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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0권 0호 (2010)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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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회에서 여성의 성 역할은 ‘가정을 부양하는 어머니’로 기획된다. 어머니는 가사 노동만이 아니라 경제 활동을 통해 가정을 지켜야 한다. 이에 비해 남성은 가정에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활동에 주력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제주도 본풀이에 나타나는 여신에 대한 남신의 우위, 도덕적 남편과 현실적 아내, 남신과 여신의 생산 직능 분화 등은 본풀이가 구현하는 젠더의 양상이 현실 사회에서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본풀이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성 역할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기만 하는 주입 담론이 아니다. 본풀이는 제주도 여성들이 제주도 전통 사회의 조상-자손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합의한 여성의 역할-‘구성된 모성’-을 확인하는 담론이며, 또 현재의 젠더 구조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하중과 고통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고통스러운 역할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담론으로서 기능한다. 본풀이는 제주 여성이 사회적 젠더를 수용하고, 그것의 ‘포월(匍越)’로 재구성된 여성의 역할을 내면화하는 기제라는 점에서 제주도의 여성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본풀이는 여성적 가치나 원리의 구현을 현재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제주도 본풀이의 여성문학적 의의는 이 지점에서 다시 확인된다.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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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는 전통시대 어디에나 있었던 인간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16세기 경상도 성주지역에 살았던 이문건의 <묵재일기>를 대상으로 하여 가내사환여비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문건은 특별히 자신의 노비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그만큼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문건은 자신의 노비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지배자였으며 특히 그의 일기 속에 그려진 자신과 세계의 모습은 더 그러하다. 이것을 ‘이문건 왕국’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가내사환여비들을 철저하게 대상화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그녀들에게 집안팎의 일상적인 일들을 부여하고 그 일들에 대해 감독한다. 만약 잘못하면 가차없이 체벌을 가한다. 또 의술에 밝았던 이문건은 여비들이 병이 들면 정성을 다해 치료해 준다. 이렇게 완벽하게 이문건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 같은 이 이문건 왕국은 사실 이문건 식구보다 몇 배에 달하는 여비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그녀들은 대상화된 객체가 아니라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였다. 이문건 왕국은 여비의 왕국이었던 것이다. 이문건의 가내사환여비 중 억금이라는 여비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의 좋은 예이다. 그녀는 힘도 세고 음식이나 집안일을 잘해 이문건의 총애를 받는다. 물론 종종 실수를 저질러 이문건에게 체벌을 당하기도 한다. 그녀는 이문건의 딸과 아들이 죽을 때 간병을 해서 신임을 받는다. 재산도 제법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여종은 기록에 따라서 기억에서 지워진 불운한 인간군이다. 그녀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 할 수 있는 한 그녀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 연구자의 과제일 것이다. 그것은 당시 사회에서 다수였던 여비의 다수성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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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여성 문화의 지역성(地域性)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논문 가운데 하나로,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집안에 내려오는 한글 편지를 중심으로 은진(恩津) 송씨, 더 나아가 충청 지역 여성의 삶과 문화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편지에 나타난 여성 관련 호칭과 어투를 살펴보면, 송준길 집안에서는 딸들에게도 대부분 한자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시집간 딸에게는 `-집’이나 `-실(室)`을, 며느리에게는 `-듹’ 자를 붙여 대체로 집안의 가계를 잇는 며느리를 딸보다 더 우대하였다. 또 시집 어른이 손아래 며느리나 제수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하게체’와 `하오체’를 섞어 쓰고, 시숙이 제수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 자를 붙여 존대하였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송씨 집안의 며느리들은 대갓집 며느리답게 큰살림을 꾸리면서 접빈객?봉제사의 무거운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송요화의 처 안동 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산과 수입 같은 바깥살림은 집안의 가장에게 일임하고 집안 재산의 관리나 증식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아버지나 남편, 아들에게 양식이나 반찬거리, 돈 등을 타서 쓰고 살림 지출 내역을 보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 부인의 덕을 칭송한 행장이나 제문 등을 보면 남편들이 집안 살림에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을 부인네의 중요한 미덕으로 제시하곤 하였으나, 송씨 집안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한편 자손의 공부를 위해 갓 결혼한 아들 부부를 떼어놓고 10대 초반의 어린 손자를 혹독하게 다그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안동 김씨가 양식을 빌리기 위해 삼산군수에게 직접 쓴 시가 무리 없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거나 며느리 여흥 민씨가 시아버지와 집안 친척의 관직과 도목에 대해 의논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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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서북지역 여성의 지역성을 밝히고자 서북지역의 관비와 열녀에 대한 기록을 검토한 것이다. 