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남아시아연구검색

The Southeast Asian Review


  • - 주제 : 사회과학분야 > 인문지리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689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5권 3호 (2015)

민간 기념물과 논쟁적 기억: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지원 ( Ji-won Suh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44-88 ( 총 45 pages)
12,000
초록보기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에 건립된 민간(unofficial, 비공식) 기념물에 관한 이 연구는 민간 기념물이 촉발할 수 있는 정치적 논쟁 또는 그 부재, 민간 기념물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적 가치 등을 살펴봄으로써 민간 기념물의 위상 및 관 주도 기념물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례 연구는 2009년 자카르타에 건립된 ‘1998년 5월 바늘 기념비’, 2013년 족자카르타 반툴에 건립된 수하르토 기념관, 2013년 동부자바 바투에서 문을 연 ‘무니르의 집’ 등 3건의 민간 기념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국가가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는 가운데 민간이 건립한 기념물에는 망각에 저항하면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생산·재생산하려는 대안적 의도가 있으며, 이러한 논쟁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설립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이 건립하여 관리하는 기념물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와 같은 논쟁적 기억을 촉발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기념물의 의도가 정치적으로 망각되거나 편향된 진실만을 옹호하는 정치적 양극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민간 기념물이 공식 기념사업을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어 공공성 획득에 성공할 경우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부술라웨시 전통문자의 형성과 역할

조태영 ( Tae-young Cho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47-89 ( 총 43 pages)
11,800
초록보기
본고는 남부술라웨시의 네 가지 종류의 전통문자인 술라파으파문자, 장앙장앙문자, 세랑문자, 그리고 빌랑빌랑문자의 기원과 발전과정의 배경, 유형적 특징, 그리고 각 문자들의 사용위치에 대해 조명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슈미트의 문자단일기원설을 주축으로 전개된다. 7세기경 남부술라웨시에 처음 소개된 문자의 개념은 동부칼리만탄과 남부수마트라에서 앞서 사용된 팔라와문자로부터라는 가설이 지배적이다. 팔라와문자를 통한 문자의 개념은 부기스인들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사각형태안에서 재정립되어 술라파으파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4세기부터 널리 사용된 술라파으파문자의 유형적 특징은 인접한 마카사르사회의 장앙장앙문자 정립에 재차 영향을 주었다. 장앙장앙문자는 술라파으파문자의 유형에 기본을 두고있지만 문자소의 외형은 닭(鷄)의 형태를 본떠 만들어졌다. 이후, 17세기 초 이슬람이 남부술라웨시에 유입되자 이슬람 문화를 기록하기 위해 아랍문자에 기초한 세랑문자가 출현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19세기에는 술라파으파문자의 유형과 아랍문자의 문자소를 조합한 또 다른 문자인 빌랑빌랑문자가 출현하였다. 부기스왕족출신인 촐릭 푸지에(Colliq Pujie)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로부터 부기스 왕국의 공문서를 보호할 목적으로 비밀문자인 빌랑빌랑문자를 창안한 것이다. 남부술라웨시의 네 가지 전통문자들 중 어미문자격인 술라파으파문자가 지닌 전통성은 다른 문자들과는 달리다양한 분야와 넓은 사용영역을 통해 그것의 확고한 위치를 확립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고래로부터 남부술라웨시에서 네 가지종류의 전통문자가 발전되고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역동적이고도 남다른 문식성을 나타내준다.

