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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이론연구검색

THE JOURNAL OF MODERN LITERARY THEORY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24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4권 0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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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는 영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인 1990년대를 지나면서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와 기사를 단순한 일회성 지식이 아니라 ‘문화 지식’으로 ‘계보가 있는 사적 지식’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키노』는 이 세계를 영화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으며, 영화의 언어로 다시 새로운 세상을 꿈 꿀 수 있음에 도전하고 이를 실험했다. 그래서 1990년대 『키노』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키노』의 야심찬 기획에 많은 『키노』 독자도 동참했다. 그들은 『키노』가 그리고자 한 영화 세상의 일원이 되어 영화와 현실을 오가는 메신저인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신지식인’으로 자신을 위치시키며 의미화했다. 『키노』가 구축한 영화 지식세계에 『키노』 독자는 영화 시민이자 영화 전사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키노』, 『키노』 독자는 그들만의 리그 형성에 그치지 않고 다른 문화장과, 인접 학문분야와의 연대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키노』의 지면을 통해 철학이, 문학이, 사회학이 그리고 과학이 만났고 이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문학, 사회학 그리고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와 같은 『키노』의 도전과 실험은 영화에 국한한 협소한 지식을 보편적인 지식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그것도 예술성과 시사성을 지닌 영화 지식과 대중성과 오락성과 관련한 정보보다 가치 있고 우위에 있다라는 『키노』 특유의 현학성과 선민의식은 영화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시장논리로 판단하게 했다. 영화 내부에서 이미 영화와 관련한 ‘질’ 검증이 대외적으로 ‘영화 지식의 질’을 검증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영화 지식은 그 경쟁력과 생존 가능성을 두고 다른 지식과 경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키노』가 구축한 영화 체계는 그 지식의 유통과 소비로 지식의 가치를 증명하게 됨으로써 되레 영화 지식의 축소, 소모되는 지식이라는 한계 역시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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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소설 교육에서 초점화 개념이 효용성 있게 쓰이지 못한 까닭을 초점화를 시점을 대치하는 개념으로 여겨 그 자체를 서술 전반을 설명하는 용어로 오도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슈탄젤의 내부시점 영역을 중심으로 초점화 개념을 재고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초점화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서술자와 초점자의 거리 관계를 염두에 두고 그 전형적 양상을 밝히는 데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 대상의 재고가 시급하다고 보고, 초점화의 양상이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군을 대상으로 초점화의 양상을 펼쳐 보이는 논의를 수행하였다. 인격화된 서술자가 여러 초점자를 통하여 의미를 적산(積産)하는 양상을 보이는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서술자가 삼인칭의 반영자-인물 뒤로 물러나 인물의 의식을 전경화하여 주제를 전달하는 전형적인 인물적 서술 상황인 「타인의 방」, 일인칭과 삼인칭이 교차하는 서술 상황을 지닌 「유예」를 대상으로 삼았는데,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과 「타인의 방」의 경우 초점화가 의미 생산과 형상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유예」의 경우 초점의 변화가 서술 자체에 어떤 문제를 초래하였는지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구명하였다. 소설의 서술적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유동적인 측면이 있으므로, 단선적이거나 획일화된 관점으로 접근하면 해석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시킬 수 있다. 따라서 서술자의 다양한 위치가 검토된 연후 살펴야 하는데, 이렇게 접근해야 ‘의도를 헤아리며 읽기’ 뿐 아니라, ‘징후적 읽기’와 ‘적용하며 읽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초점자를 활용한 서술 상황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서술의 다양한 양상을 살피기 위해서는 제시한 서술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상황들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는 이후 과제로 미루어둔다.

