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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9권 0호 (2009)

기획주제: 여성과 법,제도 : 조선 전기 여성의 법적 지위

김은아 ( Eun A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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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사회는 고려사회가 가지고 있던 제도나 관습들에 대한 전면적 시정이 요구되었던 시기였다. 건국초 건국이념 및 그 기초를 주자학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이론을 가지고 국가의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대다수의 집권층은 자신들의 명분을 위하여 종법적 사상하에서 남성중심적 제도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든지 하루아침에 기존의 관습이나 풍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특히 법제도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회제도 등을 더욱 오랜 시간을 두고 변경되어야만 한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식의 변경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이 건국하면서 종법적 이론하에 건설하고자 하는 제도들 즉 여성의 지위를 폄하시킬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던 제도들 역시 조선 전기를 지나서 17세기 이후에야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전기사회에 있어서 여성의 법적 지위는 후기에 비해서 상당히 평등적 관계에 있었다 할 수 있으며, 이는 혼속의 영향과 재산상속의 관습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가운데 종법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강화와 여성의 순결 내지는 순종의 강요로 인하여 조선 후기와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는 더욱 불평등한 지위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남녀종속적 관계가 아직 확고히 자리 잡기 전인 조선 전기 사회에서의 여성의 법적 지위를 통해 당시 여성이 가졌던 사회적 위상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변질된 여성상에 비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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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성에 대한 연구는 주로 혼인·상속 등 가족·친족제도와 관련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봉쇄되어 있었으므로, 가족이라는 私的 공간 속의 여성이 아닌 公的 영역에서의 활동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여성의 법제적 지위를 刑政과 관련하여 파악하려는 연구 역시 미진한 형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여성이 저지른 범죄와 그에 대한 형벌의 집행과정을 통해 이들의 법적 지위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고려후기 여성의 범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간통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경우 당연한 결과이지만 타인간 간통보다는 친족간 간통이 더 강력한 처벌을 받았으며, 대개 奸罪는 유배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라는 정상이 참작되어 죄를 면해주는 특이한 사례도 있었다. 왕에 대한 저주로 인해 불경죄를 저지르거나 남편을 살해한 악역죄를 범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여성 당사자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이지만 연좌로 인해 처벌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개 남편의 반역이나 모반 등에 연루된 사례였다. 아울러 죄인의 가족과 재산을 관에 몰수하는 적몰로 말미암아 여성이 官婢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여성에 대한 처벌 방식의 하나는 恣女案이나 遊女籍에 등록시키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는 그 자손에게는 限品이나 禁錮되는 불이익이 뒤따랐다. 또한 신창관과 같은 기관에 소속시켜 상인을 접대하는 등의 특별한 역에 충당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반란에 연좌되어 경刑을 당하고 노비로 전락하거나 간통으로 인해 머리를 깎이어 절에 유치되기도 하였다. 여성은 때로 남성, 주로 남편에 의해 사적 처벌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였다. 대개 간통과 관련된 사건에서 남편의 자의적 형벌이 시행되었는데, 이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으로 보아 여성에 대한 법적 보호가 매우 느슨했다고 판단된다. 심지어는 딸이나 처를 매매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사법적 보호 장치에서 소외된 여성의 현실적 삶을 잘 보여준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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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大明律』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법조항 속에서 `처첩`, `처`, `첩`이 구분되어 쓰인 양상을 분류하여, 조선 국가의 공식적인 규정 속에 처/첩의 위계가 만들어지고 배치된 방식을 알아 본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구타, 간통 등 각종 범죄 및 범죄자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한 규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처첩`으로 묶어서 논의된 조항은 국가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경우, 처첩에 대한 남편에 대한 절대적 권위와 소유권에 관계된 경우, 남편의 부모 등 존장과의 관계에 대한 경우 등이 있다. `처`와 `첩`이 구분되어 표현된 경우는 일상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남편의 구타, 남편의 친인척과 처첩의 관계, 처첩의 자녀를 둘러싼 관계, 처의 권한을 보호하는 문제 등과 관련한 사항에 대한 것이었다. 이 때, 첩에 대한 처벌은 처에 비해 `1등급`에서 `3등급`까지 가중 또는 경감되었다. 그러한 등급은 처/첩과 갈등이 빚어진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세밀한 차이를 보였다. `첩`이라는 존재는 조선의 가족관계 속에 완전히 포섭되지도 못하고, 완전히 배제될 수도 없는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첩에 대한 규제를 통해, 가의 구성원과 그들 사이의 신분관계에 대한 위계는 세세하게 설정되었다. 첩은 단순하게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가족과 신분의 위계를 설정하고 확고하게 만들고 작동시키는 하나의 `매개`였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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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案>은 檢屍文案의 줄임말로, 조선시대의 시신검사 소견서이다. <검안>에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이루어진 개인 간의 폭력, 집단이 개인에 행한 폭력 등이 매우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본고에서는 <검안>을 통해 조선시대 여성들이 가정이나 사회 속에서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가, 법이나 사회적인 제도는 여성을 얼마나 보호해줄 수 있었던 것인가, 여성들은 이러한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조선시대의 법률은 三綱五倫 중시의 유교적 이념을 반영하면서 가족 윤리 침해행위, 사회 신분질서 침해행위를 중대 범죄로 간주하였다. 이에 따라 개인의 가족과 친족 내부에서의 등급, 사회적 신분질서 안에서의 등급, 국가적 조직 체계 안에서의 등급에 따라 범죄인에 대한 刑量을 크게 달리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정 내 처와 남편의 관계에 적용되면, 남편에 의한 처의 통제를 옹호하고 夫妻간의 위계질서를 夫 중심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가정 내의 남성은 여성에 대해 신체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곧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일상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여성은 남성에게 폭력을 가할 수도 없었다.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도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가정 내에서 여성들은 배우자 혹은 시집 식구들에 의한 폭력에 쉽게 노출되었다. 그러한 인식과 태도가 지역 사회로까지 확장됨으로써, 여성들은 지역 사회 곧 향촌 내에서도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반면, 여성들의 폭력은 때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가족 곧 남편·시부모·자식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여성들이 가족과 관련된 폭력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거나 영웅시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 것이었다. 아니라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견디다 못해 오히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태도는 국가와 가정의 통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의 통제가 관철되어 갔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획주제: 여성과 법,제도 : 대하소설의 여성과 법 -종통, 입후를 중심으로-

