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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1권 4호 (2014)

18세기 말∼19세기 천주교 서적 유통과 국문독서문화의 상관성 연구

이민희 ( Min Heui Lee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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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매체의 노출 빈도와 문자해독률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국문 사용자의 증가와 국문본 서적의 유통 및 출판 문제를 천주교 서적과 국문 독자와 연결시켜 살펴본 것이다. 특별히 그동안 국문 독자의형성 문제와 관련해 간과하기 쉬웠던 천주교 신자들의 국문 사용과 국문 천주교 서적의 번역과 필사 및 간행, 그리고 그 유통의 의미를 실록과 외국인 기록물을 중심으로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를 수용한 지식인 신자들이 서적을 통해 신앙을 키워나가는 한편, 이를 국문으로 번역 또는 집필한 국문본 천주교 서적이등장함으로써 여성 및 하층민 독자층이 형성, 증가할 수 있는 직간접적자양분이 마련되었다. 이때 천주교 신자들의 국문 교육과 국문본 천주교 서적의 필사 내지 유통, 그리고 간행은 하층민과 여성의 문자해독률을 높이고, 더 나아가 국문소설의 독서 인구와 유통 문화를 견인하는한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서적 유통과 국문 독서 환경은 국문소설의 그것과 유사하게 발전해 나갔다. 신유박해(1801) 이전부터 국문 천주교 교리서를필사하고 이를 판매하는 신자들이 생겨나고, 이들 서적을 소장한 채 신앙을 지켜 나가고자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필사본 형태의 천주교 서적은 1860년대에 이르러 목판본 간행이 가능해졌고, 1880년대에는 활판본 서적이 나타났다. 이런 천주교 서적의 유통 및 출판문화의 변화는순수 필사본 소설이 세책본 소설로서 상업적 유통의 과정을 거쳐 방각본 소설과 활판본 소설 형태로 변화해 간 유통 및 독서문화와 흡사하다. 이처럼 천주교 서적의 대량 생산과 공급은 신자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 천주교 서적과 국문 소설의 출판 및 유통의 변화를 독서문화의형성 및 국문 독자의 증가 등 제반 환경의 형성과 연관 지어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병상(病床)의 문학, 김유정 소설에 형상화된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김미영 ( Mee Young Kim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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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유정의 작품 활동은 그가 육체적 질병인 폐결핵과 치질, 늑막염과 정신적 질환인 대인기피증,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질병은 김유정 문학의 주제를 현격히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계와 비극성으로 치우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김유정 소설에 형상화된 인물들은 매우 일차원적인 인간들인데, 이들은 절대적 궁핍으로 인해, 식욕과 성욕의 존재들로 화하여 자기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성격으로 제시되어 있다. 도덕적 파탄에 육박하는 한계적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모습은 그가 즐겨 선택한 “봄”이라는 배경의 싱그럽고 생기 넘치는 이미지에 대비되어,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계와 비참함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병상의 문학”으로서 김유정 문학이 복사(모사)하고자 한 진실은 인간은 그다지 형이상적 존재가 아니며, 먹고 마시고 섹스하며 그날그날 살아가는, 그야말로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는 “육체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런 비극적인 인간 이해는 김유정 특유의 해학적인 구어체 문장과 풍자의 기법,순 한국적인 흥취와 어우러져 「동백꽃」, 「산골」 등에서 일제강점기 궁핍한 조선의 모습을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채색 한국화의 정조와 색감을 닮은 김유정의 소설에는 1930년대 중반, 향토성, 혹은 “조선적인것”을 찾으려는 조선화단의 영향도 감지된다. 김유정이 관여했던 “구인회”가 서양화의 도구와 재료로 “조선적인 것”을 형상화하고자 노력했던 화가그룹인 “목일회”와 교류가 빈번했으며, 1939년에 두 그룹이 “문장파”로 합쳐진 사실은 김유정 단편들의 표현과 분위기가 해학과 흥이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들을 담아 낼 수 있었던 원경에서의 계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밀리 디킨슨의 움직이는 시학

