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영미문학페미니즘검색

Feminist Stidies in English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영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968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9권 2호 (2002)

The Son as Warrior and Narcissus in Melville's Quest for the Absolute

JIN-KYEONG KIM ( 김진경 )
6,1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Herman Melville의 작품세계가 남성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인바, 본 연구는 이러한 남성적 세계의 핵심에 자신의 존재의 근원으로서 아버지를 탐색하는 아들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Melville의 대표작 Moby-Dick과 그에 연이어 쓰여진 Pierre, or The Ambiguities에 나타난 아들의 이미지를 분석하려고 시도하였다. Melville의 청교도적인 세계관속에서 인간은 원죄와 본유의 타락성으로 인하여 그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이며, 그러한 인간존재는 그의 작품속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로서 일관되게 비유되고, 그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근원을 추구하는 아들로서의 탐색을 수행한다. Ahab선장이 Moby Dick를 추적하고 Pierre이 아버지의 숨겨진 딸 Isabel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의 기반에 대한 탐색인 것이다. 여기서 절대자에 대한 탐색을 수행하는 Ahab과 Pierre은 공통적으로 전사와 나르시서스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데, 전사의 이미지는 인간세계의 고통과 소외의 근원으로서의 절대자에 대한 항거의 모습을 표현하며, 나르시서스의 이미지는 그러한 세계 인식과 그에 의거한 행위에 있어서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주체의 욕망과 분모를 투사하고 있는 그들의 인식, 행동양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적 억압이 Moby-Dick의 경우는 자연에 대하여, Pierre의 경우는 여성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행사되고 있으며, 이러한 억압은 이들 남성 주인공들을 고립과 소외, 마비와 파멸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Moby-Dick의 자연, Pierre의 여성은 공통적으로 여성적 이미지가 강조되어 묘사되며, 편협하고 억압적이며 자기파괴적인 남성적 원리들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흥미로운 양상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나르시서스와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주인공의 인식과 행동양상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Moby-Dick의 화자 Ishmael과 Pierre의 화자도 여성적 원리들이 보여주는 바 타자에의 포용과 주관성의 극복의 희망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창조적 오역 ? " : 각색의 문제

김민정(Min Jung Kim)
6,8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흑인 여성 작가와 사회 개혁가로 알려진 앨리스 워커의 작품 세계 속에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보라 빛」 (1982)에서는 실리라는 흑인여성을 통해 흑인 사회, 가정내의 억압적 관계는 백인 사회 속에 내재한 인종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반에서 주인공 실리는 강간당하고, 구타당하고, 인간성을 짓밝힌 채 살아간다. 이러한 실리의 삶에 셔그라는 흑인 여성 가수가 등장하면서, 실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해 바지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실리가 자신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셔그의 역할과 그녀와 셔그와의 관계이다. 물론 실리가 친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하게 되어 가게를 열게 되지만, 그녀의 경제적 자립은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한 대가이다. 즉 워커가 그려내는 대안적 관계는 결코 결혼이나 이성(heterosexuality),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미국의 대표적인 헐리우드 감독으로 알려진 스티블 스필버그가 각색한 영화 「보라 빛」 (1985)은 워커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셔그라는 인물은 결코 자립적이거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고, 그녀의 삶을 마땅해 하지 않는 엄격한 목사 아버지와의 화해에 급급한 “딸”로 그려진다. 실리의 묘사에 있어서도, 어느 날 셔그와 같이 떠난 후 돌아온 뒤에 보여지는 장면에서 보여지듯, 중산층 여성으로 변한 모습이 이상화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실리와 셔그라는 두 흑인 여성이 워커의 소설과 스필버그 영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그려지는가를 살펴 보고자한다. 스탐(Stam)과 맥팔레인(MacFarlane)과 같은 영화이론가들과 비평가들은 영화각색을 하나의 “읽기(reading)”나 “번역(translation)”으로 보며, 영화가 소설과 다른 경우 “예술적 오역(creative mistranslation)”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각색이 소설의 핵심이 되고 있는 주제를 변형시킬 경우 영화를 “읽기” 또는 “번역”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다른 각색은 단순히 “충실성(fidelity)”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적 관계의 재구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 에 나타난 부정적 남성성과 타자