장시광 ( Si Gwang Jang )
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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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하소설에 보이는 종통과 입후 서사를 당시의 법, 제도과 연관지어 분석하고, 그것을 여성 향유층의 심리 및 현실과 관련지어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씨삼대록>에서는 대종(大宗)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대종으로 세우려다 실패하는 여성 위씨가 등장하는데 그녀가 지닌 생각 자체는 합법적이었으나 그 수단이 불법이라는 점에서 아니러니하다. 결국 위씨는 병사하고 그 아들은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이는 종통에 저항하는 자에게는 가혹한 징벌만이 가해진다는 서술자의 시각이 개입된 결과이다. <유효공선행록>에는 종장 세우기와 입후 과정이 총 세 번 등장하는데 그 과정 모두 불법적이며 또 그 사이에는 여성이 모두 배제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작품이 남성 사이의 효와 우애에 치우친 나머지 여성이 서사에서 소외되었다. <명주보월빙>에서 종통계열의 남성인물이나 비종통계열의 여성인물 모두 법을 어긴다는 공통점이 보이지만 그 징벌은 종법제를 전복시키려는 비종통계열의 여성인물에게 한정되어 있다. 이를 통해 종법제를 유지하려는 서술자의 강고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성현공숙렬기>와 <완월회맹연>에서는 종장인 형이 아우의 장자를 입후(立後)하여 종장으로 삼는데 이는 법규에 완전히 어긋하는 행위이며, 다만 친생자가 생겼어도 입후자를 파양하지 않는 것은 혈연보다는 의리를 중시하는 종법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이를 보면 두 작품에는 법규도 무시할 수 있는 가장의 절대권과, 한편으로는 종법제를 준수하려는 의식이 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하소설에서 아우의 장자를 입후하는 서사는 현실 세계의 사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고, 서사에서 자식이 있음에도 입후를 한다는 설정은 현실 세계와 맞지 않는 점이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현실의 갈등을 좀 더 예각화하기 위해 마련한 서사적 장치로 해석된다. 대하소설에는 표면적으로는 부계 중심으로 서술되지만 이면을 보면 모계 역시 중시한다는 점이 발견되는데 특히 부정적인 사건일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이는 남성의 잘못을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남성 중심적 시각의 발로이다. 또 종법제의 유지를 방해하는 여성인물이 자기 자식과 연합하는 것은 자궁가족의 결합으로서 자궁가족은 긴밀하게 결합되지만 끝내 해체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자궁가족을 용인은 하지만 가부장제를 파괴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개재된 결과이다.