김의영 ( Eui Young Kim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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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에밀리 디킨슨의 육필원고 연구의 성과를 점검하고 그 성과를 기반으로 디킨슨의 시학을 새롭게 조명한다. 기존의 디킨슨 연구자들은 디킨슨의 원고묶음을 최고의 성취로 평가했다. 그러나 육필원고연구는 디킨슨의 창작기법이 최소한 세 단계를 거치며 변화했음을 실증적으로 도출했다. 이를 근거로 디킨슨의 시학도 변화했음을 짐작할수 있으나, 육필원고 연구자들은 실증적 방법론에 치우쳐 원고의 물질성과 시적 의미를 연동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디킨슨의 시학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본고는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여 육필원고의 물질적 특성이 시적 의미를 강화하고 때로는 변질하는 방식을 추적한다. 우선 디킨슨이 원고를 묶는 행위를 포기한 과도기의 증폭된 자의식을 조명한다. 개별 시는 시퀀스로부터 풀려남으로써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그 다음 단계에서 디킨슨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종잇조각에 시상을 적었는데, 이 원고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매우부정적이다. 그러나 본고는 이 시기의 디킨슨 원고에서 완성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를 읽어내고, 후기 시학을 탈맥락화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해석한다. 해체한 편지봉투에 디킨슨이 남긴 글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편지봉투의 모습으로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디킨슨의 미학적 전략의 위력을 방증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가 주장하는 바는 기존 독법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디킨슨 학자가 아카이브로 향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두 진영이 협력할 때 비로소 실증적 증거가 유의미한 해석으로 이어져 디킨슨의 시세계를 조명하는통합적인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모호한 서술과 열린 해석- 『주홍글자』의 서술기법

조철원 ( Chul Won Cho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113-137 ( 총 25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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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의 선과 악에 대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내적 심리상태 및 변화는 호손 나름의 독특한 서술방법을 통해서 여러 결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더불어서 벌어지는 객관적일 수 있는 사건도 화자는 확정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도록 서술하면서 열린 결말을 유도한다. 독자들은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는 화자의 서술을 끊임없이 접하면서 다른 결말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상상하고 짐작하게 된다. 서술의 모호성은 특히 소설 말미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등장인물이나 청교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결코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헤스터와 딤즈데일과 그들의 간통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들로 서술해가면서 가능한 많은 해석의 틈새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모호함 속에 빠져들면서 독서를 이어가지만, 그 모호성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어떤 고정된 의미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하고 독특한 서술기법들을 통해서 어느 하나도 확정지어 서술하지 않고 모호성 속에서 독자가 나머지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울 기회를 제공하게 하는 것이다. 복합적인 화자의 서술을 통해서 작품 내내 무수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주홍글자』가 아직도 현재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17세기를 시대 배경으로 한 19세기작품이지만, 그러한 모호성 속에서 의미 있는 열린 해석이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사랑에 관한 연대기-『바냐와 그녀』

