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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검색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93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7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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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창선감의록」을 기본 자료로 하여 소설 장에서 구성되는 지식의 문제를 담론 실천과 전유, 분산 등의 현상을 통해 검토하고자 하였다. 소설에서 구성되는 지식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현실 담론이 실천적 맥락을 확보하고 재규정되는 장이 소설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선 예법을 체현한 화진과 남부인에게서 윤리성을 주변 인물들에게 인정받아 사회적 권력을 얻는 특징적 담론 실천 방식이 확인된다. 고난과 보상이 연계되는 현상 또한 통속과 오락으로서의 소설이 구성할 수 있는 담론 실천 방식이었다. 남성에게는 고난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과 문제해결을 통해 적극적으로 입지를 만들어 나가는 상황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여성인물에게는 고난-견딤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제한적 논리로 나타났다. 이 구조는 일련의 장편 소설들에서 공유되기 때문에 장편 소설의 특징적 지식 구조로서 검토할 필요성이 있었다.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구조는 젠더 전유를 통해 여성들에게는 금기였던 영역을 경험할 수 있는 상상적 계기를 제공했다. 윤리성만이 유일하게 사회적 인정을 획득할 수 있는 자질이었던 여성에게 윤리적 지지를 통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소설의 상상은 쉽게 전유될 수 있었다. 남장 여자 모티프는 전유를 통한 사회적 인정 획득 과정을 잘 보여준다. 여성의 몸 그대로 전유할 때에는 윤리적 지지에 강조점을 두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남장 여자 모티프로 전유할 때에는 남성적 영역을 경험하고 성공으로 귀결되는 의미에 좀 더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젠더화된 모티프들 중 기본 담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도 발견되었다. 기생/변방의 여인이 첩으로 가문 안에 진입하는 것은 가문의 일원으로 포함되는 동화(同化)라는 점에서 남자 주인공에 대한 보상 모티프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생/변방의 여인이 가문 안에 진입하여 주인공의 배우자로 자리잡고 윤리적 소양을 전유하는 형상을 만들어내면서 가문 내의 위계와 관계가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창선감의록」과 장편소설에 나타난 현상은 조선후기 소설의 생산-출판-독서로 구성된 소설 장이 상식적 윤리/고난 담론의 분산 체계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현실 윤리의 엄격성과는 다르게 매우 통속적 권력욕이 윤리 담론을 견인하고 있었고, 보상을 얻기 위한 수동적 견딤을 넘어서 문제해결을 통해 욕망을 쟁취하는 적극성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경직되고 수동적인 윤리적 구속과 좁은 공간 상상에 갇혀 있는 경향이 있었지만, 남성을 기준으로 상상된 욕망 성취 방식은 바로 여성에게 전유되었고,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젠더화된 모티프는 신분/지역/젠더 등의 경계를 흔들 수 있는, 지식 유동의 상상적 구심점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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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문집에 기록된 비지(碑誌)·전장(傳狀)·애재류(哀祭類)를 통해 여성의 지식 습득과 향유 양상을 읽어내기 위한 데에 목적이 있다. 그 양상을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일음일양의 도[一陰一陽之道]’의 교역(交易), 즉 남녀 간의 ‘관계’에서 찾았다. 조선후기 비지·전장·애제류를 보면 여성들이 어떠한 동인으로 책을 읽었고,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 경우가 의외로 많다. 유년시절 여성들이 읽은 책을 보면 『소학』·『내훈』·『여계』·『여범』·『열녀전』 등과 같은 각종 여성 규범서가 많지만, 그 외에도 <귀거래사(歸去來辭)> <적벽부(赤壁賦)> <애강남부(哀江南賦)> <출사표(出師表)>와 같은 문예문도 향유했음을 알 수 있다. 논어 와 근사록 과 같은 경서들도 읽었다. 이는 유년 여성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접했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마련되었는데, 그 양상은 크게 딸, 며느리, 어머니로 삼분하여 살필 수 있다. 딸로서의 여성은 두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 하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 집안의 어른이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나 형제들이 책을 읽는 것을 듣고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경우다. 그러나 시집을 가게 되면서 여성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하나는 글에 대해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배운 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도정에서 여성의 갈등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집을 간 여성이 시집에서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향유했는가 하는 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결혼을 전후하여 친정 부모 및 친족이 직접 제작한 글이나 병풍을 주어 일생의 전범으로 삼도록 했다는 점. 둘째, 남편과의 관계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향유했다는 점. 셋째, 시부모 및 인척들과의 관계에서 지식을 향유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어머니가 된 여성의 지식 활용은 자식 교육과 자아 성찰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전자는 자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기존에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또한 노년에 접어들면서는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재능을 조금씩 드러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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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전근대 시기 한국의 여성과 관련하여 풍부하고 의미있는 언급을 담고 있는 흠영 (欽英)의 한 면모를 그 저자인 유만주(兪晩柱)의 여성인식과 연관지어 해명하고자 했다. 