<며느리-단혈>의 연행과 젠더화 기획에의 동화와 탈주

김영희 ( Young Hee Kim )
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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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단혈>은 어느 장자의 며느리가 시주승에게 `손님이 많아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시주승이 제시한 단혈(斷穴)을 직접 시행하는 바람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구전서사다. 며느리는 시댁을 망하게 할 의도를 전혀 갖지 않은 채 단지 자신의 노동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주승에게 조언을 구하고, 집안의 부(富)가 명당이나 특별한 바위에 깃든 성스러운 힘에 연원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 채 혈을 파괴한다. 그러나 플롯을 통해 가문의 몰락이라는 파토스를 이끈 비극적 결함은 며느리의 과오로 규정되고, 파국의 충격 때문에 이 과오는 필연적 결함을 넘어선 윤리적 `죄`로 재단된다. 현재까지 약 200여 편이 넘는 자료가 조사·보고된 <며느리-단혈>은 90% 이상의 연행자가 `남성` 개인 혹은 `남성` 집단이다. 특히 이들은 공동체의 지식과 가치를 전수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토박이 이야기꾼들로서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선전함으로써 자긍심을 드러내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지탱하는 규범을 훈육하고자 하는 의도로 연행을 이어나간다. 일대일의 연행이든 집단적 연행이든 간에 <며느리-단혈>의 연행은 `남성` 동성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별 연행자를 동질적인 `남성`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입사적(入社的) 효과를 창출한다. 지역이나 국가로 결집하기에 앞서 가문 공동체로 결속되어야 하기에 가문의 번영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남성` 주체에게 <며느리-단혈>의 연행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과거에 권세와 부를 누렸음을 증명하는 작업이 되기도 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집안이 몰락하게 된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가문의 몰락이 며느리의 과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남성 연행 주체의 현실에 존재하는 가문 집단 간의 경쟁에서 오는 긴장감이나 권력 관계에서 비롯된 상대적 열등감을 회피하기에 좋은 방어기제를 제공한다. <며느리-단혈>의 연행이 `죄`를 가진 `여성`과 이 `죄` 때문에 언제든지 `파멸`할 수 있는 `남성`이라는 정체성의 시나리오를 연행 주체에게 기입하고 수행케 함으로써 젠더화된 주체를 형성한다고 할 때 이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주체의 자발적 동화와 공모에 기초한다. `여성` 연행자들이 때로 더 신랄하게 며느리의 과오를 질책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구전서사의 반복적 연행은 전승의 지속성에 견인되는 경향성 외에 변화에의 지향을 내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여성의 죄`라는 젠더화의 기획에도 균열이 발생한다. `남성` 주체 스스로의 모순과 자기 반성, 혹은 `여성` 주체의 연행 참여 확대와 반항적 재맥락화를 통해 `남성`의 비극이 `여성`의 과오에 기인하는 것인지 회의적으로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연행의 다성성과 서사·연행 층위 간의 이질적 틈새가 <며느리-단혈>의 연행에 작용하는 젠더화 전략의 기반을 흔드는 탈주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정재 유치명의 여성형상 -정재집 소재 여성관련 저술을 중심으로-

김현미 ( Hyun Mee Kim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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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1777∼1861)은 조선말의 학자이며 문인으로, 19세기 영남 성리학의 계보를 잇는 선비로서 알려져 있어서, 기존 문학연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존재다. 본고는 정재집에 실린 여성 관련 저술들을 대상으로 정재가 여성 형상화 면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면에 집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정재가 여성을 대상으로 저작한 글은 의문, 제문, 묘고문, 행록 및 행략, 열(효)록 후서 등의 형식으로 총 22편이 있었다. 이 중 여성 인물을 대상으로 한 글을 가족 및 친지를 대상으로 한 글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살폈다. 여성 대상 비지, 애재 전장류 창작이 정착되는 17세기 이후로부터의 창작 경향을 보면, 가족 혹은 친지를 대상으로 한 글들에서는 가정 내에서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특화되어 있는 `개성적인 여성상`이 드러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는, 훌륭한 여성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이상적인 여성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재가 그 가족 구성원을 그리는 글을 쓸 때, 글의 갈래상 `제문`(祭文)보다는 행록(行錄) 혹은 행략(行略)을 압도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인과의 애틋한 기억을 그리면서 그들의 부재(不在)를 슬퍼하는 감정의 토로인 제문보다는, 너무나 훌륭하고 본받을 점이 많기 때문에 후세에 묻힐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본 바와 믿을 만한 타인의 증언들을 합쳐서 짓는 행록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록의 선호는, 자신을 길러주신 외할머니 제문인 <祭外大母淑人驪江李氏文>조차 행록의 형태로 지어 놓은 것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여기서 형상화 되는 여성들은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길이 기억할만한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인간상은 구체적으로 `넓은 마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근면`을 통해 집안을 잘 운용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이상적인 여성상`을 본격적으로 그렸다고 생각되는 묘지, 묘갈명 중심의 가족·친척 외 여성 대상 글을 살펴보면, 그가 형상화 해 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대상 글들의 여성들이 거의 남편을 일찍 먼저 보내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그 대처 방법으로서 단순한 `따라죽음` 보다는 `일단 살아남되, 期亡(눈 앞에 있는 할 일을 끝낸 뒤 꼭 죽을 것임)을 잊지 않는 굳은 의지`를 발현한 것을 `절의` 혹은 `열`로서 높이 평가한다. 두 번째는, 근면을 넘어선 `집안 경영` 이라는 여성의 경제활동에 주목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적극적으로 권장 혹은 인정하지는 않고, 이것은 오로지 집안에 있는 가장(주로 아버지 없는 아들)의 완전한 수신(修身)을 위한 것이며, 제사를 받들고 빈객을 접대하며 구제를 하는 목적에서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 혼재되어 있다.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의 한시(漢詩) 硏究

