고서 감격스러워한다. 이에, 일전에 <권선지로가>의 구절을 차용하여 지어 놓고도 섣불리 공표하지 못했던 어제시를 근신들에게 내보이며 개작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어제를 표현 및 취지 면에서 <권선지로가>와 완연히 합치시킴으로써 유자를 우대하는 후덕한 군주로서의 위상을 현시하려 하였던 것이다. 다만 ‘권선지로행’이라 이름 붙인 어제에서는 수평적 탐문만을 주요한 구도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수직적 완성을 앞세웠던 <권선지로가>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권선지로가>에서의 목표가 ‘공자의 집’을 쌓아 올려 낙성하는 것이었다면, <권선지로행>의 지향은 일련의 여정을 거쳐 공맹과의 만남을 달성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권선지로행>을 도산서원에 비치하고 관원을 보내 치제함으로써 어제에 담긴뜻을 널리 공론화하고자 하였으나, <권선지로가>를 이황의 작으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는 조정의 공의에 따라 계획은 정침되었고, <권선지로행>도 정조 초년에 영조어제를 편찬할 때에야 비로소 수습되어 전래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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