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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이론과 실천검색

Zeitschrift fuer paedagogische Forschung


  • - 주제 : 사회과학분야 > 교육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738-667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3권 1호 (2018)

국립대 교수와 타 직종 공무원의 호봉·수당·연봉체계의 비교 연구

강창동 ( Kang Chang-dong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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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교수의 호봉제는 일반직공무원과 비교하여, 보수 수준과 법적인 지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국립대 교수는 역사적·사회적 역할과 비교하면 타 공무원보다 낮은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공무원계급기준표에서는 국립대 정교수를 일반직2급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3급 대우도 못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립대 교수는 일반직공무원 기준의 5.5급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연구관과 지도관보다는 매우 낮은 수준의 봉급을 받고 있다. 사실상 초·중등교사와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신임교수의 평균 연령이 40세 정도란 것을 감안한다면, 국립대 교수의 호봉급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호봉급에 비례하는 수당에서도 국립대 교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일반직공무원의 수당은 30여종이 되지만, 국립대 교수는 대다수 수당을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공무원이 받고 있는 직급보조비에서도 제외되어 있으며, 그나마 학과장에게 지급하라고 되어 있는 교육법도 무시되고 있다. 일반직공무원은 통상임금보다 6개의 수당만을 포함해서 자신의 연봉을 매우 축소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대 교수의 연봉은 교육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과 비정기적 평균임금 그리고 법에도 없는 개인의 수익 수당을 포함시켜서 상당히 과장·왜곡하고 있다. 특히 의과대 교수의 연봉을 포함해서 평균의 함정을 빠트려 일반 대학 교수의 연봉을 상당히 부풀리고 있다. 국립대 교수의 연봉 책정은 일반직공무원과 같이 동일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교육사상에 나타난 인간관 비교

김철 ( Kim Cheol )
한독교육학회|교육의 이론과 실천  23권 1호, 2018 pp. 25-45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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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종교개혁기의 신학자이면서 교육사상가인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교육사상에 녹아있는 인간이해의 관점을 오늘날의 교육학이론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 존재 본질에 비추어 비교,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두 사상가는 모두 당시의 교회를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동 시대의 신학자였음에도 교회개혁을 바라보는 신학적 입장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인간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나름대로의 교육사상을 전개하고 있지만,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 등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과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으로 대표되는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인간 이해에 대한 관점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에 본 연구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변화과정을 탐구하였고, 이어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그들이 전개하고 있는 교육사상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교육사상의 바탕이 된 인간관을 비교, 분석한 결과,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인간 이해는 공통적으로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적 인간이해이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별도로 인간을 이성과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는, 현대적 관점과 유사한 인격적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루터는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인정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추종하고,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만 실현기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역할자로서의 인간이해의 입장에 근접해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교육의 대상인 인간존재의 관점에 따라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숙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반성의 역설에 대한 고찰 :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 개념을 중심으로

박은주 ( Park Eun Ju )
한독교육학회|교육의 이론과 실천  23권 1호, 2018 pp. 47-65 ( 총 19 pages)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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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전통적 교사관의 기술적 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던 반성적 교사관의 반성개념이 오늘날 교사들이 습득해야 할 또 하나의 기술로 전락한 반성의 역설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교사의 실천적 지식의 하나로 대두되었던 반성개념이 교사들이 습득해야 할 기술로 되었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프로네시스(실천적 지식)가 테크네(기술적 지식)로 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인을 고찰하기 위하여 2장에서는 반성적 교사관과 그것의 문제의식, 그리고 한계를 개관함으로써 오늘날 반성개념이 직면한 역설이 무엇인지를 개관한다. 이와 같은 반성의 역설은 프로네시스가 테크네로 변한 것에 있다는 진단 하에, 3장에서는 반성개념이 기초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 개념을 면밀히 살펴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개념적 구분에 기대어 4장에서는 반성의 역설이 초래된 원인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본다. 연구결과, 프로네 시스는 공동체의 선을 지향하는 가치지향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가의 내면의 덕과 관련된다. 따라서 반성이 테크네가 아닌 프로네시스로 되려면, 이 두 가지 가치지향성의 원천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교사의 실천을 단지 문제해결의 틀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과 결부되고, 다른 한편으로 교사의 내면이 가치로운 것을 지향하는 덕의 상태를 갖출 때, 교사의 반성이 교육적인 것으로 될 수 있다. 여기에 반성담론이 배제하였던, 혹은 간과하였던 이론적 지식을 통한 세계와의 연결가능성과 함께, 현장에서의 경험과 실천을 통한 덕스러운 소양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혁신학교는 수업을 혁신하는가?

