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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4권 0호 (2012)

자녀희생효설화에 나타난 "효"와 "모성"의 문제

정경민 ( Kyung Min Chung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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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희생효설화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는 이야기이다. 이 유형의 이야기에서는 효행과 자녀 희생의 결정 및 실행에 있어 여성 인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효``와 ``모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양립할 수 없는 ``효``와 ``모성``의 갈등이 담론으로 경합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효``의 우위로 귀결되는 것은 모성보다 효성이 중시되는 가족질서화 기제를 보여준다. 이로써 ``효``는 그 가치의 보존을 위해서는 내재된 폭력성까지 용인되는 법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한편 설화에서 ``모성``은 며느리의 효성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점으로 포착된다. 자녀를 희생시킨 효행의 결과 가족과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그 위상의 변화를 경험하는 여성 인물을 통해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며느리가 안정되게 포섭될 것인가, 아니면 이질적인 존재로 배제될 것인가를 가르는 원리로 ``모성``이 제시된다. 서사의 층위에서 이야기는 일관되게 ``효``의 절대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연행의 층위에서는 설화 향유자들의 맹목적 효행의 강요에 대한 경계와 비판, 일방적 모성 포기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 ``효``와 ``모성``에 대한 인식의 균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남성 구연자들은 자녀 희생 결정에 있어 부부 합의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결말 부분에서 아이의 생환 여부에 무관심하여 자녀희생효설화를 효 실천담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여성 구연자들은 자녀 희생 결정 과정에서 며느리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결말에서는 희생된 아이가 살아돌아오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아이의 죽음을 비현실화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여성 인물의 처지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게 되는 여성 구연자들이 여성 인물의 모성 포기가 자기 혐오의 기억과 죄의식으로 남는 것을 회피하고 ``효``와 ``모성``의 조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헌설화에서 "투기하는 부인[妬婦]"의 형상화와 의미

류정월 ( Jeong Wol Ryu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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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헌설화에는 투기하는 부인[妬婦]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성의 투기는 당대의 규범과 윤리에서 볼 때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여성들의 이야기가 형상화되고, 향유될 때에 동일한 시각이 유지되지는 않는 듯하다. 인물 형상화는 독자들이 인물에 대해 상상하고 추측하는 지점을 포함한다. 본고는 독자가 매개되는 텍스트의 인물 형상화를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형상화가 기반 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문화에 대해 추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투기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하게 구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화(笑話) 혹은 일화(逸話)로 향유된다. 소화로 소통되는 투기하는 부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이 여성들을 규범으로는 통제할 수 없지만, 성적으로는 종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행위는 비판이나 반성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웃음을 야기하는데, 이러한 반응은 투기하는 부인의 인물 형상화를 개인적·유희적인 것으로 위치 짓는 데 일조한다. 일화로 소통되는 투기하는 부인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이들의 여러 특질을 하나로 종합하려고 시도함으로써, 투기하는 부인의 형상화를 이중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위치 짓게 한다. 독자들은 인물의 행동에 대한 반응과 종합을 통해 형상화를 최종적으로 구성하는 자리에 있다. 이렇게 존재하는 투기하는 부인 이야기들은 당대의 다른 담론, 불투기의 담론과 일정한 관계를 가진다. 15~16세기 투기하는 부인들이 사회적·도덕적으로 형상화되기보다는 개인적·유희적 차원에서 형상화된것은 투기를 금지하는 유교적 담론이 양적·질적으로 미비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17세기 이후 투기하는 부인 이야기는 일화로 다수 존재하는데, 이때는 대량으로 교훈서들이 보급되었던 때이다. 이런 교훈서들은 투기하는 여성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적·도덕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할 수 있지만 투기하는 여성들 자체를 통제하는 데에는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투기하는 여성들의 일화는 투기에 대한 사회적·도덕적 시각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투기하는 여성 자체를 근절시킬 수 없었던 상황에서 소통·향유되었다고 할 수 있다. 투기하는 부인 이야기는 남 : 녀=지배 : 피지배, 불투기 : 투기=선 : 악의 기존의미를 미끄러지게 하며, 문화적 의미들의 안정성을 위태롭게 한다. 투기하는 부인 이야기는 젠더와 가부장제에 대한 문화적 의미의 안정성을 흔드는, 불온한 잠재력을 가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최척전>의 창작 배경과 열녀 담론

