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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7권 0호 (2008)

설화 속 여성의 말하기

강성숙 ( Sung Sook Kang )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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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하기’는 사회적 관념과 통념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념을 전면으로 반박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왔다고 하겠다. 본고는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고정관념과 그 파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치평가를 담고 있는 구비설화를 대상으로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시선을 살펴 여성의 말에 대한 태도를 점검했다. 여성의 말하기 방식을 규범적 말하기 방식과 탈규범적 말하기 방식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규범을 비껴서 존재하는 여성의 말하기 방식을 5가지 유형으로 살펴보았다. 1) 말대꾸하기 2) 비밀 폭로하기 3) 공격으로 대응하기 4) 규범 흉내 내기 5) 침묵 깨고 말하기가 그것이다. 남성 화자는 희화화와 금기시를 통해 여성의 말하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는 한편, 자기 교정을 위한 점검의 방편으로 여성의 말하기를 향유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여성 화자는 여성 주인공의 처지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하면서 규범을 조롱하고 여성의 자기 언어 영역을 창조적으로 형성해 왔다. 규범을 벗어나는 여성의 말하기 방식에서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희화화와 금기의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자신을 드러내는, 질서에 포획되거나 규정되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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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여성적 글쓰기의 구체적 방식을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여행`이라는 체험이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남성적 글쓰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그 대상으로는 19세기에 창작된 여성 기행가사 작품으로 작가가 밝혀진 <부여노정기> <이부인기행가사> <금행일기> 세 편을 주된 대상으로 하되, 가사로서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부분적으로 <호동서낙기>와 같은 동시대 산문기록과 비교하였다. 이 세 작품은 19세기 당시 여성에게 있어서 여행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아쉬우나마 19세기 여성 기행가사의 지형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결과, 여성 기행가사에 나타나는 서술상의 특징으로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경험만큼이나 가족 중심적 서술이 두드러진다는 점, 여행 체험은 적절하게 글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에 의해 문학적 표현의 욕구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 이념이나 역사적 배경보다는 정서적 체험이 강조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러한 특징들의 저변에 가문의식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족 여성들의 존재방식, 여행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집안행사의 일부로서 여행이 수행된다는 여행의 목적, 동일한 여행을 소재로 한다 해도 그것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여성만의 방식 등이 놓여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남성작 가사와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19세기는 20세기 근대적 관광문화의 전사적(前史的) 단계로서 20세기가 되면 유람 내지 관광이 확대되고 두드러져 이를 소재로 한 여성가사도 상당수 전해진다. 19세기 여행을 소재로 한 여성가사는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유람, 관광 소재의 가사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여성작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노정의 소개와 견문의 전달에 치중하는 남성작 기행가사와 달리 정서적 위안 찾기와 같은 여행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 논문에서 시도한 접근방식은 여성 기행가사의 특징을 여성의 여행이라는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고, 나아가 19세기 기행가사로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여성 기행 양식의 전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긴요하다. 근대 이후 여성의 여행은 어떻게 달리 표현되고 근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작된 여성 기행 가사 속에서 여성 주체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최근 가사 작품을 창작하는 현대의 여성가사 작가들이 특히 기행의 소재에 치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밝혀져야 문제라고 본다.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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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애담 연구는 지금까지 인류학이나 역사학 분야에서 과거 사실을 복원하는 차원으로 행해진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경험담의 의미는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에 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틀에 있다고 본다면 경험담의 서사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야말로 긴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기존에 정리된 여성 생애담 자료들 가운데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이야기』를 대상으로 그들의 경험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서사화한 경험에 접근해보았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서사구조를, 3장에서는 의미화 메커니즘을 검토했다. 본고에서 살핀 바에 따르면 할머니들의 생애담은 고난의 되풀이라는 공통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자기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즉, 고난을 반복하는 행위는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고난을 감내하는 희생자의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세계 내에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심리적·정신적 시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면서, 스스로의 희생적 역할에 대한 적극적 가치부여를 통해 자신의 행위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지탱하는 것인 양 가장한다. 할머니들의 생애담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들이 자신의 희생과 고생을 `과시`하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을 서술될만한 것으로, 즉 구술 자서전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삶이 하찮으며 보잘것없고 남들에 비해 손해만 본 삶이었다는 피해의식과 그러한 회상에 대한 자부심이 공존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임을 알게 된다.

