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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3권 0호 (2011)
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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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령 사회의 주역이 될 한국 여성노인의 잘 나이들기를 안내하는 개념으로서 행복한 노화, 긍정적 노화, 성숙한 노화 개념에 관해탐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65세 이상의 인구에서 나타나는 남녀 비율의 확연한 차이를 통해 고령화의 주역이 여성노인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 개인의 행복추구 대 사회의 부담 증가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3장에서는 연령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그 노화에 잘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생산적 노화, 건강한 노화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성공적 노화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한국 노인의 경우 성공적 노화에서 자녀와 가족이 갖는 함의가 매우 크며,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마음복이 한국인의 성공적 노화 요소에 포함되는 문화적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성공적 노화의 문화적 함의를 논의하였다. 4장에서는 한국 여성노인의 잘 나이들기를 안내하는 개념으로서 행복한 노화, 긍정적 노화, 그리고 성숙한 노화를 논의하였다. 행복한 노화란돈과 건강과 같은 물질적 조건보다는 따뜻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임을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고찰하였다. 긍정적 노화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고 발전되는 측면에 초점을 두어 노인에게서 감사와 지혜가 갖는 긍정의 힘을 고찰하였다. 끝으로 성숙한 노화 개념에서는 유학사상에서 제시하는 군자와 성인의 개념을 토대로 잘 나이들려면 자기수양에서 대인관계의 조화, 그리고 사회적 책무의 자임이라는 방향으로 확장을 고찰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 여성의 잘 나이들기를 유학사상에 내포된 성숙인격과 연계시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유학자들이 그리는 성숙한 노화 과정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배려하여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군자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줌으로써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 속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일체화를 이루는 것인데, 이 점은 행복론과 긍정심리학에서 제안하는 긍극적 목표와 다르지 않다. 본 논문에서 제시하는 성숙한 노화 개념은 특정 관계에 있는 당사자 모두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통합적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둔 서구의 성공적 노화 개념과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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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시가에 나타난 ``노년 여성``의 형상화 양상을 살피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노년 여성``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소외와 ``젊음(아름다움)``으로부터의 소외로 인해 이중 타자화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고착화된 조선 후기를 살아간 ``노년 여성``에게 ``잘 나이들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후기 시가에 나타난 ``노년 여성``의 형상화 양상을 살펴 본 결과, 첫째 가부장적 질서를 내면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타자화된 존재로 살게끔 한 가부장적 이념이 ``노년 여성``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관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둘째, 모습은 추레하게, 행동은 볼썽사납게 묘사되었다. 노년 여성은 신성하지도 규범적이지도 못했기에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셋째, ``노년 여성``의 성적 욕망은 희화화되었다. 성적 욕망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노년 여성에 의한 것이면 저열한 욕망으로 그려졌다. 진지한 목소리로 진술되지 못했다. 이렇게 조선 후기 시가에 나타난 ``노년 여성``은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서는 ``노년 여성`` 관련 담론 자체가 자취를 감춘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이 부각된 주체는 ``청년[소년]``과 ``신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훗날을 기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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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壽序)란 17세기에 출현한 조선시대 사대부의 문예 양식의 하나로, 회갑(回甲) 등의 생애 주기를 맞이한 이에게 수연(壽宴)을 베풀어 그 자리를 치하하는 글을 서문(序文)의 양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수서(壽序)에는 대상자의 생애 정보, 삶의 내역, 특정 일화, 품성 등이 서술되기 때문에 행장(行狀)이나 전(傳), 애제문(哀祭文)과 유사하지만 생존자를 위해 쓰였고, 죽음이 아니라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비평적 시선은 유사하게 나타났다. 