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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445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3권 0호 (2013)

“두률(兜率),사뇌(詞腦),차사(嗟辭)”의 어의(語義)에 대한 소고(小考)

박재민 ( Jae Min Park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3-31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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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국유사』의 유리왕조에 보이는 “시작두솔가(始作兜率歌), 유차사사뇌격(有嗟辭詞腦格)”에 들어 있는 세 난해어(難解語)인 ‘두률(兜率)·차사(嗟辭)·사뇌(詞腦)’의 어의(語義)를 규명한 결과물이다. 그 간 이 구절은 민족 최초의 ‘가악(歌樂)’을 증언한 곳으로, 혹은 향가와 관련된 ‘사뇌(詞腦)’ 의 의미를 풀어줄 결정적 단서로 활용되며 연구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었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률(兜率)·차사(嗟辭)·사뇌(詞腦)’의 의미는 선명한 해결을 보지 못하였다. 본고는 이를 문헌에 바탕하여 풀이한 것으로 그 결론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두률(兜率)’은 불교용어 ‘두률천(兜率天)’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여러 선학들은 불가(佛家)의 ‘두률(兜率)’이 지닌 ‘환강(歡康)’의 속성과 유리왕대의 ‘두률가(兜率歌)’가 지닌 ‘환강(歡康)’의 의미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목격하였으면서도, 유리왕대의 ‘두률(兜率)’을 ‘고유어의 음사(音寫)’로 이해해 왔다. 유리왕대는 아직 불교가 수입되기 이전이라는 점을 들어서였다. 하지만, 본고는 이와 견해를 달리했다. 불교가 수입되기전의 사실(史實)을 기록할 때, 후대인들이 ‘현재적 용어’로 바꾸어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두률(兜率)’ 역시 이와 같은 궤(軌)의 현상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기 위해 『삼국유사』·『삼국사기』·『고려사 악지』 등에서 몇 용례를 들었다. 2. ‘사뇌(詞腦)’의 의미는 신라인의 이해를 벗어나, 고려인의 이해를 통해 규명하였다. 그간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신라인의 상용어(常用語)로만 이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발굴되고 있는 적지 않은 용례의 ‘사뇌(詞腦·思惱·思內·詩腦)’들은 모두 고려인의 일상어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즉, ``경찬시뇌가(慶讚詩腦歌)·기사뇌가(碁詞腦歌)·사뇌사(思惱寺)·사내사(思內寺)’ 등에서 보이듯이 11~13세기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어휘가 고려인의 일상어였다면, 우리가 그간 견강부회라고 보았던 고려인(高麗人) 혁련정의 언급-의정어사(意精於詞) 고운뇌야(故云腦也) -또한 소홀히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는 당대(當代)의 의미 범주가 반드시 반영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 ``사뇌’란 말은 항상 ``청(淸)·정(精)·려(麗)·찬(讚)·아(雅)·고(高)·가(嘉)’ 등의 의미 범주에 있었다. 이로 본고는 ``사뇌’의 의미를 그러한 범주로 설정할 것을 요청했다. 3. ‘유차사사뇌격(有嗟辭詞腦格)’의 ‘차사(嗟辭)’ 또한 의미가 재규정되었다. ‘차사(嗟辭)’는 그간 많은 번역서들에서 ‘슬퍼하는 말’로 풀이되거나, 국문학계에서 역시 단순히 ‘감탄의 말’로 이해되어 왔지만, 본고에서는 ‘차(嗟)’가 지닌 또다른 의미인 ‘찬미(讚美)’ 또한 고려의 대상에 넣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렇게 될 때, ‘유차사사뇌격(有嗟辭詞腦格)’은 ‘찬미의 말로 사뇌의 격조가 있었다.’로 해석되어 전후구가 잘 호응되기 때문이다. 현화사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경찬시뇌가(慶讚詩腦歌)? 역시 ``차(嗟)’자(字)와 관련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차(嗟)’ 또한 ``찬미(讚美)’의 의미란 것도 하나의 유력한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결국 “시작두솔가(始作兜率歌), 유차사사뇌격(有嗟辭詞腦格)”는 “비로소 (왕의 선정과 시절의 승평함에 대한) ``지족(知足)의 노래[두률가(兜率歌)]``를 지으니 ``찬미하는 말[차사(嗟辭)]``로 ``사뇌[청(淸)·정(精)·려(麗)·찬(讚)]로운 격조’가 있었다.”로 풀이되어야 한다.

