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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과 문화검색

Jonrnal of Social Thoughts and Culture


  • - 주제 : 사회과학분야 > 기타(사회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12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7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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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modernity는 개념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역사는 19세기의 사회과학의 발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모던modern’이라는 단어에 대한 지성사적 관심은 그 자체로 오랜 전통이었다. 이 글은 우선 이 개념 연구의 역사를 요약적으로 소개한다. 이 요약을 바탕으로 ‘모던modern’의 번역어로서 사용되어온 ‘근대近代’와 관련 용어들의 문헌적 기록을 한국의 고전 문헌에서 찾고, 해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 논문은 『조선왕조실록』을 분석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이 문헌은 500년 이상 지속된 조선의 행정계급(왕, 관료, 사대부 등)의 역사인식을 살펴볼 단초를 제공한다. 조선의 행정계급에게 ‘근近/금今’은 당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언어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기능은 추가적으로 ‘고古’개념의 활용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의 행정계급이 문화적으로 갖고 있었던 ‘당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해결노력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지지도와 포괄지도로 본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김영주 ( Kim Young-joo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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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천지지도와 포괄지도는 ‘중국사상의 발자취’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유가에 영향이 크다. 『논어』와 『맹자』에는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해당하는 내용은 있지만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그런데 『주역』십익에서 음양개념의 터전을 잡고, 그게 오행사상과 만나서 동중서가 음양오행과의 접목으로 유가의 천지지도로 자리잡더니, 마침내 성리학에 이르러서 포괄지도로서 리理와 천지지도로서 기氣로 정리되고 자리잡게 되어서, 학문적 완성도가 더욱 높아진다. 그러니까 노자의 천지지도는 제자백가에 영향을 미쳐서 일찌감치 음양오행설이라는 유가의 천지지도가 나타나는 씨앗이 되었고, 노자의 포괄지도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희의 리학理學이라는 유가의 포괄지도가 나타나는 씨앗이 되었다. 이 논문은 유가 중에서도 성리학에서 천지지도와 포괄지도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아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1절에서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2절에서 장횡거의 태허와 기氣를, 3절에서 정명도의 리理와 기氣 개념 그리고 정이천의 리理와 기氣 개념을 구별하여 살펴보고 그리고 마침내 4절에서 주희의 태극과 리기理氣 개념을 살펴본다. 그리고 리기일원론과 리기이원론에 관한 문제를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5절에서 無極而太極에 대한 주돈이와 주희의 차이점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성리학이 공자사상이나 맹자사상과는 달리 무신론無神論에 의한 천지지도 개념과 포괄지도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노자의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의 영향으로 성리학이 천지지도뿐만 아니라 포괄지도까지 갖추게 된 것은 중국의 유학사상사에서도 매우 획기적인 업적이요, 노자의 포괄지도에 이어서 유가에도 포괄지도가 완성된 것은 중국사상사에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리학의 천지지도와 포괄지도는 ‘상류 서열주의 및 인간 우월주의’를 추구하는 ‘편파적인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이고, 노자의 천지지도와 포괄지도는 ‘만민 평등주의 및 만물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편파적인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이기 때문에 둘 다 ‘편파적인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둘 다 ‘편파적인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유가와 도가가 ‘편파적인 천지지도와 포괄지도’의 수렁을 벗어나서 ‘참다운 천지지도와 포괄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최한기의 기학적 인간학과 인물감평 범주