연해주·조명희·이데올로기·모국어 ― 한 망명 문학가의 고려혼 ―

김영미 ( Kim Young-m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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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는 조명희 문학을 설명하는 절대적 공간이다. 조명희에게 연해주는 문학을 무기로 하는 항일의 치열한 공간이었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민족어의 정체성과 영원성을 확보해 나가는 공간이었다. 연해주에서 조명희의 민족주의적 색채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길항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민족주의적 색채를 드러낸다는 것은 곧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노선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조명희가 숙청되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조명희는 쉬운 민족어로 쓰는 문학을 지향했다. 그 언어의 문제가 예각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시장르이다. 조명희에게 새로운 조선의 노래는 쉬운 모국어로 만들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최하층 무산자의 언어여야 했다. 동시에 그런 민족어의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것이어야 했다. 시적 감화력과 문학적 영향력에 의해 조명희는 연해주에서 초창기 한인문학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조명희의 문학적 고민과 분투가 없었다면 고려인문학은 존재할 수 있는 내재적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조명희는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어온 고려인 문학의 기저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치열한 일제에의 항거가 낳은 망명문학의 값진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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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심훈의 『상록수』와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의 『死線을 넘어서』를 기독교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영향관계 및 시대정신과 연결시켜 고찰하는데 목적을 둔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1909년 12월 24일부터 14년간 후키아이신가와(茸合新川) 빈민굴에 들어가 헌신의 삶을 살았다. 또 그가 주창한 기독교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는 ‘토지사랑’, ‘이웃사랑’, ‘하나님사랑’이 농촌 구제의 근본정신임을 역설하는 ‘愛의 사회주의’를 말한다. 그의 자서전적 소설 『死線을 넘어서』(1920)는 출판되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13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은 『死線을 넘어서(上)』(한인환 역), 『死線을 넘어서―太陽을 쏘는 者(中)』(장신덕 역), 『死線을 넘어서―벽의 소리 들을 때(下)』(장신덕 역)가 있다. 중권에서 주인공 니히미 에이이찌(新見榮一)는 자신이 기독교사회주의자임을 밝히고,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또 하권에서는 소비조합, 8시간 노동제 실시 등 개조운동부터 착수해 나가는 면을 보여준다. 심훈의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는 한곡리에서 농촌 봉사에 앞장섰던 박동혁과 청석골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몸을 바친 채영신의 사랑과 농촌계몽운동을 보여준다. 조선 농민운동 중 ‘當局의 植民政策에 依한 細農民救濟事業’에는 박동혁과 채영신이 뜻을 같이 하나, 근본정신에서는 차이가 난다. 채영신은 ‘基督敎 布敎 政策에 依한 農村振興事業’을 주도하고, 박동혁은 ‘社會主義 實現政策에 依한 階級鬪爭運動’을 펼친다. 심훈은 박동혁을 통해서는 마르크시즘이, 채영신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로 양분되었던 것을 연합시켜 ‘愛의 기독교사회주의’라는 농촌 공동체의 건설을 추구한 점을 보여준다. 이 점이 가가와 도요히코의 기독교사회주의와 다르다. 이 ‘愛’의 공동체야말로 농민과 빈민들과의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던 배민수, 최문식, 유재기 등이 주창한 예수촌 건설이라는 공동체와도 맞물린다. 즉 가가와의 작품이 하나님 나라운동으로 승화되는 것을 지향했다면, 『상록수』는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결합 내지는 전략적 연합의 모색이 중층적으로 암시되어 있다.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에 나타난 헤테로토피아 양상 연구

도수영 ( Doh Soo-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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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에 나타난 헤테로토피아 양상과 그것이 가지는 서사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헤테로토피아는 푸코의 근대 담론에 따른 공간 사유와 문학적 공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다른 공간’을 뜻하는 헤테로토피아는 병렬적으로 분산된 공간에 대한 논의이며 이는 근대 공간의 경계와 배치에 관한 개념이다. 아울러 이 공간은 언어를 뒤얽고 전복하는 위반의 문학적 공간이기도 하다. 「저녁의 게임」에는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적 정향이 드러나 있다. 「저녁의 게임」은 화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기인한 표층 공간과 심층 공간이 혼재적으로 서사된다. 다시 말해 「저녁의 게임」에서 헤테로토피아는 화자에게 전도되고 이를 통해 화자는 기만의 일상적 공간을 중화하고 중단한다. 또한 위반의 공간 생성은 부여된 규제를 향한 저항이며 경계를 허무는 몸짓이다. 이러한 연구는 해체적 서사전략을 통해 위계질서의 위선을 드러내는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문학의 윤리적 소임에 대한 작가의 지향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고유명사와 비역사 ― 신체제 이후 세대의 문학 ―