고전시가와 중국 인식의 시대별 추이

최재남 ( Jae Nam Choi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33-62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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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전시가의 내부 변화를 중심 축에 두고 중국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지속되고 변화되었는지 살피고자 한다. 10세기 균여의<보현시원가>와 이를 한역(漢譯)한 최행귀의 역시는 우리 노래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중국 사람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에서 고전시가의 주체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12세기 고려 예종 대에 대성악을 받아들인 것은 신라 유리왕 이후의 가악 전통에 큰 변화를 몰고 왔으며, 대성악을 아악(雅樂)으로 받아들임으로써 宋 중심의 천하 질서에 편입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13세기 속악가사와 경기체가에서는 속악의 전통에 놓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속악가사에서는 <예성강>을 제외하면 중국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기 어렵고, 경기체가에서는 <한림별곡>을 예에서 보듯 제도와 문물은 중국의 것을 활용하되, 그 운용의 주체는 고려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14세기 몽고 지배기를 거치면서 지식인들이 원나라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문자를 쓰고 수레의 궤폭을 같게 하는 동문공궤(同文共軌)의 인식이 자리를 굳히게 되었고, 고전시가에서도 중국 인식에서 큰 변화를 몰고 온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15세기 <용비어천가> 구성에서는 육룡의 행적을 자연스럽게 서술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고성의 행적에 견주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성의 행적이 규준(規準)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다. 이렇듯 보조 자료가 근거 또는 규범으로 인정되게 된 현상은, 고전시가에서 중국의 고사나 일화를 중심에 두거나 염두에 두고 우리말 중심으로 형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에는 인식 층위의 혼선을 겪고 있다. 현실적인 힘을 가진 청나라의 중국과는 다른 관념과 내면에 자리한 한족 국가의 회복을 바라는 중국상이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상은 구체적인 작품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논의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가사 <신가전(申哥傳)>에 나타난 혼인의 양상과 여성의 욕망

송소라 ( So Ra Song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63-101 ( 총 39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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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간 학계에서 활발한 관심을 받지 못한 가사 <신가전>을 여성 인물의 욕망과 좌절의 측면에서 새롭게 해석해 보고자 하였다. 가사 <신가전>은 혼인을 주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혼인의 양상과 의미를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성을 갖는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차적으로 <신가전>에 나타난 혼인의 양상을 가문의 결합 측면에서, 혼인 제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로써 <신가전>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장대한 혼수 사설이 가문 결합의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가짐을 이끌어 내었다. 즉, 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혼인에 대한 어머니의 정성이라는 기존의 해석에 더해 재물에 대한 자부심 및 자랑, 가문의 격차를 재물로 해소하고자 한 한림댁의 의식을 추출한 것이다. 또한 <신가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남귀여가혼속(男歸女家婚俗)을 통해 이것이 의미하는바를 따져봄으로써 과부 한림댁이 딸의 혼인 파경으로 삼일 만에 죽었다는 서사를 보다 타당하게 설명해내고자 하였다. 3장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다루었는데, 혼인을 통해 기대한 바가 무엇이었는가를 한림댁과 딸의 내면에서 살펴보고, 그것이 좌절되는 과정 역시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한림댁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딸 하나를 둔 청환거족의 양반가 여성으로 딸의 혼인을 통해 다음의 두 가지를 기대, 혹은 욕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아주 일차적인 것으로 모성에 기반을 둔 딸의 행복이다. 부유한 집안의 잘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의 딸에 대한 기대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자신과 좀 더 밀접한 것으로 딸의 행복을 통해 얻게 될 노후의 안락이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한림댁이 의지할 대상은 오직 딸과 사위이다. 그리하여 한림댁은 재산상속의 측면에서, 그리고 가문의 자존심의 측면에서 모든 혼수를 동원하였던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한림댁의 내면을 중요하게 보고자 하였다. 딸 역시도 혼인을 통해 다음의 두 가지를 기대하였다고 보았다. 첫째는 16세의 여인이 일반적으로 희망하는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남편에 대한 기대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느 사대부가 여성답게 번듯한 남편 아래 자녀를 낳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어머니 한림댁은 이루지 못한 것이기에 두 모녀에게 보다 절실한 삶이 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본고는 이와 같은 모녀의 욕망이 어떻게 좌절되고, 또 어떻게 비극을 맞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신랑의 괴약한 외형에 주목하여 이를 대하는 한림댁의 태도를 통해 그가 단지 못생긴 것만이 아닌 비정상적인 형태의 인물임을 추론하였고, 이로써 그가 영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두 모녀를 절망하게 하였음을 언급하였다. 다음으로 性 능력의 결함이다. 이는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혼인 파탄의 사유이다. 본고는 선행 연구가 신랑의 성 능력의 결함을 여성의 적극적 성 의식의 반영으로 본 것을 넘어, 여기서의 성을 단순히 쾌락으로써의 성이 아닌 자손 번영의 측면으로 파악하였다. 혼인에서 ‘性’의 문제는 자손, 즉 가문의 유지와 영속의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는점을 생각할 때,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신가전>의 신랑은 영민하지 못하기에 벼슬을 통해 현재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없고, 고자이기 때문에 자녀를 생산하여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그야말로 불구의 사람이다. 한림댁이 딸의 혼인 삼일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 어머니의 죽음 이후 딸마저 자진하려한 것은 이 모든 정황 속에서 보다 온전히 해명이 될 수 있다. 본고는 이를 통해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인간 욕망의 헛됨에 대한 자각과 경계의 측면에서 논의하였다. 두 모녀의 비극이 잘못된 혼인제도, 여성에게 불합리한 사회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기존의 견해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측면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한림댁과 그녀의 딸은 혼인을 통해 당대 양반가 여성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지위를 희구하였다. 그들이 그토록 혼인에 공을 들이고, 사위를 고르고 고르며, 온갖 혼수를 준비하며 혼인에 임한 것은 그 반대급부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결국 딸은 불가에 귀의하여 70년의 여생을 살다 죽고 만다. 어째서 굳이 불교적 서사를 넣었는가. 본고는 이 작품이 ‘딸은 결국 절로 들어가 여승이 되었다’는 간단한 서술로 작품을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 이후 여생을 아미타불하며 살았다고 서술하는 점, 그리고 말미에 경세의 의미를 담는 것에 좀 더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이 작품은 인생무상과 욕망의 헛됨을 말하며 운명대로 살길 바라는 주제의식을 노출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境界),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신발 한 짝"

