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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30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6권 1호 (2019)

홉스, 여성, 계약 ― 사회계약론에 여성이 있는가?

민은경 ( Min Eun Kyung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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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에 대해 지난 반세기에 걸쳐 진행되어 온 여성주의 비평을 참조하면서 여성과 젠더를 중심으로 홉스의 저작을 꼼꼼하게 다시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홉스의 정치사상에는 페미니즘이 활용할 만한 요소가 꽤 많다. 홉스는 자연상태(state of nature)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고 보았고 가부장적 가족을 전제하지 않았다. 자연상태에서 아이에 대한 지배권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가족 관계를 기본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 남성과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한 여성이 왜 국가상태에서는 그렇지 못할까? 홉스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고 있는가? 이 논문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여성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홉스의 정치사상이 안고 있는 한계와 약점을 진단한다.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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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수산나 산트리버의 희극 『참견쟁이』(1709)와 엘라이자 헤이우드의 연애 소설 「고뇌하는 고아, 혹은 정신 병원에서의 사랑」(1726)에 나타난 결혼, 언어, 광기의 관계를 통해 18세기 영국에서 여성의 재산권과 자기소유권의 문제가 어떻게 사유되는지 살핀다. 산트리버와 헤이우드의 여자 주인공들은 법적 후견인이 지정한 남성과 결혼한다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남편감을 선택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 전략 때문에 그들은 ‘미친’ 여자로 취급되는데, 이는 당대 사회가 규정한 젠더와 사회 학습에서 벗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소유하다’는 동사를 여성의 결혼 상태를 지칭하거나 혹은 비이성에 사로잡혀 미쳤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결혼과 광기는 교통 가능한 것이며, 결혼한 여성과 미친 사람 모두 재산권을 소유할 수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당시 여성은 결혼 후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었고, 아내의 모든 소유는 곧 남성의 것이었다. 로크는 인간이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내면의 재산, 즉 스스로를 다스리고 통제할 자주권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맥락에서, 아버지의 재산권을 주장하는 동시에 자기 몸과 욕망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여주인공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근대 영국 사회 계약이 유효한 것인지 묻는다. 특히 이 두 작품은 구어로 맺은 약속 대신 문서화된 증표를 통해 결혼을 적법화시킨 1753년 결혼법의 모순을 드러내고, 남성들이 공표한 언어와 법적 권위가 여성의 광기를 통해 희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산트리버와 헤이우드의 ‘미친’ 여자들은 언어의 운용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 적법과 비적법의 경계를 변주하고 여성 재산권과 자주권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17~18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인형집 ― 젠더, 가정, 소설

정희원 ( Chung Heewon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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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르네상스 시대의 스투디올로와 ‘호기심의 방’에서 출발해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네덜란드와 영국의 인형집을 차례로 분석하면서 16~18세기 수집실과 인형집, 실내 공간의 역사에서 지식과 권력이 교차하고 젠더와 가정성이 수행되는 지점을 고찰함으로써 인형집이라는 오브제의 의미를 맥락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18세기에 발흥하기 시작하는 소설 장르가 인형집이 재현하는 시각문화와 갖는 친연성에 대해 논한다. 글의 전반부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인형집이 갖는 전시적 성격에 주목하여 전시용 인형집이 이전의 수집실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지 고찰해 보고, 당대의 엠블럼집 등에서 나타나는 가정성의 문제와 연계해서 분석해 본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18세기 영국식 인형집을 대상으로 인형집이 갖는 시각적 메커니즘과 소설 장르가 갖는 관계, 인형집이 재현하는 가정성의 성격에 대해 논한다.

