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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inist Stidies in English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영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968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권 2호 (2001)

Bellow and Feminist Criticism

(Youn Sook Na)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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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우가 미국 소설 계에서 주요 작가중의 하나임은 주지의 사실로 인정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소위 주요 작가를 결정하는 틀에 허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쿠퍼, 멜빌, 포크너, 헤밍웨이, 벨로우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얼마나 그들이 남성주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자아탐구 및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마땅한 길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남성 주인공들과는 달리, 여성 인물들은 한결같이 주변의 남성들을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자아발견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남성들이 정치, 사회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자아추구를 시도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항상 뒷전으로 물러나 있거나 그저 "좋은 남자"를 찾는데 연연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들이 남성 주인공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불안전하고 비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여성 인물들을 통해 독서의 기쁨을 누리거나 교훈을 얻기란 더욱 어렵다고 보겠다. 솔 벨로우 소설의 여러 제목이 시사하듯, 그는 거의 매번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들은 여성을 몹시 필요로 하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차별하는 자기 모순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소외된 현대 문명 속에서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휴머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벨로우가 여성 및,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중산계급,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음은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미국 문학사 속에서 베로우는 가부장적인 가치체계를 인정 내지 옹호하는 여타 남성 소설가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었을 뿐이라는 벨로우의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문학이 기존의 구습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에 머문다면, 독자들은 과연 소설 속에 깊이 내재해 있는 정치, 사회적인 편견을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일군의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남성작가들의 작품을 해체분석하여,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정치, 사회적인 모순들을 드러내려 한다. 기존의 모순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현실개혁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까지도 벨로우 비평가들은 남성 주인공 위주의 비평을 하거나, 드물게나마 여성 인물들의 비평을 할 때에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왜곡된 비평을 일삼곤 했다. 그 후, 소수의 비평가들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벨로우의 소설을 과감히 비평하기도 하였으나, 공히 모두 여성 캐릭터들을 동일한 하나의 그룹으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서로 인종이 다를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계급에 속한 이 여성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정체성을 띠게 된다. 남성 및 백인 우월주의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이 여성들은 자연히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자아상을 갖게 되는데, 치명적이게도 벨로우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좀 더 공평하고 확대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벨로우의 소설을 분석해 보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소수 인종 및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모든 편견을 극복하는데 일조를 하리라 믿는다.