18-19세기 중국 여성예술가의 소식과 조선의 반응

박무영 ( Moo Young Park )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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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연경을 방분한 조선의 사절단들은 청나라 측 인사들로부터 여성예술가들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가족 내 여성의 예술 활동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태도이다. 청나라 측 인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명말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여성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명말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여성의 공개적인 예술 활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이와 함께 재·덕·색을 고루 갖춘 여성이 이상적인 여성으로 부각되고, 예술적 동지 관계로서의 부부관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문화적 풍토가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의 연행단이 마주친 청나라 인사들의 태도는 바로 이런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청나라 문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조선에 전해졌으며, 정보로 수집되고 점차 지식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지식의 생성은 이윽고 조선 내 여성들의 예술 활동에 대한 태도의 변화로 이어진다. 여성의 공개적인 예술 활동에 대한 이들 남성들의 태도 변화는 여성예술가들에 대한 공개적인 기록이나 여성시문집 출판 등의 조선 내 현상과 연결된다. 출판 상황은 담론적 상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사대부가 여성의 예술 활동에 대한 기록이나 여성시문집의 편집 및 출판은 전적으로 남성에 의해 주관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대부 남성 사이의 담론 변화는 여성 예술가들의 존재에 대한 기록이나 시문집 출판의 최종 심급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몇몇 구체적인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송준길(宋浚吉) 후손가의 언간첩 『선세언독(先世諺牘)』에 대한 고찰

박부자 ( Poo Ja Park )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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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 후손가의 언간첩 『先世諺牘』은 송준길 가문의 관련인물 18명의 언간 40건을 수록하고 있다. 40건 가운데 39건이 애초에 성첩될 때 수록된 것이며 마지막 1건은 후에 덧붙여진 것이다. 애초에 본 자료를 성첩한 사람은 송익흠의 처인 여홍 민씨로 1764년에서 1770년 사이에 성첩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다른 언간첩들과 달리 여성이 성첩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편지의 본문을 배접할 때에 내용을 한 줄씩 잘라 편집한 것이나 수록할 편지의 순서를 배접되는 면에 표시하였던 것에서 여성의 섬세함과 성첩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덧붙여진 1건은 송문희가 송요화의 처인 안동 김씨의 편지임을 확인하여 기록해 둔 것을 후에 송종오가 본 자료의 뒤 표지 안쪽에 붙인 것이다. 40건의 편지가 모두 17-18세기에 집중되어 있고, 시부모와 며느리,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妻父母와 사위, 남매 사이, 고모와 조카 등 여려 관계에서 오간 편지들이다. 장례 혹은 제사와 관련된 것이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생활고 등 그 내용도 흥미로운 것이 많다. 특히 한문에 대한 소양이 있었던 호연재가 한문으로 써 보낸 아들의 편지에 불만을 토로하는 등 여성의 어문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보인다. 최근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 어문생활사를 비롯한 관련 인접학문에도 흥미로운 내용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어사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17-18세기의 연구를 더욱 보완해 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