수서(壽序)는 초고령화 시대에 ``잘 나이들기``에 대한 성찰적 사유의 방식과 문화를 조선시대 문인의 글쓰기를 통해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공론장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한국문집총간 (1~350권)에 수집된 수서(壽序)의 총 편수는 대략 210편인데 이중에서 19세기까지 창작된 것은 남성 대상-123, 여성 대상-24편이다. 여성을 위한 수서(壽序)는 대체로 가족이나 지친이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공유 기억이나 직접적인 관계성의 체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가족 이외의 인물이 쓰거나 청탁으로 작성된 경우에는 수서를 쓰는 경위를 서술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여성의 생애 정보가 가정 밖으로 노출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문화적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삶의 기록이 희소했던 조선시대에 수서는 생존 당시의 여성 생애사를 공개함으로써 여성의 삶을 공공화하는 기능을 담보했다. 그러나 이는 오직 ``노년기 여성``으로 한정되었고,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갖춘 여성으로 한정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년기 여성에 대한 수서가 그 아들에 대한 생애사 서술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문의 역사로 대체 되기도 했다. 수서(壽序)에서 찬탄의 대상이 된 여성적 삶, 또는 여성의 ``잘 나이들기``란 아내·어머니·며느리등 가족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충실한 삶을 의미했는데, 특히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의미 비중이 컸다. 수서에는 여성의 신체 노화에 대한 서술이 드물었으며, 오히려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위로와 선망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대상 여성(주로 어머니)이 영원히 젊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자손의 바람인 동시에, 여성 자신에게도 젊음과 반(反)노화가 위안과 기대의 지향점이었음을 반영 한다. 수서는 사대부가 작성한 것이어서, 여성 대상 수서에는 여성적 삶에 대한 사대부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인정한 최선의 여성적 삶, 지복의 여성 생애란 건강한 장수, 사회적 인정욕구를 충족시킨 부귀한 삶, 그리고 덕이 있는 내면을 갖춘 인격의 완성(靜/遲/裕/仁/德/知/貞/淑등의 요소를 포함)을 의미했다. 수서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잘 나이들기``라는 현재성과 실천성이 중요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여성 대상 수서는 대체로 상층부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조선시대 노년 여성에 대한 공론화 양상을 살피는 것은 제한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서(壽序)는 대상자 개인뿐만 아니라 쓰기 주체에게도 ``생애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덕목을 내면화하는 ``실천적 수양``의 도구였다는 점에서 ``잘 나이들기``에 자원 탐색적 고전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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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8세기 이후 조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천주교 전파가 근대적 여성 주체의 자기 인식과 어떠한 상관성을 갖는지를 상세히 밝혀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루갈다가 순교를 앞두고 가족에게 남긴 두편의 편지글을 대상으로 천주교 여신도들의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을 검토해보았다. 지금까지는 천주교 신자로서 눈에 띠는 가족사를 가지고 있으며 치열한 신앙생활을 통해 순교에 이른 이루갈다의 삶에 그녀에 대한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본고에서는 그녀의 생애나신앙심보다는 그녀가 남긴 텍스트 「옥중서간」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했다. 그 결과 「옥중서간」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갖추어진 한편의잘 짜여진 서사, 특히 고난 극복의 서사로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루갈다는 육체적인 욕망의 극복을 순교의 자격시련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 세계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천주교의 교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종말론적으로, 즉 순교를 향한 일방향의 서사로 의미화했다. 또한 이루갈다를 순교에 이르게 한 당대의 유교 질서는 천주교 여성신도들을 개별적인 주체로 승인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음을 알았다. ``여자들은 법이 처벌하지 않는 존재이다, 단 천주교 신자는 예외이다``라는 지배층의 태도는 천주교 신자인 여성들만을 법적인 주체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조선후기 천주교 여신도들이 그들의 삶을 순교로서 완성하는 데에는 당대의 유교 질서가 반드시 그녀들을 개인으로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남성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여성들이 동정을 실천하고 순교를 결심한조선 후기의 상황은 기존의 상징적 질서에 등록되지 못한 여성의 현실과 새로운 질서에 자리잡고자 하는 그녀들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그녀들의 순교는 기존의 질서를 허물며 새로운 상징질서에 자신을 기입하는 행위인 동시에 새로운 상징질서를 구성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기획주제 : 여성의 잘 나이들기 ; 노기(老妓)의 경제 현실과 섹슈얼리티

