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인문논총검색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3권 2호 (2016)
6,500
초록보기
행동의 형식인 드라마는 이 행동을 언어와 이미지로 드러내며 사건을 진행한다. 따라서 드라마 미학의 방법론은 이 언어와 이미지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분석하는 데에 핵심이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논자가 지금까지 시도해 온 일련의 논의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주로 현상학적 관점과 지각 이론에 기대어 이들의 구조와 드라마에서의 작동원리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특히 텔레비전드라마 「미생」(2014)을 중심으로 언어와 이미지의 관련성, 카메라의 시점이 언어와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하였다. 텔레비전드라마는 인물의 발화를 통한 청각과 인물의 행동과 사물을 보여주는 시각의 지각작용이 밀접하게 조화되어 관객의 감정 이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이를 통해 관객은 텔레비전드라마가 보여 주는 드라마의 세계를 자신의 ‘주위세계’로 인식하게 되고, ‘나’가 아닌 ‘우리’로서의 ‘세계-내-존재’의 존재성을 자각하게 된다. 오늘날 텔레비전드라마가 드라마 형식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텔레비전드라마의 미학적 구조에 기인한다.

“신극”의 지속을 위한 모색과 화두로서의 “중간극”

이광욱 ( Kwang-ouk Lee )
11,900
초록보기
본고는 1930년대 후반기 조선연극계의 화두로 부각되었던 ‘중간극’이 불러온 담론의 양상을 밝히고자 한 연구이다. ‘중간극’은 일본에서발생한 절충적 연극을 가리키는 개념이었으나, 박영호가 논의한 ‘중간극’은 오히려 일본의 신협극단에서 표방한 ‘신극의 대중화’ 노선과 유사한 것이었으며, 이와 같은 경향은 2기 활동에 접어든 극연의 행보와도 일맥상통한다. 한편 극연은 ‘중간극’에 대해 애매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신극’이라는 기호에 내재된 문화자본을 유지하는것이 극연의 기존 관객층이던 지식인들을 결집시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극’이 지닌 가치는 흥행극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구성된 것이었으므로, 극연은 중앙무대의 공연이 흥행극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극연의 문화자본 독점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는 가운데, 신극과 중간극의 실질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자, 신극의 외연은 중간극을 포함한 ‘신극계’로 확장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신극 진영은 중간극에 대한 입장 차이를 계기로 삼아 점차 분화되기도 했다. 이후 중간극이라는 용어는 점차 담론장에서 사라지게 되지만, 그 문제의식은 ‘신극의 매력’이라는 용어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는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관객들의 계층이 혼합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과 관련되는데, 상업성을 기준으로 신극과 흥행극을 구분지어 왔던 기존의 분법적 논리는 결국 유효성을 상실하게 된다. 즉, 신극은 스스로의 가치를 실증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산출되었던 이론비평들은 신극의 지속을 위한 진지한 모색이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8,0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1960년대 스릴러 영화 < 마의 계단 >(1964)과 < 불나비 >(1965)를 대상으로 관객이 범죄의 서사를 인지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사회 내부의 불안정성이 어떻게 발견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성이 어떤 감각으로 관객에게 지각되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마의 계단 >과 < 불나비 >에서 범죄는 모두 새로운 가정 형성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살해하는 것과 관련된다. 범죄는 가정의 내부에 숨겨져있고, 새로운 가정을 만들려는 욕망은 과거의 침입으로 인해 좌절되는데, 이러한 과거의 흔적은 안정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위협이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관객에게 인지된다. < 마의 계단 >은 죽음의 위장을 통해 내부의 불안정성에 대한 감각이 객관적인 외부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자신의 정신을 의심하게 되는 내적인 불확실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죽음의 위장이 형성하는 스릴과 서스펜스는 관객이 가정과 사회 내부의 불안과 정신 내부의 불안이라는 이중적인 불안을 지각하는 것으로 구조화된다. < 불나비 >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며 위장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관객이 타인의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불투명성을 인지하도록 