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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6권 0호 (2013)
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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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젠더정체성의 내용을 지시하는 구전서사의 연행이 연행과 전승에 참여한 이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호명(interpellation)함으로써 젠더화된 주체를 생산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오뉘힘내기>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여성의 존재속성이 비극적 파국을 초래하는 결함으로 작용하고 이 비극적 파국으로 인해 남성이 치명적 결핍과 한계를 안게 된다는 정체성의 시나리오를 구현한다. 본 논문은 이 시나리오의 이면에서 여성의 존재속성을 ‘불길한’ 것으로 맥락화하고 이를 통해 남성의 불안과 우울을 은폐하거나 방어하는 기제를 분석함으로써 젠더화 전략의 골간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오뉘힘내기>는 쌍둥이 장수로 태어난 오누이 가운데 누이가 실제로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고, 이 죽음으로 인해 남동생이 치명적 결함을 안은 채 성장하여 결국 비극적 좌절과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의 이야기다. 근친이 공모한 간접 살해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또한 자신과는 상관없는 남성적 권력 의지와 욕망을 대리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배반한다는 점에서 누이와 어머니도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서사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남동생의 좌절과 죽음이며 누이의 죽음은 이 비극적 파토스의 원인을 설명하는 사건으로서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 누이는 죽음을 통해 남동생의 내부에 영원한 구멍으로 남는다. ‘여성 신성’의 배제와 축출을 통해 완전한 주체가 되려 했던 ‘남성’은 이 배제와 축출을 환기하는 ‘누이의 죽음’을 통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와 결핍을 안게 된다. 또한 ‘누이의 죽음’은 ‘남성’ 주체가 주체화 과정에서 무엇을 상실했고 또 그 상실로 인해 어떻게 우울증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환기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결국 <오뉘힘내기>에서 ‘여성 신성의 배제’를 표상하는 ‘누이의 죽음’은 주체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의식적 상실을 경험하는 남성 주체의 불안과 결핍이 투사된 대상이자 그의 상실과 우울을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여성 효열(孝烈) 담론 일고찰

강성숙 ( Sung Sook Kang )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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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여성 인식이 그 시대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어떻게 지속되고 변화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여성의 효행과 열행에 대한 평가가 드러나는 문집의 자료를 대상으로 검토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활동한 문인들이 쓴 여성 행장, 묘지명 등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시기 대부분의 여성 기록은 효행과 열행에 주목하여 여성의 생애를 재구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여성의 기록이 효열 담론의 영역에서 거론될 수 있음은 효/열행이 여성의 삶을 평가하는 보편적 도덕 기준으로 자리잡았음을 말해준다. 이를 통해 19세기가 효열담론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세기 여성 효열 관련 기록은 기술 방식과 그 지향에서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몇 백 년 전 과거의 인물을 다시 기록하거나 당대의 인물에 관한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그 집안에 효열로 이름난 조상들을 함께 배치하는 경향이 확대된다. 둘째, 하층민의 극단적 열행 기록이 증가하고 하층민 내부에서도 열행에 대한 적극적 평가가 드러나 교화의 범위를 하층민에게까지 넓히고 있음이 드러난다. 셋째, 열행이 효행 또는 충과 관련성 속에서 의미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19세기라는 불안한 격변의 시대를 겪으면서 여성의 열행을 통해 전통 사회의 근간이었던 가치를 회복하려 애썼던 상층 남성 지식인들의 도덕적 결단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19세기 효열 담론에서 거론되는 여성은 오로지 효녀 또는 열녀로서만 그 존재의 의의를 인정받게 된다. 점점 더 강화된 효/열의 기준은 과거/누대 기록의 재편성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지금/여기``에 없는 典範적 실체를 구현해내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순절 열녀의 열행을 神聖化하는 허구적 기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러한 양상은 효열 담론이 당대 사회의 현실적 맥락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허구적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을 방증한다. 19세기에 오면 순절한 여성에 대해서만 열녀로 인정하는 데 반발하여 살아남은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를 요청하는 글이 많아진다. 그렇지만 이들 여성은 늘 정절과 관련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산 자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한다. 이는 순절열녀가 죽은 후에 열녀로 영원히 살게 되면서 자기 존재를 입증받는 것과는 다르다.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면서 정절 위해의 순간에 늘 과감히 생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효열담론은 살아남은 여성에게 폐쇄적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혼인 습속에 대한 고찰 -친영례 및 “친영적 의식” 중심으로-