유만주가 지닌 여성 개인에 대한 인식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이름에 대한 그 특유의 태도라 간주하는바, 이 점을 단서로 삼아 논의를 진행했다. 유만주는 22세 때 반계수록 (磻溪隧錄)을 읽으며 호적(戶籍)에 여성의 이름을 등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사(公私) 영역에서 여성의 이름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명확히 하게 된 이래, 자신의 경험세계 안에서 알게 된 여성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명명법(命名法)이 지닌 경향성까지 파악해 가면서 조선 여성의 이름과 관련한 당대의 통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기 나름의 견해를 형성해 왔다. 그 결과 그는 여성의 이름이 한자의 음과 뜻을 고려하여 아화(雅化)되고 있었던 당대의 정황을 정확히 포착해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여성인식에서 당대의 통념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여성에 대한 사적(史蹟)을 적으며 여성의 실명(實名)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그 여성을 존중하는 기술방식이라고 하는 특유한 견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처럼 유만주가 동시대 여성의 이름에 주목하여 특별한 성과를 보이게 된 것은, 그 자신의 주변적 처지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의 주변적 존재에 대해 정당한 조명을 가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고, 이는 결국 저마다의 존재가 지닌 개별적 고유성을 발견하여 자신의 존재의의까지도 증명 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절박한 요청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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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초기 천주교회와 관련된 여성의 글인 언행실록 과 이순이 루갈다 옥중편지 (이하 옥중편지 )의 내용을 비교하여 여기에 드러난 ``천주``에 대한 인식, 여성과 여성의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밝히고, 이를 통해 천주교 교리 교육과 신앙 공동체의 경험이 여성의 의식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행실록 은 18세기 말, 초기 천주교회 설립자 중 하나인 이벽(李蘗)의 부인 유한당(柳閑堂) 권씨가 저술했다고 하는 여성 교훈서이며, 옥중편지 는 1801년 신유교난 때 동정부부로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가 가족에게 남긴 유언이 담긴 편지이다. 이 두 자료는 남인 계열 사대부 가문에서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여성이 쓴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여기에 반영된 인식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언행실록 은 ``천주``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공경의 대상으로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분명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내용은 여전히 여성의 순종, 삼종지도, 칠거지악을 강조하는 등 기존의 유교적 여성 교훈서에서 강조한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에 반해 옥중편지에는 절대신인 ``천주``에 대한 믿음은 물론 영세(永世) 추구, 부부 평등의 의식이 드러나고 있으며, 남녀 불문하고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용서, 통회, 신망애 등의 덕목이 강조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 두 자료에 나타난 여성과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1790년대 초기 천주교회에서 본격화된 교육과 종교 활동에 참여한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유한당 권씨는 남편을 통해 천주교의 교리 등을 접할 기회는 있었을 것이나 천주교회 설립을 전후한 시기에 세상을 떠나 본격적인 교리 교육이나 전례 참여 등을 경험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이순이 루갈다의 경우는 천주교회 설립 교회 조직이 정비되고, 사제가 입국하고, 여성에 대한 교리 교육과 여성의 교회 활동 참여가 활성화된 환경에서 자라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1790년대에는 성경과 교리서, 신심서, 성인전 등의 번역, 쥬교요지 와 같은 우리말 교리서의 간행과 서적의 필사와 유통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는 여성의 교육과 이를 통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교회 조직의 정비와 함께 규칙적인 미사와 성사, 그 밖의 다양한 교회 활동이 가능해졌는데, 여기에 여성이 남성과 같은 공간에서 참여하며 동등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경험 역시 여성 신자들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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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양보 에서 가정학 교과서를 번역하여 연재했음을 학계에 최초로 보고했으며, 번역의 저본이 된 한문 번역본의 역자가 중국인 일본유학생 단체인 작신사(作新社)임도 밝혔다. 이 한문 번역본의 다양한 유통 과정을 조명하여 저본 대비를 통해 근대의 새로운 지식이 번역되어 다양하게 수용된 경로를 조명했다. 시모다 우타코의 신선가정학 을 한문으로 번안한 작신사의 가정학교과서는 계몽기의 한국에서 다양하게 수용되었으며 이는 시대적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그 번안의 과정에서 드러난 가정(家政)에 대한 한중일의 인식 차이는 재고할 여지가 많다. 또한 조양보 , 호남학보 연재본 및 현공렴 발행본 등, 다양한 판본 사이에 드러나는 번역 양상의 차이는 근대 지식을 번역하고 수용하던 계몽기 당대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조선후기 여성들의 말과 글 그리고 자기표현 -국문장편 고전소설을 중심으로-