19세기 여성화가 운초(雲楚)의 회화활동과 그 성격

박영민 ( Young Min Park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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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9세기의 여성 화가 및 여성의 회화 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런데 죽향을 제외하면 여성의 회화 예술의 실제에 관해 논의된 바가 거의 없다. 현재 죽향의 「花鳥花卉草蟲圖」를 제외하면 여성의 회화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의 여성 예술가 雲楚는 문인 및 화가로서 자신의 회화 창작, 감상 및 비평, 수장 활동을 한시로 표현하였다. 19세기의 사대부 및 중인층도 운초의 회화 활동을 詩文으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화가 운초의 모습은 현재까지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 본고는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근거로 그동안의 연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화가, 감상가 및 비평가, 수장가로서의 운초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또한 기생출신의 소실인 운초가 기방과 교방을 벗어나 당대 예술계의 주류 계층의 순수한 예술창작 공간에서 활동하며 예술가로 성장하고 사회적 위상을 확대하여 갔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운초가 같은 신분의 여성들과 문화예술을 공유하며 운초그룹을 형성하고 여성예술가로 활동하였음을 밝혔다. 운초는 19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여성 한시 작가이자 화가였다. 따라서 운초의 회화활동 연구는 19세기의 여성 화가들의 창작 및 예술 환경을 구명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본 연구는 19세기 예술계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내훈(內訓)』과 "소학(小學),열녀(烈女),여교(女敎),명감(明鑑)"의 관계 재고

이경하 ( Kyung Ha Lee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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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소혜왕후의 『내훈』 편찬방식에 관한 실증적 연구이다. 소혜왕후가 서문에서 밝힌바 내훈 편찬을 위해 참고했다는 `소학·열녀·여교·명감`이 실제로 내훈에 어떻게 얼마나 이용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양상을 밝힘으로써, 내훈의 편찬방식과 내훈 텍스트의 성격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해명하고자 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소학·열녀·여교·명감`으로 약칭되는 참고문헌의 간행시기와 판본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인용 텍스트를 추정하고, 이를 내훈 116개 항목의 문장과 대조하여 각각의 출전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해명하였다. 첫째, 내훈 서문에서 말한 "取四書之中可要之言"의 의미는 전대의 문헌들 가운데 중요한 대목의 문장을 발췌하는 `직접인용` 방식을 가리킨다. 즉 소혜왕후의 내훈은 그 전체가 `소학·열녀·여교·명감`에서 발췌한 인용문 116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이다. 둘째, `소학`은 何士信의 『소학집성』으로 추정되고 이것과 일치하는 내훈 항목은 73~82개이다. 셋째, `열녀`는 『고금열녀전』과 『고열녀전』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들과 일치하는 내훈 항목은 14~15개이다. 넷째, `명감`은 초간본 『명심보감』으로 추정되나 의문의 여지가 있다. 초간본 명심보감과 일치하는 내훈 항목이 8개 확인되었으나 모두 소학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여교`가 출전인 내훈 항목은 최소한 12개이며, `여교`는 방징손의 『여교』, 허희재의 『여교서』, 왕직의 『여교속편』 등 규훈서 여러 권을 통칭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런 맥락에서 `여교`와 `명감`이 별개의 문헌이 아니라 `여교명감`이라 불리는 일종의 규훈서 선집일 가능성도 있다. 본고는 내훈 텍스트와 내훈이 인용한 텍스트의 문장을 일일이 대조하여 각 항목의 출전을 밝힘으로써, 중세 유교문명권 중심부에서 형성·전파된 고전문헌과 내훈의 상호텍스트성을 해명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전체 116개 항목 가운데 8개는 출전을 확인하지 못했고, `여교·명감` 또는 `여교명감`은 텍스트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아 후속 연구를 요한다.