김기림 ( Gi Rim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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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초부터 유교 가부장적 질서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 방안의 하나로 『가례』에 제시된 ‘친영제’를 도입하여 당시의 혼속이었던 ‘서류부가혼’ 관행을 바꾸려고 했다. 친영제는 ‘男先於女’, ‘女從男’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는데 신랑이 신부 맞이하기, 신랑집에서 혼례 거행하기, 혼례 다음 날 시부모 뵙기 등의 절차가 포함되었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 절차대로 혼례를 거행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부집에서 혼례를 거행하는 관행은 여전하였고 그와 동시에 며느리로서 인정 받는 ‘현구고례’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친영제는 종래의 혼속을 일정 부분만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는 대체로 17세기부터 시작하여 조선말까지 한편 친영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친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미들이 생겨났다. 조선시대 친영은 신랑집에서 혼례 거행하기, 부가(夫家) 중심주의, 결혼한 즉시 시가에서 살기, 시가에 대한 연대의식 내지 귀속의식 갖기 등 매우 다양한 의미들을 환기하는 용어였다. 이는 친영과 관련하여 사람들의 사고 속에 존재했던 내용으로 ‘친영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친영적 의식’은 혼례에 관한 한 인식 내용으로서 19세기로 오면서 강화되었고, 결혼한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이후 가부장적 질서를 바탕으로 사회 전반이 변화를 겪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친정과의 연대의식 및 귀속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와서는 친정과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대신 시가와 밀착해가는 현상을 보인다. 남성들은 제사, 재산분배, 묘역 조성, 족보 작성 등의 관행에서 여성들을 배제함으로써 ‘딸’의 정체성을 약화시켰고, 집안으로 들어온 여성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여성들도 자발적으로 친정과 거리를 두거나 친정과 시가 중에서 시가 중심적인 행태를 보임으로써 ‘딸’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추세는 ‘친영적 의식’의 영향인 것이다. ‘친영적 의식’은 여성을 ‘딸’보다는 ‘며느리’로서 살기를 강조함으로써 남성 중심, 부가(夫家)중시적 생활 방식을 확산하고 강화하는 데에 밑바탕이 되었다. 이는 19세기에 ‘효열부’에 관한 기록들이 증가하는 현상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기존에는 주로 열행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19세기부터는 서서히 효행도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열행보다 효행을 더 부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아내보다 며느리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남편이 죽었어도 시부모를 봉양하는 효행 책무를 떠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19세기 사회가 이전 시기에 비해 여성들에게 시가 중심의 삶을 더 강하게 기대하고 요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남편을 위한 열행뿐 아니라 남편의 존속(尊屬)을 위한 효행을 요구하는 현실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부가 중심적 삶을 강조하는 일은 20세기에도 여전하여 여성들에게 친가보다는 시가를 중시 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조선시대 형성된 ‘친영적 의식’은 여전히 더 강하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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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왕조실록』의 가장 관련 기사를 분석하여, 조선시대 가장권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조선 국가의 통치 방식의 특징을 알아본 것이다. 조선시대 가장의 지위는 조선시대의 법전의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노비, 자손, 처첩 등이 가장을 비방, 입증, 고발할 수 없도록 하여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 가 구성원이 범법행위를 했을 때 가장이 처벌받도록 하여 책임을 부여하는 두 갈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조선은 ‘가장’을 통해 가 구성원을 통제하는 국가였다. 그런데 가장권과 관련한 규정을 만들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은 구체적 국면에 따라 새롭게 설정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칙적으로 가 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여 ‘강상(綱常: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백성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에 조선전기에는 ‘노비’ 등 예속인의 처벌에 대한 가장의 권한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한편, 가 구성원의 범법 행위에 대한 가장 처벌을 보면 살인, 역모 등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에 대해서는 가장의 책임을 엄격히 물었다. 