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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inist Stidies in English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영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968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권 0호 (1996)

" 여성의 의지 : 클라리사 이후의 재산과 독립

최주리(Ju Lie Choi)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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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소유하는 재산이 그 인간을 형성한다는 생각은 놀라울 만큼 오래되었으며 또한 존중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성(性, gender) 때문에 차단되고 출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전통뿐 아니라 법에 의해서도 재산 소유자가 될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문제였다. 본 논문에서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물론 어떤 시대에든 상당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 보다는 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이러한 문제들의 탐구에 있어서는 그 범위를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이어받고 있는 「클라리사」와 그 후의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라는 온전하지 않은 "개인"에 관한 것에만 한정지으려 한다. 본 논문은 특히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프란시스 버니의 「세실리아」(1782)와 앤 래드클리프의 소설 「유돌포의 비밀」(1794)의 여주인공들의 재산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이 여주인공들은 재산을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somebody)가 되려 했던 인물들이다.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가? 여성이 온당하게 자신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은 무엇에 대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 논문에서는 이 소설들에서 나타난 여성과 재산의 관계를 고찰하며 소위 "개인"이라 명명되는 이 현대적 형태의 주체성을 성취하는데 있어 여성들이 직면했던 극복할 수 없는 정치적 장애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독립에 대한 법적 경제적 접근이 불가능하던 상황 아래의 소설에서는 그 해결책을 현실의 재산관계를 뛰어넘어서 "정신적" 영역에서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 프란시스 버니의 『 에블리나 』: 여류 소설가의 사상과 비판 "

정이화(Ew ha Chung)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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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리나, 어느 소녀의 성장사』라는 소설을 통해 18세기 영국의 여성 소설가 프란시스 버니는 아주 독특한 화자를 창출했습니다. 버니는 정신적인 지주의 평가를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여성 주인공(에블리나)과 독자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버니)라는 두개의 평행적인 이미지를 개발해 소설 속에 독특한 화자 구조를 창출한 것입니다. 이같은 이중적인 화자 구조속에서 주인공과 작가는 18세기라는 시대 배경속에서 자기의 견해를 표현했을 때 따르는 반향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사회의 규약을 비평하고,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불이익에 대해 비판을 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이러한 이중적 화자구조속에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면서 "예절바른 여인"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데도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에블리나와 버니는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절도있게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이중구조 속에 "마법에 걸린 펜"을 가지고 글을 쓰는 "침묵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그 당시 여성에게 지워졌던 제약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에블리나와 버니가 "제대로 된 행동양식"을 따랐을 뿐 아니라 행복한 여자 주인공이며 성공적이면서도 예절바른 여성 소설가라는 별개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19세기 중산계급의 성 이체올로기와 『 나사의 회전 』의 가정교사"

계원봉(Won Bong Keh)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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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The Turn of the Screw)』에 대한 기존의 비평에서는 "망령론(ghost theory)"과 "환상론(hallucination theory)"이라는 상반된 두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전자에 의하면, 함께 정사를 가졌던 두 망령들이 생전에 알았던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지배하여 그들을 악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환상론"에 동의하는 비평가들은 여주인공인 가정교사가 주인에 대한 짝사랑으로 극심한 망상에 빠져서 자신이 보호해야 될 아이들을 정서적 혼란으로 몰고 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대조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작품의 주된 특징인 "모호성(ambiguity)" 때문이다. 이 모호성이 핸리 제임스(Henry James)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간의 분열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평적 논의가 있어 왔다. 빅토리아조 중산계급의 성 이데올로기가 이 중편 소설에 어떻게 표출되어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이 작품의 모호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작품은 빅토리아조의 여성관과 계급의식에 대한 제임스 자신의 미묘한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창조한 "가정교사" 상이 19세기의 두 대조적인 여성상 -"타락한 여성(fallen woman)"과 "천사같은 여성(angel in the house)"- 의 양면을 모두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접근 방식은 타당성을 갖게 된다. 한편 제임스의 가정교사 심리 묘사를 프로이트(Freud)의 미스 루시 알(Miss Lucy R.) 심리 분석과 비교해 보면, 19세기 중산계급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당대의 계급의식에 대해서 제임스가 프로이트보다도 훨씬 더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여성 성장소설로서의 『 각성 』

