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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2권 3호 (2015)

기획의 말 : 제국, 문명의 거울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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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제국"적 특성 -이념적 측면에서의 고찰

최진묵 ( Jin Mook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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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제국으로 불러왔던 중국고대사회를 과연 제국으로 칭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이념적인 측면에서 검토한 것이다. 황제의 나라라는 측면에서 고대 중국은 확실히 제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고대 중국을 서구용어 엠파이어(Empire)의 번역어로서의 제국으로도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이 글의 관심사이다. 또한 고대 중국이 그러한 제국이라면 그 제국적 속성을 얼마나 갖고 있었고 어떠한 성격의 제국인지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념적 측면에서 고대 중국의 이상적 국가의 모습에는 소국형태의“소국과민”(小國寡民)과 하나의 통일된 대국을 지향하는 “대일통”(大一統)의 관념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진한시대에는 “대일통”사상이 궁극적으로 승리하여 현실적으로 고대 중국은 통일국가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이 고대 국가는 이념적으로 당위적으로 지배해야 하는 영역으로써 천하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종 제도적 장치를 두었다. 천하일가(天下一家)나 가천하(家天下)라는 구호는 이러한 통일국가를 혈연을 기초로 동질화된 하나의 공통된 제국으로 묶는 이념적 장치였다. 이런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것은 공통된 민족의식, 풍속과 사람간의 감정이서로 통하는 영역으로서의 중국 내지는 천하관, 문화적 동질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에 대한 복종과 귀속감 등의 논리 등도 있었다. 동시에 통합사상으로서의 유교는 종래의 가족윤리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국가윤리로 발전하였다. 효는 더 이상 자신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아닌 국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였고, 군신관계에서 군주는 천이나 상제의 분신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절대적으로 신하를 통제하여 부자관계에 우선하는 논리였다. 혈연을 기초로 국가를 구성하면서도 혈연을 벗어나야만 했던 고대 중국사회의 고민이 엿보인다. 따라서 고대 중국은 영토의 확장성이나 민족과 문화와 동질성을 기반으로 확대되었다는 측면에서는 번역어로서 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은 이질적인 요소를 확대하면서 제국의 길을 걸었던 로마제국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역사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제국의 한 유형으로서 평가할 수는있을 것이다.

이소크라테스의 범(汎)그리스주의

김헌 ( Heon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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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에 이소크라테스는 그리스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른 바 ‘범(汎)그리스주의’를 내놓았다. 그것은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1) 그리스인들은 싸움을 멈추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하며,(2) 그 여세를 몰아 동방의 이방인들(페르시아인들)을 향해 군사적 원정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범그리스주의가 왜 그리스를 하나로 묶어주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동방원정을 주장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해명하려고 한다. 범그리스주의는 페르시아전쟁이라는 기원전 5세기의 역사적 경험에서 형성되었다. 페르시아에 대한 적대감은 그리스를 하나로 묶어주었고, 나아가 페르시아의 위협을 봉쇄하기 위하여 선제적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발전하였다. 이 정치적 구상은 이소크라테스에게 계승되어 정점에 이르렀고,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의 서부까지 진격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실현되었다. 이소크라테스는 그리스가 단순히 종족적 공동체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 이념적 공동체라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철학과 언어, 종교와 신화, 역사와 전통, 법과 정치체제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의 정신적 자산이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야만적인 이방인을 그리스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한다. 범그리스주의는 이와 같은 문명과 계몽의 속성 때문에, 그리스인이 하나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그리스인으로 만들기 위해 페르시아에 대한 동방원정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한편,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의 중요한 정치적 이념이었던 범그리스 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도 있었다. 이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경쟁자였던 플라톤은 공격적인 범그리스주의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일정규모에 만족하는 절제된 이상적인 국가를 그려주었고,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와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예를 들어 제국주의적 팽창의 비극적 결말을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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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세 이슬람 문명의 두 주역인 우마이야 제국과 압바스 제국에서 제국과 문학 간의 상관성, 즉 아랍 문학이 제국의 운영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그리고 제국 내 사회 현상을 어떻게 반영했는지에 관해 고찰했다. 첫째,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족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이슬람 제국을 통합시킨 요인은 연대의식으로 작용한 이슬람과 공식 언어인 아랍어였다. 비(非)아랍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아랍어를 사용함으로써 아랍인과의 종교.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제국은 타민족 사람들의 이슬람으로의 개종 여부에 따라 왈라 제도와 딤마 제도를 운영했다. 둘째, 제국 내 시인의 역할은 기존의 부족주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정책이나 지배층의 정통성 옹호, 사회 비판 등과 같은 국가적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초기 이슬람 포교에서 정치적으로 무슬림 시인을 활용했던 사실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산문분야에서는 이븐 알무카파의 『칼릴라와 딤나』가 칼리프를 위한 통치지침서의 성격을 띠고 있어 당대 작가들의 국정에 대한 관심과 사회참여의식을 엿볼 수 있다. 셋째, 제국 내에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도시문화의 확산에 따라 향락 풍조와 도덕 타락 등 부정적 현상이 만연했으며, 이는 주시(酒詩)나 감각적 연애시 등에 반영되었다. 반면, 제국내 이러한 세태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금욕과 영성(靈性)을 지향하는 수피문학이나 절제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순애적 연애 시가 나타났다. 넷째, 무슬림 간 평등이라는 이슬람 원칙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에는 실제로 아랍인과 비아랍인 간 차별이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페르시아인을 위시한 비아랍계 민족의 저항이 일어나 페르시아계 작가와 시인들이 참여한 슈우비야 운동으로 가시화되었다. 한편 알자히드, 이븐 꾸타이바 등의 아랍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슈우비야 운동에 대한 정치적.문화적 비판과 풍자를 시도했다. 전반적으로 중세 아랍문학은 통합.번영과 더불어 불화와 갈등의 소지가 있던 이슬람 제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반영하고 그 문제점을 제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해상 제국 베네치아 -신화인가, 실체인가?