정선희 ( Sun Hee Jeung )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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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에서의 여성의 자기표현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산문 기록과 규방가사, 기녀들의 가사들에 대해서 이루어졌기에, 그 범위를 넓혀 국문장편 고전소설을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사용한 ‘자기표현’이라는 말은 화자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감정과 정서 상태,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문장편 고전소설의 초기 작품인 <소현성록>, <유씨삼대록>을 중심으로 논하면서, 보조적인 여성인물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조씨삼대록>을 함께 고찰하였다. 소설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굴절되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유형의 소설은 당시 여성들의 생활과 의식을 비교적 여실하게 담아 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이를 통해 조선후기 여성들의 자기표현 양상의 특징과 효과를 알 수 있었다. 국문장편 고전소설 속 여성 인물 중에는 자존감이 강한 여성들이 존재 하는데, 그녀들은 어려움에 처하거나 마음이 상할 때에 자기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다. 오해를 받거나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에는 대화적인 논변을 통해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설명하였으며, 여성들끼리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위로와 치유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여성들의 마음이나 생각의 표현은 여성 인물 자신의 독백, 인물들 간의 대화, 편지, 상소문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즉, 내용의 면에서는 ‘생애 회고를 통한 정체성 표출 - 자존감 회복과 위안’, ‘쟁점에 대한 논리적 주장과 설득 - 말의 힘의 발휘’라는 항목으로, 표현 방식의 면에서는 독백과 생각을 위주로 한 ‘고백적 글쓰기’, 논쟁적 대화와 편지, 상소문을 위주로 한 ‘대화적 글쓰기’로 나누어 분석되었다. 또한 이러한 여성들의 자기표현은 대체로 ‘위로와 치유’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는데, 이는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 상황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갖게 되기도 하고 상실감이나 결핍감을 보충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자족적이고 포용적이고 논리적인 표현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징표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들 소설이 향유되었던 시기에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 소설들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말하여 진실성을 극대화 했던 것처럼, 우리의 국문장편 고전소설들에서도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독자들의 공감과 동정, 대리만족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성교훈서『閨곤儀則』과 <홍씨부인계녀(사)>와의 관계 탐색

김수경 ( Soo Kyung Kim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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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학계에 제목 정도만 알려져 있는 『閨곤儀則』의 이본들을 비교하고, 이 여성 교훈서와 함께 실린 규방가사 <홍씨부인계녀사>(또는 <홍씨부인계녀>)와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閨곤儀則』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한글필사본 여성교훈서이다. 이 책은 1967년 강전섭이 처음 소개하면서 학계에 알려졌으나, 그 원문 내용의 일부가 <홍씨부인계녀사>를 해설하기 위한 자료로 제시되었을 뿐 현재까지 전모가 밝혀진 바 없다. 기존 연구에서는 함께 수록된 <홍씨부인계녀사>라는 작품이 규방가사 작품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과 병존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홍씨부인계녀사>가 다른 계녀가와 달리 세세한 규범들이 나열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즉 구체적인 시집살이의 경계 및 규범에 대해서는 함께 실려 있는 『규곤의측』을 참고하도록 하여 기존의 계녀가와 달리 상당부분이 생략 내지 축약되었고, 그 결과 <홍씨부인계녀사>는 상대적으로 규범적인 내용보다는 정서적 회고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교훈과 경계’를 공통된 내용으로 하는 여성 교훈서와 계녀가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왔지만 아직까지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따라서 이 논문은 여성 교훈서(흔히 말하는 계녀서)와 계녀가의 관계와 그 의미에 대해서 파악하면서,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교훈서들의 맥락에서 『규곤의측』이라는 책의 위상을 찾고자 하였다. 그 결과, 『규곤의측』은 조선 후기에 양산되었던 한글 본 여성 교훈서의 하나로서 가문 내에서 주로 유통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본들을 비교해볼 때, 18세기부터 여성교육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고조되었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필사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교훈서와 <홍씨부인계녀(사)>의 관계는 일반적 상황/개별적 경우, 공적인 담론/사적인 발화, 주어진 상황으로서의 교훈/스스로 내게 부여하는 의미로서의 교훈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필사문화권에서 공유된 담론으로 이루어진 것이 여성교훈서 (『규곤의측』)라면, 이에 ‘나’라는 인격을 투사하여 구체적 언어행위로 구현한 작품이 계녀가(<홍씨부인계녀(사)>)이다. 이렇게 필사자의 인격이 구체적인 언어행위로 구현된다는 점으로 인해, 당시의 규방가사는 필사자들이 기존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기화하는 문학행위이자 교양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고 본다.

