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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과 문화검색

Jonrnal of Social Thoughts and Culture


  • - 주제 : 사회과학분야 > 기타(사회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12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0권 0호 (2009)

한국인에게 정치는 무엇을 뜻하는가

최봉영 ( Choi Bong-young )
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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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의 역사는 매우 길다. 한국인은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생각을 가꾸어 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이미 ‘홍익인간-사람을 크게 이롭게 함’을 정치이념으로 내걸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서 우리는 한국인이 일찍부터 정치의 목적을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도록 도우는 일에 두었음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이래로 한국인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바깥에서 빌려 오는 일이 많았다. 예컨대 조선왕조는 중국의 성리학에서, 대한민국은 서구의 근대학문에서 정치에 대한 생각을 빌려 왔다. 한국인은 빌려 온 생각을 본디의 생각에 담아서 한국적인 정치문화를 펼쳐왔다. 본 연구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생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 정치, 정체, 통치, 다스림, 국가, 국민, 정당, 사람, 사람다움, 그위, 고루, 두루 등을 묻고 따졌다. 한국인은 일찍부터 정치를 바르게 다스리는 일로 여겨 왔다. 한국인은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 벼슬아치는 그위의 자리에 올라서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고루고루, 그리고 두루두루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잘 살아갈 수 있다. 한국인은 이러한 바람을 바탕에 깔고서 정치를 펼쳐 왔다.

동양사상과 여가시간의 창조적인 사용의 의미

홍승표 ( Hong Seung-pyo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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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자동화와 평균 수명 증대의 영향으로 현대인의 삶에서 여가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 삶과 문명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실제적인 여가시간 사용을 보면 여가의 소외가 심각하다. 현대사회에는 삶의 낭비로서의 여가시간 사용,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의 여가시간 사용이 팽배해 있다. 이 글은 동양사상의 기반 위에서 창조적인 여가시간 보내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현대인의 여가생활은 소외되어 있다.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 인간관이다. 현대 인간관은 인간을 ‘분리된 자아’로 간주한다. 현대인의 여가생활은 ‘분리된 자아’를 자기정체성으로 삼고, 이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의 여가생활은 소중한 삶의 낭비를 초래하고, 자신과 이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분리된 자아’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현대인의 여가 소외는 피할 수 없다. 동양사상은 창조적인 여가시간 보내기를 위한 새로운 인간관적인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은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인간관이다. 새로운 인간관의 토대 위에서 창조적인 여가시간 보내기의 의미는 명백하다. 이것은 분석적으로 보면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우주적인 나를 흔들어 깨워 활동하게 하기’로서의 여가시간 보내기이다. 이것을 ‘사랑의 능력 키우기로서의 여가시간 보내기’(수행)라고 한다. 다른 한 가지는 내 안에 살고 있던 ‘우주적인 내가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기’로서의 여가시간 보내기이다. 이것을 ‘사랑의 즐거움 누리기로서의 여가시간 보내기’(낙도)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여가시간의 창조적인 사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것은 첫째, 나를 사랑하는 능력 키우기로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둘째, 너를 사랑하는 능력 키우기로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셋째, 사랑의 즐거움 누리기로서의 여가시간 보내는 것이다. 여가시간의 창조적인 사용의 함의는 크다. 현 인류는 현대 말·탈현대 초의 문명 대전환기를 살고 있다. 현 인류가 현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문명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현재는 현대로부터 탈피한 새로운 삶과 문명에 대한 비전을 필요로 한다. 여가생활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여가시간의 창조적인 사용에 대한 이 글의 논의는 인류가 새로운 삶과 문명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동몽이상

유승무 ( Lew Seung-mu )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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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21세기 문명사적 혼융 시대(혹은 전환의 시대)를 맞아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날 수밖에 없다는 가정하에,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만남의 조건을 탐색해 보는 데 있다. 여기에서 이 논문의 발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공통적으로 ‘계급 차별 없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꿈꾸어 왔다. 문제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의 차이였다. 실제로 우리는 그 실현 조건(수단, 방법, 현실적 상황 등)의 차이가 예상과 다르지 않게 커다란 차이점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요컨대 불교는 수행자에 의한 인정투쟁을 통해서 이상사회에 도달하려고 한 반면에 마르크시즘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에 의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마르크스의 종교관이 절대신에 신탁하는 타력신앙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한 해탈을 추구하는 자력신앙인 불교의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불교사회가 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은 인간해방을 통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불교와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신의 의지와 인간의 기억-유교와 기독교의 ‘죽음론’ 소고

최우영 ( Choi Woo-young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0권 0호, 2009 pp. 101-128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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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영원성을 보장하려는 ‘종교’는 일정한 의미구조를 통해 죽음을 해석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 그런데 죽음의 해석과 처리, 다시 말해 한계상황으로서 죽음을 극복(상대화)하는 방식은 모든 종교에서 꼭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동서양의 대표 종교라 할 수 있는 유교와 기독교는 전혀 다른 죽음의 이해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 양 종교는 죽음의 극복에 연루되어 있는 종교적 ‘보상논리’와 ‘보상주체’가 판이하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 방식도 전혀 다르다. 그 결과 기독교에서 죽음이 구원과 천년왕국으로 보상되고 신의 의지에 의해 그것이 초월적 차원에서 담보된다면, 유교에서 죽음은 인간의 기억으로 보상되고 후대(자손)의 실천에 의해 그것이 역사적으로 담보된다. 종교로서 유교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질 역시 이러한 각각의 죽음론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연역되는바 크며, 양 종교의 사회적 효과 또한 궁극적으로 이 죽음의 이해 및 처리 방식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있다. 본 논문은 유교와 기독교의 죽음론의 본질을 규명한 다음 거기에 어떠한 정치, 경제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는지 시론적 차원에서 따져 본 하나의 종교사회학적 시도이다.