시경 의복 수여 모티프와 주 왕실의 빈례

이욱진 ( Lee Ukjin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6권 1호, 2019 pp. 113-14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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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에서 의복을 주고받는 내용이 담긴 시에는 의복 받는 사람의 도착, 의복의 목록 나열, 의복 받는 사람에 대한 환대와 애정 표현이라는 모티프가 있다. 이 각각의 모티프는 모두 주 왕실의 빈례(賓禮)를 구성하는 절차에 부합한다. 소아(小雅) 「채숙」(采菽)과 대아(大雅) 「한혁」(韓奕)에는 이 절차의 전모와 왕의 선물인 예복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편 기존에 남녀의 사랑이나 특정 역사 인물에 대한 칭송으로 알려진 국풍의 몇몇 작품에서도 빈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선물로 주어지는 의복은 모두 예복으로 해석된다. 공식 의례의 절차나 왕의 훈시만 기록된 문헌과 달리, 『시경』의 의복 수여 모티프 관련 작품에는 자연 경물의 은유와 손님에 대한 우애의 감정까지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질서를 강조하는 예(禮)와 이를 화합으로 보완하는 악(樂)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 유배객 충암(沖菴)의 교유와 감춰진 이름들

김덕수 ( Kim Deok-su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6권 1호, 2019 pp. 145-182 ( 총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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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沖菴) 김정(金淨)이 제주 적소에서 지은 시편이 「海島錄」에 실려 있다. 작품이 영성할 뿐만 아니라 당시 정황을 추론할 만한 단서가 부족한 탓에 시편 제작의 배경과 유배기 교유의 실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충암의 제주 시편은 처음부터 「해도록」이란 시록(詩錄)에 별도로 묶였다. 초기 형태의 「해도록」이 초간본 간행 직전까지 존재했다는 점, 『충암집』 간행을 두 차례 거치며 편차자 견해에 따라 주석이 가감 되거나 작품의 소종래가 자의적으로 판단되었다는 점, 충암의 초고 한 시 가운데 애초에 제목이 달리지 않은 작품이 다수 있었다는 점, 충암의 저술로 여겨지는 『濟州日記』가 <沖庵先生年譜> 찬술 시점까지 실재 했다는 점 등은 주목을 요한다. 훈구파의 서슬 퍼런 감시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제(思齊) 안처순(安處順)은 물심양면으로 기묘사림을 도왔다. 안처순과 기묘제현이 수수한 서간을 통해 당시 삼엄했던 정국과 기묘제현의 위축된 입지, 간찰을 매개로 시국에 관한 정보까지 전달해 준 사실 등을 엿볼 수 있다. 충암이 적소에서 지은 시편 가운데 대상 인물이 감춰지거나 왜곡된 경우가 자주 보이는 것은 자칫 훈구파의 감시망에 포착된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 자체가 초토화될 수 있으므로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다. 안처순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절해고도의 유형지까지 직접 찾아가 죽음을 목전에 둔 벗을 위로했고, 내륙의 벗이 인편을 통해 술이나 시문을 보내며 서로 소통했으며, 충암을 익히 알아왔던 제주목사 이윤번(李允蕃)이 위리안치 공간을 방문하여 개인적 만남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 그들의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일부 제주 토착민과 제주목사 이운(李耘)의 실명이 문면에 노출되는 것은 교제의 성격과 시편의 내용이 사당(私黨) 수립이나 역모 동조의 혐의와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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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의 교유시(交遊詩)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지식인들과의 교유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에 첫 번째 특징으로는 송시(送詩)·증시(贈詩)에서 확인되는 진실한 교유 양상을 들 수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로 한 내용이 내재되어 있기에 곤륜이 친밀한 교유 관계를 바탕으로 작시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모임을 통한 시우(詩友)와의 시적 소통 양상을 확인하였다. 곤륜은 시적 교유가 가능한 지식인들과 수창하며 연구시(聯句詩)를 창작했는데, 교유 인물이 소론계 지식인이라는 공통적 특징을 지님을 밝혔다. 더 나아가 작시 시점이 만년에 집중되어 있음을 포착하고 담박한 교유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로는 동일 공간 유람에서 비롯된 흥취의 공유 양상을 고찰하였다. 교유 지식인과 유람을 기약하고 이행하는 적극적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동행하며 산수 지취를 공유한 사실을 파악하였다.