이강엽 ( Kang Yeop Lee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103-128 ( 총 26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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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境界)라는 관점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몇몇 설화에 등장하는 ‘신발 한 짝’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이는 그간 신발을 신발 주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인식해오던 한계를 넘어 주제적인 국면까지의 해명을 시도한 것이다. 첫째, ‘신발 한 짝’의 신화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신발 한 짝이 이른바 ‘신데렐라형(型)’ 이야기에서 한쪽 신발은 이쪽 세계에 한쪽 신발은 저쪽 세계에 둠으로써 그 주인이 양쪽에 걸쳐진 존재를 표상하며, 우리 불교설화에서는 ‘관음’이라는 상징을 통해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고 위로는 부처의 깨침을 추구하는 중간자적 존재로 드러날 때 신발 한 짝이나 버선 한 짝 같은 식의 상징물이 사용되었다. 둘째, 『삼국유사』에서 신발 한 짝이 나오는 자료를 살폈다. ?탑상(塔像)?편의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夫得??朴朴)>,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 ?의해(義解)? 편의 <이혜동진(二惠同塵)>, ?감통(感通)?편의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 등 네 자료에 드러나는데, 이들은 모두 신발 한 짝으로 두 세계에 걸쳐있는 인물, 혹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동하는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준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각 작품의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夫得??朴朴)>은 신발이 옮겨간 방향이 신라에서 중국이 되게 함으로써 신라를 불법 전파의 성지(聖地)로 귀결시킨다.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에서는 신발 한 짝은 진세(塵世)에 둔 채 나머지 신발한 짝을 끌고 정토(淨土)에 좌정(坐定)하는 서사를 통해 관음이 진세(塵世)와 정토(淨土)에 걸쳐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또, <이혜동진(二惠同塵)>은 신발 한 짝은 동쪽 언덕에 남긴 채 다른 한 짝은 서방으로 가는 모습을 그려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극적으로 구현해낸다.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은 신발을 떨구고 육신마저 떨어낸 후 완벽한 해탈을 이루는 서사로 귀결되었다. 신발이 한 짝으로만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머지 한쪽과의 통합을 갈구하면서 양자 사이의 불균등을 해소하여 위아래 구분 없이 평등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이런 이야기들의 핵심 주제이다. 신발 한 짝이 등장하는 설화는 곧 성(聖)과 속(俗), 미각(未覺)과 각(覺), 윤회(輪廻)와 해탈(解脫)의 경계에서 그 둘이 어떻게 중개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합되는지 밝혀내는 서사인 것이다.
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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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한국 고전소설 <운영전(雲英傳)>은 ‘자유연애’라는 애정전기(愛情傳奇)의 오랜 테마를 다루되 궁녀(宮女)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유와 억압’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했다. 17세기 중국의 육차운(陸次雲)이 창작한 <원원전(圓圓傳)>과 일본의 이하라 사이카쿠가 창작한 <호색일대녀(好色一代女)> 역시 여주인공을 내세운 각국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본고에서는 세 작품의 여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원망(願望), 이들 여 주인공을 보는 작가의 시각을 비교 고찰했다. <원원전>은 전통적인 3인칭 시점을 취했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그에 따른 기본 설정이 여주인공의 운명을 여주인공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게 했기에 <원원전>은 진원원(陳圓圓)의 전(傳)을 표방했지만, 여주인공의 삶과 운명을 섬세하게 조망하는 데에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운영전>과 <호색일대녀>의 작가는 1인칭 고백 형식을 택하여 여주인공의 삶을 여주인공의 목소리로 전달했다. <운영전>은 운영의 시선을 따라 그 욕망의 실현과 좌절 과정을 섬세하게 살핀 결과 ‘금지된 사랑’이라는 전통적인 애정 모티프를 ‘가장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자유’라는 의미심장한 사회적 주제로 탈바꿈시켰다. <호색일대녀> 역시 一代女의 시점에서 남성 편력을 회고하고 반성했기에 그 참회의 대상인 어리석은 욕망이 인간 본능, 인간 숙명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게 했다. 17세기 동아시아 여성 서사는 <운영전>과 <호색일대녀>에 이르러 여주인공을 중장편소설의 서술자로 내세우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함으로써 여성의 운명을 여성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최척전>,<김영철전>