황유정 ( Yuh Jhung Hwa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139-159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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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파트리스 파비스의 희곡 바냐와 그녀 에 나타난 사랑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는다. 이 극은 두 명의 주인공들, 바냐와 엘레나의 관계를 주축으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20년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1년에 일주일간, 바냐의 오두막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만남은 증상으로서의 사랑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이 극에서 바냐의 오두막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과 그가 찍은 이들 나무에 관한 사진들은 두 명의 주인공들의 사랑을 발생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이들의 20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만남은 바냐로 하여금 스스로의 향유를 통제하고 보존하려는 강박적인 노력을 강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를 강박적인 남성 주체로 이해하게 한다. 한편, 이들의 관계에서, 엘레나는 스스로의 향유에 대해자기 충족적이라는 점에서 침묵하는 사이렌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남녀 주체들의 서로 다른 존재 양상들은 이 극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사랑의 특징을 (불가능한) 사랑의 연대기와 동궤로 이해하게 한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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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푸라우케 핀스터발더의 영화 핀스터월드 (2013)를 독일현대사회 비판이라는 기본틀 안에서, 구체적으로는 나치 과거와 동화구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독일은 과거극복 문제에 관해서는 모범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전후 1세대라 할 68세대 이후 계몽적이고 비판적인 여론이 전체 사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아이들인 현대 독일의 젊은 세대들, 전후 2세대들은 이러한 부모세대가 만든 세계나 그들의 도덕에 공감을 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2세대들의 반항과 거부는 계몽이나 이성, 비판이 아니라 사고부재, 무관심, 냉담함,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행해져 독일이 다시보수화되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러한 세계를 무엇보다도 전통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화덕, 재의 모티브를 차용하면서동화 특유의 전도와 매개의 구조 속에서 묘사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나치 독일과 거리를 두고 과거극복과 사회개혁을 외쳤지만 그들이 만든가정, 학교, 자연, 역사의 현장은 모두 분리와 고립의 차가움의 세계로드러난다. 밝고 안락한 복지국가 안에서 아이들과 노인들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부모세대에 의해 다시금 버려진다. 학교의 획일화된 과거교육과 역사 체험은 젊은 세대의 역효과를 불러오고 이러한 시민 세계의 일상에 깔려 있는 냉소적 파시즘은 역사의 현장에서 또 다시 새로운 폭력을 불러오고 무고한 희생자를 화덕과 감옥, 정신병원에 밀어 넣는다. 전통 동화의 도식이 이원화되고 분리된 세계가 매개를 거쳐 화해에이르고 어두운 세계에서 밝은 세계로 전환됨을 보여준다면 현대의 밝고 안락한 복지사회와 유복한 가정, 계몽적 분위기의 학교는 결국 시민계급의 나약함과 수동성, 그리고 폭력이 지배하는 정반대의 음울한 핀스터월드로 드러난다.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본 투트모스 3세의 과거인식과 개인정체성

곽민수 ( Min Soo Kwack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191-228 ( 총 38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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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와 그 뒤를 이은 투트모스 3세의 관계는 학계와 대중매체 양쪽 모두에게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양자의 관계는 투트모스 3세가 단독으로 왕위에 오른 이후 이후에 복수심을 가지고 과거 자신의 왕위를 찬탈한 하트셉수트의 흔적들을 제거하였다고 설명되어 왔지만 실제의 과정은 그보다 복잡한 것이었다. 투트모스 3세는 선왕이었던 하트셉수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단독 재위기 후대에 이르러 새롭게 부각된 아멘호테프2세의 왕위계승과 관련된 정치적 사안으로 인하여 하트셉수트에 대한기억말살 정책을 시작하게 된다. 존중과 파괴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하트셉수트와 본인과의 비교 및 대조는 투트모스 3세는 본인의 개인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며 파라오의 성찰은 이집트 신왕국의 국가 정책에 반영된다. 카르낙 신전은 양 파라오의 건축행위가 겹쳐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고고학적으로 관찰되는 하트셉수트의 건축물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진 투트모스 3세의 건축행위는 그의 하트셉수트 치세에 대한 평가와 그 평가의 변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투트모스 3세는 하트셉수트의 사후 직후에는 그녀의 기념물들을 유지-보수하였으나 후대에 가서는 그녀의 기념물들은 물론 그녀에 관한 기록 자체를 파괴하였다. 하지만 하트셉수트가 애초에 카르낙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는 그녀의 기념물들이 파괴된 이후에서 계속 진행되었으며 더 나아가 하트셉수트의 업적을 뛰어넘기 위한 투트모스 3세의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투트모스 3세의 개인적 정체성이 반영된 이 시도는 건축행위에서만이 아니라 이집트 국가정책에서도 확인되는데 그 결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집트 신왕국의 제국주의 정책은 이후 이어지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사회문화적 내구성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세기 전반기 한국 자유주의의 형성과 굴절