글쓰기 치료법 - 『 빌렛 』 에 나타난 성적 표현

박형지(Hyung Ji Park)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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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브론테의 마지막 소설 『빌렛』의 주인공 루시 스노우는 주인공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다. 루시는 재산도 없고 미인도 아니어서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에서는 결혼할 가망이 없는 "짝 없는 여자"(odd woman)이다. 그녀는 소설의 시작에서는 친척들에 얹혀 사는 고아이고, 소설이 진행되면서 학교교사가 되지만, 루시는 사회적으로 내세울만한 지위와 신분을 갖고 있지 않다. 루시는 장래성이 없기 때문에 친구가 없고, 청중이 없기 때문에 말이 없고, 표현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성적으로나 지적으로 억제되어 있다. 루시는 매우 말이 없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만 할뿐, 대화나 행동에 거의 끼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루시는 이 소설의 일인칭 화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침묵은 이 소설에서 또다른 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독자로서 일인칭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를 때도 있고, 사건의 전개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러면 루시의 침묵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녀의 화자로서의 위치는 무엇일까? 나는 이 논문에서 『빌렛』을 "히스테리컬 내러티브"로 보려고 한다. 즉 나는 루시 스노우를 19세기 여성 "히스테리"로 보고 『빌렛』의 담화 자체가 루시의 "글쓰기 치료법"이라고 논의 한다. 19세기 영국에서 남여의 사회적 역할을 구별하는 "분리된 영역"의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 여성들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을 제한하였고, 여성들의 욕구와 야심의 성취를 어렵게 하였다. 산업혁명에 뒤따른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중상층 여성들로 하여금 일할 필요를 없게 만들었고, 오히려 쉬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강제된 쉼"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강제된 쉼과 지적인 굶주림으로 고통 당하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독일인 버싸 패펜하임(Bertha Pappenheim)은 "안나오"(Anna O.)라는 가명으로, 프로이드와 함께 정신분석학을 세운 조셉 브로여(Josef Breuer)를 환자로서 찾아가서, 그와 함께 개발한 "말하기 치료법"이 정신분석학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말하기 치료법은"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히스테리아"에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되었다. 『빌렛』을 쓸 당시 30대의 미혼이었던 브론테는 루시 스노우를 사회적 불명확성과 지적 출구의 부재 때문에 정신병에 가깝게 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루시는 사회적 연줄이 없는 사람에서 점차로 정감적 관계와 직업적 정체성을 갖게되고, 소설 끝에 가서는 독립적인 학교교사로서 생활하게 된다. 이 논문에서 나는 루시의 감정적 폭발들을 설명하기 위해 "말하기 치료법"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이용하였고, 그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변용 하여 "글쓰기 치료법"을 제시한다. 지적인 여성의 글쓰기 과정이 "히스테리아"와 사회적 부적응을 치료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을 선택하는 『제인 에어』의 주인공과는 달리, 『빌렛』의 주인공은 독립성과 미혼을 선택하면서, "빌렛"을 작성하는 "글쓰기 치료법"에 몰두한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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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프란시스 버니의 소설 『이블리나』에 나타난 국가, 계급, 성(性)이라는, 경계를 확정 짓기는 어려우나 엄연히 존재하는 세 가지 범주를 고찰한다. 이를 통해, 국가주의(nationalism)와 제국주의가 부상하고 사회 계급과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는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복잡한 동맹과 배척의 관계들을 소설을 통해 조망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이블리나』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정치적 세계관은 토리 당과 휘그 당같은 정당의 차이나, 민중 계급과 지배 계급간의 이항 대립 같은 단순한 정치성으로 쉽게 규정될 수 없다. 논지는 세 개의 상호 연계된 장으로 세분된다. 첫 번째 장에서는 18세기 중반 영국이 참여한 전쟁이나 식민지 경쟁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대외적 갈등을 다룬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장에서는 소설 속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소비문화와 "마카로니"족의 모습에 주 초점을 맞추어 영국의 대내적인 계급 갈등을 고찰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소설의 핵심적인 축이 되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살펴본다. 이때 이 모든 논의는 성(性)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비록 작가인 버니가 확고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블리나』는 젊은 여주인공의 무대가 되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상"이 계급, 성, 국가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경계들에 의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교양 있는 여주인공의 판단과 결정을 통해 이 소설은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근대적 개인을 정의해 나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레이첼 로젠델의 행위예술 - 의미의 해체와 재구성의 실험실