하는데, 인물들이 사용하는 비유적인 언어는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언어로서 진실의 일면을 숨겨둘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정체의 불투명성은 아는 사람에 의해 가해지는 위협이라는 충격을 증폭시키며 해결되지 못한 과거에서 기인한 희생되고 억압된 욕망이 가까이 파괴적인 형태로 잠재하고 있다는 불안의 정서로 지각되도록 한다. 1960년대 스릴러 영화가 하나의 영화적 현상으로서 대두되었다는 것은 스릴과 서스펜스에 대한 경험이 관객의 일상적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감각을 제시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 마의 계단 >과 < 불나비 >는 사회의 불안정성을 가정 내부에 숨겨진 불안에 대한 지각을 통해드러낸다. 이 작품들은 위장된 정체가 만들어내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관객을 참여시킴으로써 1960년대를 주도했던 가정의 재건과 국가의 재건이라는 안정성에 대한 요구에 균열을 내고 1960년대의 삶에서 개인이 마주해야 하는 불안을 인지하도록 한다. 이 시기 스릴러 영화에서는 매끄럽게 안정된 체계로 수렴될 수 없는 불안의 감각이 관객과의 공모 속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별들의 고향”과 “청년문화”의 의도적 접속

송아름 ( A Rum So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3권 2호, 2016 pp. 123-155 ( 총 33 pages)
7,300
초록보기
우리나라에서의 청년문화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 초 소설과 영화의 영역에서 발표돼 유례없는 흥행기록을 세운 ‘별들의 고향’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이에 ‘별들의 고향’은 마치 청년문화의 집약체인 것처럼 간주되지만 아직 청년문화의 정체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에 관한 적극적인 논의들은 두 개의 ‘별들의 고향’이 발표된 이후라는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별들의 고향’을 통해 청년문화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과연 무엇이 두 개의 ‘별들의 고향’과 ‘청년문화’의 접속이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두개의 ‘별들의 고향’은 독자와 관객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대중들을 끌기에 매우 적절한 작품이었다. 이 감각적이라는 특징은 한편으로 아주 대중적이면서도 이 작품을 새롭다고 평가하게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새롭게 유입된 젊은 수용자들과의 접속을 자연스럽게 했다. ‘별들의 고향’에 반응한 젊은이들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서구 청년문화를 소개해오던 언론을 통해 돌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후 한국의 청년문화에 관한 논의로 번져간다. 서구의 청년문화를 기준으로 후진국의 청년문화라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면서도 교묘하게 선진문화와 우리나라의 청년문화를 동등하게 비교하고자 하는 양가성은 청년문화 논쟁에 불을 지피게 된다. 논쟁이 시작되면서 대학생들은 ‘별들의 고향’이라는 대중성 강한작품에서 ‘청년’이라는 명칭이 호명되는 것에 반발, 젊은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청년문화를 다시 규정하고자 하였다. 이때의 청년문화는 청년문화 논쟁의 그것과 다른 의미로 전환되고, 더 이상의 논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1970년대 청년문화는 단일한 하나의 개념으로 볼 수 없으며, 청년문화의 시작 혹은 초기의 청년문화는 두 개의 ‘별들의 고향’의 새로움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에 당대의 욕망이 결합된 것으로 뚜렷한 실체가 있다기보다 그것이 놓인 상황이나 호명의 주체에 따라 유동하는 개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소설 『웨이벌리』의 문학적 성취

김명환 ( Myung-hwan Kim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3권 2호, 2016 pp. 163-191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월터 스콧의 첫 역사소설 『웨이벌리』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한다. 우선 작품에 그려진 재커바이트 반란이 당대의 근대 세계질서의 패권을 둘러싼 갈등의 일환임을 밝힘으로써 아직도 그 비평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는 루카치의 스콧 논의가 서구중심주의적 한계에 물들어 있음을 밝힌다. 또한 결말을 포함하여 작품 전반이 잉글런드와 스코틀란드의 합병으로 형성된 연합왕국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긍정한다는 면에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스코틀란드 고지대의 가난한 민중과 민족문화에 대한 애정에 바탕을 둔 전혀 다른 측면 또한 존재함을 입증한다. 스콧은 로맨스, 고딕 소설, 셰익스피어 사극, 당대의 사실주의 소설 양식의 요소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활용함으로써 급속도로 사라져가던 고지대 전통 사회가 지녔던 인간적인 잠재력과 미덕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데 성공한다.