이 논문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 사건이다. 첫째는 1583년(宣祖16)에 일어난 이른바 ‘옥비(玉婢)의 란(亂)’이다. 이 사건을 통해 서북지역 관비의 쇄환이 체제 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사료에 나타나는 서북지역 관비에 대한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관비에 대한 신분적, 제도적 구속을 살피고, 관비의 이탈과 축첩이 남성관료의 축첩욕구와 관기의 신분상승욕구가 결합한 결과임을 확인하였다. 서북지역은 관비에 대한 체제의 억압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곳으로, 관비의 이탈과 축첩은 신분제도와 국가운영의 구조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는 1734년(英祖10)에 발생한 남병사(南兵使) 이의풍(李義?) 피습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중앙문인과 지역문인의 상이한 시선은 서북지역 여성을 입전한 열녀전에서도 드러난다. 성리학적 이념을 추종하는 지역문인이 묘사한 서북지역의 열녀는 이념적 산물로 포장된 보편적 여성상이다. 하지만 중앙문인이 묘사한 서북지역의 열녀는 성리학적 이념의 보급이 늦었던 지역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이 묘사한 서북지역 여성의 열행은 여성에게 부과된 이념적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한 의리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위에 가깝다. 이러한 열행은 지역사와 지역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서북지역 여성의 지역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할 수 있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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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16세기 호남한시의 표현상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남성작가의 여성화자시에 주목하였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출발의 이유는 지금까지 16세기 호남문학의 특징을 논하는 자리에서 `여성화자`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전체 작품을 두고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이다. 그리고 논문의 궁극적인 목적을 호남한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데에 두었다. 본 논고에서 파악한 16세기 호남한시 중 여성화자 시문은 대략 총 34제 38수정도인데, 이 중 다수의 작품이 당시풍(唐詩風)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당시풍(唐詩風)과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본 논고는 16세기 호남한시 여성화자의 유형을 `여성화자의 자기 동일시`, `상상공간의 모의 화자`, `현실공간의 實在 화자` 등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나눈 기준은 작품의 배경을 알려주는 표지 유무를 따진 후 그 배경을 적극 존중하여 작품을 바라보았고, 둘째 작품의 공간적 배경과 여성화자의 현실성 여부 등을 따졌다.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자들이 16세기 여성화자 시문을 한 가지로 묶어 몰개성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16세기 호남한시의 여성화자 시문을 보더라도 작가별로 나타낸 시문의 양태와 여성상 등이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시사적인 측면에서 간과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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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김금원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보다 실체적으로 분석하여 산수문학으로서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가 지닌 문학적 가치를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금원은 강원도 원주 지역의 영기(營妓) 출신으로, `금앵(錦鶯)`이라는 기명으로 당대 문사들에게 이름이 나 있던 상태였다.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와 여타 문인의 문집을 토대로 하여 금원의 생애를 재구성한 결과, (1)김덕희와의 결연 이전에 경험한 1차 유람은 영기(營妓)의 신분으로 직역을 수행하면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2)김덕희와 결연한 시기는 25세에서 29세 사이며, 40세 이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는 산수문학으로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드러낸다. 우선 여러 차례의 유람을 한데 묶어 제시함으로서 남성 문인에 못지 않는 자부심을 드러내고자 했음을 지적하였다. 둘째로 견문을 알리는 데에 있어서 폭넓게 전고를 끌어다 쓰며 현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들었다. 셋째로, 기문(記文)임에도 불구하고 詩 못지 않게 정치한 대우법과 구체적인 묘사를 사용하고 있어 유려한 산문 미학이 돋보이고 있음을 들었다. 이들은 모두 금원이 스스로 남자도 이루기 쉽지 않은 유람의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활용해 기록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금원은 전통적인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유람관을 지녔다. 그 까닭은 그와 주로 문학 활동을 함께 했던 인물들이 사대부가의 남성 문인들이었기 때문으로 파악하였다. 또 금원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유람 경험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여성 혹은 소실을 넘어 `군자`로 인식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이렇게 그가 처한 신분적 상황과 작자의 화자로서의 상황이 괴리되어 나타나는 까닭은 대다수의 독자를 강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작품의 특성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저술 활동을 개인적인 차원에 한정시키려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자신도 남성 사대부 문인과 똑같이 혹은 더욱 우월하게 문학적 재능과 그에 상응하는 경험을 지녔음을 과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시도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의 가치를 동류들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것은 서술 주체로서 자아를 인식했음을 드러낸 것이라 파악하였다.