하지만 부녀의 행실을 제한하는 등 각종 금제 위반 및 폐단 등과 관련된 문제에서 가장 처벌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후기에 가장 처벌 조항은 도살, 벌목, 술 주조, 사치 등의 금제에 대한 것으로 추가되었다. 이에 가 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책임과 영향력은 일상의 세밀한 영역으로 미치게 되었다. 그 실질적 처벌 여부를 떠나, 가장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을 통해 조선후기 국가의 지배력은 가 구성원에게 전달되었다. 가장을 매개로 가 구성원을 통제하는 것은 국가에서 개별 백성을 직접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만, 국가가 범법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 처벌하는 일을 유보한 것이기도 했다. 가장을 통한 지배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19세기 여성일기 「병인양란록」의 작가와 작품세계

정우봉 ( Woo Bong Chung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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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66년에 발발했던 丙寅洋擾를 배경으로 양반가 여성이 쓴 한글일기 「병인양란록」의 작가 문제를 재론하고, 작품 세계를 구명하였다. 「병인양란록」은 羅州林氏(1818-1879)가 직접 겪은 전쟁 체험과 수난의 양상을 매우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언어로 표현한 한글 일기작품이다. 그동안 이 작품의 작가를 경주김씨로 비정하였는데, 이 논문에서는 작품 내 서술과 족보 등의 관련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병인양란록」의 작가가 강화도에 세거하던 驪興閔氏 집안의 閔致升과 결혼을 한나주임씨임을 새롭게 밝혔다. 19세기 여성문학사에서 「湖東西洛記」의 저자 錦園과 이번에 새로 밝혀지는 여성 작가 나주임씨가 서로 사돈지 간이다. 錦園이 1817년생이고, 나주임씨가 1818년생이니, 두 여성 문인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병인양란록」은 강화도에 거주하였던 한 양반가 여성의 눈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적 위기 상황 속에 자신을 포함해 강화도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란가던 당시인들의 모습, 강화도를 탈출하여 황해도 평산으로 피란가던 자신의 체험을 긴박감 있게 묘사하였다. 또한 작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전쟁 상황에서 겪는 여성 수난을 부각시켰다. 「병인양란록」에서 작가는 지배층, 관군의 무기력한 대응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개인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순절과 충의를 발휘한 인물들의 행적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작가는 서구의 충격 속에서 그들의 문명과 폭력을 경험하는 한편, 전쟁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구질서의 붕괴를 체험하게 된다. 여성이 전쟁 체험을 일기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앞 시기 작품으로는 남평조씨의 「병자일기」가 있다. 「병자일기」에는 병자호란 중에 겪은 피난 생활의 고난과 시련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주임씨가 지은 「병인양란록」은 남평조씨의 「병자일기」가 만들어놓은 한글일기문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병인양란록」은 柳袗의 「임진록」, 金若行의 「적소일기」, 훈련도감 소속 한 馬兵의 「난리가」 그리고 李世輔의 「신도일록」으로 이어지는 한글일기 서술방식의 전통 - 사건이 경과된 후 일정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을 작가의 내면 의식 속에서 재구성하여 회상하는 방식 - 을 계승하였다. 「병인양란록」은 이세보의 「신도일록」과 함께 19세기 중후반의 한글일기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나부가>에 나타난 게으른 여성 형상과 그 의미

정인숙 ( In Sook J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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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가>는 ‘나부’ 즉 게으른(나태한) 여성을 소재로 한 국문가사이다. 그 동안 <복선화음가>나 <용부가>의 여성 형상에 비해 <나부가>에서 나부로 지목된 ‘금세부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 특히 <나부가>의 세 종류 이본 가운데 이정환본은 금세부인을 포함한 인물들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삽입되어 있고 문제적 여성이 고정된 피사체가 아닌 생동감 있는 인물로 그려져 있어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금세부인을 그저 게으르고 철없는 며느리 혹은 패악한 아내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표면적으로 묘사된 금세부인은 온갖 부정적 행태를 보이는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금세부인이 시집오기 전의 시점에 맞춰 보면 그녀는 분명 ‘일등 신부감’이었다. 인물도 출중하고 부모 슬하 곱게 자란 넉넉한 집안의 처자였다. 결혼 초에는 몸단장에 신경 쓰고 멋스런 옷차림을 즐겼던 여성이기도 했다. 그런데 며느리로서 봉제사, 접빈객의 의무는 물론 농사조차 힘써야 하는 상황에 접하게 되면서 금세부인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게다가 육아노동이 가중되면서 피로에 시달리게 되고 주변을 정돈할 만한 겨를도 없게 된다. 금세부인은 독백을 통해 과도한 노동에 대한 이유 있는 항변을 토로하고, 게으르다고 꾸짖는 남편에게 삶의 여유가 전혀 없는 고단한 생활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금세부인은 전통 규범에 무조건 순응하지는 않는 개성적 인간형으로 인식된다. 