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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4권 1호 (2017)

이해조 소설과 『금고기관』의 관련 양상 - 「월하가인」을 중심으로

김종욱 ( Kim Jong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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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해조의 「월하가인」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신소설이다. 그동안 이 작품은 1905년에 있었던 한국인들의 멕시코 이민을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이해조가 멕시코 이민을 소재로 삼은 것은 사회적 관심사를 활용해 대중들의 관심을 끌려는 목적이었다. 이 작품이 연재되던 무렵에 ≪매일신보≫에서는 20세기 최초의 혁명으로 평가받는 멕시코 내전이 자주 기사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조가 이처럼 당대의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월하가인」에서는 주인공의 이민과 귀국 과정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갑오농민전쟁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식민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대한제국의 정치현실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식민권력과 타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월하가인」에서 흥미로운 것은 서사의 진행과정이 중국의 백화소설집인 『금고기관』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해조는 초기작에서 전체 서사의 골격을 『금고기관』에서 그대로 차용했지만, 1910년을 거치면서 역사적 사건들을 서사의 전면에 배치하여 『금고기관』의 영향력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당대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에 영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조의 서사전략은 ≪매일신보≫의 대중화 기획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식민질서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현미경(顯微鏡)과 조마경(照魔鏡) - 이해조 소설에서 과학과 유교의 관계

이학영 ( Lee Hak-young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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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에 발표된 이해조 소설 『구마검』, 『쌍옥적』, 『화세계』 등에는 주술적 세계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과학이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리를 밝혀줄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장되어 있다. 자연을 탈주술화하는 과학, `악령`을 추방하는 빛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인식은 그가 편집을 맡았던 『기호흥학회월보』의 여러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해조는 당시 학회지 등을 통해 수용되고 있었던 서구 자연과학에 관한 글들을 통해서 기계적 우주론이나 진화론적 세계관을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설에 드러난 진화론적 세계 인식이나 추리의 기법은 그러한 영향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이 자연과학자가 그 대상을 연구하듯이 목적인이나 형이상학을 철저히 배재한 채 인간사회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해조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받치고 있는 `천리`를 적극적으로 플롯의 동력으로 삼아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원리가 어떻게 세속에서 구현되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이해조 소설에는 성리학적인 `천(天)`의 개념에 기반을 둔 천인감응론적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도덕적인 판단을 하고 상벌을 내리는 인격신의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과학`과 `유교`의 세계관이 혼재하고 충돌하고 있는 이해조의 소설은 서구의 자연과학, 특히 기계론과 진화론에 대한 유교적 지식인의 대응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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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에서 일상적 세계의 묘사는 근대소설의 핵심적 자질로 논의되어 왔는데, 그것은 주로 계몽성과 관련하여 문명화된 공간이나 야만적인 공간 등 로컬리티를 정치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910년대 이후 신소설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소설의 주요 배경을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신소설이 공간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이 새롭게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진 이유는 당대에 일어났던 새로운 시각의 경험, 시각장의 변화, 풍경의 발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해조의 경우도 1910년대 이후 『소양정』, 『탄금대』, 『소학령』 등에서 소설의 핵심적 공간을 제목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들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적 원리로 공간이 제시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지닌 정치적 의미나 로컬리티의 재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주로 명승지나 절경이 소설의 주요 공간으로 제시되면서 미적인 풍경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 풍경을 통해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주목된다. 감정은 미적인 풍경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미학적/감성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변화를 통해 1910년대 이후 신소설의 변화를 새롭게 의미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 작용주체와 선사시대 한반도의 순화 과정