남종국 ( Jong Kuk Nam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2권 3호, 2015 pp. 113-148 ( 총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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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역사는 그 자체가 신화이다. 특히 다수의 역사가들은 중세 후반 베네치아 공화국이 달성한 위대한 업적을 근거로 베네치아를 중세 해상 제국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해상 제국베네치아라는 개념이 과장된 신화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그에 걸맞은 실질적인 힘과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4차 십자군의 “승리”로 베네치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8분의 3을 획득했고 이후 동지중해에서 바다 영토(stato da mar)를 건설했다. 14세기 말 이후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본토로 진출해 육상 영토(stato da terra)를 건설했다.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바다 영토와 이탈리아 반도 내의 육상 영토를 여러 강대국에 맞서 꽤 오랫동안 지켜냈다. 그렇지만 영토의 규모라는 외형적 기준에서만 판단할 때 베네치아는 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실제로 베네치아의 해외 영토와 이탈리아 반도 내의 영토를 모두 합치더라도 전성기의 로마제국에 비하면 한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세 베네치아는 거대 제국들이 제국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많은 문제들과 동일한 상황에 직면했고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더 나아가 중세 후반 인구10만 정도의 작은 섬나라 베네치아가 비잔티움 제국, 신성 로마 제국,오스만 제국 등 당시 제일 규모의 제국을 상대로 경쟁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베네치아가 제국의 위상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세 말 베네치아의 지배 세력들은 베네치아를 사실상의 제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베네치아를 새로운 로마로 간주했고 실제로 베네치아를 제국으로 칭했다. 베네치아의 적들도 베네치아의 위대함을 칭송하거나 베네치아가 제국이 되려한다고 비난했다.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할 때 15세기 베네치아는 제국으로 불릴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노걸대』와『박통사』에 나타나는 "파"(罷)의 언해 양상 고찰

