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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4권 2호 (2017)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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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중반 동아시아 주재 영국외교관이 모색한 대조선 문호개방정책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함대는 1854년 8월 말에 프랑스와 공동으로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 기지를 공격하였다. 그와 동시에 홍콩 총독 보어링은 외무부 장관 클레멘든에게 유럽 열강이 참여하는 대조선 문호개방 정책을 외무부에 제안하였다. 1865년 주청 영국공사 웨이드도 러시아가 조선과 육로 통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럽 열강과 공동으로 조선의 개방을 구상하였다. 영국외교관들이 조선의 문호개방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러시아의 독점적인 조선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상업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유럽 열강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선의 문호개방을 구상함으로써, 조선을 열강의 이익이 균점되는 협력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조선은 청의 속방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영국은 조선정부의 통치권 행사 여부를 확인했어야 했다. 영국외교관들은 청으로부터 조선이 속방이긴 하지만 내정과 외치를 자주적으로 맡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영국은 조선을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고려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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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에서 수용된 “근대화론”은 크게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나뉘어볼 수 있다. “근대화론”은 각 사회가 처한 현실과 별개로 근대사회로의 도약이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추구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 이론은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따라서 이 글은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근대화론”과 한국사 인식과 의 관계를 다룬다. “근대화론”은 한국에서는 고려대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와 동국대 개교 60주년 학술회의를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특히 고려대 회의는 서구사회에서 “근대화론”을 주장하던 학자들도 대거 참석했는데, 그들은 한국 측 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합의와 차이점을 드러내었다. 이 회의 이후에 한국에서는 한국사시대 구분론의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을 인정하는 위에서,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계기를 한국사의 특정 시점에서 찾고자 한 점에서 “근대화론”의 한국적 맥락화라고 할 수 있다. “근대화론”의 수용 과 한국사 인식과의 관련성을 통해서 근대한국사의 특징이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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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유가 사상사의 성정 관념의 변화를 조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맹자의 `내약기정`은 그가 본래 인간 본성과 감정을 일원적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맹자 후학들이 그 문장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첫째는, 조기, 손석, 장구성과 같이 맹자의 본의에 충실하여, 본성과 감정을 합간적으로 살피는 방식이다. 둘째는 주희와 같이 본성과 감정을 분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주희의 이러한 관점은 맹자의 본의와는 상충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유가의 성정 관념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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