맹영일 ( Young Ill Mae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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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당 김씨는 여성의 문학창작이 쉽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긴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한시 작가이다. 삼의당의 시는 내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이고, 둘째는 개인의 감정을 읊은 시이다. 삼의당은 `시는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문학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공부한 유학 경전을 통해 유학적 사유를 체계화 하여 문학으로 표현하면서도, 아울러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묘사하였다. 삼의당은 당시의 사대부 여성들이 받았던 교육을 통해 유학적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내면화된 유학의 이치를 따라 살고자 하였으며, 이는 시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러나 삼의당이 유교적 예의범절에 갇혀 개인의 감정을 감추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의당의 한시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을 적극적으로 묘사하였다. 당대의 사회적 경향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개인의 감정-사랑이나 그리움 등-을 자연환경이나 일상생활 등 주변의 소재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삼의당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부부간의 애정묘사는 조선후기 사대부 여성이라는 작가의 신분적 지위를 고려하면 큰 의미를 가진다. 감정의 표현에 소극적이었던 다른 여성작가들과는 달리 사랑에 대한 적극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삼의당 한시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작가의 의식세계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덴동어미화전가>에 나타난 욕망의 시간성

박성지 ( Sung Ji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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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덴동어미가 어떻게 비극적인 운명을 극복했으며, 주위의 여성들과 깨달음과 기쁨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밝혔다. 가부장 사회의 여성욕망은 남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네 번이나 개가했다는 것은 이 욕망의 구조를 끈질기게 유지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본고는 특별히 `사이`에 집중해서 서사를 분석했다. 사이란 남편 사후부터 개가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이전과는 다른 삶이 어떻게 직조될 수 있는지를 탐색할 수 있다. 덴동어미는 네 번의 사이를 거쳐, 마침내 가부장제의 여성욕망을 벗어나는 데 이른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여성들은 크게 깨달으며 기뻐한다. 이것이 연대를 구축하는 힘이다. 텍스트의 형성, 정착, 향유가 이 연대에 연속성을 부여하면서 감응에 의한 문학적 공동체를 이룬다.

20세기 초 여훈서(女訓書)의 존재 양상과 의미

임미정 ( Mi Jung Lim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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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의 여성 교육서로 알려진 `여훈서`가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존재했음을 밝히고 그 의미를 살핀 것이다. 지금까지 여훈서에 대한 연구는 조선시대에 한정되어왔다. 그러나 여훈서는 20세기에도 가문 내에서 유전되고 있었으며, 상업적으로 출판되기도, 여학교가 설립된 후에는 교과서로서 재탄생하며 존재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20세기 초에 간행된 여훈서를 찾아, 기존 여훈서와의 대비를 통해 그 내용이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이는 규범을 제시하는 여훈서의 보수적인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양상으로 여학교 교과서에서 여훈서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전 시대의 여성 교육이 주로 가정 내에서 여훈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면, 19세기 말부터는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교과서를 통해 대체되면서 여학교의 가정·윤리·국어 교과서 일부에서 여훈서의 모습이 감지되는 것을 살핀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는 여훈서에도 변화의 조짐이 포착된다. 몇몇 여훈서는 편지 예문과 함께 편집되고 있어서 당시 모범 척독집의 유행과 관련지을 수 있다. 이는 여성에게 추가적으로 요구된 지침으로도 읽을 수 있고, 여훈서의 판매고를 위한 상업적인 목적에서 파생된 형태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본고는 20세기 초에 간행되거나 이전 시대부터 이어진 여훈서를 통해, 여훈서가 시대에 따라 적절히 변형·재배치되면서 존재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지층에서 다수의 일반 여성을 선도·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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