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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rnal of Social Thoughts and Culture


  • - 주제 : 사회과학분야 > 기타(사회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123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권 0호 (2001)

동양 고전의 해석 관점과 방법 및 자세

김재범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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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양 고전의 해석 관점과 방법이 되는 준거들을 동양 고전 속에서 찾아내고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 고전을 대하는 자세를 학자의 근기와 지적 공정성이라는 문제와 연결시켜 논의해 보았다. 여기서 제시한 해석의 관점과 방법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1) 고전으로 고전을 해석하고, 고전을 통해 고전을 벗어나며, 2) 일체의 권위를 추종하지 않으며, 3)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4) 현재진행형으로 해석하되, 5) 리理ㆍ사事(理致와 事實)가 분명한지 비추어 보고, 6) 그래도 해석이 안 되는 것은 그냥 둔다. 어느 누구도 고전을 완벽하게 재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의 관점과 방법을 문제삼고 그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해 본 것은, 다만 ‘어떻게 하면 왜곡과 해석의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고전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되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함께 나누며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한 해석 관점과 방법은 그러한 제안을 몇 가지 구체화한 것이다. 이 제안은 더 나은 제안에 의해 언제든 수정될 수 있고 또 그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서양 이분법과 동양 음양법의 극복 ― 태극 이분법

김영주
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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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화두로 삼아 사색하고 연구해 왔다. 필자는 ‘서양 이분법과 동양 음양법’이라는 논제를 내세워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의 차이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분법二分法과 음양법陰陽法은 서유럽 지역과 동아시아 지역의 다름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고틀이다.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의 차이가 거의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총체적 집결점’이요 그 ‘시발점’이라고 본다. 서양의 이분법과 동양의 음양법이 모두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함께 지니고 있다. 서양 이분법에는 ‘엄격한 순결성’이라는 좋은 면과 ‘독선적 맹신’이라는 나쁜 면이 있다고 보며, 동양 음양법에는 ‘상대적 다양성’이라는 좋은 면과 ‘애매한 무분별’이라는 나쁜 면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서양 이분법과 동양 음양법이 “서로 이질적인 듯 하면서도 서로 보완적이고, 서로 보완적인 듯 하면서도 서로 이질적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서양 문화의 좋은 면에 일방적으로 몰입되어 있으며, 서양 학문 특히 서양 학문의 방법론에서는 좋은 면만 이야기하며, 아예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한 번쯤 뒤집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아, 서양 이분법의 좋은 면보다는 일부러 ‘나쁜 면’을 주로 드러내어 논의하려고 한다. 여기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동양 음양법을 논의함에도 일부러 나쁜 면을 주로 드러내기로 한다. 이렇게 서양 이분법과 동양 음양법의 비판을 문제 의식으로 삼아, 그 대안으로 필자가 ‘태극 이분법’이라는 새로운 사고틀의 씨앗을 제시해 보겠다(동양의 ‘陰陽의 待對流行’을 담는 ‘태극’ 그리고 서양의 ‘善惡의 대립’을 담는 ‘이분법’이라는 낱말을, “서로 대립적이면서 서로 보완한다”는 ‘상호견제와 상호침투’의 뜻을 담아 ‘태극 이분법’이라고 이름지어 보았다).

동양의 순환적 사유와 그 배경

강영한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81-110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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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른다”는 전제에서 볼 때 가장 관심을 끄는 문제의 하나는, 시간이 과연 어떤 형식으로 흘러가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구의 경우 인간ㆍ자연ㆍ우주를 시간의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지배적인 노력은 시간에 대한 직선적 사고를 강화하였고 시간의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중세 유럽의 교회 신봉자들이나 이후의 철학 사상은 역사 과정을 직선적 또는 진보적 맥락에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동양은 이와 다르다. 우주 변화의 맥락에서든 문명적 맥락에서든 동양에서는 순환적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이 연구는 동양의 순환적 논리의 전형적인 예로서 중국 송나라 소강절의 순환론적 논리와 근대 한국의 강증산의 순환 논리를 소개하였다. 소강절의 원회운세설은 우주가 우주 1년이라는 과정에 따라 순환 운동을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강증산은 선ㆍ후천 개벽론을 통해 천지인 삼계 즉 우주가 창조적으로 순환 운동한다고 간주하였다, 동양의 이러한 순환적 사유의 발전은 음양오행론을 배경으로 한다. 우주는 양 기운과 음 기운이 서로 교차하면서 순환하며, 오행의 상극과 상생 원리를 바탕으로 순환한다는 것이다. 순환적 사유 구조에는 단선적 진보라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진보 또는 발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직선적 관점과는 다르다. 순환적 사유는 또한 처음과 끝이 만난다는 사유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모든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그 과정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을 배경으로 순환적 관점은 문명에도 일련의 순환적 논리가 적용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순환이 항상 동일한 과정이거나 그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은 창조적 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신유가의 현대화 이론 ― 「문화선언」을 중심으로