김민구 ( Kim Mink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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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에 대한 기존의 고고학적 논의는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으며, 인간을 주체로 식물을 객체로 보았다. 본 논문은 식물 역시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 함께 작용주체라는 점을 논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물 역시 번식이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쌀, 밀, 보리는 외래식물이며 선사시대에 한반도에 도래하였다. 이 식물들이 도래한 후에 선사 문화는 급격하게 변화하였는데, 대표적인 변화로 유적의 확장, 공동체 규모의 증대, 유적간 거리의 감소, 강화된 정주성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새롭게 도래한 외래식물의 번식이라는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다. 본 논문은 선사시대 농경 공동체의 형성이란 인문적 변화를 식물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보이고, 선사 농경에 관한 고고학적 논의에서 식물의 물질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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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점안식의 `금강계 만다라 37존 봉청`과 대흥사(大興寺) 「법신중위회삼십칠존(法身中圍會三十七尊)」을 통해 밀교 『금강정영청의』의 한국 내 수용 및 의미 대해 연구하였다. 현재 유물에 따르면, 금강계 만다라 오불과 관련된 도상 및 조형물은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때부터 한반도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예로는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863년) 외함의 바깥 4면에 조각된 사존불상과 강원도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의 3층 옥개석 아래에 돋을 새김된 금강계 만다라 오불 등이 있다. 조선시대 유물로는 상원사 문수보살좌상의 복장유물인 목각 판화 「금강계종자만다라도(金剛界種子曼?羅圖, 1466년)」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이 판화는 고려 말기에 제작된 판을 사용해 조선 초기에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계 37존을 소재로 한 불화로는 1845년에 초의선사 주도, 완성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의 「법신중위회삼십칠존」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들 유물 가운데 「법신중위회삼십칠존」만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사리함과 탑신에 새겨진 금강계 오불, 만다라도는 모두 사리 공양이나 개안·복장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이유로 조선시대 의례집에서 점안이나 복장 의식 때의 금강계 만다라 37존 봉청의례를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금강정 밀법은 조선시대에 들어선 이후 유가사상의 연구나 수행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점안식, 복장식에 관한 의궤에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점안식의 `금강계 만다라 37존 봉청`은 돈황유서 『유가불례(瑜伽佛禮)』나 『금강정영청의』가 금강정 유가밀법의 정례(頂禮) 수행에 관한 예참문으로 청불, 찬탄, 예불, 오회(五悔) 등의 절차를 기록한 것과 달리, 점안식 봉청의례 때 불상(또는 불화)의 가지(加持)를 증명할 뿐임을 고찰하였다. 사상적 구조로 볼 때 이는 금강계, 태장계(胎藏界), 소실지(蘇悉地)의 3대 밀법이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금강계의 대일여래(大日如來), 삼실지 삼신불과 화엄종의 비로자나불, 삼신불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삼국시대에 당나라 중기 밀교의 `금태불이(金胎不二)` 및 거기에서 파생된 3종 실지 사상이 한반도에 유입된 뒤신라 화엄종의 삼신불과 섞여 조선시대에 이르면 화엄사상이 짙게 깔린 한국 밀교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흥사 대광명전에 봉안된 「법신중위회삼십칠존」은 금강정 37존을 소재로 한 후불탱으로, 예배 기능도 있지만 인간세상을 위해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려달라는 기원의 용도로 주로 쓰였다. 그림 속 방제(榜題)로 쓰인 `금강정 만다라 삼십칠존`이라는 명칭이 돈황유서 『유가불례』의 명칭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당시 한반도에서 금강정 유가 37존을 경배하는 의식이 전파했으며 「법신중위회삼십칠존」 이전에도 이러한 의식과 관련된 불화가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입된 금강정 불정 사상과 신앙은 고려 때 호국사상이 더해지면서 왕실의 숭상을 받으며 유지되었지만, 조선시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점안식의 봉청의례 때 불사의 가지(加持)를 증명하거나 그것을 소재로 그린 불화를 사원 불전에 봉안해 세속의 재앙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18년 독감과 조선총독부 방역정책

김택중 ( Kim Taek-joo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1호, 2017 pp. 163-214 ( 총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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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는 1918년 독감 범유행은 단일 원인으로 발생한 20세기 최악의 인구학적 재난이었다. 이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1918년 봄에 발생하여 1919년 봄까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적게는 2,000만 명, 많게는 1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역학적으로는 해당 기간 동안 크게 세 차례의 만연이 있었다. 식민지조선에서 1918년 독감 유행이 처음 인지된 시기는 2차 만연 시기였던 1918년 9월경이었다. 독감은 남만주철도를 타고 한반도 북부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조선총독부가 공식 집계한 결과 독감 유행으로 식민지조선의 1918년도 추정 인구 17,057,032명 중7,556,693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이 가운데 140,527명이 사망하여 사망률은 0.82%였다. 그러나 실제 이환자와 사망자의 총수는 이보다 더 많았을 개연성이 높다. 1918년 당시 조선총독부 방역정책은 경무총감부를 중심으로 한 헌병경찰의 무단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독감의 원인이 규명되기 훨씬 이전이었던 탓에 독감은 법적인 규제 밖에 놓여 있었고 효과적인 방역 역시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경무총감부는 헌병경찰의 호구조사를 통해 이환자와 사망자를 집계하는 데 급급했을 뿐 독감 유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조선총독부의 독감 방역 실패로 일상적인 죽음을 목격하게 된 한국인들은 무단정치 10년의 절망감을 분노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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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설과 최명학은 해방 전후 임상의학(정형외과)과 기초의학(해부학) 분야에서 남북의 의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이하 세브란스의전)를 졸업했고, 3·1운동과 YMCA (기독교 청년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세브란스의전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1940년대에는 그들 모두 서울과 함흥에서 외과의원을 개원하여 평범한 개업의의 길을 걸었다. 해방 이후 그들은 공통적으로 남북한 의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8·15 해방으로 남북이 분할되면서 그들은 각자가 위치한 곳에서 일제로부터 치안과 행정 등을 이양받기 위해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이용설은 건국준비위원회 위원과 건국의사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미군정 초대 보건후생부장으로 취임하였다. 좌우익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가운데, 미군정의 보건책임자로서 이용설은 우익의 보건의료체제를 수립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이후 1948년 9월에는 세브란스의과 대학 학장에 취임하여 남한의 대표적인 의학 교육기관의 수장이 되었다. 최명학은 함경남도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이자 보건국장으로서 함경남도 보건위생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1945년 11월 함흥의 학전문학교 재건을 담당하게 된 이후에는 의학교육에만 전념하였다. 좌우대립의 심장부에서 보건행정을 책임졌던 이용설은 우익 보건행정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의 삶을 살았고, 최명학은 교육자로서 교육행정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교육행정가로서 두 사람의 활동은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진행되었다. 세브란스의과대학 학장으로서 이용설은 비교적 인적 자원이 풍부한 상황에서 교수 충원과 시설보완을 진행할 수 있었으며 국가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반면 함흥의과대학 학장으로서 최명학은 극심한 인재난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나마도 자신을 포함한 교수진들에 대한 관계 당국의 혹심한 사상통제와 검열을 지켜봐야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용설과 최명학은 의료국영화를 이상적인 의료체체로 간주하였으며 의료상업화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용설과 최명학의 의료국영화에 대한 지지는 최응석과 같은 좌익진영주류의 의료국영론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남북의 이념대립 속에서 각각의 체제가 요구하는 의학교육 체계의 상에 일정 부분 적응해 나갔다.