7,200
초록보기
이 논문의 목적은 침묵을 강요당한 노예여성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서 노예제에 대한 충실한 묘사를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침묵이 지닌 의미를 독서대중과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단순한 피해자로 전락하기 보다는 주인의 끊임없는 성적인 접근에 대해 기지넘치는 말대답을 보여주었던 브렌트의 활력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고 이로 인한 서술의 모호함을 수반한다. 본고는 이러한 균열이 단순히 그녀의 수치심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음’을 더욱 강조하는 장치로 기능함을 살펴볼 것이다. 제이콥스는 여성노예로서 겪어야 했던 치욕적인 경험들을 기록함으로써 감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포장된 남부가정의 기이하고도 잔인한 행태를 전달해준다. 그러나 제이콥스의 위대함은 역사적인 사료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적나라하게 그려낸 노예제의 핵심을 독자는 여전히 모를 수도 있다는 자각을 일깨운 점에 있다. 노예들이 겪는 끔찍한 신체적인 고통에 더해 그들에게 허락된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극단적인 절망감과 모멸감의 심연은 그녀의 필력으로는 끝내 전달될 수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이콥스는 백인 독자가 흑인 작가로부터 온전하게 듣지 못해 의심하게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노예의 복잡한 내면을 읽어주길 요청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 사료와 기록을 통해 노예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21세기의 독자들에게도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온전하게 알 수 없는 노예제와 노예의 삶을 연구과제로 남겨준다.
7,200
초록보기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1922년 소설 『율리시스』 (Ulysses)는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Leopold Bloom)이 더블린(Dublin) 거리를 유랑하면서 실천하는 일상 속의 일탈을 표현한 텍스트이다. 블룸의 일탈은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일탈의 형태는 음식을 먹는 행위와 관련된다. 본 논문은「칼립소」장에서 블룸이 누리는 아침식사의 쾌락에 초점을 맞추어, 음식을 먹는 행위와 이를 통한 일탈이 유발하는 효과와 의미를 살펴보는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블룸에게 있어 음식을 먹는 행위는 쾌락의 원천이자, 『율리시스』라는 실험적인 텍스트를 잉태하는 힘이라는 것이 본고의 전제이다. 이에 더하여 본 논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블룸이 취하는 쾌락적 소비에 결부된 불안의 정서이다. 블룸은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쾌락을 누리지만, 쾌락적 소비행위에는 모종의 죄책감과 불안의 감정이 뒤따른다. 본고는 쾌락과 불안의 공존이 텍스트에 기입된 양상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쾌락에 동반하는 불안의 근거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와 수행적 글쓰기

박여선 ( Yeosun Park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3권 2호, 2016 pp. 257-286 ( 총 30 pages)
7,000
초록보기
쿳시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그 독특한 형식으로 인해 의견이분분한 소설이다. 윤리, 도덕, 철학에 관련된 사유들을 문학형식에 담은 논증소설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철학과 문학의 만남을 고민하는 많은 평자들의 관심을 받아왔고 이 소설의 문학적 형식이 철학적 내용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는 작품의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 소설에서 쿳시는 사유를 “극화”함으로써 문학으로서만 가능한 윤리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품에서 표준적인 철학적 논의들은 인물과 연루되고, 사유와 이해는 감정과 연루된다. 또한 쿳시 자신도 텍스트 안팎을 넘나들며 여성작가 엘리자베스를 연기함으로써 감정의 언어가 기존 도덕철학의 이성적언어에 얼마나 저항적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쿳시는 작품 전반에 걸쳐 무대로서의 텍스트, 공연행위로서의 읽기/쓰기 모티프를 계속 환기하는데 그가 이 소설에서 마련한 공연의 장면구성은 재현을 목적으로 한 미장센(mise en scene)이 아니라 재현의 불가능성을 지시하는 미장아빔(mise en abime)에 근간을 둔 것이다. 작가쿳시와 그의 작품 속 작가 엘리자베스가 서로의 이미지를 무한히 반복-반영하는 무대를 세팅함으로써 허구/문학과 실재/현실의 총체적 연결이 불가능해진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체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쿳시의 형식실험은 포스트모던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근본적 차원에서는 리얼리즘적 내용을 목표한다고 볼 수 있다. 언어의 과잉/한계를 마주하고 있고 문학의 윤리적 권위가 의심받는 시대에 엘리자베스가 제시하는 작가의 특수한 의무는 실재에의 충실함이다. 엘리자베스가 실재에 충실하고자 처하게 된 작가적 곤궁을 극화하는 수행적 글쓰기를 통해 쿳시는 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즘을 발명한다.