박수연 ( Park Soo-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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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에 탄생한 세대의 문학이 이 글의 논점이다. 다이쇼 민주주의가 끝났다고 논의되는 1925년이나 1931년 이후는 조선의 식민지 지식인에게는 희망과 채찍이 함께 왔던 시기인데, 3·1운동 이후의 사회적 저항이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동시에 치안유지법을 통해 압박이 가해진 때가 이때이다. 이 시국의 내용이 비단 1918년에 태어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쳤을 리는 없지만, 이 세대의 삶에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란, ‘조선적인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특별히 갖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러시아 혁명과 독일 봉기 이후의 정세를 세계사적 특징으로 하고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만주국의 설립과 일본의 역할이 표나게 두드러진 시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기의 청년들은 한국 근대문학 1세대가 가졌던 단절 의식과는 다른 의미의 단절 속에서 의식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전통과의 갈등을 거칠 필요가 없는 세대라고 할 만하다. 이 세대들이 탄생했던 1918년은 식민지화 이후 조선의 오래 억압되었던 열망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해이다. 그 열망은 식민지를 거쳐 여러 목소리들의 충돌로 이어졌고, 여러 역사적 단절과 충격을 거쳐 새로운 언어 탐구로 연결되었다. 그 결과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는 다양한 실존의 층위가 형성되고 그로써 하나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오래된 시간들의 기억을 복원하고 그 실증적 지위가 다시 확인됨으로써 한국문학의 이름을 영롱하게 만들어 줄 성좌들이다.

이해인 시의 시간과 영성

박종덕 ( Park Jong-d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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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해인의 시에 나타난 시간의 영성적 의미를 구명한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영성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나 ‘인간 행위를 유발하는 그 어떤 태도나 정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해인의 텍스트에서 화자는 시간을 절대자가 주는 빛나는 선물로 인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보물과 같은 것이다. 새벽이나 아침은 절대자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과 만나는 시간, 기도의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 등으로 형상화된다. 밤은 절대고독의 시간으로, 타자의 고통에 대해 각성하는 시간이며 사랑을 회복하는 영성적 시간이다. 해질녘은 소멸과 침잠을 통한 깨달음의 시간, 자유로운 평화를 획득할 수 있는 시간, 무욕의 시간,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사랑의 손을 내미는 시간 등으로 형상화 된다. 봄은 화자가 절대자의 축복을 받는 시간이다. 여름이 영성적 시간인 이유는 이타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절대자의 사랑을 인식하고 용서를 실현하는 영성적 시간이다. 겨울은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워질 것을 다짐하는 영성적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새해는 절대자의 나라를 갈망하며, 절대자의 뜻에 합당하도록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영성적 시간이다.

김남조 시의 영원성 연구

방승호 ( Bang Seung-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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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한 영원에 대한 갈구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공감하는 문제이다. 한국 서정시의 역사에서는 서정주, 구상과 같은 대표 시인들을 중심으로 영원성의 시학을 구축해 왔다. 본고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김남조의 시에도 영원에 대한 관심과 지향의 태도가 나타난다. 특히 아흔을 넘은 나이에도 시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김남조의 근작들에서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70년여간 축적된 그의 시가 추구했던 ‘사랑의 시학’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귀결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존재의 순환 원리는 영속으로 가까워지기 위한 우선적인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물의 생명 이미지와 순환 이미지를 통해 형성된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언급했던 자연물(공기, 물, 불)이 가지는 역동적 이미지들은 시상 전개에 따라 강화의 과정을 거쳐 점차 영속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영속의 표상들은 서정적 주체가 지향하는 ‘기쁨’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 정서의 영원성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시간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성찰의 태도는 미래를 연장하게 하는 또 다른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벤야민과 하이데거의 언급들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와 맞물리며 미래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영원성에 근접해 나가게 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존재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연이어지면서, 서정적 주체가 지향하는 정신의 영원성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김남조의 시세계는 사랑의 시학이라는 큰 테마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어느덧 시세계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미당 서정주가 세상과 시를 함께 떠돌며 영원성의 시학을 지향했다면, 김남조는 끊임없는 존재에 대한 성찰과 탐구의 정신으로 영원성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시에 대한 열정, 그리고 존재와 세상에 대한 사랑과 포용의 정신은 이러한 영원성의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이효석의 『벽공무한』과 유토피아

