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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4권 0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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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사실이고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싸움이다. 모든 담론적 주체는 각각의 성별, 계층별, 국가별, 민족별로 시선의 ``차이``를 가지고 담론기제를 작동시킨다. 근대초기의 각종 저작물을 검토한 결과 남성젠더의 글과 여성젠더의 글은 극명하게 시선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성젠더의 여성담론은 모성담론 및 가족담론 결여형태였으며, 여성 개인의 권리·자유에 우선성을 두는 체제변혁적 담론이었다. 근대초기 여성젠더의 여성담론에서 핵심적 개조대상은 ``가족``이나 ``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고, 가족과 여성은 분리되어 있었다. 또한 차별에 항거하는 차이 인정론이었으며, 국가담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으로 국가담론에 종속되지 않았다. 여성젠더의 여성담론은 여성 보편에 대한 합리적 인간 범주에의 편입 요구, 이성적 여성의 인정, 인식론적 불평등에 대한 수정 요구 등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의 자발적 실천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것이 여성젠더의 여성담론이 근대성과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남성젠더의 여성담론은 어린이교양을 발명하고 제도로서의 주부를 요구함으로써 여성의 모성 환원을 꾀하고, 국가담론 및 가족담론에 여성을 종속시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남성젠더의 여성담론은 여성 개인의 권리·자유보다 국가 발전 및 남성의 여성지배가 우선성이었으며, ``현모`` ``현모양처`` ``제도로서의 주부``가 그 논거로 활용되었다. 남성젠더에게 가족과 모성은 ``근대``라는 포괄적 틀의 어젠다였고, 한국적 근대 모형의 기본 요소였다. 하지만 여기서 여성은 가정의 관리자 및 1차 통제자의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사적 주체 및 공적 주체로 위치지어졌다. 여기서는 체제변혁적인 측면과 체제유지적인 양 측면이 모두 드러났다. 1905년 전의 모성형식은 ``현모론``으로 양처 개념이 현저히 드러나지 않았고, 양처 개념이 추가된 것은 1905년 이후의 제3유형에서부터이다. 현모론에 비해 현모양처론은 여성을 더욱 종속시키는 방향이었다. 남성젠더의 담론에서, 근대초기의 모성형식은 ``양처``보다 ``현모``에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양처``에 중심을 두는 일본의 양처현모와는 다르다. 제2유형인 현모론과 제3유형인 현모양처론에서의 현모 개념의 내포의 차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어른으로부터의 어린이의 분리는 학교와 가정이라는 새로운 규율사회의 탄생을 형성하였다. 사랑과 믿음에 기초하는 색다른 훈육방식이 적용되는 가정에서, 제도로서 요구된 주부는 새로운 입법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았는데, 권리는 ``합리적 폭력으로서의 모성``을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것이었으며, 의무는 ``죄`` 개념의 적용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입법자로서의 주부-여성은 ``약자의 약자 억압성``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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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모성(母性)이라는 주제를 통해 향가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안민가>와 <도천수관음가>에 모성이 형상화되어 있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몇몇 사례만으로는 논의하기 어렵고, 『화랑세기』의 다양한 어머니상 및 모성의 정치적, 제도적 양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화랑세기』의 어머니들은 아들에 관련된 일에 민감하고, 아들을 훈육하며, 아들로부터 사랑받고, 아들 앞에서 참회의 눈물도 흘린다. 그러면서도 인통 간의 갈등, 가도의 전승, 과도한 남성 편력, 아들과의 유별난 친밀감 등 당대적 양상을 드러낸다. 특히, 모성 정치의 비중이 크고 여러 제도에서 모성의 구현을 의도한 점 등은 신라 시대 모성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신라는 골품제를 근간으로 한 신분제하에 색공제, 근친혼제, 모계제, 부권제 등에 의해 운용된 사회였다. 이러한 제도들 속에서 모성보다는 성(섹슈얼리티)이 우선함으로써 어머니역할에서 모성과 성 간의 갈등도 나타나고 마복자와 같은 특이한 제도도 생겨났다. 그리고 모성은 아이 양육의 면에서 개별적이기보다 집단적인 성격을 띠었다. 또한 부권제하의 모계 친족 사회였던 관계로 모성은 부권제에 따른 사회 통합적 가치관을 자식에게 가르치는 역할도 지녔다. <안민가>에서 모성은 사회 현실에 작용하는 사랑의 가치로 이념화되었다. ``신하는 어머니``라고 한 진술은 모계 친족 집단인 진골귀족이 임금을 올바로 보필하고 백성을 잘 부양할 것을 역설한 것이다. 신라 사회에서 차지하는 진골귀족 집단의 역할을 중시한 시대 의식이 깔려 있다. <도천수관음가>에서 모성은 종교적 지향과 실천을 통해 자비의 가치를 드러내었다. 아이의 눈을 뜨게 하려는 모성은 인간과 신 사이를 매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성을 구현하는 주체가 되었다. 자녀를 위해 신앙의 힘을 빌리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모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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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문화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에는 세 가지 유형의 모성이 등장한다. 먼저, 신화적 흔적을 보이는 모성 형상이 있다. 아도화상의 모친 고도령이 해당한다. 고도령은 자식에게 한 나라의 세계관을 변화시켜 새로운 인식지평을 확립시키는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母性神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모성과 비교할 때 아들을 품에서 떼어 엄하게 훈육했던 모습은 유사하지만 이미 규범화 된 가치관을 따랐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일상세계에서 보이는 모성의 모습은 자신보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면모는 <貧女養母>와 <盲兒得眼>·<敏藏寺> 등에서 볼 수 있다. 