권석우(Seok Woo Kwon)
5,7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의 1937년 작 「가진 자와 안 가진자」는 미학적으로 잘 된 작품은 아니나, 문화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 19세기 말로부터 이어진 원시적 남성성 (Primitive Masculinity)이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좋은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해리 모간 (Harry Morgan)의 남성성은 여자, 여성화된 남자들 (예컨대, 흑인, 또는 쿠바인 등의 인종적 타자)에 대한 비유적이고 실제적인 폭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논구하고, 이러한 불안한 상처투성이 남성성 (Vulnerable or Anxious Masculinity)에 기반을 둔 작품의 주인공의 폭력 행사는 부정적인 결말을 예고함을 아울러 밝힌다. 젠더 또는 인종은 미국적 남성성을 규정하는 여러가지 범주들 중 주요한 결정 요소들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이들은 계급과 더불어 복합체를 구성하여 편파적으로 또는 이중적인 잣대로 작용된다. 젠더, 인종, 계급등에 의하여 구성되기도 하는 성 또는 성 담론 (Sexuality) 또는 주인공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입되며, 이 경우에 있어서 타자로 규정되는 것은 주로 여자가 된다. 헤밍웨이의 가장 폭력적인 작품인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서, 남성성이 본질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비교 또는 그에 대한 폭력을 통하여 구성된다는 독법은 이제까지의 남성적이고, 여성 혐오적이고, 폭력과 전쟁을 좋아한다는 헤밍웨이에 관한 전통적 해석 방법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사려되나, 이러한 독법이 혹 다시 남성 작가인 헤밍웨이의 부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그 장단점 또는 공과 실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6,4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아밀리아 라니어의 「쿠검가(家)의 묘사」 는 벤 존슨의 「펜스허스트가(家) 에게」 보다 5년이나 앞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장원시의 전통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르네상스의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라니어는 매우 훌륭한 헌정시를 쓴 시인이자 동시에 장원시를 최초로 쓴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글쓰기를 통하여 권위와 힘을 획득한 초기 페미니스트로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존슨의 시와는 달리 「쿠검가의 묘사」 의 저변에는 단순한 찬양보다는 갈등과 모순이, 자신감보다는 불안과 긴장이 자리잡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라니어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점들의 성(gender)과 계급이라는 두 측면에서 분석했다. 장원시와 헌정시는 모두 장자상속, 토지소유, 가문의 존속 등에 의존하는 봉건적 가부장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장르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소외와 주변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성은 라니어의 장원시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소유가 아닌 소외, 공동체의 존속이 아닌 와해, 풍요와 활기가 아닌 상실과 애도의 감정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여성작가의 주변적 입장은 후원자의 귀족여성들과의 계층적 격차와 르네상스 후원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더욱 악화된다. 존슨과 달리, 라니어는 후원자와의 관계에서 계층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데, 이는 시인이 바라는 평등하고 이상적인 공동체가 현실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의 애가적 분위기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후원자의 후원을 통하여 경제적 사회적인 위치를 확보하려고 했던 한 여성작가가 느끼는 좌절과 소외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라니어가 글쓰기를 통하여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계층간의 격차를 극복했다는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성과 계급의 이중적인 소외를 극복하지 못한 라니어의 시는 이후 존슨이 확립한 장원시의 전통과 담론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더 나아가서 남성작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시의 정전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조건부 사랑과 페트라카니즘의 패러독스

박형지(Hyun Gji Park)
6,6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크(Petrarch)는 대가와 조건 없는 사랑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영국 르네상스 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페트라크의 영향을 받은, 패트라크풍의 시들은 주로 남자 시인이 여성 연인에게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 여인의 냉대로 아픔을 느끼고, 자신의 빈약하고 가엾은 처지를 탄식하는 것이었다. 본 논문은 필립 시드니의 「애스트로필과 스텔라」 (Sir Philip Sidney`s Astrophil and Stella, 1591)와 「펨브록 백작부인의 아르캐이디아」 (The Countess of Pembroke`s Arcadia, 1593) 그리고 매리 로쓰의 「몽고메리 백작부인의 유래이니아」 (Lady Mary Wroth`s The Countess of Montgomery`s Urania, 1621)에서 드러나는 `페트라카니즘의 패러독서`를 분석한다. `페트라카니즘의 패러독스`란 페트라크풍의 시는 조건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랑은 많은 경우 매우 조건부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애스트로필과 스텔라」 의 45번 시에서 시적인 화자 애스트로필의 사랑은 그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스텔라에게 `의존`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르캐이디아」 에서 파이로클리스(Pyrocles), 젤마니(Zelmane), 필로클레아(Philoclea)의 삼각사랑은 남성의 헌신성이 아니라, 제 삼자의 존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페트라크풍의 사랑`은 여성 작가인 로쓰의 「유래이니아」 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팸필리아(Pamphilia)를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 그녀는 결혼 여부나 상대방의 행위에도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패트라크풍의 순수하고 무조건적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패트라크풍의 시에서 `여성`이란 기호가 단지 남성 시인의 명성을 높여주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면, 이 작품은 패트라크풍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남녀관계를 전도시킨 특색 있는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유래이니아」 는 남성들에게 전유되 온 패트라크풍의 사상을 여성작가가 어떻게 이용하고 변화시켰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친 여자와 새로 태어난 여자 : 『 오거스틴 ( 심한 히스테리증 ) 』

박경란(Kyung Ran Park)
6,300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여성이 남성과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처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사회의 통념에 맞추지 않을 대 이들을 미쳤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남성이 주도하는 의학계에서는 여성의 정신병을 여성혐오증의 시각에서 많이 본다. 이러한 여성은 중세와 르네상스기에 마녀라는 낙인찍힌 여성과도 비교되는데 이들 많은 수가 교회에 반항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말함으로써 처형되었다.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들도 정신병원에서 마녀처럼 취조를 당하고, 때로는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남성들에 의해 강간,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신 질환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감금하거나 물치료등 폭력적인 치료를 해옴으로써 여성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근대 정신변원의 본보기인 프랑스의 살빼뜨리에르 정신병원은 여성 히스테리 환자로 붐볐는데 그 중에서 오거스틴이라는 여자 환자는 어머니가 일하는 집의 주인아저씨에게 강간당하고 발작을 일으켜 입원한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를 쇼월터는 그녀의 책 「여성의 질병」 에서 연구하였으며 퍼스(Furse)는 이 사례를 극화하였다. 이 극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공연됨으로써 여성이 받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극에서 실재 인물을 모델로 한 두 남성 의사 샤꼬와 프로이드는 오거스틴의 발작의 원인을 모른 채,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채 각자의 치료법을 사용함으로써 그녀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여기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억압이 남상이 주도하는 의료계에서 되풀이되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거스틴의 발작은 샤꼬의 과도한 사진 촬영으로 인하여 완전 색맹이 되면서 훨씬 심해지지만 오거스틴은 이 히스테리를 통하여 자신을 표현한다. 히스테리 환자나 마녀는 오히려 힘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는 엘렌 식수와 까더린끌레망의 주장처럼 오거스틴은 자신의 몸으로 여성적인 글쓰기를 함으로써 미친 여자에서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새로 태어나는 여자가 된다.
키워드보기
초록보기
N/A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