이영찬 ( Lee Young-chan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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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는 당시 유학자로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인물감평 방법을 구상하였다. 그는 그가 정립한 기학의 토대 위에서 당시에 지배적이던 유가의 지인과 관상가의 상인을 비판적으로 종합한 측인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본 논문은 최한기 측인의 기학적 토대를 설명하고 그것에 따른 구체적인 인물감평 범주를 구성해보고자 하였다. 최한기의 측인론에서 인물의 어떤 요소를 감평의 범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학의 학문적 특성과 기학적 인간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학의 세계관은 기존의 성리학적 세계관과는 확연히 다르며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을 다분히 수용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기학의 학문적 특성을 유형의 학문, 실학적 이념, 일통의 철학 그리고 대동의 사상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학의 학문적 특성에 토대하고 있으면서 인물감평의 범주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기학적 인간학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최한기의 기학적 인간학을 사람의 형체, 심성, 인품, 행위의 선악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끝으로 이와 같은 기학의 학문적 특성과 기학적 인간학을 토대로 인물감평의 범주를 추출하고 이를 용모, 신기, 심덕, 행사, 인도, 처지 등 6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브레히트와 동양 - 브레히트의 『주역』이해

이경규 ( Lee Kyung-kyu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117-142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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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 브레히트(B. Brecht)는 독일에만 그리고 문학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브레히트는 60년대 이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의 연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그의 사회비판적 작품은 연극무대를 떠나 동양의 지식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역으로 브레히트가 그전에 동양연극과 동양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브레히트가 어떤 연유로 동양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리고 또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했는지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브레히트는 희곡작가로서 우선 동양의 색다른 연극기법에 관심이 있었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색다른 사고방식에도 큰 매력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양자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본 논문은 학회의 성격상 후자에 더 무게를 둔다. 브레히트가 중국이나 일본의 연극에 매료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면면히 이어져 온 서구의 희곡론에 대한 비판과 맞닿아 있다. 즉, 브레히트는 관객의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서양연극은 연기자와 관객의 관계가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연극은 관객이 문제를 직접 생각하고 문제 상황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지 못한다. 반면에 동양의 공연은 배우와 관객의 사이가 느슨하여 양자가 수시로 소통할 수 있다. 여기서 브레히트는 주류 서양연극을 개혁하여 소위 ‘반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서사극(epic theatre)을 발전시켰다. 브레히트가 중국사상에 깊이 경도한 것은 자연과 인간사회를 보는 시각이 사실적이고 통합적이라는 데 있다. 그는 노자, 장자, 공자, 묵자 등 중요한 중국 사상은 다 접했다. 브레히트가 가장 주목한 것은 이들의 사상이 사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즉, 사실주의자인 브레히트는 절대적이고 고정 불변하는 무엇을 상정하고 그것을 쫓는 서양철학에 한계와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또 동양고전들의 언어적 특징인 소박성, 대화체, 비유법, 이미지화 등을 좋아했다. 이 모든 것은『주역』으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직·간접적으로 『주역』의 영향을 받은 브레히트는 『메티, 변혁의 서』라는 산문집을 남기고 있는데, 이것이 본 논문의 주된 분석 대상이다.

건축의 시간성에 대한 주역 해석의 보완

문정필 ( Moon Jung-pil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143-176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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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건축에는 공간과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시간’이라는 명제이다. 그러나 건축에서 시간개념은 공간처럼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고, 건축 디자인에서도 건축가들이 시간을 공간만큼 큰 비중으로 두지 않으며, 건축가나 관찰자 모두가 시간개념으로 건축 디자인을 명쾌하게 해석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 건축에 시간을 미미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현실에서, 저자는 즈와트가 분류하고 정의한 세 가지 시간의 관점을 근·현대 건축의 형태와 공간에 접근시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감각·의식·의미적 해석을 이루어 실재적·상관적·관념적 이라는 건축의 세 가지 시간을 서양사상의 관점에서 선행연구로 도출하였다. 본고는 선행연구에서 건축의 시간 연구가 서양의 사상적·해석적 가치에 주력된 점을 감안하여 세 가지 시간을 ‘물리적 운동의 시간’, ‘사건 전·후의 계기적 시간’, ‘인간 기억의 중심적 시간’으로 풀어서 정립하고 주역사상에 내재된 ‘순환·변환·흐름의 변화’적 시간성을 각각 접근시켜 동양의 해석적 사고로 넓혀 보고자 했다. 그 결과는 ‘건축공간에 자연의 순환적 변화를 수용하는 물리적 운동의 시간’, ‘변환적 변화로 자연의 암시적 공간을 수용하는 사건 전·후의 계기적 시간’, ‘자연에 건축공간의 흐름으로 지속되는 기억중심의 시간’이라는 점에서 세 가지 시간 모두가 자연과 건축공간이 연속성을 이루는 특성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 시대의 사회적 사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건축을 통해, 동양사상이 서양사상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동·서양에서 양립되어온 개별의 시간적 가치를 융합시켜 논의하고자하는데 의의가 있다.