서근원 ( Seo Ghun-won )
한독교육학회|교육의 이론과 실천  23권 1호, 2018 pp. 67-87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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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재 우리나라 일부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혁신학교 정책이 학교 현장에서 적절히 이행되고 있는지를 수업의 혁신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검토 결과를 토대로 혁신학교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어떤 점들을 먼저 고려하고 개선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혁신학교는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혁신학교와 관련된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참여도 역시 높다.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창의지성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 배움중심수업을 중심으로 수업을 혁신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 그렇지만, 수업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사들은 배움중심수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움중심수업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학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학생에 적합한 수업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교사들은 수업의 과정에서 내적인 갈등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을 이해한 바를 토대로 각 학생에게 적합한 수업을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교사들에게 이러한 역량을 기르는 데 요구되는 연수 과정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사들이 학생의 다양한 특성에 적합한 수업의 방법을 스스로 모색하여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교사들이 각자 처한 현실과 자신의 특성을 고려하여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의 방향과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수업과 학교가 혁신될 수 있다.

오산시 진로선택 지원 “얼리버드 사업”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사례 분석

이상오 ( Lee Sang-o )
한독교육학회|교육의 이론과 실천  23권 1호, 2018 pp. 89-111 ( 총 23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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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도시를 목표하는 오산시에서는 관내에 소재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 2학년 학생들 중에서 선발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서 2014년부터 진로선택 지원 프로그램(“얼리버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실행연구’(action research, 實行硏究)로 진행된다. 실행연구란 일종의 ‘현장연구’(field study)로서 현장밀착형의 학문적 연구로서 본 연구의 ‘연구방법론’이기도 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실행연구를 통한 현장프로그램의 개선’이다. 연구의 결과는 불완전한 요구분석을 토대로 계획안이 수립되고 이에 준하여 프로그램이 실행되면서 결과적으로 많은 반성적 성찰거리를 남겨 놓게 되었다. 이러한 반성적 성찰의 과정이 제대로 피드백될 때 2017년도는 보다 성숙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프로그램 운영 결과에 대한 최대의 관심과 난제는 앞으로 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프로그램의 기획 및 운영’을 통해서 학생들의 프로그램 중도이탈율을 낮추고 졸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선진국들의 진로교육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프로그램 진행 중 학생들의 ‘중도 진로변경’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시스템을 도입 운영한지 오래되었다. 즉 선진국의 진로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꿈과 끼 내지 적성과 재능, 능력도 늘 가변적이기 때문에, 진로교육은 이러한 학생들의 취향 변화와 눈높이에 맞추어서 진로변경의 노선을 항상 다양하고 용이하게 열어 두어야 한다는 취지의 ‘진로교육 철학’을 수립하여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얼리버드 사업은 이러한 사실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이돈의 ‘비판적 교육(Bildung)이론’의 특징과 현재성

홍은영 ( Hong Eun-young )
한독교육학회|교육의 이론과 실천  23권 1호, 2018 pp. 113-133 ( 총 21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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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국내외 교육학계에서 주변화한 독일 교육학자 하이돈의 교육사상을 정리하고 이 이론의 성격과 현재성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맨 먼저 파시즘의 폭력 체계를 경험한 하이돈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이때 그의 활발한 정치적 활동과 교육적 실천을 알 수 있고, 60년대 말 독일 교육개혁 담론에 대한 비판에서 그의 교육(Bildung) 개념의 역사적·변증법적 이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이돈이 주장하는 “교육과 지배의 모순”의 테제는 해방과 종속의 모순이 교육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이것은 지배 관계가 교육을 통해 성립하고, 거꾸로 교육은 사회적 요구에 종속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지배 상황을 깨뜨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하이돈이 사망한 후 그의 이론을 계승하여 급진적으로 발전시킨 코네프케는 시민 사회와 교육학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에 의하면, 시민 사회에서 교육학은 개인들의 자립을 강조하면서 사회 체제로의 편입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러한 자율성이 사회적 요구에 반대하는, 즉 저항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학자 및 교육실천가는 교육(학)을 항상 사회적 조건과 연관시켜서 파악하고, 인간화를 위한 교육(학)의 책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하이돈의 비판적 교육이론은 후세대 학자들이 오늘날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여 발생하는 상이한 교육문제(독일의 교육개혁, 통제 사회에서 주체성의 문제,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비판과 해방의 가능성 등)를 고찰하는 데 교육과 지배의 모순 테제를 자신의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 현재성을 인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실패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교육학의 부단한 자기비판 속에 해방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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