한-베 가정의 베트남 이주 과정, 젠더 그리고 자녀교육

장지혜 ( Jee-hye Jang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91-138 ( 총 48 pages)
12,3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주한 한-베 다문화가정에 주목한다. 그들은 왜 베트남으로 이주하려고 하는가? 베트남에서 살게된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 아내는 가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는가? 베트남 이주 후 자녀 교육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상의 질문에 답하면서 베트남으로 이주한 한-베 가정이 처한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조건을 설명하고 이들이 처한 조건하에서 구사하는 전략적 행위와 실천을 이해하고자 한다. ‘한-베 가정’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이주한다. 이주의 목적이 어떤 이유에서건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인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이다. 처가/친정 식구들의 사회적 관계와 인적 관계를 활용해 베트남 정착을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이들도 ‘글로벌’하게 교육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베가정의 베트남 이주는 삶의 공간을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동시키면서 새로운 기회와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만들어 베트남 사회에서 상대적 비교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실천이었다. 베트남으로 이주한 한-베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초국적 환경 속에서 삶의 기회를 확장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지만 사회경제적 여건과 문화적편견 속에서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중세 베트남의 ≪시경(詩經)≫ 번역의 양상과 특징

최귀묵 ( Kwi-muk Chioi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139-167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이 논문에서 필자는 동아시아 한문 텍스트 번역사 탐구라는 커다란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우선 중세시기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詩經≫ 번역의 양상과 특징을 살피고, 이를 토대로 하여 베트남인은 번역에 대해서 어떤 인식과 태도를 지녔는지 밝혀 보고자 했다. ≪시경≫ 번역의 양상과 특징을 살핀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산문체 번역과 운문체 번역이 있어, 번역의 문체가 다양하다. 운문체 번역은 민족어시가의 형식을 따르며 다양한 형식을 가진다. 둘째, 산문체 번역은 원작의 뜻을 전달하면서 필요한 경우 해설적인 언급을 덧붙인다. 운문체 번역은 원작을 축약하여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며 원작을 재조직하여 새로운 시적 질서를 갖도록 한다. 필요한 경우 원작에는 없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셋째, 산문체 번역이든 운문체 번역이든 ≪시경집전≫의 주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朱熹의 주석을 ≪시경≫ 이해의 표준으로 삼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넷째, 운문체 번역은 원작에 매여 있다기보다는 번역자가 재구성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짐으로써 원작과는 구별되는 창작품에 가깝게 된다. 운문체 번역은 번역과 창작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잘된 번역은 훌륭한 창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번역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재검토하게 한다. 베트남의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점은, 번역이 창작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논의를 통해서 얻은 결론을 한 문장을 요약한다면, “베트남에서는 번역 텍스트가(운문체 번역 텍스트가) 그 자체로 창조의 소산인 ‘작품’으로 인정된다.”가 될 것이다.

사회자본과 비공식 공동체 복지: 북부 홍강델타와 남부 메콩강델타 농촌 마을의 사례

백용훈 ( Yong-hun Beak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169-218 ( 총 50 pages)
12,5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의 상황에 주목하여 남북부에 각각 위치한 농촌 지방에서의 비공식적 공동체 복지 현실을 탐구하고 남북부의 공동체 복지의 양상이 해당 사회가 보유해온 사회·문화적특성, 즉 사회자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파악해보았다. 이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공동체 복지의 사례는 가족 구성원 간 사적소득이전과 가족 및 친척을 포함하여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경조사 참석 및 계모임을 통해 주고받는 지원이다. 주민들과의 면접조사를 통해 파악해본 공동체 복지의 양상과 그 보호장치는 남북부에서 서로 차이를 보여주었다. 북부의 보호장치는 가족 단위의 개별성, 마을 공동체(딘, đinh, 亭), 그리고 닫힌 연결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북부는 마을별로 가족, 친척, 그리고 이웃 주민들이 서로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남부의 보호장치는 가족 개별성원의 개별성, 자발적 결사체(회, h0i, 會), 그리고 열린 연결망이다. 남부는 가족 및 공동체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성향이 강했고 마을 단위의 구분 없이 이웃이나 자발적 결사체 구성원들과의 약한 유대를 통해 상호 간에 복지 자원을 교환하고 있었다. 남부의 공동체적 수준의 범위는 북부에 비해 훨씬 넓었지만, 그들 간에 친밀성을 바탕으로 한 결속력이 없는 상황에서 경조사 참석이나 계모임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본 논문의 함의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남북부 두 사회가 각각 가지고 있는 생태적 환경, 거주 유형, 그리고 사회적관계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경로가 비공식 복지 영역에서 서로 다른 자원 교환의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어떠한 친밀성을 바탕으로 도덕적 규범을 공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가족과 친척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해당하는 이웃들로부터 신뢰와 규범이 점차 축적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확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반(半)주변부국가 언어의 경계 넘기: 베트남 내 한국어 구사자의 수용과 활용을 중심으로