전기소설의 젠더화된 플롯과 닫힌 미학을 넘어서

김경미 ( Kyung Mi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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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은 보편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서사가 담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누구의 서사이며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는가에 따라 플롯은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플롯을 성적 위계나 성적 억압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성장치(gender-sexuality appratus)로 본다. 성장치는 서사의 플롯이 구성, 재구성되면서 성적 이데올로기가 작동되는 방식을 보여주기에 유용한 개념이다. 성장치의 개념으로 전기소설의 서사를 분석한 결과 <최치원>은 ‘구원받아야 하는 여성, 구원하는 남성의 서사’, <이생규장전>은 ‘소극적인/달아나는 남성, 적극적인/희생하는 여성의 서사’, 그리고 <주생전>은 ‘사랑이라는 폭력의 서사’를 구현하는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혔다. 남성 욕망을 정당화하는 이러한 플롯은 연애서사의 한 전형으로 나말 여초로부터 조선후기까지도 계속 재생산되었다. 그럼에도 전기소설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예교에 대한 도전의 의미로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 글은 그간 전기소설 연구가 남성 중심적 연애 이데올로기가 드러나지 않은 채 고독감이나 비극성의 측면을 강조하여 미적 특질이 작품에 내재하는 것 이상으로 평가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가부장제적 쾌락을 생산해 내는 플롯을 미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판단하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전기소설의 미학도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고 본다. 여성주의 문학 연구는 남성들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기존의 이론이나 미학의 전제에 대해 계속 질문해 왔다. 이러한 질문들은 남성들의 문학을 중심 또는 보편의 위치에 두는 전제에 대한 도전이자 문학 연구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연구도 그러한 질문 중의 하나로 플롯 자체가 젠더화되어 있다는 점, 그것이 여성/남성 주체를 형성하는 성장치로 작동해 왔다는 점,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문학연구의 남성 중심성에 기인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박씨전>의 통속화 양상과 그 사회적 의미

서혜은 ( Hye Eun S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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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박씨전>의 통속화 양상과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박씨전>은 필사본과 활자본 이본이 현전하는데,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된 활자본은 표제에 따라 각각 <박씨부인전>과 <박씨전>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활자본 <박씨부인전>계열의 결말에는 <임경업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임경업과 관련된 서사가, 활자본 <박씨전>계열의 서두에는 이시백의 출생담과 결말에는 <임경업전>의 내용이 추가되어 원본의 형태와 멀어지면서 통속화되었다. 활자본 <박씨부인전>계열의 결말에 추가된 부분은 원본의 형태를 취하는 고대본 계열을 제외하고는 <박씨전>의 모든 이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박씨전> 전체 이본에서 활자본 <박씨전>계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따라서 활자본 <박씨부인전>계열과 <박씨전>계열 모두 통속화되었지만 활자본 <박씨부인전>계열은 대중성을 확보했고, 활자본 <박씨전>계열은 통속화된 정도가 지나쳐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활자본 <박씨부인전>계열과 <박씨전>계열의 통속화된 양상을 191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었을 때, <박씨부인전>계열은 박씨의 우월성을 국가를 위한 충(忠)과 절(節)을 위한 행위로 귀결시켰으며 <박씨전>계열은 당대 정치 체제에 순응하고 지배 질서를 정립하고자 하는 보수적 시각이 표출된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의 아픔으로 읽는 <방한림전>