박영민 ( Young Min Park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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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의 기생의 삶을 ``노기(老妓)``의 측면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노기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삶의 결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조선시대의 특수한 계층·직업인이었던 기생이 기생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노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찰하고자 한다. 기생의 노년의 행로는 기생의 경제적 처지와 섹슈얼리티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에본고에서는 기생이 노제(老除)를 맞는 공식적인 기준과는 별도로, 생물학적 나이와는 별도로, 기생에게 부여하는 사회적 노년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나이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맞이해야 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한다. 이 점이 기생의 노년의 삶, 경제적 현실, 섹슈얼티를 규정하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기생들이 사회에 의해 타의에 의해 닥쳐온 사회적 노년을 어떻게 겪고 준비했었던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기생의 경제적 현실, 섹슈얼리티의 특징 등을 밝히고자 한다. 보통 기생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측면에서 남성이 어떻게 기생의 섹슈얼리티를 향유하는가의 측면에서 이야기된다. 그런데 반대로 기생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특히 노기의 관점에서 기생들이 자신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생의 섹슈얼리티 관리는 기생의 노년의 대책과 그들의 경제적 현실, 그들의 실존성, 인간의 가치의 측면에서 관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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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전쟁 이전에 쓰인 문학사를 대상으로 하여 그 안에 기술된 여성문학이 어떻게 쓰였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여성문학사 기술의 필요성은 늘 제기되어 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구체화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초기 국문학자들의 문학사 안에 담겨진 여성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살피는 일에서부터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고 했다. 초기 국문학자들은 여성문학을 두 가지 양상으로 제시하였다. 그 하나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에 대해 주관적인해석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전자는 조선조 이전의 문학에, 후자는 조선후기에 집중되었다. 과거의 풍부하고도 위업적인 유산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그것이 굳이 여성문학이 아니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조선조 이전의 작품들은 이런 목적 아래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해석의 다양한 방법이 드러난다.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두고 김태준은 개인의 자의식에 무게를 둔 반면, 조윤제는 객관적 자료의 가치를 중시하며, 이명선은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이들을 이해하였다. 반면 집단으로 향유되던 규방가사나 소설에서는 문학사가들마다 일정한 차이를 두지만, 객관적인 자료 제시보다 문학과 대중의 상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여성문학은 자연히 하층문학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초기 문학사에 기술된 여성문학의 실상이 정말 그러했는가에 대해 비판할 부분도 많다. 근대주의 시각이니 여성을 주변적 존재로 인식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소양을 거부하고자 한 데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현재적 처지에서 무엇인가를 말해야 했던 문학사가들의 고민으로 읽어낼 수는 없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한다.

<콩쥐 팥쥐>의 농경 신화적 성격