육수현 ( Su-hyun Youk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219-265 ( 총 47 pages)
12,200
초록보기
이 연구는 베트남 내 한국어 구사자의 사례를 통해 한국어 학습열풍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고, 한국어 학습과 활용과정에서 한국어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특히 반(半)주변국 언어라는 한국어의 언어적 위계(hierarchy)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인속에서 베트남 학습자에게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주요하게 탐구하였다. 연구자가 파악하고자 했던 주된 궁금증은 베트남인 한국어 구사자들이 ‘한국어가 인기가 있고’, ‘한국어와 특별한 인연’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어에 대해 냉담하고 객관적 시선을 갖는 것인가 였다. 한국과 베트남의 재수교가 있었던 1992년이 지나고 1990년 후반부터 불었던 드라마 한류와 한국 기업 진출, 2000년 중반 이후부터 거세진 K-pop을 중심으로 한 신(新)한류와 다양한 분야의 한국 기업진출 확대가 베트남에서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한국어 구사자가 생겨났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는 ‘K-pop 아이돌 오빠의 언어’로 소녀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며, 있는 집 자녀의 문화적 취향이 되기도 하고, 성공이라는 목표를 가진 누군가에게 ‘기회’로 인식되어 경제성을 담보한 언어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어가 “여성의 언어”라는 이미지, 한국어 활용에서 오는 불이익, 한국 회사와 상사가 주는 실망감, 한국어의 국제적 위치에 따른 활용 범위의 한계, 커져가는 영어 습득 압박은 한국어 구사자에게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어 습득은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자본으로서 역할 할 수 있지만, 그 현실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의 요인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국가적 위상과 관련이 있으며, 반(半)주변부 국가인 한국의 위치와도 과계되어 있다.

한국-말레이시아 관계: 낮은 수준의 협력에서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협력대상으로

이경찬 ( Kyung-chan Lee ) , 황인원 ( In-won Hwang )
한국동남아학회|동남아시아연구  25권 3호, 2015 pp. 267-307 ( 총 41 pages)
11,600
초록보기
한국-말레이시아 관계는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전반적으로 협력과 조화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초기 양자 관계는 정치적 무관심과 경제협력의 부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양국이 서로를 주요한 정책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다. 이는 양자가 공히 경제적, 전략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약소국이라는 점과 그들이 속한 각 지역의 지정학적 요구에 매몰되어 공유된 비전과 그 속에서의 상대국의 의미 있는 역할에 대한 기대가 적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양국 관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서 눈에 띄게 긴밀해지고 있으며, 경제협력관계의 강화에 더하여 통신, 인적교류, 기술협력 등도 크게 확대되었다. 1980년대초반 이후 한국-말레이시아 관계의 발전적 변화는 양국에서의 정권 교체 및 그에 따른 기존 정책의 재고, 그리고 지역 및 국제 환경의 다양한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전통적인 강대국 우방들과의 관계유지의 중요성에 더하여 양국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양자관계가 확대, 심화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한국-말레이시아 관계의 지난 50 년을 돌아보면, 양국은 전례 없는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서 상호호혜적인 상호의존관계의 확고한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양국은 이미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였으며, 그를 토대로 양국 간 무역과 투자가 획기적으로 증대된 것은 물론 민간차원의 교류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녹색성장분야 등 새로운 협력관계의 전망도 매우 높은 점을 감안 할 때, 양국은 미래 50년의 공동번영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발굴하고 그 실현을 위한 실제적 상호작용을 증대시킴으로써 보다 포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관계 강화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