염상섭 소설에 나타난 피난지 부산과 아메리카니즘

나보령 ( Na Rhee Boryeo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1호, 2017 pp. 247-279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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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새울림」, 「지평선」 연작을 대상으로 1950년대 염상섭 소설에서 중요하게 부상하는 공간인 피난지 부산에 주목하였다. 이 소설들은 전쟁의 상흔을 덮고 신속하게 재건되는 새로운 일상과, 부산을 거점으로 전개되는 미국의 전시 재건 작업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이때 후자는 등장인물들의 일상과 같은 미시적인 차원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피난지 부산 전반을 아메리카니즘에 잠식된 공간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편, 이와 같은 후방에서의 미국의 활동이 전장에서의 무차별적인 파괴, 학살과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역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염상섭은 이를 오직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 세계무대를 향해서만 열려있고, 낙동강 너머는 완전히 차단된 피난지 부산의 독특한 공간성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낙동강 너머는 물론, 삼팔선 이북 지역은 현실에서도 서사에서도 소거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군정기의 서울이 배경인 『효풍』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1950년대 소설 속의 피난지 부산을 해방기부터 지속된 염상섭의 일련의 월경(월남)의 여정 가운데 위치한 공간이자, 해방 이후에서 전후를 연속하는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볼 수 있다.

역사 영화화의 한 사례, 「사도」(2015)

정병설 ( Jung Byungsul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1호, 2017 pp. 281-308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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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5년 9월 개봉된 영화 「사도」를 제작 배경과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사도」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인생 전체를 그린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정통사극`이다. 사도세자 사건은 『한중록』에 가장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서, 「사도」는 역사를 영화화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고전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문학의 영화화나 역사의 영화화에 대한 연구는 대개 텍스트 비교 연구였는데, 본고는 텍스트 표면의 비교를 넘어서서 원작과 영화의 관계를 역사 해석의 역사성 속에서 살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실제 제작 과정에서 역사적 자료가 어떻게 사용 또는 변용되었는지 밝히고자 했다. 「사도」와 같은 사극은 역사적 사실의 참신성과 시의성에 의해 제작될 수 있다. 사도세자 사건의 경우 역사 해석이 뒤바뀌면서 그에 따라 관련 영상물의 제작 방향이 결정되어 왔는데, 「사도」 역시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사도」는 역사 해석의 참신성과 아울러 그것이 강한 시의성을 지니게 됨으로써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도」가 보여준 역사의 채용과 변용은 감독의 역량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투자사-제작사-배급사-거대영화관체인으로 엮인 영화산업체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상업영화 특히 블록버스터영화의 해석은 감독과 영화산업체의 길항관계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음악적 표현성에 대한 확장된 형식의 시뮬레이션 이론

정혜윤 ( Chung Hye-yoon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1호, 2017 pp. 309-344 ( 총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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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필자는 코크레인의 `음악적 표현성의 시뮬레이션 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후 이것을 더욱 정교화하고 확장하여 좀 더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서 `음악적 표현성에 대한 확장된 형식의 시뮬레이션 이론`을 제안한다. 청자에게 즉각적으로 환기되는 원초적 느낌을 대상으로 하는 `낮은 수준`의 시뮬레이션에 전념하는 코크레인의 이론은 음악의 즉각적이고 국부적인 정서표현성이 인식되는 기제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해명하는 반면 인지적으로 고차원적인 정서에 대한 음악의 표현성이 인식되는 기제는 전혀 해명하지 못한다. 또한 코크레인의 이론은 청취 시 발생하는 음악과 청자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청자를 음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인 존재자로서만 간주한다. 필자는 `높은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도입할 때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며 코크레인의 이론에 높은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도입함으로써 코크레인의 이론을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필자가 제안하는 `음악적 표현성에 대한 확장된 형식의 시뮬레이션 이론`이 코크레인의 이론이 갖는 문제들뿐만 아니라 음악의 정서표현성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이 가지는 문제들 역시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그것들이 정당하게 주목하거나 명료한 설명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기제들에 대해 더 나은 해명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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