자기보다 자식을 더 걱정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고, 자식이 곤란에 처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기도에 담아 정성을 다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이다. 그리고 진정법사의 모친은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손순의 아내는 불교적 해석으로 아이를 구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에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던 관세음신앙에서도 모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백월산양성성도기>의 여자에 대해 일연은 모성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백월산양성성도기>는 『法華靈驗傳』의 <羽族慣聞, 而便脫業軀>와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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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임병양란 이후 유교적 질서가 흔들리고 성리학적 논리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18세기, 宗法 제도의 정착 및 家禮의 저변 확대와 맞물려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어머니 服制 담론을 통해 당시 ``禮``라고 하는 규범 속에 투영된 어머니 상을 고찰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服制의 기준이 되는 것은 혈연관계와 명분관계를 규정하는 ``의리``와 ``은혜`` 개념이다. 그러나 소생관계와 양육관계 의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머니 복제의 경우,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가장 극진한 형태로 지켜졌던 아버지 복제와 달리 변수에 따라 다양한 층차가 만들어졌다. 우선 生母라 하더라도 남의 後嗣로 아들을 내보낸 경우에는 降服, 또는 無服의 규정이 적용되었다. 그 은혜를 고려하여 伸服의 근거를 찾는 논의들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두 개의 계통을 둘 수 없다는 종법의 원칙은 ``은혜``보다 ``의리``를 앞세워 생모를 배제하는 쪽으로 논의를 이끌었다. 생모 가운데 黜母와 嫁母의 복제는 의리의 잣대가 더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특히 가모는 열녀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남편과 자식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무복 규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庶母들에 대해서는 ``은혜와 의리의 경중``에 따라 차별화된 복제가 적용되었다. 다만, 경중은 철저히 가부장적 논리에 의해 재단되어, 아버지의 명에 의해 양육 관계가 맺어진 경우에만 친모에 상응하는 복제가 허용되었고 자식을 두지 못한 서모는 어머니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무복이 적용되었다. 남의 아이를 입양하여 키운 養母와 수유를 받을 수 없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키워준 乳母는 혈연이나 종통에 관계없이 ``은혜``만으로 복을 입었다. 그러나 당시 時俗은 신분의 비천함을 들어 복을 입지 않으려 하였고 의식 있는 선비들은 은혜의 중요성을 들어 복을 입어야 한다는 담론을 이끌었다. 어머니 복제 담론은 立後와 蓄妾 등으로 파생되는 복잡한 가족 관계망 속에서 명분과 인정을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논의는 명분(의리)을 중심을 인정(은혜)을 포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흐름은 종법제의 강화, 열녀 이데올로기의 확산, 가례의 저변 확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보수적 움직임과 관련을 갖는다. 그러나 公論의 장에서 한 발 벗어났을 때 사대부들은 그들 스스로가 생모를 따로 둔 자식이기도 하였고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나 유모에게 양육된 사람이기도 하였다. 이들이 생모 또는 서모, 유모를 대상으로 하여 남긴 墓誌銘, 行狀, 祭文 등에는 喪服이라는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예우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회한이 여실히 무르녹아 있다. 담론에서 간취할 수 있는 원론 중심의 강경한 어조, 그리고 사적인 표현 매체 나타나는 자식의 진솔한 눈물은 종법 제도를 지탱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母子 관계의 표면과 이면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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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규방가사와 민요, 계몽가사의 모성 표상을 대비적으로 분석하여 각각의 장르 및 시대, 계층에 따라 작품에 형상화된 모성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자 작성되었다. 본고에서는 모성이 생득적이거나, 또는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고 학습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조선후기에 생성된 규방가사의 경우, 유교적 모성이데올로기를 내면화 한 전형계녀가가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규율 권력 아래 상처 받은 딸아이와의 체험적 연대의식에 기반한 공감적 모성과 하층의 신산한 인생체험을 공유했던 남편과의 애정적 결실이기에 장애인 아들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헌신적 모성 등 신변탄식류 규방가사에서는 儒家의 가부장적 모성이데올로기로 환원할 수 없는 능동적이고 생성적인 모성역할도 나타난다. 하층의 생활체험을 분방한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민요에서는 가족적 경계에서 강요되는 어머니의 역할에 정주하지 않는 모성이 보인다. 戀母謠나 자장노래 등에서는 생명적 원천으로서의 자애로운 모성형상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노동요나 유희요 등에서는 모성 자체를 포기하고 본능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기애적 어머니의 형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민요는 여성의 체험적 자기진술이라기 보다는 허구적 화자를 통한 욕망의 대리실현적 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한 국가존망의 위기적 상황에서 창작된 근대계몽기의 계몽가사에서는 국가주의적 모성 역할이 크게 요구되었다. 