엄태식 ( Tae Sik Eom )
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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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堂排語』에 나오는 崔陟은 <최척전>의 최척과 동일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최척전>의 後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또 <紅桃>와 <최척전> 사이에는 문헌 전승에 의한 영향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데, <홍도>와 <최척전> 간의 인명 표기, 서사의 합리성 등을 고려한다면, 조위한이 <홍도>를 변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보아야 한다.李民宬은 <題崔陟傳>에서 ``당시 商山의 어떤 士人이 스스로 <최척전>을 지었다고 말했다``고 썼다. 趙緯韓은 1622년에 맏형 趙繼韓의 訃音을 듣고 上京했다가 商山牧使였던 아우 趙纘韓과 함께 商山으로 갔다. 그렇다면 <제최척전>에서 말한 ``상산의 사인``은 결국 ``상산에 가 있었던 조위한``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위한이 상산에 있었던 시기는 1622~1623년이다. 이로써 볼 때, <제최척전>의 언급은 결국 조위한이 1622~1623년에 <최척전>을 지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바, 그간<최척전> 後識에 의거, 조위한이 1621년에 南原의 周浦에서 <최척전>을 창작했다고 본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조위한이 <李生窺墻傳>·<萬福寺?포記>·<홍도>를 활용하여 <최척전>을 창작한 주된 이유는, 여주인공 玉英을 ``賊의 수중에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온 烈女``로 형상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옥영의 이야기는, 丁酉再亂때 남편 조찬한을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柳氏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위한은 조찬한·유씨부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최척전>을 지었지만, 그 역시 전란이라는 특수하고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정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 한시문(漢詩文)에 나타난 "딸"의 형상화 고찰

김경숙 ( Kyung Sook Kim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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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여성 한시문에 나타난 딸의 형상화를 고찰했다. 남성의 시문을 자료로 하여 남성의 시각에 의해 형상화되고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여성의 시문을 바탕으로 여성이 자신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했 느냐를 살피고자 하였다. ``딸로서의 정체성``은 딸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에 관해서이다. ``집 안의 딸, 집안일의 주재자(主宰者) 또는 효녀``는 결혼 전 딸의 정체성에 관련된다. 어린 딸들은 안주인이 사망하면 어머니의 역할을 이임받아 집안일을 맡았다. 대소사를 관리하고 부친 및 가문의 일원을 섬겼다. ``혼인한 딸, 사친(思親)하는 불효녀``는 혼인한 딸의 인식이다. 딸들은 친정과 시댁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그 갈등의 양상은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또한 딸들은 친정과 고향을 그리는 시문을 다수 창작했다. 갈수록 두 가문의 균형은 깨져 친정을 향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간극이 넓어졌다. ``딸에 대한 인식``은 여성이 딸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에 관해서이다.``출가(出嫁)하는 딸, 슬픔과 경계(警戒)의 대상``은 딸의 출가와 관련된 어머니의 작품을 고찰한 뒤 아버지의 작품과 비교하였다. 딸은 부재하며 슬픔의 대상으로 남았으며,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슬픔을 삭이고 딸에게 경계의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또한 19세기초까지도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우귀(于歸)가 혼재된 모습을 보였으며, 집안의 ``힘``이 딸의 혼례 형태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죽은 딸, 가난과 신분의 희생``에서, 딸은 가난하거나 신분이 낮은 집에 태어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 일찍 죽는다. 어머니에게 너무도 사랑스럽지만 고생만하다 죽은회한과 그리움의 대상이고, 절망과 한으로 응어리진 슬픔만 남겼다. 그런데 어머니는 딸의 죽음을, 천명이 아닌 가난과 질병이라는 인재라고 보면서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다음으로 ``여성 시문 속 딸과 아들 인식 비교``를 하였다. 아들은 대부분살아있는 아들과 손자를 대상으로 했다. 어머니는 학문에 힘쓰고 참 선비가 될 것을 권면하였는데 아들에게는 엄하였으나 손자에게는 자애로 웠다. 이들은 가문의 후손이자 가문 번성의 지표였다. 또한 외지에 간 아들을 그리워하거나 아들의 시에 차운(次韻)한 시들이 많은데 감정에 솔직하다. 또한 양자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나타낸 시문을 남기었다. 결국사망했고 애통하며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인 딸과, 살아 있고 빛나며 헤어졌어도 만날 수 있으며 없으면 구해서라도 함께 해야 하는 존재인 아들이, 어머니의 한시문에서 형상화되었다. 딸에 대한 인식은 ``어머니의 심정``을 더욱 드러내었다면, 아들에 대한 인식은 ``시댁 집안의 필요``에 의한 것이 우세했다.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연구(硏究) -문학적 전략을 중심으로-

