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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4권 4호 (20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혁명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장편소설들을 중심으로

박종소 ( Пак Чжонсо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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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작품은 그 주인공들이 실제 당대의 정치적, 혁명적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인물들로 그려질 뿐만 아니라, 선악의 궁극적인 문제들과 세계의 부조리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거쳐, 니힐리즘과 무신론적 사회주의의 가공할만한 문제점들을 철저하게 전면화하고 있다. 성기게는 1840년대부터, 촘촘하게는 1860년대-1880년대로 집중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위대한 소설들(『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1871-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속의 배경은 20세기 초에 발생한 세 차례의 러시아 혁명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배아가 성장하는 시공간이다. 우리가 베르댜예프(Н.Бердяев)의 러시아 사회주의 이념의 발전 3단계 설을 받아들인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경험한 사회주의는 전 2단계, 즉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인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후기 장편소설에서 보이는 작가는 혁명적 인텔리겐치아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러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에 대한 거부는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혁명적 운동이 실현하려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무신론에 입각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의 자유의 부정을 가져올 것으로 예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보기에 인텔리겐치아가 주장하는 사회주의 혁명은 빵과 물질적인 행복을 위해 정신의 자유를 소수의 무리에게 양도하는 사회를 가져올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초인 같은 존재가 지배하는 전제정의 사회로 발전할 것이었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4대 장편소설 속의 니힐리스트, 사회주의자, 혁명가들을 모습을 분석하면서, 작가의 예술적, 정신적, 영적 예표의 인물들과 사회 속에서 떠오르는 러시아(혹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고발과 경계를 주목한다.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에 나타난 불의 상징

차지원 ( Cha Jhee-won )
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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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에 바쳐진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쓰여진 당시부터 작품의 의미 및 블로크의 혁명관과 관련하여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은 대부분 이 작품이 가진 의미의 진동 혹은 가치적 양가성에서 기인하였다. 불의 상징은 「열둘」에 형상화된 혁명에 대한 블로크의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관념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블로크는 다른 글에서 혁명을 형상화하기 위해 눈보라 등과 같은 강력한,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스치히야)의 형상을 빌어오고 있지만 「열둘」에서 혁명은 눈보라와 더불어 또 하나의 스치히야의 형상을 내어놓는다. 그것은 타오르는 붉은 불의 형상이다. 눈보라의 메타포가 개인이 거역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거친 스치히야로서의 혁명의 관념을 형상화했다면, 혁명의 관념은 불의 상징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것이 된다. 혁명은 양가적이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파괴이자 건설이며 옛 것을 무너뜨려 새로운 것을 오게 만드는 역설적인 삶의 역동이었다. 이러한 혁명은 죽음이자 재생, 소멸이자 변용인 불의 상징을 통해 형상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불의 상징은 삶과 죽음, 소멸과 재생의 양가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끌고 온다. 자신을 죽음에 바쳐 세상을 새로이 재생시킨 그리스도의 형상은 불의 상징을 아우르며 혁명의 현실과 맞닥뜨린 시인, 나아가 지식인의 행위에 대한 상징이 된다. 시 「열둘」은 불의 상징을 통해 이해된 혁명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블로크는 파괴와 죽음으로부터 생성과 메타모르포시스로 전화하는 양가적인 불의 상징을 통해 10월 혁명을 이해하고 수용했다. “전 세계적 큰 불”은 10월 혁명에 대한 최종적인, 완전한 상징이 된다. 모든 현상 중에서, 불이야말로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 부여를 분명하게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 중에서

혁명, 혹은 배반의 유토피아 ―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에 나타난 정치적 무의식

최진석 ( Choi Jin Seok )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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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다노프의 소설 『붉은 별』은 흔히 사회주의 유토피아 문학의 대표작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화성은 미래 사회주의의 이상향을 상징하고, 주인공의 여행은 발달된 미래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돌아오는 모험의 여정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서사적 구조는 낙관주의로 가득한 유토피아 문학의 일반 형식과는 사뭇 다른데, 주인공은 미래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실패하고, 정신착란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낯선 발상의 원인을 작품의 창작배경과 결부시켜 이해해야 한다. 즉, 『붉은 별』은 레닌의 혁명론에 대한 안티테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볼셰비키식 혁명은 결국 파국에 도달할 것이란 보그다노프의 항의를 담는다는 점에서 은폐된 논쟁에 가깝다. 하지만 보그다노프의 사적 복수전 이상으로 우리는 이 작품을 독해해야 한다. 즉 여기서 미래의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으로 제시됨으로써 혁명가 보그다노프의 욕망마저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무의식의 역설적 양상들을 살펴보면서, 궁극적으로 이 소설이 어떻게 유토피아적 미래를 다시 불러내는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베르댜예프와 러시아 혁명