최성희(Sung Hee Choi)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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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행위예술가인 레이첼 로젠델의 작품과 공연을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으로 분석한 논문이다. 행위예술(performance art)은 언어와 시각적 이미지, 대중문화와 일상의 삶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혼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양식으로 미국 내의 여러 가지 사회/정치적 저항운동들과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전통적 관념(특히 예술과 연극에 관한)들을 비판하고 해체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행위예술 장르는 배우의 몸을 공연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몸이 지니는 정치성, 즉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저항의 도구인 몸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미국 행위예술의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하고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행위예술의 대모" 로젠델은 이러한 행위예술의 특성을 창조하고 발달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전통적인 문학/연극의 언어 중심적인 내러티브가 작품의 "통일성"과 "진실성"을 성취하기 위해 "타자"의 목소리를 억압해 왔다면, 반대로 로젠델의 "행위" 예술은 여성의 몸 깊숙히 억눌려있던 다양한 욕망들을 끌어내어 충돌과 혼돈의 제의를 벌임으로써 기존의 재현적 틀 안에서 자연스럽고 진실된 것으로 "보여"지던 젠더의 개념을 전복시킨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녀는 여성억압과 자연파괴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보는 생태여성주의의 관점을 자신의 공연에 도입한다. 남성/이성/인간에 의한 여성/자연/동물의 정복과 착취, 파괴의 근원은 모두 주체와 객체, 여성과 남성,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이분법적인 틀을 만들어내는 이성중심주의라는 것이다. 로잰덜은 공연을 통해 여성의 몸과 지구(mother earth)를 상징적으로 동일화시키면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간의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레이첼 로젠델의 행위예술은 갈등의 전개와 해결이라는 전통적인 연극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서 다층적이고 비결정적인 새로운 형태의 공연 모델을 보여준다. 그녀의 공연은 본질적으로 "극"이라기보다는 "기록"이며 표면적인 조화와 안정을 억압으로 규정/고발하면서 인간 정체성의 혼돈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 관객에게 기존가치의 확인과 안주가 아닌 혼동과 공포에 직면하게 하는 그녀의 공연미학은 데리다가 새로운 연극의 모델로 이해했던 아르또의 잔혹연극과 흡사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연극을 통한 새로운 의미생산에 회의적이었던 데리다와는 달리 페미니스트인 로젠델은 공연을 통한 삶의 변화와 사회개혁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퍼포먼스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주어진 "진실"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진실추구" 자체에 대한 대안, 즉 끊임없는 변화와 형성의 "연희적" 과정에의 초대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연자 로젠델의 정체성은 공연에 선험하지도, 공연의 순간에 현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바로 공연의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공연 스타일의 변용과 상충적인 역할들간의 이동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의 "정체성 만들기"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눈앞에 살아있는 한 인간의 실제경험과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예술적 기법이나 정치적 입장에 있어서 로젠델은 포스트모더니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는 허무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성을 넘어선,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여성적 인식 -삶의 경험을 통해서 "전략"적으로 취한- 을 자신의 몸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이것은 로젠델이 삶을 연속적인 유동(flux)의 과정으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을 공유하면서도 그러한 유동성의 본질을 죽은 이미지(simulaculum)의 반복적 순환이 아닌 생명과 변화의 가능성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신념을 강하게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mbracing Domesticity Between the Wars : The Writing of Jan Strutheer

(Wen Dy Gan)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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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examines a little-known British writer named Jan Struther in an effort to shed light on domestic ideologies between the wars. Struther`s middlebrow writing, forgotten today but a success in its time, is important in revealing how domesticity can be re-packaged for the modern interwar woman. In a period where feminist progress in terms of partial franchise and increasing work opportunities for women jostled with reactionary ideologies that positioned women in the home once again, I argue that Struther`s work in her comic essays and her bestselling Mrs. Miniver highlights the struggle of middle-class women to confront domestic limitations, not by resisting and rejecting domesticity, but by updating domesticity itself.

죽음의 초월에 대한 남성의 환상 - 『 골동품점 』 의 넬

계원봉(Won Bong Keh)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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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점』에 열광적 반응을 보였던 찰즈 디킨즈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과다한 병적인 감상주의를 비난해왔다. 본 논문은 이 소설에 드러난 긴장과 모호성을 디킨즈 여성관에 비추어 분석함으로써, 현대독자에게는 매우 명백한 작품의 약점 내지는 실패만을 단순히 지적하는 데서 벗어나 빅토리안 시대의 성 이데올로기가 남성 소설가의 여성인물 창조에 끼친 영향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비록 여주인공 넬(Nell)이 폴 담비(Paul Dombey),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데이빗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 핍(Pip)과 같은 순진무구한 디킨즈 어린이들의 계통에 속할 지라도, 무엇보다 그녀의 여성성이 작품의 주제전개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녀 역할의 중요성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힘없는 어린이로서의 그녀의 위치가 아니라 그녀의 여성성이다. 디킨즈는 아이들 묘사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웠고 결핍된 유년시절에 의존하여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참담한 경험을 생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많은 비평적 찬사를 누려왔다. 그러나 그가 다른 어린이 인물 창조에서 거둔 성공에 비해서 넬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그려져 실패작으로 간주되는데, 넬 인물창조의 실패는 가엾고 순진한 소녀를 통해 이상적인 여성상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편집적 갈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본 연구는 디킨즈 여성관의 기본적인 요소들 -부녀관계의 이상화, 순수의 표상인 성적으로 미숙한 소녀에 대한 경배, 영원히 변치 않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환상, 여성자아 형성에 있어서의 남성의 지대한 역할- 을 분석함으로써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작가의 편집적인 상상의 깊이를 가늠하고자 한다. 순수한 소녀 이미지에 대한 디킨즈의 집착은 작품의 균열을 낳고 있다. 비록 그가 성녀 같은 넬과 주변의 타락한 환경의 대조를 통해 약자를 돌보지 않는 비정하고 무책임한 사회를 비판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대조의 효과성은 극단적으로 희생만 당하는 연약한 효녀상에 대한 그의 과도한 집착으로 줄어들고 있다. 즉, 이 소설의 모호성은 손녀를 착취하는 할아버지 인물을 통한 작가의 사회비판과 동시에 손녀의 희생을 미화시키려는 작가의 감상주의적 여성관의 상충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보내온 편지들의 전복성 - 엘리스 워커의 『 보라빛 』