장윤수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111-129 ( 총 19 pages)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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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이라는 개념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현대적 문명과 가치를 ‘수용’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의 문제를 ‘극복’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신유가는 1919년 5ㆍ4 신문화 운동 이후에 형성된 신유가 학파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서양 문화의 충격 이후 야기된 문화적 충돌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전통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을 요구했으며,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현대신 유가가 등장하였다. 현대신유가에 있어 전자(수용)가 ‘서구화’로 대변될 수 있다면, 후자(극복)는 전통적 가치의 창조적 복원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수용’과 ‘극복’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현대신유가의 유가 현대화 이론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전통의 발전적 계승 혹은 창조적 복원이라는 ‘현대화’ 작업에 갈망하는 우리에게 간접적인 모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있어서 유교적 가치의 함의

이동일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129-161 ( 총 33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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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의 삶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소외 현상이나 인간 관계의 메마름으로 인해 현대 사회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즉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공동체를 추구하게 되었다. 공동체가 인간에게 정신적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유교적 가치인 인仁과 예禮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자발적 헌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인’은 인간들간의 관계이며, 그 관계의 내용은 사랑에 있다.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목적을 위한 결사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예’는 사회적 질서이다. 인간들간에 지켜야 할 규범인 것이다. 공동체의 원형이 가족에 있다는 점은 유교적 가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논어 의 “인은 효孝와 제弟에 있다”는 명언은 현대 공동체가 추구하는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공동체 유지는 결국 내부의 규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물론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규범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동체 내부 성원들간의 서열 관계, 역할의 분담, 개인간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고민은 각자의 역할 분담과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 신뢰, 지위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전 산업 사회와 같은 공동의 유대감과 동질성을 갖는 사회가 아니다. 각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이 시대의 문화적 코드이다. 그러나 현실은 문화적 민족주의, 세계화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동질화되어 간다. 동질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이질성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학자들 중에는 세계화의 추세에서 필요한 것은 민족적 정체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유교적 가치관과 규범이 바탕이 된 공동체의 운영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한국적 삶의 특성과 한국인들의 인간 관계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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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의 위기는 교육의 국가 독점, 자본제 사회의 생존 수단 확보를 위한 경쟁 격화, 사회 변화에 따른 전통적 교육 가치관 붕괴, 공동체 유지의 규율 규범 해체로 인한 사적 욕구 실현의 무절제 등이 얽히고설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교육 문제는 오늘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성 황폐화로 이어지고 있어 사회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교육 방향의 모색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 관련된 논의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늘날 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온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교육 이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누락된 것은 물론이고, 교육의 새로운 내용에 대한 구체적 근거 제시 또한 명확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일상의 바른 생활 습관 체득을 인성 형성의 바탕으로 설정하고, 몸과 마음에 익힌 사람다운 도리를 다시 일용사에서 실천함으로써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가르침과 배움의 근본 목적으로 강조한 소학小學의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소학』의 교육 이념을 오늘의 사회 상황에서 끌어쓸 수 있게 새로 읽고(再讀解) 주요한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아울러 이에 바탕하여 우리 교육이 직면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적ㆍ도덕적 교육 개혁의 시각을 마련해 보고자 하였다.

일본 신종교의 생명주의적 세계관

김철수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199-199 ( 총 1 pages)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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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종교는 신자 수로 볼 때 종교 인구의 18.4%를 차지하고 있고, 단체수는 26.2%로 적지 않은 비율이다. 따라서 신종교가 일본 사회 이해를 위한 하나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소개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고는 먼저 일본 신종교의 전체적 구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일본 신종교 세계관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세계ㆍ우주 전체를 결코 쇠멸衰滅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산출력産出力이 충만한 생명체 내지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신종교의 이러한 생명 주의적 세계관과 관련하여, 세계 전체의 구조에 관해서는 현세 중심의 일원론一元論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일원론의 생명주의적 세계관에서 현실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개개의 생명체는 ‘크나큰 생명’ 흐름의 일부를 담당하거나 혹은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존재(전체와 부분의 관계)로 파악된다. 신종교 각 교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생명 연결에 관한 사고 유형을 정리해 보면, 대별하여 두 개의 기본 유형이 있다. 첫째는 개개의 인간 생명이 ‘친신親神=우주 대생명’으로부터 직접 유래한다고 하는 생명 연대의 사상으로, 인간 생명은 이 ‘친신=우주 대생명’의 분령分靈 또는 지류支流라고 위치 부여하는 사고 유형이다. 이 유형은 ‘대생명大生命의 사상’이다. 둘째는 개개의 인간 생명이 자신을 둘러싼 다른 생명체(양친, 선조, 인연 있는 인간 및 동물 등)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지되고 있다고 하는 생명 연대의 사상으로, 현세의 인간 생명과 모든 생명(靈)이 사는 영계와의 생명 연결이라는 사고 유형이 강조된다. 이는 영계靈界 사상이다. 이에 함께 본고는 신종교 세계관의 전체적인 특징과 구조에 주목하면서, 일본 신종교의 구원관을 동시에 살펴보았다. 곧 신종교 세계관의 구조적 특징과 관련된 인간 존재의 문제, 고난으로부터의 구원 문제, 그리고 사회 위기 및 사회(세계) 구원에 대한 입장을 함께 살펴보았다.