김민아 ( Kim Minn-ah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143-167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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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N. A. 베르댜예프가 활동한 러시아의 20세기 초는 예술, 문화, 사상이 꽃 핀 ‘은세기’이자 동시에 사회, 정치적으로 가장 역동적이면서 혼란스러웠던 ‘혁명의 시기’였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마르크스주의와 유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전향한 베르댜예프에게 1905년의 혁명과 1917년의 볼세비키 혁명은 러시아의 운명, 러시아의 이념과 함께 그의 사유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베르댜예프는 자신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인격, 자유, 정신을 가지고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다. 인격과 자유에 대한 테마는 전 생애동안 내가 몰두한 테마로 남게 되었다.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의 옹호

오종환 ( Oh Chong-hwan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177-216 ( 총 40 pages)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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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예술작품은 일상적 대화에서의 발화에 유비될 수 있다는 캐럴의 입장을 받아들여, 대화에서 우리가 상대방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에 관심이 있듯이 예술작품의 해석에서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대화적 관심이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온건한 의도주의는 발화의 경우 문법적 제약 및 발화의 맥락, 배경 지식 등 발화의 의미를 제한하는 공적인 측면만으로는 하나의 의미가 결정되지 않기에, 그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의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온건한 의도주의는 발화 의미의 결정에 공적인 제약의 적용된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공적인 규약을 무시한 채 발화 의도만으로 발화 의미가 결정된다는 과격한 의도주의에 대한 반의도주의의 비판이 온건한 의도주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온건한 의도주의는 모든 예술작품의 해석에서 언어적 제약과 맥락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이것으로 의미가 확정되지 않을 때만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는 입장이다. 이는 우리의 비평의 관행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며, 많은 비평가들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논쟁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은, 의미를 규정하는 공적인 요소들만으로도 작품의 의미가 하나로 확정될 수 있다는 반의도주의자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필자는 발화의 공적 제약만으로도 하나의 발화 의미가 결정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온건한 의도주의를 비판하는 이해완의 주장이 순환논증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이상적인 독자가 최선을 다해 구성하여 작가에게 투사한 작가의 의도가 작가가 실제로 가졌던 의도에 우선한다는 가설적 의도주의의 주장은 예술작품이 자기충족적인 개체이며 해석의 목표는 예술작품의 미적/예술적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의도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상치되기에 부정된다. 따라서 문학작품의 해석을 대화와 유비적 관계로 보는 직관 즉 작가가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감상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는 직관을 바탕으로 하여 예술작품의 해석을 설명하는 것은 해석의 이론에 있어서 가장 설득력 있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 입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실제의 상황을 가장 설득력 있게 분석하기 때문이다.

의도주의-비의도주의 논쟁에 대한 하나의 답변 ― 보완된 가설의도주의

윤주한 ( Yoon Juhan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217-252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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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의도가 예술작품의 해석에 얼마나,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분석 미학의 오랜 퍼즐들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한 철학적 답변들을 포괄적으로 의도주의와 비의도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의도주의자들은 예술작품의 해석이 원칙적으로 의도의 발견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의도주의자들은 예술작품의 해석이 작가가 실제로 무엇을 의도했는지가 아니라, 그 작품에 공적으로 실현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의도주의-비의 도주의 논쟁은 초기에 양자를 보다 강하게 배격하는 입장으로 구성되었으나, 최근에는 서로의 동기가 되는 직관과 해석적 관행들을 정합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보완된 입장들이 제안되고 있다. 가설의도주의와 온건한 의도주의는 각각 비의도주의와 의도주의의 해석적 이상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적 입장이 범했던 오류들을 해소하고 상대 이론의 동기가 되는 직관과 관행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구성된 입장들이다. 본고는 이 두 입장 중 가설의도주의가 예술작품의 의미와 해석의 본성에 대하여 (하나의) 설득력 있는 해명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먼저 가설의도주의의 위상을 명확히 밝힐 수 있도록 의도주의-비의도주의 논쟁의 구도를 정리하고, 레빈슨에 의해 제안된 가설의도주의 해석 모델을 가치최대화 이론과의 연관 내에서 보완하여, 예술작품의 의미와 해석의 본성을 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발전된 해석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의도주의와 반의도주의 논쟁의 재구성 ― 의도 개념을 중심으로