어머니는 국권회복과 동시에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에 필요한 국민을 생산하고 양육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구국적이고 애국적인 모성역할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이는 대체로 남성 계몽지식인들에 의해 주창되었던 바, 여성지식인들도 별다른 비판없이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모성은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었던 바, 그 장르내적 유형과 담화방식에 따른 차이 등의 미시적 분석은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과제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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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의 무속신화를 대상으로 모성의 기원과 모성원형에 관해 논의하였다. 모성의 기원은 여성이 신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러한 모성은 생명의 근원이자 모태로서의 자아실현 의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보호의지, 자애라는 감정, 생명의 원천과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을 그 특질로 한다. 그리고 원형은 그 형태를 구성하는 본래적 특질에 초점이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볼 때, 모성원형은 곧 모성의 특질을 지칭한다. 그런데 모성을 구성하고 있는 특질은 모두 대립적 속성을 갖는다. 창조/파괴, 보호·양육/유기·질병, 자애/증오·시기, 지혜/간계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모성원형은 대립적 속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 대립적 속성은 사회적 환경과 가치의 변화에 따라 어느 한쪽이 강조되기도 한다. 특히 부정적 속성은 사회적 환경과 가치의 변화에 따라 부여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모성이 원래 갖고 있던 부정적 속성에 기인한다. 엘리아데가 그의 책 『영원회귀의 신화』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대의 역사주의적 인간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화에 숨겨진 원형에서 인간의 욕구를 다시 읽어내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모성이 갖는 부정적 속성이 아니라 긍정적 속성을 재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바리공주>에서 바리공주가 중세의 역사주의적 인간인 그녀의 아버지를 구한 것, 그러기 위해 그녀가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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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어머니 일 개인의 경험과 인식의 차원 안에 한정되지 않고, 어머니를 둘러싼 여러 제반 환경과의 관련 구도 속에 자리한다. 한편 모성은 여성을 옥죄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장편고전소설에서의 주목할 만한 모성 형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父-母`` 관계구도에서 ``식견 없는`` 어머니로 형상화되는 <임화정연>의 진부인 등의 경우, 아버지의 사유방식과 권위를 내면화하는 전략적 기제의 한 방편으로서 감성을 중시하는 모성은 일체의 가치 없는 것으로 왜곡되면서 ``소외``되고 있었고, ``식견 있는`` 어머니로 형상화되는 <완월회맹연>의 주부인 등의 경우, 수직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이 짙은 부성과는 달리 수평적이고 관계지향적인 모성은 그 가치를 발하면서 ``옹호``되고 있었다. 한편, ``父-母-母`` 관계구도에서 ``이기적·의존적`` 어머니로 형상화되는 <사씨남정기>의 교씨 등의 경우, 일부다처제의 압박 속에서 자식을 죽이거나 버리면서까지 정실 자리를 차지하려 함으로써 모성이 ``遺棄``되고 있었고, ``주체적·이타적`` 어머니로 형상화되는 <화정선행록>의 충효혜 등의 경우, 가부장제적 억압 속에서도 자신을 자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가운데 자식에 연연하지 않고 남편의 또 다른 아내와의 상호 신뢰 속에서 자식을 맞바꿈으로써 모성은 ``교환``되고 있었다. 이처럼 비공식적 담론에 속하는 장편고전소설에는 행장이나 제문 등 공식적 담론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어머니상이 존재한다. 공식적인 담론체계에서는 누락되었을, 당대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모성상에 대한 조명, 나아가 당대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적 가치를 지향하는 혁신적인 모성상에 대한 조명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이는 그 의의가 크다. 조선후기 모성 담론을 적실히 고찰하기 위해서는 장편고전소설에서의 모성 형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 여성묘지명에 나타난 서술 원리와 그 양상

김기림 ( Gi Rim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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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여성 묘지명 서술 원리와 서술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조선시대 여성 묘지명은 남성 문인들이 썼다. 남성 서술자들은 여성 생애를 재구성하고 서술하는 데에 남성 묘지명 쓸 때와는 다른 원리를 적용하였다. 그것은 不出-숨김, 드러내지 않기와 종인 원리, 의가 원리이다. 불출-숨김 원리는 여성에 관한 것들을 드러내어 서술하지 않거나 남성에 속하는 것으로 만들기, 뒤로 숨겨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에 남성 서술자들은 여성의 이름, 자호를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자손을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도 남성 묘지명에 있다고 하는 언급으로써 여성 묘지명에서는 자손을 기재하지 않았다. 남성 서술자들은 종인 원리에 의해 여성 행위를 능동적 형태로 표현하지 않는다.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남성 인물들의 행동, 상황에 따라 여성이 대응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여성 행위에 앞서 반드시 남성 인물들(남성의 가족 범위에 속하는 인물들)을 먼저 거론한다. 특히 남편에 대한 ``따름의 행위``는 상대적으로 부각한다. 이에 남편이 죽은 후의 행실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묘지명 서술자들은 의가 원리에 의해 남편 집안, 곧 시가에서의 행위를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이 가운데서 특히 부각되어 서술되는 것은 가세의 부흥, 시가 남성들의 존속, 가문의 경제적 위세를 드러내는 것과 관련된 일들이다. 이 세 가지 원리는 여성 묘지명 서술자들이 내용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서술 방식도 남성 묘지명 서술 방식과 다르게 한다. 이는 곧 여성 묘지명 글쓰기의 원리이기도 하며 이로써 볼 때 여성 묘지명은 또 하나의 사회 문화 담론의 성격을 지닌다.