이혜정 ( Hye Jeong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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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의 여주인공들에게는 그녀들의 행복한 결혼만큼이나 이에 대조되는 통과의례적인 고난의 과정이 요구된다. 특히 ``신데렐라`` 유형의 설화들에는 일반적인 고난을 넘어 여주인공들의 죽음의 체험이 폭넓게 각인되어 있다. 이런 특성은 인도-게르만계보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를 비롯한 동-아시아계 신데렐라 이야기들에 보다 더 직접적으로 수용되어 있는 바, 그것은 죽음과 변신 및 환생과 재혼의 과정을 통해 ``진짜신부``로서의 여성성을 증명해야 하는 내적 요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성의 생산성이 최고로 잘 구현된 설화가 바로 농경과 관련된 설화들일 것이다. 여성의 생산성은 자연이나 대지의 생산성과 등가적인 관계로서 창조의 능력 그 자체였다. 또한 다른 한 편으로 농경신화는 신의 주검으로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농경의식에서 보편적으로 있어온 희생제의는 신의 주검을 상징하는 제의였다. 초기 농경사회에서는 상징이든 실제든 간에 직접적으로 몸을 훼손하는 절단행위가 폭넓게 행해졌으며, 이런 신체절단의 의식은 불의 의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러므로 농경신화에서 여성신들의 죽음과 희생은 여성신으로서의 생산력을 보다 강화시키기 위한 통과의례적인 의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통과의례적인 절단과 불에 의한 불구의 모습들을 ``콩쥐``들이 아닌 ``팥쥐``들에게서 더욱 확연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세계관의 변화에 기인한다. 달의 체계, 즉 대지와 여성의 이미지가 낮의 체계로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지의 신성함은 낯설음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콩쥐``가 화려한 차림의 신데렐라처럼 태양을 의미하는 노란색이라면, ``팥쥐``는 어두운 피의 색깔, 대지와 여성의 색이다. 따라서 대지의 의미를 지닌 ``팥쥐``들의 ``발 절단``이나 ``눈알 쪼이기``, ``젓갈처럼 잘게 잘리기`` 등의 사건은 대지의 의미를 지닌 존재들의 희생제의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콩쥐와 팥쥐는 양면적이나 하나의 존재이다.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쳐환생해야 하는 콩쥐의 통과의례적인 모습이 팥쥐에 내재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달의 신화는 폄하되 었으며, 이와 아울러 사람의 신체를 훼손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반영되어, 희생제의에 받쳐졌던 소녀들이 죽어마땅한 부정적인 존재의 ``팥쥐``들로 변질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공본풀이> 노가단풍아기씨의 죽음과 재생의 농경신화적 이해

신연우 ( Yeon Woo Sh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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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단풍 아기씨의 행적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초공본풀이>의 서사구조는, ``임신 - 긴 여행의 고난 - 출산과 양육 - 살해당함 - 재생``이다. 또한 삼천선비와의 대립과 함께 삼천선비가 아기씨를 살해하는 화소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초공본풀이 특유의 신화적 의미를 담는것으로 보인다. 노가단풍 아기씨가 간 길은 산과 강을 몇 개씩이나 거쳐야 하는 험하고도 먼 거리이다. 아기씨가 임신해서 먼 길을 거쳐 서강베포 땅에서 드디어 출산을 했음을 기억하자. 곡식의 신인 아기씨가 ``임신해서 먼 길을 거쳐 삼멩두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곡식을 의인화한 것일수 있다. 임신한 것은 봄이고 먼 길을 간 것은 여름 동안의 먼 길이며 삼멩두를 낳은 것은 가을의 추수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서강베포 땅에서 아기씨는 살해되어 밭에 묻힌다. 한 해의 추수가이루어졌으니 곡식의 정령의 일이 끝난 것이다. 아기씨는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져야 한다. 이듬해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씨의 살해가 상징적이었음은 아기씨 무덤이 헛출병인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중 구연본에는 "앞밭디 출병을 헐□리고 보니 헛출병이로다. 뒷밭디헛출병이로다"라고 하고 이중춘 구연본에는 "어머님 출벵막을 헤싼 보난 사외신체는 엇고 물멩지 단속곳 본메본장 이섰구나"라고 했다. 죽은어머니의 신체가 없는데도 어머니를 살리러 삼형제는 길을 떠난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재생하고 신이 된다. 다시 말하면 신으로 돌아온다. 신화적 세계관에서 죽음은 완전한 단절이기만 하지 않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잇고 있는 순환이다. 죽음을 가져옴으로써 다음의 생명을 가져온다. 삼천선비는 그런 죽음을 있게 하는 존재이다. 삼천선비와 삼멩두, 아기씨는 그런 대결관계에 있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모의적 대결이고 다툼이다. 결국은 봄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치르는 가장된 다툼일 뿐이다. 삼천선비가 없다면 아기씨의 죽음이 없고 그렇다면 다음해의 부활도 없다. 부활이 없으면 곡식의 성장은 없다. 