한글 필사본에 나타난 한글 필사(筆寫)의 문화적 맥락

이지영 ( Ji Young Yi )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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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들이 보았던 규방가사, 소설, 편지 및 교육서는 주로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있다. 그만큼 필사는 당대 여성들의 어문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에 필사는 단지 텍스트를 얻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필사본의 말미에 적힌 필사후기나 첨기를 보면, 당대의 필사자들은 글씨를 익히거나 그 내용을 학습하기 위해서 필사하기도 했고, 혹은 텍스트를 자세히 읽기 위해 필사를 하기도 했다. 나아가 필사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존재를 필체를 통해서 남기기도 하였다. 이 같은 필사의 의미는 인쇄문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필사문화의 독특한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한글 텍스트의 수용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필사자의 역할이다. 필사자는 단지 텍스트를 물리적인 차원에서 그대로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글 필사문화 안에서 필사자는 단순한 독자와 다른 능동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한글 필사문화에서 작자의 존재가 중시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한글 필사문화에서 작자는 크게 중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작자의 존재성은 필사를 통해 많은 이본이 파생될수록 약해진다. 작자에 대한 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텍스트 안에서 필사자와 서술자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한글 필사문화에서 필사자가 독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서술자로서 텍스트에 개입하고 변형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같은 한글 필사문화는 구술문화와 친연성을 보인다. 텍스트가 고정되지 않고 구연을 통해 변형되는 것처럼, 한글 필사본의 필사자는 텍스트를 변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필사된 텍스트가 필사자의 흔적을 지닌 채 고정된다는 점에서는 구술문화와 구별되는 기록성도 지닌다.

<명주보월빙>의 여성수난담과 서술자의식

장시광 ( Si Gwang Jang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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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하소설 <명주보월빙>의 여성수난담의 양상을 고찰하고 그로부터 서술자의식을 추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기획되었다. <명주보월빙>의 여성주동인물은 가정내적으로, 그리고 여성으로부터 수난을 당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 여성들은 가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함께 남편을 섬기는 동렬 때문에, 또는 남편의 과도한 성욕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된다. 이 여성들은 훼절의 모함을 입거나 굶어 죽을 정도의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그것은 유교 이념을 전파하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과정적이고 실존적인 고난이라기보다는 목적적이고 추상적인 고난이다. 다양한 고난 가운데 육체적 고난이 주로 부각되어 있고 고난의 과정에서 그녀들은 남복으로 개착하여 길을 헤맨다. 그녀들은 결국 초월적 존재와 공간의 도움에 힘입어 편안히 있게 되는데 이러한 장치는 운명결정론을 보여주는 서술자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이들 여성들은 스스로 고난을 해결하는데 이러한 면은 이들의 작품 내적 위상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표면적으로는 남성이 주인공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명주보월빙>에서 수난을 당하는 여성들은 심한 육체적 고난을 겪으면서도 침묵하며 자신의 수난을 언어로 발설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은 그녀들이 유교 이념을 매우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이는 가부장제를 수호하려는 서술자의 의식이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서술자는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여성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는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일정하게 정서적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경본풀이>의 세계관 재고 -"중(中)" 세경 자청비의 의미-

정인혁 ( In Hyouk Jung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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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본풀이>는 주인공 자청비가 농경신인 세경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서사무가이다. 세경신은 상세경, 중세경, 하세경의 3신이 있는데 주인공 자청비는 중세경으로 좌정한다. 본고는 왜 주인공인 자청비가 중세경으로 좌정하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세경본풀이>의 세계관을 살피고자 하였다. 주인공 자청비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세경본풀이>의 서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인물은 자청비이다. 생물물질적이거나 가족혈연적 질서 구조에서, 열등한 자청비가 우월한 지위를 점하는 인물들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선이라는 윤리적 가치의 실천 때문이다. 그런데 자청비에 의해 실현되는 윤리적 가치는 선과 악을 이분법적 대립의 관계로 인식하지 않는다. 자청비의 문제 해결 방식에 있어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용서`에 있다. 용서는 악한 존재이든 선하지 않은 존재이든지 간에 타자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어야 하고 자기 희생이 필연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악한 존재를 벌하고 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비록 그러한 존재들까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타자를 용서하는 것은 심지어 악한 것도 세계의 일부로 인정하는 조화로운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천상적인 존재와 지상적인 존재, 귀한 존재와 천한 존재, 심지어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천상과 지상`, `귀와 천`, `선과 악` 같은 의미 층위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러한 대립적인 자질들이 함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세계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천상적 질서 또는 존귀함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세계 구성 요소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감이다. `中`세경 자청비는 <세경본풀이>의 조화로운 세계 구현의 중심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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