임종과 남녀유별 ― 여성생활사자료집과 『자기록』을 중심으로

이경하 ( Lee Kyungha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6권 1호, 2019 pp. 213-235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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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문, 묘지명, 행장 등 남성의 기록과 「자기록」 같은 여성의 기록 등 죽음을 계기로 지은 글에서 임종 시의 남녀유별을 비롯한 형상화를 고찰하고 그 근거가 되는 ‘고서’를 찾아보려 하였다. 그 근거는 ‘예기’ ‘상대기’편의 “남자불사어부인지수, 부인불사어남자지수”(男子不死於婦人之手, 婦人不死於男子之手) 문장이었다. 임종 시의 남녀유별은 경전의 근거는 분명하나, 제문 등을 미루어 보건대 현실에서 지켜지기도 하고 안 지켜지기도 한 듯하다. 임종 시의 남녀유별에 관한 한, 17세기에는 해당 기사가 전혀 없고, 18세기에는 많고, 19세기에는 오히려 적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임종 때도 남녀유별이 예의 이름으로 존재했고 그것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본고에서 밝혔다.

20세기 초 한국 문학의 장에 나타난 ‘문호 백년제’ 기획에 대한 고찰

김미지 ( Kim Miji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인문논총  76권 1호, 2019 pp. 237-27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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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년을 단위로 하여 어떤 인물이나 특정한 사건을 기념하는 일 즉 ‘백주년 기념’이라는 형식은 한국에서는 100여 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은 미디어와 글쓰기 형식 그리고 문학의 근대적 전환 또는 재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등장한 외래의 정보들 가운데서 백주년을 기념하는 ‘백년제’라는 형식에 주목하였다. 백주년 기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건과 사물 그리고 인물 등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위인이나 문인 등 인물의 생후 또는 사후 백년을 기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글에서는 근대 인물 가운데 특히 서양의 작가들을 백년제라는 형식으로 소환해 온 양상을 검토하여 백년제가 이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용, 변용되고 또 응용되면서 우리의 근대문화로 정착되어갔는가를 추적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20세기 초의 시점에서 한 세기 전이라는 것은 19세기 초가 될 것인데, 동아시아에서 이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는 서양의 근대 특히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 산업혁명 이후에 형성된 서양의 근대를 학습하는 핵심적인 통로이자 원천이었다. 또한 백년제라는 기념의 방식은 1930년대 중반 우리 전통 인물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호출하는 데에도 적용되어 ‘다산 백년제’와 같은 형태로도 나타났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각종 ‘백년제’는 서양식의 근대라는 것을 학습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과 근대 사이의 관계 설정, 전통 인물의 근대적 재해석 등의 질문을 제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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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김사량을 비롯한 식민지 작가의 작품을 다수 게재한 매체로 알려진 문예 동인잡지 『문예수도』에 주목하여, 잡지를 통해서 형성된 식민지 작가들의 네트워크를 살펴보았다. 특히 『문예수도』의 말미에 실린 각 지역 동인 및 독자 모임의 기록과 동인들 사이에 주고 받은 편지 등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아 식민지 작가들이 당시 일본의 독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으며, 『문예수도』를 통해서 식민지 작가들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려고 했다. 야스타카 도쿠조(保高德藏)가 주재한 문예 동인지 『문예수도』는 일본문단에서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것을 사명으로 창간되었다. 이러한 잡지의 성격과 18살에서 21살까지 조선에서 살았던 야스타카의 식민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장혁주의 관여 등이 교차하면서, 『문예수도』는 식민지 출신의 작가들을 동인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의 작품 발표와 교류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예수도』는 제국 일본에서 간행된 잡지로서, 일본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타이완 작가들의 작품 또한 수록한 ‘제국’의 미디어였다. 하지만 『문예수도』라는 ‘제국’의 미디어를 통해서 식민지 출신의 작가들은 제국 일본의 작가 및 독자와 그리고 다른 식민지의 작가 및 독자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문예수도』에는 조선인 작가 김사량, 장혁주, 김달수(필명 김광순(金光淳)), 타이완인 작가 룽잉쭝(龍瑛宗)이 동인으로 참가했다. 