이월영 ( Weol Young Yee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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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열녀함양박씨전>을 열녀에 열광했던 조선조의 사회풍조와 그 원인을 심각하게 문제 삼은 역설적인 열녀전으로 보고, 작품에서 전략적으로 교차 사용한 ``드러냄``과 ``은폐``, ``대비``와 ``조응``의 교직관계를 밝혀 해석하는데 주력했다. 총서는 순절풍조의 원인을 재가금지법과 이후400년간 이어온 ``교화``에서 찾았는데, 이른바 교화는 정조 여성이데올로 기의 주입을 의미한다. ``교화``는 입전·열녀문·훼절응징 등의 공적 기제를 통해 이루어진 ``세뇌``를 ``은폐·미화``한 것이다. 수절과부담은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열절 여성이데올로기에 대해 항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절완성``에 초점을 맞추어 열녀담으로 종결지은 것은 수절과 부의 반격적 토로를 열녀의 논리로 호도 은폐한 전략이다. 本傳에 해당하는 순절과부담에 드러난 박씨의 삶은, 재가금지법 산생 이후 400년 동안 ``교화/세뇌``를 통해 양산된 순절녀의 전형일 뿐이다. 마지막 논평은, 총서 수절과부담 순절과부담을 연관지어 교직함으로써 은폐와 드러냄,대비와 조응의 교직관계를 재 입증한다. <열녀함양박씨전>에 표현된 열녀에 대한 문제인식은, 박지원이 열하여행시 태학관에서 그곳 선비들과 주고받은 필담에서 이미 찾을 수 있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순절풍조는 ``비례막대``로 정리되며, 이는 잔혹한 양상으로 발현된 효·충 풍조와 함께 거론된다. 박지원은 전족 풍조에 대해서만은 드러내놓고 공격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충·효·열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지니고 있을 그의 비판적 관점을 반증했다. 박지원이 작품에서 줄곧 사용한 ``은폐``와 ``드러냄``의 교직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곧 선악시비의 판단기준이었던 시대에 방편적으로 취한문학적 전략이다.

조선후기 사족 여성의 경제활동과 문학적 형상화 양상

강혜선 ( Hye Sun Kang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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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족 여성은 가족,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 안에서 ``딸 -> 아내 ->어머니``의 주기적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여성의 삶을 사대부 작가들은 대체로 유가적 이상형에 맞춰 정형화된 방식으로 기술해 놓았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이르러 양산된 여성 대상의 글들을 보면, 여성의 삶과 생활을 형상화하는 작가들의 시각과 인식의 변화가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을 형상화한 대목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대부의 공적, 사적삶에서 은폐되거나 금기시되었던 경제활동에 대한 형상화가 여성의 경우에는 구체적이면서 풍부하게 이루어졌다. 여성 대상의 행장, 실기, 유사 등의 문체는 여성의 생활과 관련하여 각종 일화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비중 있게 형상화 하였다. 이 문체들은 비록 기록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한편으로 유가적 규범에 의거해 일부를 과장하거나 생략함으로써 대상 여성을 현창하려는 성격도 있었다. 이 때문에 여성의 경제활동을 형상화한 글들이 당대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였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어떤자료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을 주목하고 형상화하였다.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규범적으로는 유가의 여성 덕목 중 하나인 부공(婦功)에 준하여 여성의 경제활동을 바라본 바, 대체로 남녀의 역할 구분에 따라 집안일로 경제활동을 제한하고 특히 근면한 가사 노동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실 생활에서 행해진 각종 경제활동과 재산증식 활동들이 표면적으로 부정되거나 은폐되고 경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나온 각종 글들 속에서는 이러한 규범과 편차를 보이는 현실의 여러 양상이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생계유지나 가정경제 운영의 수단으로 여성의 가내 노동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고리대와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러한 활동에 노비의 역할이 긴요하였다. 또한 사대부의 관직생활 이면에는 여성을 매개로 한 청탁과 뇌물 수수, 관직을 이용한 부당한 상거래 등 부정적 경제활동도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재산분배에서 여성의 역할을 주목하면서, 윤회봉사를 배격하고 종손 중심의 제사문화를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여성 스스로 친정의 재산분배를 거부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가부장적 이념 전파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광사의 <아내 유인 문화 유씨 실기>는 사족 여성의 경제활동을 형상화한 글 가운데 단연 주목할 대상이다. 이광사는 아내의 주체적, 능동적 경제행위를 긍정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족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변화된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 글 속의 여성은 가정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로서 당당한 위상을 보일 뿐 아니라, 그러한 여성의 치산능력과 치산과정을 형상화하는 서술시각에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공인하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후기 도시의 발달과 여성의 소비문화에 대한 담론의 성격