조선시대(朝鮮時代) 후궁전기문(後宮傳記文) 연구(硏究)

김미란 ( Mi Ran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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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은 조선시대 왕의 첩을 말하는데 이 중 일부 후궁에 대한 전기문이 전한다. 이 전기문에는 당시 후궁들의 생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즉 그들은 어떤 집안 출신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궁중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또한 궁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어떻게 여생을 보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 전기문의 작가들은 해당 후궁을 이상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몇 가지 미덕을 들고 있다. 예를 들면 해당 후궁이 궁중의 다른 구성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든가 권력과 물질적인 면에 욕심을 지니지 않았다는 내용들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도 있고 또 일부분은 과장이나 허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들은 해당 후궁이 그렇게 보이고자 노력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전기문 작가가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기술한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보이고자 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후궁과 그들 소생 왕자들은 궁중에서 왕위를 둘러싼 갈등이 생길 때 제일 먼저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누구든 간에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인해 왕자들은 늘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견제받았던 것이다. 설사 소생 자녀가 없다 하더라도 궁중에서의 주도권 다툼은 후궁들로 하여금 늘 생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후궁들이 궁중에서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자기 자신은 어떤 욕망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내외에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왕비에게 공경과 예우를 다하고 임금에게 사적인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이렇게 볼 때 전기문 작가가 힘써 강조하고자 했던 후궁들의 여러 가지 미덕은-사실에 입각한 것이거나 과장 또는 왜곡된 그 모습까지도 모두 포함하여-그 자체가 바로 후궁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1920~30년대 동요에 나타난 "누나"의 이미지: "누이 콤플렉스"와 관련하여

김수경 ( Soo Kyung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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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짧고 단순한 노래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린이는 물론 성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노래는 주로 1920~30년대에 걸쳐 집중적으로 창작된 작품들이며, 이들 노래는 아이들의 세계와 심성을 담고 있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넘어서서 ``근대``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논문은 1920~30년대 이른바 ``동요 황금시대``에 창작된 동요 가운데 ``누나``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노래들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당대의 동요에서 ``누나``의 이미지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누나`` 이미지가 다수 채용된 까닭은 무엇인지, ``누나`` 이미지의 노래가 등장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지, 흔히 논의되는 ``누이 콤플렉스``와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밝혀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당대의 동요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다가 멀리 시집을 가게 되는 일상적인 모습의 누나,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을 통해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는 누나, 누나이기보다는 여자로서 봄, 젊음, 청춘의 상징을 나타내는 누나 등의 구체적 양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위 누나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나이 어린 남동생의 모습을 통해 동심의 순수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오빠의 입장에서 손아래 누이동생을 바라보는 누이의 양상과는 차이를 지닌다는 점 역시 밝혔다. 이와 같은 누나 이미지는 첫째, 순수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통해 당대 현실의 구체적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 당대 누나 이미지는 대리모성의 충족감을 상징하는 의미가 강하며, 이 같은 양상은 특히 신여성에 대한 시선이 바뀌는 1930년대에 부각된다는 점 역시 동요가 가지는 의미로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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