4·19혁명 전후 유교 계열 지식인의 동향

이황직 ( Yi Hwang-jik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177-220 ( 총 44 pages)
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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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유교 계열의 지식인들이 4·19혁명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논증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 유교계는 부흥운동의 좌절과 정치적 시련 속에서 조직적으로는 붕괴되었지만 전통적인 유교 네트워크를 유지한 채 사회적 명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유교계는 김창숙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펼쳤고, 특히 임시정부 계열을 지지하면서 민족통합과 자주독립 노선을 분명히 했다. 단정 수립 후에도 계속된 이러한 노력은 6·25전쟁 기간의 인적 손실과 이어진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의해 거의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직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김창숙 중심의 유교 네트워크는 유지되고 있었고, 여전히 유교 계열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소집단 형식으로 잔존하면서 대의명분과 도덕성에 바탕한 재야 투쟁과 학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둘째, 이러한 네트워크하에서 결속된 유교 계열 지식인들은 4·19혁명의 전개 과정과 결과에 상당히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들은 1950년대말을 기점으로 이승만 정권과 대립각을 분명히 한 채 4·19혁명을 맞이했고, 특히 교수단 데모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교수단 데모의 기획과 주동에는 특히 김창숙 후원하의 성균관 네트워크와 독립운동가들의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러한 네트워크는 참여자들의 결속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운동의 도덕성을 고양시키고 사회적 영향을 확산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끝으로 주요 참여자들의 내면적 동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참여 동기와 실천 과정의 적극성을 이끌어낸 것은 유교적 가치였음을 분명히 입증했다. 이처럼 유교의 지성적·비판적 전통을 계승한 4·19혁명 과정의 대의의 관념과 실천이야말로 유교가 민주화와 민주주의 정치에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한 모범적 사례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축적될 때 유교 민주주의론은 담론을 넘어 현실적인 이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균열의 축으로서의 종교 - 종교 간 가치 및 태도의 차이를 중심으로

박병진 ( Park Byoung-jin ) , 김병수 ( Kim Byung-soo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221-252 ( 총 32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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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종교가 한국사회에서 사회통합보다는 사회균열의 요인으로 작용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종교 참여와 신념이 개인의 종교적·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적 가치와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와 논의들이 주로 담론 및 이론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어왔던 것에 반해 이 글은 “2008 한국종합사회조사”를 활용하여 한국사회의 주요 쟁점가치에 대한 종교간 의식 및 태도의 차이를 경험적으로 비교·분석하였다. 분석은 크게 ‘개인적 성공’,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회적 가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의식’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의식 및 태도’의 네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다른 사회균열의 축으로 고려되는 세대, 이념, 지역 그리고 직업(계급)과의 비교를 통하여 종교가 사회균열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4개의 분석영역의 하위 12개의 구성요소 중 2개의 구성요소(소득과 타종교와의 공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구성요소들은 종교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결과들은 다음과 같다. 성적 자유의식과 낙태에 관한 의식은 종교별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서구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도 성적 자유의식과 낙태에 대하여 종교인과 비종교인 그리고 종교간 인식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는 서구사회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종교간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적 태도를 살펴보면 불교도와 개신교도들은 무종교인들에 비하여 종교지도자들의 정치관여에 높은 동의율을 보이고 있다. 종교집단별로 타종교와의 공존에 대한 의식 및 태도에는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고 이는 다종교사회인 한국사회에서 공존적 가치를 가진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종교집단 간 호감도 및 사회적 거리 분석결과 개신교집단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고, 개신교가 타종교인과 무종교인보다 종교적 배타성 정도가 높았다. 본 연구의 분석결과는 종교가 개인의 성공과 일생생활 관련 사회적 가치뿐만 아니라 정치적 태도와 타종교에 대한 의식구조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세대, 이념, 지역, 계급과 더불어 사회균열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역』 정鼎괘를 통한 한국 다문화사회 문제해결 방안