한편 금세부인의 게으름은 과도한 배려로 게으름을 조장한 시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는 듯 보인다. 결혼 초 상할세라 병들세라 유난스럽게 배려하면서도 시부모는 궁극적으로 며느리가 본분에 충실하기를 기대했고 여기에 미치지 못하자 갈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부가>는 전통 규범에 포획되지 않는 며느리 세대와 여전히 전통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규범을 요구하는 시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노출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의 서술자는 철저히 시부모 세대의 입장에 서 있으나 의도와는 달리 인물들의 발언을 통해 작품은 며느리 세대의 입장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전가>에 나타난 자연 인식 양상과 시적 활용 방식

최은숙 ( Eun Sook C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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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화전가>에 나타난 여성 화자의 자연 인식 양상과 시적 활용 방식을 살피고 이를 통한 그들의 지향을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고찰하였다. 그동안의 <화전가> 연구가 화전놀이의 기능적 측면과 여성의식을 얼마나 성취하였는가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였다면 본고는 <화전가>텍스트 자체가 어떻게 이러한 측면을 구현해 내고 있는가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화전가>텍스트의 주된 모티프이면서도 지금까지 집중적 조명이 없었던 ‘자연’을 주목하고 <화전가>의 여성화자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시적으로 활용했는가,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활용방식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읽어내었다. 문학연구에서 에코페미니즘은 자연대상물의 이미지가 여성적 원리나 특성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텍스트가 어떻게 자연성을 회복하는가에 대해 구명하는 방법론으로서 새로운 텍스트 읽기와 삶의 대안 모색에 도움을 준다. 그동안의 <화전가>읽기가 주로 여성에 집중되었다면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은 여성을 ‘자연’과 함께 엮어 읽음으로써 텍스트 읽기의 새로운 면을 부각시켜 줄 것이다. 그 결과 본 논문은 <화전가>에서 자연은 만남의 기회를 주어 관계성 속에서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확장된 공간으로, 순환성을 약속하는 시간으로, 삶을 그대로 수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텍스트에서 자연을 ‘동일시’와 ‘재인식’의 시적 방법으로 활용함으로써 충만감과 공존을 지향함을 확인하였다. 전자가 ‘자연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면, 후자는 ‘자연’대상물의 시적 활용과 의미라는 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의 자연에 대한 두 가지 함의를 모두 읽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동일한 모티프와 시적 상황을 가진 동일한 맥락에 있는 남성화자의 텍스트와 특히 변별되는 양상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이상의 논의는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으로 한국 고전 여성 시가 읽기의 가능성을 시도하였다는 의의를 지니며, 자연과 관련한 여성적 특징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텍스트 읽기를 통해 밝혀내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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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남장 여성``인 주인공이 남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남성으로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초기 여성영웅소설 <이현 경전>을 대상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현경전>은 주인공이 남성이 아니면서도 남성으로 살고, 여성이면서 여성이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존재임을 흥미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순히 남성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해서만이 아니라, 남성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 기간을 사대부 남성으로 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분법적 성역할과 남복(男服)이라는 기표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과 선입관으로 인하여, 심지어 그녀의 여성적인 면모마저도 특출한 남성의 표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착각과 오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사대부 남성의 일원으로 일상을 살아가면서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한 주인공의 행동 방식과 화법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은 사대부 남성의 언행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발화의 진짜 주체는 남장 ``여성``이라는 점에서 ``복화술``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취한 언행과 태도는 사대부 남성과 그리 다를 바 없이 보이지만, 실은 "거의 같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흉내(mimicry)``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흉내``는 재현 