신현주 ( Shin Hyun Joo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253-285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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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의미 해석 문제와 관련하여 분석미학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의도주의와 반의도주의 논쟁’이다. 양측은 ‘예술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와 동일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립적인 입장을 보이는데, 의도주의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와 동일하며, 작품을 해석할 때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고려해야 한다. 반면 반의도주의에 따르면 작품의 의미는 언어의 공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작가의 의도는 작품의 의미 결정에 무관하다. 이 논쟁은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되어 왔고, 특히 각자의 주장이 한정된 전제 하에서만 타당해지는 경우에도 상대에게 그 전제를 설득하지 않고 논의를 강행하면서 해결이 나지 않을 듯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각 진영에서 전제되고 있는 ‘의도’ 개념을 드러내고, 그것이 좋은 해석 이론의 구성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의도주의와 반의도주의 논쟁을 그 안에서 전제되고 있는 상이한 의도 개념들을 밝히면서 재구성한다. 반의도주의가 의도주의에 던지는 두 공격을 의도의 ‘인식론적 문제’와 ‘무관련성 문제’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필자는 전자가 데카르트적 심성 개념을 전제하고 있음을 밝히고, 의도주의가 대안적 의도 개념을 이용한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고찰한다. 후자에 대해 필자는 반의도주의가 실재론적 의도 개념을 전제함을 밝히고, 의도주의가 반실재론을 도입하면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을지 고찰한다. 이후 인식론적 문제에 관해서는 의도주의가 우세하나 무관련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직 어느 쪽도 우세가 아니라고 평가하고, 이 논쟁의 해결을 위해 주목해야 할 격전지가 어느 곳인지 진단한다.

한국시에 나타난 샤머니즘의 재인식을 위한 시론 ― 강은교 시를 중심으로

안지영 ( Ahn Ji-you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289-323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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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샤머니즘을 타파해야 할 대표적 전통의 자리에 위치시키고 이를 수동성이나 패배주의와 등치시켜왔던 연구의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근대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을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비판하는 접근법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한편, 최근의 논의를 참고하여 강은교의 시에 나타난 샤머니즘의 신화적 사고를 분석하였다. 우선 강은교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그녀의 시에 나타난 죽음의식을 통해 타자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불가능한 타자의 상태에 도달하여 ‘자신 아닌 자기’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강은교의 시에 나타난 죽음체험을 바타유의 ‘내적 체험’과 관련지을 수 있다. 강은교의 초기시에는 일상적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들을 ‘보는’ 문제에 대한 천착이 나타나며 이를 통해 허무, 무, 죽음, 부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강은교의 시에 나타난 접신의 과정이 정신의 변신에 한정되지 않고 신체의 변용으로 나타나는 것은 주체와 세계를 연루된 것으로 보는 특유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관련된다. 중기시에는 비리데기 서사무가에서 차용한 비리데기 모티프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에 주목한다. 강은교는 삶과 죽음을 이항 대립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녀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내속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초기시의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삶 안에서 생명력을 고취시키는 죽음의 역동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한다. 비리데기가 죽음의 세계 생명수를 얻기 위해 고통과 수난의 여정을 거친다는 서사무가의 모티프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으로 비대칭의 상황을 해소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샤먼적 존재와 관련된다. 강은교는 이를 랭보가 말한 ‘투시자로서의 시인’과 관련지어 샤머니즘을 시적 공간의 출현과 연관 짓는다. 마지막으로 강은교의 후기시에 대한 검토를 통해 강은교가 생태시가 유행처럼 창작되어온 현실을 비판하며 기존 생태시와 차별화된 방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강은교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무화시킴으로써 분열증적인 주체성을 출현시킨다. 강은교의 시에는 인간적 개체성에서 벗어나 탈개인적이고 비인격적인 발화행위자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강은교의 시가 자아와 우주의 교감과 같은 신비주의적 차원에 머무르기보다, 인간과 자연 간의 역동적 관계에 주목하여 사물과의 이질적인 연결망을 생성하는 데로 나아갔음을 살펴보았다.