김민정(Min Jung Kim)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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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워커의 소설 『보라빛』에 관한 비평을 보면 작가가 그린 주인공 실리, 특히 작품 결말의 실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해피앤딩"이 문제시 되어지고 있다. 남성들로부터 극도로 억압, 착취당했던 실리가 독립적인 객체로 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독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으며, 한 개인이나 사회가 쉽게 변화되어질 수 있다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본 논문은 워커의 소설에 관한 이러한 비판의 한계와 문제점을 고찰하고자 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사업가가 되는 실리는 작가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과정, 관계를 통해 실리가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가수인 슈그와의 동성연애, 또 가부장적인 체제에 반항하는 여성인 소피아와의 우정을 통해 실리는 남성이 지배하지 않는, 좀 더 평등한 인간관계를 알게 된다. 이와 더불어 본 논문에서 살펴 보고자하는 것은 실리의 여동생 네티가 아프리카에서 보내온 편지들이 실리로 하여금 그녀의 생활과 자신을 포함한 주변 인간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과 그들 사회를 분열시킴을 상세히 보여주는 네티의 편지들은 작가의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주인공 실리에게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아프리카와 미국의 흑인 사회에서 흑인들간의 유대가 백인들에 의해 유사하게 와해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워커는 그녀의 소설에서 흑인 남성을 비난하는 것(black male bashing)이 아닌, 미국 흑인 사회의 여러 폭력적인 관계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들을 살펴보고 있다.