강명희 ( Myung Hee Ka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229-267 ( 총 39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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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과정에서 한국에도 자유주의사상이 소개되었고,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사상적 틀(frame)을 제공해주었다. 이 시기 형성된 개인의 자유와 민족·국가의 독립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조화론적 사상기조는 20세기 전반기 동안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 무단통치하에서 폭발한 3·1운동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국내의 자유주의적 독립운동은 철저히 억압되었다. 식민통치 상황 속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운동보다 문화운동으로써 개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담론이 전개되었고, 그것은 전통적 유교문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교적 가족제도 하의 피해자인여성과 청년층의 인권을 회복하고, 사상혁명을 고취하는 신문화건설내지 신사회 건설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1920년대 중후반 소위 “문화통치” 정책 하에서도 자행된 일제의 고문과 언론 탄압에 저항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쟁취운동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와 농민, 청년의 전국조직이 결성되어 이운동의 한 축을 구성하였으며, 변호사들의 조직도 언론자유 획득을 위한 합법 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유력한 신문 잡지들은 이 문제를 식민당국의 부당한 통치의 상징적 이슈로 간주하고 언론자유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팟쇼체제 하에서 이러한 당위적 목표를 제기하는 것조차 강한 탄압을 받고 운동은 쇠퇴하였다. 1920년대 이래 사회주의 사상의 흥기로 인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동일시되며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자유주의적 운동은 자유주의 이름을 표방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에야 “자유주의”를 모색하는 시도가 나타났지만, 사회주의와 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자유주의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민족주의와의 불안한 연합 속에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존재를 유지하였다.

중국 조선족학교 민족문화 교육과정 개발의문제점과 개선 방향

김해영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269-300 ( 총 32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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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국의 새 교육과정 실행 이후 진행된 조선족학교 중심민족문화 교육과정 개발의 현황을 기반으로 그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시도되었다. 그동안 조선족학교는 국가, 지방 및 학교 교육과정의 3급 관리체계를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실천을 시도해왔다. 특히 연변지역과 기타 조선족 산재지역의 조선족학교들은 지방교육과정및 학교교육과정으로서의 민족문화교육에 대한 연구와 실천 및 교육과정 개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민족문화 교육과정의 개발 및 실천은 비교적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화와 관련된 개념 정의가 모호하고, 교육과정 및 교재개발이 규범화, 체계화되지 못하고 있고, 교사의 자질과 민족문화적 소양이 부족, 민족문화 교육과정 개발 자원의 수집과 비치의 부진, 개발된 민족문화교육과정 실행의 정책적, 행·재정적 지원의 부족 등 다양한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면서 단위 학교에서 학교 중심 교육과정으로 민족문화 교육과정을 개발함에 있어서의 교육과정의 내용과 실행 두 방면으로 향후 개선방향을 제시하였다. 조선족학교 중심 민족문화교육과정을 개발함에 있어 우선 관련된 다양한 개념에 대해 명확히 하고, 교육과정 개발이 규범화, 체계화되도록 노력하며, 교사의 확보와 지속적인 교사 연수를 도모하고, 학교와 교사의 민족사명감과 헌신정신을 유발, 학교의 교육철학과 운영이념을 반영, 개발과 실행 및 연구를 병행하는 등이다. 이러한 개선을 통해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서의 그 정체성을 민족문화라는 매개체로써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족은 반드시 중국조선족이라는 총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야만 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 한민족은 반드시 이를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조선족의 문화가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며 진정 한민족의 넋을 꾸준히 중국이라는 대국에서 당당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학교는 반드시 이러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민족문화를 내용으로 하는 학교 중심 교육과정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성 통제에 대한 보고

이지영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1권 4호, 2014 pp. 303-315 ( 총 13 pages)
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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