이경란(Kyung Ra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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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은 전통적으로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미성숙에서 어른으로서의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며, 흔히 사회적인 통합과 개인적인 자아의 완성을 동시에 이루어 낸 상태가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됨의 척도가 된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여성`으로서 성장하도록 요구되는 여성의 경우 사회적인 역할의 수행과 개인적인 자아의 완성은 흔히 배타적이다. 그러므로 성장소설을 여성의 경험까지도 포함하도록 확대하고 재정의 하기 위해서는 허구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성장과 성숙의 패턴을 우선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9세기 말 미국 소설가 케이트 쇼팽(Kate Chopin)은 『각성』(The Awakening)을 통해 여성 성장과 성숙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보여준다. 여주인공 에드나(Edna)를 통해 쇼팽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사회에서 처방한 성스러운 소명의 수행이 더 이상 여성의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가부장적인 사회 안에서 여성의 사회적 자아는 흔히 자기 자신의 자아의 표현이나 완성이라기보다는 외적으로 강요된 허구적인 옷과 같은 것이기 쉽기 때문이다. 쇼팽이 19세기 작가임에도 현대의 여성 비평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사이의 어긋남을 인식하는 준거 틀을 자연으로서의 여성의 몸의 실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에드나는 그녀의 사회 안에서 금기되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면서 그녀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 낸다. 수영이나 거리 산책 등 자유로운 몸의 활동이 주는 확장감과 독립성, 파도와 바람 햇빛 등 자연적인 요소들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인 자유로움, 그러한 자연의 일부로서의 여성의 몸이 가지고 있는 관능성과 그 관능성의 결과로서의 출산의 고통 등을 온전히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것으로 경험하면서 에드나는 사회의 고정된 질서와 문화적 체계가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실재를 확인한다. 동시에 가부장적인 사회 안에서의 여성으로서 사회화되기 이전의 아주 어린 소녀로서 자기 모습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독특하게 여성적인 경험이 흔히 남성 주인공의 성장 소설이 보여주는 연속적인 성장 패턴 안에 담겨지지 못하며, 자아 발견의 장이 사회적 영역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영역으로 옮겨감을 보여 줌으로서 `성장 소설`을 보다 확대된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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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엽부터 수 백년 지속되었던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전통에서 볼 때, 세익스피어의 크레시다는 아마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던 "요부"의 전형이었을 것이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가 보여주는 이 전통적인 "요부"의 모습은 초서의 크리세이드를 보호해 주는 "모호함"과 "은밀함"도 또는 핸리슨의 크레세이드에서 보여지는 최후의 자기 성찰을 통한 비극적 연민도 거부당한 채, 오로지 자신의 "벌거벗은 몸"으로 조화로운 남성 세계를 뒤흔드는 "제 2의 이브"로서 반여성주의 독자들의 조롱과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크레시다 다시 쓰기는 유럽 대륙의 크리세이다 이야기, 즉 버느와, 기도, 복카치오 등의 여성혐오적인 작품들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써 일견 하나의 반여성주의 문학 행위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이 전통적인 요부를 가부장 사회가 요구했을 정숙한 여인상과는 가장 거리가 먼, 즉 가장 "당돌"하고 위선적이며 외설적인 인물로 그림으로써, 특히, 이 "요부"가 디오메데스와 벌이는 "사랑의 배신행위"를 직접 독자나 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전통에서 볼 때 가장 신랄한 여성혐오적인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작중의 다른 인물들 특히 호머이래 위대한 영웅들이라 칭송 받고있던 뭇 남성들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는 크레시다의 "벌거벗은" 모습이 과거의 여성혐오적 담론에 나타나는 여인상의 악화된 형태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남성적 담론으로 가득 찬 "추악"하고 "무의미"한 전쟁에서 헛된 명예만을 좇는 위선과 가식으로 포장된 뭇 남성 영웅들의 모습은 수세기 동안 여성 변절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온 한 "요부"의 당당하고 솔직한 자기표현과는 큰 대조가 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크레시다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으로, 즉, "벌거벗은 반여성주의 텍스트"로서, 오랫동안 이상향의 세계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각인 되었던 고대 남성 중심 사회의 실질적인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겠다. 구천 세계로 승천하는 초서의 트로일러스가 자신이 몸담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던 그 인간사회의 덧없음과 어리석음을 비웃듯이, 세익스피어의 크레시다는 자신을 "요부"의 길로 내몰고 또한 자신의 생존 모색을 위한 솔직한 행동을 조롱하고 비난했던 그 가부장 사회를 자신의 "벌거벗은" 온몸으로 비웃고 있는 것이다.

" 『 블라이데일 로만스 』에서의 호손의 페미니스트 여주인공 "

윤혜령(Hae Ryung Yoon)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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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Nathaniel Hawthorne의 소설인 The Blithedale Ramance에서 여주인공 Zenobia의 인물 창조가 이 소설가의 페미니즘이나 특히, 이 당시에 거론되기 시작한 여권 운동(The Women`s Right Movement)에 대한 견해를 어떤 식으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지에 관한, 또한 이러한 양상이 이 작품전체의 문학적 성과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이 소설에서 Zenobia는 19세기의 그 유명한 패미니스트인 Margaret Fuller를 모델로 하여 창조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독자들도 쉽게 감지했듯이) 그녀의 패배한 "비극적" 페미니즘은 비애 (Pathos)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수반하지 않는 소극(farce)에 가까운 전형적 앤티 클라이맥스(anti-climax)이며 그녀는 Hawthorne이 창조한 인물들 가운데 아마 가장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이며, 기껏해야 작가의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간접적 대변인(mouthpiece)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여주인공의 이중적이고 인공적 자아 창조는 Hawthorne 자신의 본질적 여성성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남성 중심적 사고와 여성 선각자들의 정서적,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상반된 감정, 불신과 경계의 반영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Hawthorne의 The Scarlet Letter가 생의 의지와 숭고한 모성애로 구원받는 여주인공의 내면적 승리에 관한 작품이라면 The Blithedale Ramance는 이상주의적 여권론자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허구적 삶의 최후에 관한, Hawthorne이 페미니즘에 고하는 교훈주의적 소설적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Hawthorne의 이러한 이념적 개입에 기인한 인물 창조, 플럿, 화자의 역할 등에 나타나는 인공성이 이 소설의 중대한 결함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자연스런 소설적 흐름(natural fictional flow)을 특히 강조하는 D. H. Lawrence의 소설 미학에 의거해 볼 때는 이 소설은 작품 곳곳의 천재적 영감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는 실패한 전형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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