『 화란 매춘부 』 와 르네상스 시대의 매춘에 관한 담론

김소임(So Im Kim)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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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여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제였다. 결혼은 성을 관리하는 합법적 수단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춘은 결혼의 다른 얼굴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이 두 제도 모두에게 기대된다. 매춘은 그 사회 도덕주의자, 그리고 실용주의자들의 나름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뇌관이다. 르네상스 시대 또한 성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어서 매춘과 결혼에 대한 법률가, 신학자, 정치가 그리고 극작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군소 작가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존 말스톤이 쓴 도시희극 『화란 매춘부』(1604) 는 비록 작품의 완성도에서는 미흡한 면이 많으나 2000년간 내려온 성, 결혼 안과 밖의 성에 대한 논쟁의 축소판이다. 보수와 혁신과 타협의 이야기가 공존한다. 성에 대해 결벽증을 가진 보수주의자, 말뢰뢰(Malheureux)는 매춘부에게 매혹되어, 동침을 위해 몸을 던진다. 성에 대한 자유주의자, 프리빌(Freevill)은 천사 같은 여성 비아트리체(Beatrice)를 만나 결혼과 함께 방종을 끊고, 심판자가 된다. 사랑을 원했던 매춘부 프란체스치나(Franceschina)는 성적인 에너지가 변질된 괴물로 화하고 처벌받는다. 비아트리체의 여동생 크리스피넬라(Crispinella)는 시대의 성도덕의 모순을 집어내지만 결국 한 남성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하며 제도권으로 들어온다. 이 작품의 미덕은 성과 매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창녀와 아내를 대비시키는 흔한 구성을 선택한다. 그 대비의 잣대는 남성에게 주는 사랑이다. 잣대가 잘못된 게임의 끝은 뻔하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의 손을 들어주는 이 작품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말들 (서양의 지배 담론들)의 현실 유리성을 드러낸다. 매춘을 옹호하는 입장이든, 배척하는 입장이든지 그 안에는 창부의 목소리는 없다. 화란 매춘부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 작품에도 창부의 초상 대신 남성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괴물의 이미지만이 존재한다. 무대 위에 섰던 아름다운 창부가 인물 중 유일하게 매를 맞기 위해서 끌려갈 때 우리는 묻혀진 절반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드러나지 않은 소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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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쇼왈터와 토릴 모이사이의 울프의 자웅동체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일단 자웅동체 또는 남녀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이론적 기치 아래 모이가 판정승을 얻었던 것처럼 세간에 비쳤다. 그러나 이는 논의의 본질이, 크리스테바가 주장하는 것처럼 2 단계 또는 3 단계 페미니즘의 구별에 있지 아니하고 각 단계가 2001년을 바라보는 현 시점에서도 동시적으로 필요하다는 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논의는 수정되어져야 한다. 과격한 페미니즘이냐 또는 자웅동체의 페미니즘이냐의 이분법적 선택은 마치 본질주의와 사회구성주의를 둘러쌓던 논쟁만큼이나, 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였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낸 점이 없지 않았다(물론 그 논쟁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논의의 핵심은 하나의 이론이 그 이론을 산출한 당대에 얼마나 적합하고 정치적인 유용성이 있는가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소위 제 2기 페미니즘인 급진적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제 3기 페미니즘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필요하다는 것을 이론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논구하기 위하여 페미니즘 문헌 비평을 도입한다. 이는 울프의 다성적 목소리 가운데 진정한 목소리와 의도를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등대로』의 수고(holograph)와, 또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두 상이한 판본(호가쓰 판본과 하코트 브레이쓰 판본)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울프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분노와 좌절을 자웅동체라는 보호막 아래 표출했다는 것을 밝힌다. 호가쓰 판본이 정본인가 또는 하코트 브레이쓰 판본이 정본인가 하는 문헌 비평학적 논의 또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울프는 놀라웁게도 상이한 두 작업 속에서 과격한 페미니즘과 자웅동체의 페미니즘의 동시적 필요성을 두 개의 상이한 모더니스트 텍스트에 구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정치적으로 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경향을 띄는 하코트 브레이쓰 판본이 울프의 의도를 더 잘 드러낸다는 주장의 실제적 효용성을 밝히면서, 이러한 작업이 정본의 "정할 수 없음"(undecidability)을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적 페미니즘 문헌 비평에 대한 한 수정안이 될 수 있음을 본고는 주장한다.

셰익스피어의 『 페리클리즈 』 에 나타난 부녀 관계

이희원(Hee W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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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페리클리즈』에 나타난 페리클리즈와 마리나 상호 간의 영향, 타협, 변화 등의 복잡한 관계 망을 살펴보면서, 이 둘의 관계가 셰익스피어 시대의 일반적인 부녀 관계, 즉 명령하는 아버지-순종적인 딸의 관계를 한편으로는 전복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용하는 이중성을 지닌다고 논의한다. 이 극에서 셰익스피어는 당시 흔히 남성적 덕목이라 일컬어지는 용맹성과 강한 통치력을 결여하고 심적으로도 위약한 페리클리즈 왕과 용기와 지혜, 웅변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성숙한 그의 딸 마리나를 제시함으로써 가부장제에 기초한 르네상스 시대의 통념적 남녀관계를 대폭 수정하고 있다. 이 극에서 페리클리즈는 현실 세계에 대처하고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 정치로부터 도피하는 방랑자요 은둔자로, 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는 인내와 침묵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마리나는 비록 남성적 가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투지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여러 남성들과 페리클리즈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그들을 내적으로 지배하는 정신적 치유자로 소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도된 남녀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극은 결말에 위엄을 갖추고 실세를 회복한 폐리클리즈와 정신적 구원자의 역할을 마감하고 다시 수동적인 딸로 되돌아오는 마리나를 제시함으로써 남성-정치적 영역과 여성-심리적 영역이라는 가부장적 이분법을 그대로 따르며, 이 점에서 이 극은 매우 체제 수호적이다. 즉 이 극에서 셰익스피어는 남녀의 활동 영역은 각각 정치와 심리 혹은 공과 사로 대별된다는 당시의 이분법적 가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동등한 위치의 부녀관계를 통해 매우 온건한 방식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균열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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