노가단풍아기씨를 어려서부터 기르고 황금산으로 함께 고난의 여행을 하고 서강베포땅에서 함께 살아온 느진덕이 정하님이 순식간에 아기씨를 배반하고 삼천선비와 함께 아기씨를 죽이는 살해행위에 가담한다는 서사적 구성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은, 이렇게 아기씨의 살해가 필연적인것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초공본풀이>의 노가단풍 아기씨가 살해되었다가 굿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은, 추수를 하며 곡식의 신이 살해되 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초공본풀이, 하이누벨레나 페르세포네 신화는 모두 여성과 살해-죽음과 식량이 연계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하이누벨레 신화는 축제의 현상적요소가 더 강조되어 있고 페르세포네 신화에는 세계의 질서가 계절의 순환으로 구체화되어 있으며 초공본풀이에서는 세계의 질서가 신의 관념으로 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사 구조와 신화적 의미가 하나로 융합되는 사례를 <초공본풀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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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랑``이 혼인을 한 첫날밤 자신의 ``신부``가 간부(姦夫)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신부``를 버려둔 채 신방을 나온다. 오랜 세월이지난 후 신랑은 우연히 첫날밤을 보낸 집 옆을 지나다가 첫날밤 복색과 자세 그대로 신방에 앉아 있는 신부를 발견한다. 신랑이 발견한 순간 신부는 먼지와 재로 내려 앉아 사라져 버린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첫날밤에 소박맞은 신부>는 표면적으로 신부의 비극으로 읽히나 불안과 우울의 주체인 신랑이 사그라지는 신부의 발견을 통해 자기 내면의 결핍과 상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랑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때 신부는 완전하고 흠결 없는 대상을 갈망하는 신랑의 성적 욕망이 투사된 존재로 남성 주체의 불안과 결핍을 대리표상한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영원히 충족 불가능하며 성적 대상으로서 순결하고 완벽한 신부는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성적 환상에 불과하다. 남성 주체로서 신랑은 성적 욕망의 억압과 이로 인한 죄의식, 남성성과권력 욕망에 대한 집착 등으로 강박적 불안에 시달리는 존재며, ``사그라진 신부``의 표상은 신랑으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결핍과 상실에 직면케한다는 점에서 남성의 불안과 우울을 환기시키는 대상이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신방에서 자폐하는 가운데 신부는 오로지 침묵한다. 신부는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같은 자세로 앉아 ``온몸으로`` 침묵한다. 이 침묵은 첫날밤의 폭력적인 사건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건``임을 표상한다. 신부는 온몸으로 침묵하면서 언어의 표상 한계를 넘어선 폭력성, 곧 사건의 잉여를 증언한다. 서사의 변화 지향을 통해 드러난 여성 주체의 해석적 지향은 오히려 신부의 상실을 강화하고 여성을 타자화하는 젠더 정치의 기획에 공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이야기 연행과 전승의 장은 새로운 애도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말할 수 없는 폭력적 사건의 기억이 전이되고 상처가 공유됨으로써 신부를 타자화의 전략으로부터 해방시켜 진정한 애도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조선조 서사물에 나타난 기생 섹슈얼리티의 함정

김진희 ( Jin Hee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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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조선조에 패설·야담·소설 등의 서사장르를 통해 담론화된 기생의 섹슈얼리티를 ``나쁜 기생``의 경우와 ``열녀 기생``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두 유형은 기생의 신분적 한계를 탈피하여 민중의 저항 정신과 풍자 정신을 구현한 형상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그 의미가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의문시되고 있다. ``나쁜 기생``과 ``열녀 기생``은 도구적으로 규정된 기생의 섹슈얼리티를 역이용함으로써 또는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함으로써 기생에게 제도적으로 부과된 섹슈얼리티의 영역 밖으로 탈주한다. 그러나 담론 속에서 ``나쁜기생``은 남성의 쾌락을 확장하기 위해, ``열녀 기생``은 남성의 성공에 헌신하기 위해 존재할 뿐임을 이 글에서는 살펴보았다. 한 쪽에는 관능의 화신이, 다른 한 쪽에는 無性的인 지고지순한 열녀가 있다. 이 야누스적이분법으로 기생 서사는 포섭된다. ``나쁜 기생``과 ``열녀 기생``에 대한 서사는 시대와 장르의 요구에 따라 달라졌다. ``나쁜 기생``에 대한 조선 전·중기의 서사는 패설이라는 양반의 장르를 토대로, 양반 남성의 적절한 쾌락의 활용법을 시사하기 위해형성되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의 야담과 소설에서 ``나쁜 기생``에 대한 서사는 욕망을 광범위하게 긍정하는 시정문화를 토대로 남성 일반의 쾌락을 증진시키기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계급적 욕망을 표현하는 일환으로 ``열녀 기생``의 이야기가 형성되었다. 각 시대와 장르별로 담론 주체들의 욕망은 상이했으며, 이에 따라 기생의 형상도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하지만 담론 주체들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기생의 섹슈얼리티가 이용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조선조 서사담론에서 기생 섹슈얼리티는 양반 남성 또는 남성 일반의 쾌락을 증진하기 위해, 또는 신분 극복의 계급적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녀/열녀로의 기생 섹슈얼리티의 분열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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