김해금 ( Hai Jin Jin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2권 3호, 2015 pp. 151-181 ( 총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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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노걸대』와『박통사』에 나타나는 ‘파’(罷)의 언해 양상을 살펴 언해문에 나타나는 ‘罷’의 대응 양상이 어떠하며, 이러한 양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이본들을 비교.대조하여 밝히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노걸대』와『박통사』에서 ‘罷’는 어휘 형식인 ‘무던.다’,‘VP-ㄹ 만 .다’, 종결어미인 ‘-리라’, ‘-(으)마’, ‘-노라’, ‘-니라’, ‘-.다’, ‘-쟈’,‘-(으)라’, ‘-고려’, ‘-쇼셔’ 등으로 언해되고 있다. 이와 같은 언어 형식을 가지고 인칭을 기준으로 ‘罷’의 문법적 의미를 시기별로 살펴본 바 16세기 초에서 17세기 후반에는 ‘무던.다’로 청자에 대한 ‘제안’과 화자의 ‘타협’(妥協)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위의 두 의미외에 화자의 ‘의지/결정’, 화.청자의 ‘청유’, 청자에 대한 ‘명령’, 청자에 대한 ‘약속’, ‘추측/질문’(.測/問)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통해 통시적인 변화를 보이는 ‘罷’의 여러 문법적 의미가 18세기 후반의 이본들에서 공시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존현상은 동일 원문을 파악함에 있어서 주어의 인칭이라는 문법적 장치와 ‘罷’의 문법화에 대한 언해자의 인식을 복합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한편으로 공존현상에 ‘무던.다’가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던.다’를 통해서 ‘罷’의 통시적인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16세기초에서 18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노걸대』와『박통사』의 이본들에서 ‘罷’의 ‘여러 문법적 의미는 ‘무던.다’에 의해 거의 나타내던 것이 청자에 대한 ‘제안’, ‘타협’과 ‘한정’의 의미가 유지되고 다른 문법적 의미는 점차 다른 언어 형식으로 대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던.다’의 사용 범위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罷’의 문법적 의미가 겪은 통시적인 변화는 ‘무던.다’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문학에서 되살아나는 "해태" -「집팽이轢死(역사)」를 중심으로

고현혜 ( Hyeon Hye Go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2권 3호, 2015 pp. 183-221 ( 총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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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이상의 근대성 비판을 『집팽이轢死(역사)』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집팽이轢死』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집팽이轢死』에서 전략의 도구로 활용된 전통적.민족적 텍스트로서의 해태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크게 3가지 사항을 다루었다. 첫 번째는 『집팽이轢死』의 희문(戱文)의 역행적 전략을 밝히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이상문학의 역행의 논리와 웃음,『집팽이轢死』의 웃음과 공포의 대립구조와 에피파니(epiphany)를 해명하였다. 두번째는 『집팽이轢死』에서 나타나는 1930년대 식민지 근대의 불구적 몸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유행으로 보는 식민지 근대의 풍속과 문체상의 주객전도가 드러내는 식민지 근대의 우화(寓話)를 읽어보았다. 세 번째는 『집팽이轢死』의 해태 되살리기와 지팡이 역사의 의미를 천착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해태를 세 가지 관점(상품.기호.상징)에서 해석해보고 이상이 지팡이와 그 죽음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았다. 이상의『집팽이轢死』는 1920년대 한국의 몇몇 문인들이 광화문의 해태와 관련해 생산해낸 ‘조선인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이상은 1930년대 한국인들의 불구적 주체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태를 심판관으로 호명해 판결을 내리게 한다. 그판결의 내용을 상징하는 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면서 주제를 함축하고있는 ‘지팡이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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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면 중국에서 출판된 한국어 듣기 교재 내 제시대화문들은 부사의 사용에서 한국어 준구어와 일부 차이를 보인다. 연구자는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연구자가 직접 구축한 한국어 준구어 말뭉치와 한국어 듣기 교재 내 제시대화문 말뭉치에 대해 통계학에서의 구간 추정 방법과 가설 검정법을 도입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자는 먼저 위의 두 말뭉치에서 출현한 부사를 통사론적 특성에 따라 문장부사와 성분부사로 나누고 다시 의미론적 특성에 따라 문장부사는 서법부사와 접속부사로, 성분부사는 시간부사, 장소부사, 양태부사, 정도부사, 상징부사, 부정부사로 나누어 비교 연구를 진행하였다. 다음 연구자는 이들 부사를 다시 그 어원적 특성에 따라 고유어 계통, 한자어계통, “고유어+한자어/한자어+고유어” 계통으로 나누어 비교 연구를 진행하였다. 비교 결과 부사의 통사.의미론적 범주별 사용 측면에서 문장부사 중의 서법부사, 성분부사 중의 장소부사, 상징부사, 부정부사는 모든 교재 또는 대부분의 교재에서 그 출현율이 신뢰하한에 미치지 못하였고 문장부사 중의 접속부사, 성분부사 중의 시간부사, 양태부사는 모든 교재 또는 대부분의 교재에서 그 출현율이 신뢰상한을 초과하였다. 그리고 부사의 어원적 범주별 사용에서는 뚜렷한 문제점들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한자어 계통의 부사의 사용에서 한국어 교재들의 사용률이 약간 높은 반면 “고유어+한자어/한자어+고유어” 계통의 부사의 사용에서는 한국어 듣기 교재들의 사용률이 약간 낮았다. 따라서 연구자는 향후 한국어 듣기 교재 내 제시대화문 집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였다. 향후 한국어 듣기 교재 내 제시대화문에서는 문장부사 중의 서법부사, 성분부사 중의 장소부사, 상징부사, 부정부사는 그사용률을 증가해야 하고 문장부사 중의 접속부사, 성분부사 중의 시간부사, 양태부사는 그 사용률을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한자어 계통의 부사의 사용은 좀 줄이고 “고유어+한자어/한자어+고유어” 계통의 부사의 사용은 약간 늘릴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부사의 사용에서도 일부 주의가 필요하다.