정인숙 ( In Sook Jeong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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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도시적 발전을 토대로 각종 물산이 풍부하게 유통되고 화려한 의복, 값비싼 장신구가 널리 소비되던 시기였다. 당시 기록을 보면 세속에 만연한 사치 풍조를 개탄하고 유행을 무분별하게 좇는 세태를 꼬집은 경우가 많은데, 특히 사치를 조장하고 소비를 일삼는 행태를 문제시하는 언술 가운데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는 점은 흥미롭다. 본고는 조선후기 도시적 성장과 소비문화의 확산 속에서 여성의 사치나 소비를 둘러싸고 형성된 담론을 살펴보고 그 성격을 논의하는 데목적을 두었다. 이를 통해 규범적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맥락과는 달리 당시 일상의 삶 속에서 여성의 소비문화에 대한 시선은 어떠했는지 밝혀보고자 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규범적 차원에서 사치 및 치장을 금지하고 현모양처의 여성상을 강조한 점을 들 수 있다. 좋은 의복, 좋은 음식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도록 하고 자신을 위해 꾸미고 치장하는 데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있다. 특히 공직에 있는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했던 여성과 자녀에게 검소를 가르치며 솔선수범한 여성들이 칭송된 사례가 많다. 둘째, 의복이나 몸치장에 마음을 두지 않고 평생 검소하게 살았던 여성에 대해그녀가 본래 타고난 여사(女士)의 풍모나 군자(君子)다운 성품을 칭송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초연하게 살았던 한여성을 존경하고 추앙하는 차원에서 검박한 삶이 거론된다. 셋째, 당시의 풍조를 외면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와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한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혼례를 포함한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는 데있어 사치스런 풍조를 좇아가는 행태와 관련된 것으로, 규범적인 언술로 사치를 금하게 강제한다하더라도 실제의 삶은 시속(時俗)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정황이 포착된다. 넷째, 시속을 적절히 고려하면서 중도(中度)를 지킬 것을 강조한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사치와 검박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발견된다. 이처럼 여성의 소비문화에 대한 담론을 살펴본 결과, 사치를 조장하는 좋은 의복, 좋은 음식, 화려한 장신구 등에 대한 욕심은 여성에게 결코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나 혼례를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는 검소함만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치 풍조를 개탄하고 일방적으로 검소를 강제한 규범적 언술 못지않게 시속을 따르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솔직한 고백이나 중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느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키며 균형 잡힌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실생활에서는 가장요구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양정>에서 새로운 여주인공의 등장과 군담소설 양식의 해체