7,000
초록보기
이해조는 이인직, 최찬식 등과 더불어 신소설의 주요 작가로 익히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해조의 사상적 지향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인 「윤리학」 연재물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권선징악이라는 전근대적 윤리관의 서사화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 왔던 이해조 소설 일부를 재조명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고 생각된다. 「윤리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윤리학을 ‘인식’이자 동시에 ‘실천’으로 이중 규정한 데에 있다. 근대적 학문으로서 윤리학의 근본목적은 ‘인륜의 이치’를 인식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 있다고 기술되었던 바 있다. 이 ‘인륜의 이치’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선악을 구분하는 표준에 대한 인식인 동시에 인간성을 가늠케 하는 척도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이해조 소설의 저류에 있는 문제의식 중 하나는 이 ‘인륜의 이치’를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소설을 ‘윤리학적’ 인식의 수단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는 「윤리학」의 번역에 앞서부터 잠복해있던 주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윤리학」은 주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표준에 대한 인식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이 표준이 사회의 진보에 따라 급속하게 변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표준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맞는 표준을 새롭게 창출해낼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윤리학」은 사회의 구성원을 개인으로 규정하고,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 일반을 의무와 권리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계약’의 전제 위에서 묘사되는 사회적 관계는 계약 참여 당사자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는 개인,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이러한 주체는 신분질서에 근거한 전근대적 도덕질서의 바깥에 존재하므로, 이들은 계약을 통해 발생한 의무와 권리의 질서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해조는 결혼을 계약으로 묘사하고, 결혼을 그것을 포함한 근대적 사회관계 일반에 대한 제유로 사용했다. 예컨대 『홍도화』에 나타난 심상호와 이태희의 결혼은 계약 당사자의 상호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계약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홍도화』에서의 결혼이 「윤리학」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같이 긍정적인 정념을 동반하고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계약으로 나타났던 것에 비하여, 『화의혈』에 나타난 선초와 이 시찰의 결혼은 이러한 이상을 결여하고 있어, 의무-권리의 공인을 요구하는 법적 관계로서의 계약의 본질적 성격을 노출한다. 그러나 이해조의 문제의식은 계약이라는 새로운 관계 형태에 놓인두 개인 사이에 적용될 수 있는 윤리의 형상화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해조는 이를 ‘신의’로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사회적 교제에 요구되는 사회도덕으로서 그 요체는 상황이 변화하더라도 사욕을 좇아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화의 혈』이나 『화세계』에 그려진 여성인물의 행동을 신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정과 선초의 서사를 통해 형상화된 것은 사욕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도덕으로서의 신의이며, 이는 주체를 ‘인간’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표준으로 제시된다. 이처럼 소설 창작에 투사된 이해조의 ‘윤리학적’ 문제의식을 고려할때, 1910년이라는 단절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적 연결점들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김태준과 연안행

장문석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3권 2호, 2016 pp. 319-360 ( 총 42 pages)
11,700
초록보기
이 글은 김태준의 「연안행」을 독해하고자 한다. 김태준은 1946년 당시 남조선노동당과 조선문학가동맹의 정치적 입장에 근거하여 1944년11월 자신이 연안(延安)으로 탈출한 여정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연안행은 주체의 이동일 뿐 아니라, 언어의 횡단이기도 하였다. 그는 국경을 넘으면서 동아시아 언어들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복잡한 언어 상황을 통과하였다. 또한 김태준은 연안행을 통해 지식인과 민중, 그리고 이성과 감성 등 문학의 근본적인 조건과 그 아포리아를 탐색할 수 있었다. 김태준이 연안행을 통해 발견한 다양한 사유와 실천의 계기를 재해석하는 것은 현재적인 과제이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