허먼 멜빌의「필경사 바틀비, 월가의 이야기」에 나타난 바틀비의 저항 대상 연구

이광진 ( Kwang Jin Lee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2권 3호, 2015 pp. 249-284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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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경영학의 한 분야인 조직행동론의 여러이론 중 ‘리더.구성원 교환관계 이론’(Leader Member Exchange Theory,LMX이론)을 활용하여 작품을 분석한다. LMX이론은 조직 내에 새로운 구성원이 조직에 잘 적응하도록 돕거나 새로운 업무(혹은 문제)를 기존구성원에게 맡김으로써 안정화시켜갈 때 작동하는 리더와 구성원 간의상호관계를 면밀히 분석한 이론이다. 변호사인 화자의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바틀비와 새로운 일을 해 나가는 과정은 이 이론을 적용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본 논문은 LMX이론의 적용을 통해 바틀비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조직의 리더인 화자의 LMX 시도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는 비즈니스, 조직의 거부임을 밝힌다. 또한 화자가 바틀비를 유령으로 자주 묘사하는 것을 바탕으로 결국 바틀비는 본격적인 산업자본주의를 발전시켜가는 미국사회가 상실해가는 그 무언가를 의미하며 화자는 그것에 대한 미련이 있긴 하지만 바틀비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보여주듯이, 결국은 사회의 변화조류에 편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레뜨』: 영미 페미니즘 비평 재고(再考)

최지안 ( Jian Choe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2권 3호, 2015 pp. 285-303 ( 총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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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페미니즘 비평은 샤롯 브론테의 작품의 평가와 논의에 있어 주요방법론을 제공해왔다. 특히 작가의 최후의 걸작 『빌레뜨』는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의 교차국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상기한 비평이론의 적용 가능성을 예시한다. 비평가들은 작품에 드러난 여성의 분노와 불안을 여성해방 의식의 징후로 보고 『빌레뜨』를 페미니즘 텍스트의 전범(典範)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복합적인 의미의 층위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어느 특정 비평론의 단선적인 접근으로 온전히 해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우선 『빌레뜨』는 텍스트의 불확정성을 노정하며 이는 작품의 해석을 부단히 교란시킨다. 본 작품의 서술은 의미론적 균열과 부정합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외견상 명시적인 지점에서도 전복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작품에 나타난 인물 성격의 불안정성은 경험주의적 휴머니즘의 통합된 주체 개념을 부정한다. 특히 작중 화자는 유동적 자아 정체성의 소유자로서, 그의 인지와 담화는 신경증적이고 정신분열적 양상을 보인다. 이와 같은 신빙성 없는 화자의 존재는 서술의 진실성 문제에서 나아가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점은 내러티브의 모호성과 플롯의 불안정성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밀레트, 쇼왈터, 길버트-구바 등 고전적 영미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해당 비평론에 내재한 가부장제 패러다임 즉 이성중심주의 환원론에 입각한 바 『빌레뜨』텍스트의 불확정성을 해명하는데 한계를 드러낸다. 반면 브론테의 문제적인 소설은 페미니즘 정치학으로부터 데카르트적 자아 개념에 정초한 가부장적 미학을 분리해낼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빌레뜨』는 영미 페미니즘 비평의 강점과 한계를 고찰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영미 페미니즘비평의 근간이 되는 자율적 안정적 주체 개념을 해체함으로써『빌레뜨』는 관련 이론의 방법론과 근본 모순의 재고 및 보다 비선형적인 대안적 비평의 모색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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