이정원 ( Jeong Won Lee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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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해조가 1912년 신구서림에서 출판한 <소양정>을 대상으로, 군담소설의 해체 양상을 살폈다. <소양정>은 군담소설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소양정>에서는 군담소설과 달리 천상계가 사라졌다. 이는 이 작품이 군담소설 특유의 운명론적 세계관에 기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못마땅한 사위 박해``는 이런 이러한 서사적 변화를 이해하는 실마리이다. 군담소설에서 그것은 미성숙한 영웅이 치러야 하는 예정된 시련이었지만, <소양정>에서는 이기적인 개인들끼리의 우연한 갈등일 뿐이다. 그러므로 집을 뛰쳐나간 정채란에게서 발견되는 ``의지적인 여주인공``은 새로운 서사 전개의 원동력에 따라 구현된 소설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녀의 형상은 자유의지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군담을 대체하는 새로운 갈등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살부지수 복수담``은 기존에 신소설의 신파조를 계승하여, 못마땅한 사위담과 연계되지 못한 채 삽입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는 내용이 군담소설의 변용이라고 설명했다. 즉, 반동인물이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주인공을 고난의 여정에 들게하는 점이 군담소설과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대결이 천부적인 선악 관념이 아니라 세속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소양정>의 독자적인 면모이다. 한편, 살부지수 복수담이 못마땅한 사위 박해담과 서로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은 군담소설에서 반동인물과 주인공의 갈등이 천상계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의 흔적으로 이해된다. <소양정>에서 운명론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의지와 욕망이 추구되면서 군담소설의 양식은 해체된다. 먼저 등장인물의 변화가 포착된다. <소양정>에서는 남주인공이 ``예정된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사적 위기에 빠져 이를 해결할 뿐이다. 즉 그는 공동체를 구원하는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에 의존하는 개인이다. 또한 여주인공은 서사 전개의 새로운 매개로 등장했다. 그는 남주인공의 운명에 부속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고난에 뛰어들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녀를 둘러싼 음모가 펼쳐지고, 거대하고 관념적인 악인이 아니라 소소하고도 일상적인 범죄자들이 반동인물로 활약하게 되었다. 또한 군담소설 특유의 운명론이 사라지면서 원조자들마저 반동인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양정>에서는 군담소설 특유의 인물 형상이나 갈등이 해체되었다. 한편 <소양정>에서의 시공간은 관념성을 탈피했다. 군담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처지에 따라 시공간이 왜곡되고, 사건들도 시간적 연쇄보다는 천상계에서의 예정성에 근거하여 발생했다. 그러나 <소양정>에서는 시공간적 구체성이 복원되었다. 그만큼 이야기세계는 운명론과 같은 관념에 의해 창출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욕망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숙녀지기>에 나타난 여성 지기(知己) 형상화의 의미

조혜란 ( Hae Ran Cho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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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지기>는 작가나 창작 연대 미상의 작품이지만 총 6종의 이본이 존재하며 필사기나 출판기를 보면 20세기 초에 활발하게 유통이 된 작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구사를 보면 지기(知己)에 대한 상층 여성들의 욕망을 그린 이 작품을 여성들의 윤리나 주체성 강조의 문제로 보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두 여성이 한 남편과 혼인하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해석에서는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본고는 이 부분의 해석을 위해 <숙녀지기>의 중요한 두모티프인 매신(賣身) 모티프와 일부다처제 혼인 모티프의 제재적 배경을 찾아 <숙녀지기>와 비교하면서 그 내용을 고찰하였다. 검토 결과 <숙녀지기>의 혼인 모티프는 19세기 조선 여성들의 ``지기``에 대한 욕망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 같은 혼인 양상에서 남편인 남성은 거의 수동적 존재로서 그 여성들의 지기 관계의 회복이나 지속을 위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고는 <숙녀지기>의 활발한 유통 시기와 이 시기 조선 상층 여성의 실제적 연대의 예를 찾아 비교함으로써 당대적 맥락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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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 초기 기생의 지위와 기생조직의 변화를 신문매체에 나타난 기생 관련 담론을 통해 살피는 것이다. 기생은 전통적으로 신분제의 최하층에 위치한 천민 여성집단이었지만, 이들의 존재방식은 철저히 지배담론과 정책에 의해 조율되어 왔다. 따라서 기생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속에는 당대 지배담론의 동향, 지배권력의 이동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근대 초기는 ``신민에서 국민으로`` 대대적인 정체성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기생은 전대로부터 상속받은 모순과 질곡을 고스란히지닌 채, 국가전례에 여전히 그들의 才藝를 제공하는 동시에 공적 사회와도 낯선 형태로 대면해야 했다. 이 연구에서는 ``음녀`` 혹은 ``娼流``라는 낙인이 찍혀있었던 기생을 둘러싼 新·舊논리의 착종을 살피고, 기생이 양자로부터 어떻게 소외되는 지를 살펴보았다. 근대 초기 신문매체에서는 기생을 舊惡과 미개를 상징하는 존재, 화류병을 가진 잠재적 보균자로 취급하였다. 관기제를 청산되어야 할 폐습으로 본 근대 언론은 관기제의 실질을 구성하던 기생 역시 야만의 존재로 명명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생은 계몽언론이 상상하던 ``국민``의 대열에서도 원천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이 날로 쇠미해지면서 기생의 공적 기여에 대한 지식인들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침략의도가 점차 노골화되고, 최후의 일인까지 ``국민``으로 전환하려는 계몽언론의 위기의식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부의 기생은 ``국민``이라는 근대적 주체로 호명될 수있었다. 기생의 국민화는 이렇듯 강고한 편견과 지위의 열악함을 뚫고 기생집단이 어떻게 사회적 승인을 위해 분투해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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