『문예수도』 동인과 독자들이 창작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던 ‘독자회’ 기록을 살펴보면 식민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당대 제국 일본 독자들의 평가와 기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예수도』가 식민지 작가에 대한 제국의 독자의 일방적인 평가의 기능만을 수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예수도』는 식민지 작가들이 서로 조우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식민지 작가들은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일본 독자의 기대와 어긋나는 문학적 실천을 수행하였다. 그 사례를 룽잉쭝과 김사량, 그리고 김달수의 경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살펴보면 식민지 출신 작가들은 서로의 작품에 관해서 토론 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내지인을 염두에 둔 작품”인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공유하였다. 그들은 식민지 작가로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하면서 서로의 고민에 공감하였다. 그들의 관심과 토론은 새로운 경향의 작품 창작이라는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문예수도』를 통해서 가능했던 식민지 출신 작가들의 교류는 그들의 문학적 실천이 비록 ‘제국’의 미디어 내부에서 수행된 것이지만, ‘국민문학’의 성격으로 포섭될 수 없었던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지금까지 김사량의 1941년 무렵 발표한 작품을 두고 ‘민족주의’로부터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밝혔듯, 당시 김사량은 『문예수도』라는 ‘제국’의 미디어 내부에서 일본인 문학자와 독자의 비평을 청취하고, 타이완과 조선의 식민지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따라서 「빛 속으로」 이후의 김사량의 문학적 실천을 단지 ‘후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문예수도』를 통해 만들어진 식민지 작가의 네트워크를 염두에 둘 때, 1945년 이전 김사량 작품의 변모양상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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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이 촉발시킨 중일전쟁은 식민지의 정치사회적 영역뿐만 아니라 문학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와 타이완의 식민지 문단은 문학보국을 내세운 문단통제정책에 따라 시국문학/국책문학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일본제국의 식민지 문단이라는 유사한 정치사회학적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와 타이완에서는 식민정부의 요구에 대해 상당부분 겹치는 반응이 발견된다. 하지만 1940년대 타이완 문단에서는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학 논쟁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바로 1943년 구도 요시미(工藤好美)의 평론이 불러일으킨 내지인 작가와 본도인 작가 사이의 ‘똥’ 리얼리즘(糞現實主義) 문학 논쟁이다. 당시 타이완의 대표적인 내지(內地) 출신 작가 니시카와 미쓰루(西滿川)·하마다 하야오(濱田隼雄) 등은 본도 출신 작가들이 집필한 문학작품이 현실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낭만주의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장원환(張文環)·뤼허뤄(呂赫若)·양쿠이(楊逵) 등은 내지인 작가들이 질색하며 외면하는 현실의 부정적인 면 역시 타이완 현실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본도 출신인 자신들은 이를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두 작품 장원환(張文環)의 「밤 원숭이」(夜猿)와 뤼허뤄(呂赫若)의 「석류」(柘榴)에는 내지 출신 작가들이 인식한 ‘타이완의’ 현실과는 다른 타이완의 현실이 재현되어 있다. 「밤 원숭이」는 여섯 살짜리 어린 화자의 시선을 빌려 산속 농가와 죽지 제조 공장의 정경을 전원적인 색채로 그려낸다. 그러나 독자가 어린 아이 화자가 갖는 시선의 한계를 걷어내고 산속 농가와 죽지 제조 공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읽어낼 때 ‘식민지’ 타이완인의 삶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편 「석류」는 뤼허뤄가 ‘똥’ 리얼리즘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시기에 내지 출신 작가들을 겨냥한 듯이 발표한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인과를 설명할 도리가 없는 진셩(金生) 삼형제의 불운과 형제애가 전부이다. 당시 담론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전쟁총동원’과 ‘황민’, ‘전시체제’ 등은 ‘국가’를 주체로 하여 성립될 수 있는 개념들이었다. 즉, 뤼허뤄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 사상과 행동을 지도하는 구도에서 의도적으로 ‘가족서사’를 꺼내든 것이다. 이처럼 장원환·뤼허뤄 등의 본도인 작가들은 니시카와 미쓰루·하마다 하야오로 대표되는 내지인 작가들이 인정하는 ‘작금의’ 현실 ― 대동아전쟁, 전시체제, 지원병 등 ― 과는 거리가 있는, 대다수 타이완인의 삶과 밀착된 현실/식민지로서의 타이완의 현실을 작품 속에 위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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