서신혜 ( Shin Hye S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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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림전>은 여성 간의 혼인을 그렸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연구자들은 주인공 방관주와 영혜빙이 당대 가부장적 사회의 남녀 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기존 체제에 역행했다고 설명하면서 이 작품의 의의를 설명하고는 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의미 부여에 앞서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개인의 삶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방관주는 사회와의 접촉이 있기 전부터 이미 남성의 속성을 드러내고 남성의 삶을 산다. 이후 성장해서 살면서도 육체는 여성일지라도 내면으로는 늘 남성의 삶을 산다. 평생의 삶을 사는 동안 그는 내면의 성과 외면의 성의 불일치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산다. 이 작품은 그런 한 개인의 삶과 불안과 꿈, 그리고 그 좌절을 그린 것이다. 물론 작품 후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의 행동과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봉합해 버리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런 소수 존재의 실체와 그 아픔을 드러내는 작품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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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씨양웅쌍린기>는 현씨 가문의 두 형제인 현수문과 현경문이 혼인을 통해 가족 형태를 확대해감에 따라 발생하는 다기한 갈등을 가족 서사의 중심 내용으로 상정하면서 현수문·현경문 형제의 혼인 과정과 부부 생활의 문제를 서사화한 작품이다. 특히 차자인 현경문과 주소저의 부부 불화는 이 작품의 중심 서사를 형성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부부에 대한 관심이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이를 조정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부부를 둘러싼 결혼생활 서사는 부부간의 은밀한 사생활로서가 아니라 가족의 공동 관심사로 부각되어 박진감 있는 전개와 사실적인 서사적 설정으로 구조화되었다. <현씨양웅쌍린기>는 부부관계와 결혼 생활을 단지 부부만의 ‘사생활’이 아니라 ‘현씨 부중(玄府)’의 ‘공사(公事)’로서 조명했다. 현경문-주소저의 부부불화를 ‘가족스캔들(family scandal)’로 호명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부부관계에 직계·방계가족이 총동원되어 부부생활을 ‘엿보고(窺視)’, 주시하며 ‘소문’으로 만드는 가족의 태도를 일종의 ‘포용 가능한 상황’으로 서술하는 시각과 태도에 근거해 있다. 가족의 관찰과 개입으로 부부불화가 심화되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이는 ‘문제적’인 것으로 조명되는 경우보다 웃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가족 장 안의 ‘관습’으로 용납된 경우가 우세하다. 이는 부부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직계·방계 가족들의 태도를 ‘간섭’이 아닌 ‘관심’의 표현으로 수용하던 문화 관습이 투영된 결과이자 가족의 삶을 개인적 삶과 구분하지 않던 문화 관념의 소산이다. 동시에 사생활의 영역으로 닫혀 있던 ‘부부 생활’을 소설이라는 공공의 독서물을 통해 개방하기 위해 고안된 서사적 장치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이 두 측면이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부생활, 특히 불화하는 부부관계에 대해 사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 내면을 온전히 공개하지 않는 주소저가 ‘고민’과 ‘갈등’을 안고 결혼생활을 지속하며 ‘탈주’를 꿈꾸는 태도를 주요하게 서사화함으로써, 결혼생활에 갈등을 겪는 여성 독자의 현실과 공감 형식의 연대를 취하고 있다. 작품의 마무리에서조차 현경문-주소저 의 부부 갈등은 완전한 해소로 확정되지 않은 채, 지속 가능한 잠재적 갈등을 함축하면서 화해적 관계 조절 방식과 부부생활 지속에 관한 현실적 응답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이 작품이 혼인 생활과 부부 관계 갈등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고 추동했던 통속적 독서물이자, 혼인 이후에 비로소 전개되는 애정 문제에 관해 부부 관계 서사로 접근한 멜로드라마적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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