이현지 ( Lee Hyun-ji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253-279 ( 총 27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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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경의 경계를 무색케 하는 이주가 빈번해졌고, 노동의 지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다문화사회에 대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는 다문화사회를 이해하고, 다문화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다문화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 연구자는 기존 연구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다문화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존의 연구 성과는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다문화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근대적 세계관은 다문화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는 다문화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세계관을 『주역』의 화풍정火風鼎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화풍정괘의 정鼎은 음식을 삶는 도구인 솥을 상징하고 있다. ‘솥의 용도는 물건을 변혁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즉, 솥은 무엇을 익숙하게 하는 것으로 온고溫故의 도道라고 할 수 있다. 변화된 세계관에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익숙하게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괘의 뜻이다. 이에 정괘는 다문화사회로의 사회변화에 직면하여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한국사회의 다문화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 분석해볼 것이다. 다음으로 정괘의 세계관적 특징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괘의 각 효사를 통해서 다문화사회가 직면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볼 것이다. 이 논문은 다문화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오늘날의 다문화정책의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관과 방법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태교胎敎에서 신위神位까지, 총체적으로 과잉 교육화된 사회?

정성원 ( Jung Sung-won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281-316 ( 총 36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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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사회의 대다수 학부모들이 자녀의 미래설계와 관련해서 한 번은 생각했을 인생지도는 태교/원정출산 → 탈세 및 자녀상속/위장전입 → 영어유치원/특목고/SKY입학 → 병역면제 → 자기계발 → 신위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베른슈타인의 ‘총체적으로 교육화된 사회’ 개념으로 ‘태교에서 신위까지를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우리는 학부모들이 현대한국사회가 요구하는 ‘교육능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을 것이다. 이에 학부모들은 공시/통시-사회적 압력의 목록들로 그러한 능력을 이해·해석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두 번째, 우리는 그러한 사회적 압력들에 대해 그 학부모들이 보인 행동을 중심으로 ‘총체적 교육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세 번째, ‘교육의 개인 식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살피면서, 우리는 교육이 개인의 정신에도 침범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세 가지 답변을 통해 현대한국사회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과잉 교육화된 사회’로 규정할 것이다.

10·27법난과 그 청산 과정에 대한 회고와 성찰

이한메 ( Yi Han-meh )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27권 0호, 2013 pp. 317-350 ( 총 34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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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신군부는 2000명에 달하는 불교계 인사들을 불법적으로 연행하여 협박과 고문을 자행하였다. ‘10·27법난’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불교계는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 규명조차도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가해자인 국가는 과거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동안 불교계는 각 정부의 성격과 내부 역량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10·27법난 청산 활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불교계의 희생이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고, 나아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보다 사건의 함의에 대한 폭넓은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불교계는 ‘사실로서의 10·27법난’의 규명과 더불어 ‘의미로서의 10·27법난’을 찾기 위한 다음과 같은 논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진정한 과거 청산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사회적 범주에서 10·27법난과 그 청산 과정을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적 ‘인정투쟁’으로서 조명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 성격을 간과한 채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과 그에 따른 배상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차원 높은 사회적 의미를 추출하긴 어려울 것이다. 둘째는 10·27법난을 한국불교의 자기성찰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작업이다. 해방 이후 불교계가 강조해왔던 ‘정화’의 논리는 자신의 무오류성과 상대에 대한 부정을 전제함으로써 성찰적 자정이 아닌 ‘외삽적’ 방식을 통한 축출의 논리로 흐를 수 있어 위험하다. 따라서 정화를 통해 교단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바람직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변증 논리’에 대한 냉철한 검토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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