『주역』과 행복한 가족론

이현지 ( Lee Hyun-ji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0권 0호, 2009 pp. 129-154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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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행복한 가족을 꿈꾼다. 이 글의 목적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행복한 가족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고, 새로운 행복한 가족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은 가족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글은 그 해답을 『주역』에서 찾고자 한다. 왜 『주역』에서 행복한 가족론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주역』이 생명력을 상실한 2000여 년 전의 고전이 아니라, 탈현대적인 해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창조적인 지혜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주역』의 핵심적인 사상은 시중時中의 논리이다. 『주역』의 64개 괘와 384개 효는 시간과 공간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역』의 모든 괘와 효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교육학, 사회학, 윤리학 등의 질문에 창조적인 지혜를 제공해 준다. 이 글의 목적은 『주역』의 재해석을 통해서, 위기에 직면한 현대사회의 가족에게 행복한 가족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한다. 첫째, 현대사회의 가족관을 살펴보고 현대적 가족관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가족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둘째, 『주역』의 7개 괘(風地觀, 火雷噬嗑, 山風蠱, 山火賁, 地澤臨, 地雷復, 天雷无妄)에서 현대 가족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탈현대적인 관점을 발견한다. 셋째, 『주역』을 통해서 행복한 가족론을 논의하는 것이 갖는 탈현대적 함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의 최종 목표는 새로운 가족관을 구상하는 것이다. 탈현대사회의 가족은 현대사회의 가족과 다른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탈현대사회에서 행복한 가족의 목표는 사랑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며, 가족의 역할은 가족 구성원들이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가족은 일종의 수행공동체의 특징을 가진다.

주자 죽음관에 관한 소고

이승연 ( Lee Sung-yeon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0권 0호, 2009 pp. 155-184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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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공자와 계로의 유명한 문답 이후, 유가는 흔히 귀신이나 사후에 대한 물음을 유보한 채 현세적인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실주의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주자는 죽음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였으며 실제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주자는 이 죽음을 어떻게 해명하였는가? 또 그는 자신이 해명한 그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근년, 전통적인 동양의 죽음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우리 전통사상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 유가적 죽음관도 중요한 연구 테마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죽음이 문화적 토양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하며 그 이해 방식에 따라 삶의 유의미성이 달라진다면 우리의 문화적인 토양에 적합한 새로운 죽음관의 모색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조류와 달리 주자의 죽음관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물론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죽음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제인 귀신론이 주자 사상의 중심 테마로 자리 매김하면서 죽음이 귀신론 속에 포섭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죽음관, 즉 유의미한 죽음관을 모색하고자 하는 현 연구 동향에 비추어 볼 때, 귀신론과 죽음관은 구분되어야 할 두 개의 테제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글은 주로 주자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리理·기氣·성性·명命 등을 중심으로 그의 죽음관 및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재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주자 사상이 동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이는 동시에 동아시아인의 죽음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뿐 아니라, 주자 사상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먼저 그의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리기론을 중심으로 그가 죽음을 어떻게 규정하였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가 그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그의 명命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노자사상, <그림 천지지도>에 의한 새로운 해석

김영주 ( Kim Young-ju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0권 0호, 2009 pp. 185-222 ( 총 38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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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노자사상을 이해함에 무엇보다도 도道·현玄·일一·무無의 개념이 같은지 다른지, 혹시 같다면 무슨 이유로 다른 낱말을 사용하고 있는지, 혹시 다르다면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를 분명하게 정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노자사상에서 ‘가치개입의 문제’를 선명하게 내세워서, 천지지도·성인지도·치세지도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하여 해석하고 풀이한다. 이 논의를 선명하고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그림 천지지도>와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를 고안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그림 천지지도>에 기대어 ‘현玄·일一·무無·유有’를 비롯한 다양한 용어들이 서로 어떻게 다르며 서로 어떤 관계인가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장자의 행복과 여가

劉長林 ( Liu Chang-lin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0권 0호, 2009 pp. 223-250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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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장자의 행복관과 여가관이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다고 여긴다. ‘무위無爲’는 일종의 특수한 행동방식과 운동과정이며, 목적은 사람과 만물의 ‘무불위無不爲’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무위無爲’하려 한다면 반드시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은 만물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하면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번뇌에서 벗어나 하늘과 합일되는 정신적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무위無爲’는 여전히 경쾌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창조 활동이며, 그 결과는 사람과 사람의 조화, 사람과 하늘의 조화, 사람과 만물의 공존과 공영을 이룬다. 장자가 추구한 행복과 여가는 바로 ‘지락至樂’이며, 이는 무궁한 창조의 과정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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