양미영 ( Yang Mi-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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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유토피아라는 키워드로, 이효석 초기 소설의 특징인 동반자 작가적 문학의 연장선에서 『벽공무한』을 분석한다. 유토피아는 변화와 다채로움이 특징인 이효석의 문학세계가 일관성을 띠게 하는 주제인데, 『벽공무한』은 세계주의와 예술지상주의가 공존하는 이효석 문학의 이상적 세계관이 인위적이나마 거의 완벽한 유토피아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민중이 주인공인 세계적 연애를 그리고 있으며, 음악을 중심으로 한 문화사업, 여성 공동체 유토피아 등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완성시킨다. 이 작품은 주인공 천일마의 프로젝트인 하얼빈 교향악단 초청과 공연 일정에 따라 흘러가며 일마의 첫사랑 남미려의 프로젝트인 녹성음악원이 설립되며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 소설의 두 축인 일마와 미려를 통해 작가는 ‘세계적 민중의 공동체’와 ‘신여성의 예술 공동체’라는 각각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이효석은 작품을 통해 교양인/예술인이라면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나 세계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효석의 세계주의는 민족보다 개인을 중시하며, 차별 없는 인류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효석이 추구했던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는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적 개인들을 민중 공동체로 승화시키는 아나키즘적 가능성과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이효석의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은 『벽공무한』에서 ‘쭉정이’의 사상으로 발현하는데, 민중을 상징하는 쭉정이 계급에는 ‘교양’이라는 자격이 필요할 뿐, 국적이나 인종의 구분이 없다. 한편, 『벽공무한』의 신여성들은 미려를 중심으로 하여 ‘녹성음악원’이라는 예술공동체를 세우려 하는데, 이 유토피아는 상호부조 공동체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인생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자아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는 여성들끼리의 동정과 돌봄에서 시작하며, 건전한 삶의 의욕과 생활의 경영으로 완성가능하다. 이효석은 아름다움을 겸비한 ‘여성 댄디’들에게 자신의 유토피아를 맡김으로써 세계주의, 아나키즘, 생활의 예술화 등에 심미주의적 만족까지 더해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시키고 있다.

박남수 시의 미학성 연구 ― 초기 시를 중심으로―

오형엽 ( Oh Hyung-y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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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박남수 초기 시 세계의 중핵을 차지하는 이미지의 대비 및 조화, 주체의 정동과 운동성 및 모티프의 파생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미학적 배후로서 ‘밤’의 아우라를 조명함으로써, 박남수 시의 미학성을 서구적 모더니즘이나 주지적 이미지즘과는 변별되는 동양적 모더니즘 혹은 한국적 이미지즘의 특성으로 해명하고자 한다. 박남수 초기 시의 전체적인 특성은 ‘시적 다중 묘사와 모티프의 파생’ 및 ‘정(靜)과 동(動)의 결합’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박남수의 초기 시 중에서 첫 시집 『초롱불』의 언어 표현의 방식은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대비 및 조화, 주체의 정동과 운동성 등의 구성 요소들을 다중적으로 배치하는 시적 묘사를 보여주면서 미학적 배후로서 ‘밤’의 아우라를 제시한다. 제2시집 『갈매기 소묘』는 이러한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하면서 ‘바람’, ‘갈매기’, 꽃’ 등의 모티프를 파생시킨다. 첫 시집은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배치가 만드는 고독의 정동과,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주체의 운동성이라는 양극적 구도가 표면 구조를 형성하는데, 내면 구조에는 이러한 현상들을 배태하고 발생시키는 미학적 배후로서 ‘밤’이 자리 잡고 있다. ‘밤’은 단순히 시간적 배경만을 의미하지 않고, 시간성과 공간성을 포괄하는 어떤 배후의 미학적 거점으로서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 주체의 고독과 운동성, 적막감과 비애의 아우라 등을 배태하고 발생시키는 근원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미학적 배후로서 ‘밤’은 서구 모더니즘이나 이미지즘과 구별되는 ‘동양적 모더니즘’ 혹은 ‘한국적 이미지즘’의 변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제2시집은 첫 시집의 미학적 특성이었던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대비 및 조화, 시적 주체의 고독의 정동,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성 등의 요소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하면서 모티프화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전의 시적 구성 요소들을 수렴하고 결집하는 모티프인 ‘바람’에서부터 시적 주체의 영역이 분리되면서 파생되어 나온 ‘갈매기’의 모티프는, 다시 주체를 포함하는 생명적 존재의 상징으로서 ‘꽃’의 모티프를 파생시킨다. 이러한 변모에도 불구하고 첫 시집과 제2시집의 공통분모를 이루는 미학성은 시적 주체를 상징하는 핵심적 이미지로서 “초롱불”의 “조용히”와 “흔들리든” 모습, “바람결”의 “튀치는” 모습과 “갈매기”의 “가다듬으며/눈을/감”는 모습, “꽃”의 “무구”함의 순수성과 “피고” “흐르”고 “타는” 역동성 등의 양극을 모순적으로 충돌시키면서 결합하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시의 이러한 미학성을 ‘정(靜)과 동(動)의 모순적 결합’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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