李鈺에게 있어서 "여성" -여성 소재 글쓰기의 성격에 대하여-

정환국 ( Hwan Kuk Jung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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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문인 李鈺(1760∼1815)의 여성을 소재로 한 글쓰기의 성격을 밝힌 것이다. 이옥의 여성 소재 글쓰기가 당대 다른 문인들보다 압도적이라는 점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 동안 ‘여성정감’의 차원에서 『俚諺』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대개 남다른 개성의 발현이자 당대 문단의 새로운 국면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옥이 이언 뿐만 아니라 기타 산문 등 다양한 글쓰기 영역에서 여성을 복합적인 대상으로 응시함으로써 착잡한 시선을 투과시킨 점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컨대 그 동안 연구에서는 이옥의 여성을 바라보는 지점이 너무 일률적이었다. 실제로 이옥은 이언 등의 한시는 물론, 『鳳城文餘』따위의 소품 산문, 그리고 傳이나 記文등 그의 글 전 영역에 걸쳐 여성을 前面에 배치하였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여성은 하나의 像이 아니다. 풍속과 세태 속에서 人情의 척도로 원용하는가 하면, 眞情의 주체로 추어 올렸다가는 어느새 불손한 대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심지어 남성 중심의 불편한 사회에서 여성의 희생을 통해 조화로운 정리를 꾀하려는 불손한 의도마저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층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정 소재 등에서는 여성을 내세워 진정한 만남의 난망함과 불가피한 인간의 운명을 논란한다. <北關妓夜哭論>과 <沈生傳> 등이 특히 그렇다. 이처럼 이옥의 글에서 다루어진 여성은 일률적인 모습이 아니라 복잡하며, 다소 착종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작자 이옥의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하고 있거니와, 그것이 자아정체성의 착잡한 뭉치로 類比되어 드러난 셈이다. 따라서 이옥에게 여성은 경우에 따라 ‘불손한 타자’이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흔들리는 슬픈 자아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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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자신의 생애를 서사화하는 방식이 곧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보고, 이들 간의 상관성을 고찰하고자 했다. 특히 생애담의 종결 방식을 생애담 구연자가 죽음을 의미화하는 방식과 관련 지어 이해해 보려고 했다. 이를 위해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에 실린 생애담 세 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을 진행했다. 2장에서 검토한 생애담은 삶의 의미를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화자의 이야기였다. 이 생애담의 화자는 생의 의미를 어떠한 죽음을 맞는가에서 찾기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이 이전 사건들의 의미를 재규정한다는 점에서 소급형의 서사 구조를 갖는다고 보았다. 이 유형의 생애담에서 죽음은 삶의 이야기 전체에 허구적인 구조를 부여하는 종결의 기능을 하는 의미의 원천이다. 3장에서 살펴본 생애담의 화자는 삶을 그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해한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고난의 의미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과정으로 서사화하기에, 이 생애담은 탐색형의 서사 구조를 갖는다고 보았다. 이 유형의 생애담에서 죽음은 삶이라는 시련을 모두 겪고 난 뒤에 획득한 자격,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삶이라는 무대에서 영광스럽게 맞는 은퇴와 같은 것이다. 4장에서 검토한 생애담은 어떠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개인의 이야기이다. 이 생애담의 화자는 우연한 생존의 에피소드들을 병렬식으로 나열하고, 삶과 죽음을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 생애담에서 죽음은 삶이 그러했듯 자신의 행위 또는 앞서 벌어진 사건들과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맺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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