전통 사회의 놀이와 교육

정재걸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233-253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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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전통 사회에서 놀이를 분류하는 방식, 즉 좋은 놀이와 나쁜 놀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고, 그 기준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통 사회에서의 좋은 놀이와 나쁜 놀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안으로 수렴할 수 있는가, 아니면 밖으로 몰입하도록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교육에 있어 몰입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좋은 놀이는 아동들로 하여금 몰입 가운데에서도 깨어 있도록 한다. 바로 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서구의 아동중심교육과 전통 사회에서의 아동존중교육을 구분할 수 있다. 아동중심교육은 지금 여기서 아동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그러나 아동존중교육에서는 미성숙한 자아를 통한 몰입은 부분적인 것이고, 궁극적인 몰입은 충분히 성숙한 자아를 버렸을 경우에 가능하다고 본다. 정보 기술의 발전을 통해 놀이의 교육적 적용이 확대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놀이의 준거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음양론의 여성학적 함의

이현지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255-275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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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여성학은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의 문제를 드러내고, 여성들을 자유로운 삶의 주체로 부각시킴으로써 오랫동안의 삶의 질곡에서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여성학은 근대 서구적 세계관을 토대로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근대 서구적 세계관의 위기와 더불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본 논문은 현대 여성학의 세계관적 토대와 남녀관의 특징 및 한계점을 살펴보고, 음양론에서 여성학의 학문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여성학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분리ㆍ독립된 범주이다. 둘째,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셋째, 남성과 여성은 이해 관계가 상반된 적대적 대립의 관계이다. 넷째, 남녀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갈등과 투쟁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여성학의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첫째, 적대적 남녀관은 현실 속에서 창조적인 남녀 관계의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 둘째, 여성학이 추구하는 남녀 평등의 이념은 새로운 여성 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인간 해방을 위한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음양론은 남녀 관계에 대해 현대 여성학과는 상이한 관점을 제시한다. 음양론의 관점에서 볼 때, 남성과 여성은 통일체이고 역동적 관계이며,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또한 음양론은 이상적인 남녀 관계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감과 감응을 제시하고 있다. 음양론의 남녀 관계관은 다음과 같은 여성학적 함의를 갖고 있다. 첫째,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둘째, 현시대의 요구에 맞는 창조적인 남녀 관계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현대 여성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론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形上語言的价値基礎

원영호
동양사회사상학회|사회사상과 문화  4권 0호, 2001 pp. 277-293 ( 총 17 pages)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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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 동안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것이 철학의 기본 사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도 형이상학은 아직 완전히 소화되지 못했고 투명해지지 못했다. 그 중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바로 형이상학의 가치관 본질이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형이상학을 다만 인간의 ‘지혜에 대한 애착’에서 온 ‘유일한 자유적 학문’으로만 보고 그것이 희랍 ‘자유인’의 생활 양식에서 자라난 한계를 가진 가치관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양 형이상학은 도道(혹은 로고스)를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따라 풀어 나간 사상-언어의 체계이다. 이 물음은 존재에 관한 사상을 확정된 개념의 논리로, 판단으로 구성된 지식 형태로 만들어 나간 바 그 기본 가치적 태도가 ‘파악把握’이다. ‘파악’에는 완전히 “나의 손아귀에 넣어” “나(혹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는 가치적 태도가 스며 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은 현대에 와서 자연을 ‘파악’하는 ‘과학’을 낳았고 또 현대적 ‘과학 기술’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統制’하고 ‘노역奴役’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서양문명은 이 같은 ‘형이상학’-‘과학’-‘기술’의 궤도에서 움직여 왔으며, 그 결과의 하나가 바로 인간과 자연의 극단적 충돌인 것이다. 결국 희랍 노예제에서의 ‘자유인’의 우월감으로부터 ‘중심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플라톤주의)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현대에 와서 ‘인간 중심주의’로 변형된 것이다. 동양인의 형상形上적 지혜는 도를 ‘무엇인가’라는 논리에 따라 ‘학學’을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무엇이 아니다”라는 사유와 언어로 존재와 생명의 뿌리를 각오覺悟해 보려 힘써 왔다. 그리하여 동양의 형상적 지혜는 개념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서로 배척되는 자들의 ‘공속일체성共屬一體性’(예컨대 陰과 陽)에서 존재를 이해했고 “우주 생명 통일체”로부터 만물의 변화를 이해했으며 ‘자연 법칙’의 원칙으로 만물 평등과 그 자재自在적 가치를 터득해 왔다. 현재 ‘2000년대’라는 대척도의 시간 용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문명이 플라톤-데카르트의 궤도와 고별하고 새 천년의 문화를 맞이하려는 인간의 기대가 들어 있는 정서적 언어인 듯 싶다. 확정된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천뇌天籟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아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만물 존재의 평등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오늘날 세계 문명의 전향轉向 속에서 동양인의 형상적 지혜의 가치가 다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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