‘유비쿼터스-시공간성’의 측면에서 살핀 김영하 소설의 특질

김은경 ( Kim Eunkyung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4권 4호, 2017 pp. 325-359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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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어디로나’ 인간의 존재지평을 열어주는 이른바 ‘유비쿼터스-시공간성’이 소설에 미친 영향을 김영하의 소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전대소설과의 비교논의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감정의 문제와 시공간성 간의 관련성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는 감정경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2장에서는 김영하의 소설이 IT (정보기술) 뿐만 아니라, 교통, 방송의 발달에 힘입은 시공간성의 재편 양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현실-유리적 방향으로 확장되거나 현실-관여적 방향으로 압축되는 인물의 존재지평을 여실하게 재현하고 있음을 논의하였다. 존재지평이 현실-유리적 방향으로 확장되는 경우를 통해서는, ‘초월’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대소설과의 관련성을 짚어 보았다. 김영하의 소설이 이와 관련하여 전대소설의 전통과 단절됨과 아울러 전대소설을 계승하는 두 측면 모두를 보여주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존재지평이 현실-관여적 방향으로 압축되는 경우를 통해서는, 재편된 시공간성 하에서 소설의 ‘우연성’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됨을 논의하였다. 3장에서는 정보기술 등의 발달에 따른 ‘접속’의 문제를 남녀관계와 관련지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어디로나’열려있는 ‘접속의 접근성’이 남녀관계에 있어서의 ‘즉물적 섹스’와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아울러, 감정이 이미 개제된 남녀관계일 경우 이러한 ‘접속의 접근성’이 감정점화의 속도를 높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한편 온·오프라인상으로 상존하는 접속의 가능성이 ‘감정의 맥놀이현상’을 가능케 함을 논하였다. 감정의 맥놀이현상이란 서로 다른 파장의 감정선을 지닌 남녀의 관계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양상을 의미하는바, 상존하는 접속의 가능성이 이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글은 정보기술 등의 발달에 힘입어 유비쿼터스하게 재편된 시공간성이 ‘오늘날의 소설’에 미친 영향을 전대소설과의 관련선상에서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아울러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감정경제’에 대한 논의를 덧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다.
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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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두만강」(1970)은 소설가 자신의 유년시절 경험을 토대로, 1943-1944년 아시아태평양전쟁 아래 H읍의 풍속을 재현하였다. 하지만 그 재현은 투명하거나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으며, 유년시절 기억과 민족의 공적 기억의 충돌과 그로 인한 억압 아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 결과 「두만강」의 서술자는 식민지에 대한 두 가지 이질적인 목소리를 가졌으며, 「프롤로그」를 통해 그 두 목소리를 봉합하였다. 「두만강」의 서술자는 억압과 수탈이라는 식민지에 대한 전형적인 재현으로부터 벗어나서, ‘식민’을 ‘이주’로서 이해하고 피식민자 조선인과 식민자 일본인이 갈등 속에서 공존하는 ‘지역’으로서 H읍을 형상화하였다. 또한 서술자는 구체적인 생활 공간으로서 지역을 공유하는 피식민자와 식민자의 관계를 ‘동물적 친근감’이라고 명명하였다. 최인훈의 유년기 식민지 경험에 근거한 (피)식민자 2세의 형상은 ‘동물적 친근감’을 지역에 근거한 친밀성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나아가 「두만강」이 재현한 ‘지역’은 ‘민중’의 주체성, 사회적 질서를 구성하는 역사의 중층성, 그리고 환경이라는 조건을 발견하는 토대가 된다. 「두만강」은 H읍이라는 특정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포착하였는데, 이러한 관심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0-1972)과 『태풍』(1973)을 통해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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