대상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들추어냄으로써 그 권위를 약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바, 주인공의 남장을 단순히 남성의 삶에 대한 선망이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 추수(追隨)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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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 <청실홍실>과 <흑진주>는 각각 1952년, 1961년에 부산극장, 시공관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들은 그간 여성국극의 레퍼토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번안하였다는 사실로만 간단하게 언급되었을 뿐,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였다. 이는 서사물로써 여성국극의 가치에 대한 선학들의 평가 절하와 대본에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연구사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번안 여성국극 작품과 원작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부분에서 변형·각색이 일어났으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채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1954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안한 여성국극 대본 <청실홍실>과 1961년 <오셀로>를 번안한 <흑진주>를 대상으로, 각각의 작품이 원작을 어떻게 변형하여 수용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셰익스피어의 작을 수용하는 범위가 어째서 달라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탐색하였다. 먼저 본고는 두 작품을 소개하여 셰익스피어 원작과의 차이를 살펴보고, 두 작품이 원작을 수용하는 정도와 양상에서 차이를 가짐을 확인하였다. <청실홍실>의 경우,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반부 - 이룰 수 없는 두 집안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 만수용한 채, 후반부는 원작과는 전혀 다른 서사를 이끌어 간다. 원작이 풀리지 않은 갈등과 오해로 결국 두 남녀의 비극적 결말을 형상화했다면, 여성국극 <청실홍실>은 그 갈등을 전쟁이라는 서사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 낸다. 번안을 통한 재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흑진주>의 경우, 번안이 이루어지면서 개작되기는 하였지만, 원작이 갖는 서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신분의 문제를 안고 있는 남성과 고귀한 집안의 여성이 만나 사랑을 이루지만 남성의 오해와 질투로 파국을 맡는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이다. 본고는 이 같은 원작 수용의 차이를 국내에서 셰익스피어를 수용하는 과정과 결부지어 일차적으로 설명하였다. 요약하여 제시하면, <청실홍실>은 셰익스피어가 문학적·연극적으로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줄거리 수준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특정 모티프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흑진주>는 1960년대 셰익스피어가 문학과 연극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여성국극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번안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두 번안 작품이 당대의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통해 두 작품의 문학적 위상을 검토하였다. <청실홍실>은 전쟁이라는 전국가적 경험을 원작으로부터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번안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작품 내에서 볼 수 있는 충성의 정치학은 이 작품을 행복한 결말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남북 갈등의 모습을 두 집안의 대립으로 설정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결말은, <청실홍실>이 사랑을 외피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동시대의 현실 문제를 결코 간과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흑진주>는 ① 원작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추구하고, ② 국극이 지닌 특성을 발휘하여, ③ 재래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오셀로>를 선택, 번안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번안의 배경에는 점점 관객을 잃고 있는 여성국극의 현실 상황을 타개하려는 여성국극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와 여성국극의 레퍼토리를 둘러싼 내·외부의 문제점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흑진주>는 남녀의 시시콜콜한 연애 문제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다룸으로써 재래의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물론 원작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구현하기 위해 비극적 결말을 살리는 과정에서 작품을 무겁고 지루하게 만들고 말았다. 또한 남성의 질투로 모두가 파국을 맞는 서사가 정서적 공감을 주기엔 무리가 있었고, 무리한 국극식의 행복한 결말도 전후 개연성 없이 일어나 관객에게 어떤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하였다. 결국 플롯이 주는 감동의 효과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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