김경미 ( Kyung Mi Kim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165-192 ( 총 28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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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최척전>과 <김영철전>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동아시아의 개념, 동아시아적 거점과 시각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지금 인문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단위 혹은 방법론이다. 이 글에서도 동아시아를 인식단위, 방법론으로 보고,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 이중언어, 유교, 유교가부장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를 하나의 인식단위, 방법론으로 놓게 될 때 동아시아를 서구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을 우려하여 주변적 시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한국 고소설 가운데 동아시아로 공간과 인물을 확장한 <최척전>과 <김영철전>을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재해석 하였다. 포로가 되거나 전란 중에 가족과 헤어진 국가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인물들의 경험을 담고 있는 이 두 작품은 타자의 연대나 보편적 인간애가 펼쳐진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두 작품이 보여준 인적 교류는 제한적이며, 따라서 타자의 연대나 보편적 인간애로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두 작품은 국가 경계를 넘어선 주변인들의 교류를 통해 국가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을 때 새로운 관계가 열릴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원형 스토리의 변형과 교구(交構)를 통해서 본 <영이록>의 특징

김용기 ( Yong Ki Kim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193-222 ( 총 30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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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록>은 <소현성록>에 있는 손기 이야기를 원형 스토리로 하고 있다. 여기에 출생담과 다양한 매개 스토리와의 교구(交構)를 통해 새로운 인물 성격의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필자는 <영이록>의 이러한 특징을 작품 속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제시한 후, 이 작품의 인물 성격 창조와 서사의 변형 과정을 탐색하였다. 먼저 이 작품에서는 원형 스토리에 없는 출생담을 수용하고 있는데, 그 형식과 내용은 기존의 군담 영웅소설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인물의 성격이 바뀌게 됨을 의미하며, 동시에 서사의 방향성이 달라짐을 뜻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바보 손기 이야기에 출생담을 견인시켜 인물 성격 창조의 토대 변인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인물 성격 창조의 매개 요소로서 다양한 매개 스토리를 교구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호국천사(護國天師) 손기 이야기’라는 변형 스토리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원형 스토리에 출생담이 가미되고, 이어서 매개 스토리가 교구됨으로 인해 작품 전체 서사의 변이와 확장이 일어난다. 그 순서는 먼저, 원형 스토리와 출생담의 교구를 통해 서사의 변이 가능성이 배태된다. 바보 손기가 비범한 인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연속적으로 매개 되는 스토리와의 교구를 통해 서사의 변이가 한층 다양화되고, 아울러 전체 서사는 원형 스토리보다 그 편폭이 큰 것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서사의 변이와 확장은, 인물의 성격과 입공의 성격을 두 가지로 병치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하나는 천상계 명령 실현 중심의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손기 개인 중심의 자아 성취 중심 서사이다. 전자는 공적 영역의 집단적 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고, 후자는 독자와의 감정적 유대감을 염두에 둔 감성 중심의 서사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두 가지 서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정심(正心)·정도(正道)를 통한 세상의 교화 및 태평성대 실현이다. 이 공통된 요소가 두 가지 서사를 전체적으로 통어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하여 서사의 방향성을 통일시키고 있다. 따라서 <영이록>이 표면적으로는 충(忠)의 실현을 통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자아실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듯하지만, 이러한 손기의 자아 성취 서사는 천상계의 인간 세상 교화의지와 명령 서사 속에 모두 수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옥주호연(玉珠好緣)>의 특징과 소설사적 의미

이지하 ( Jee Ha Lee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223-251 ( 총 29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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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호연(玉珠好緣)>은 19세기에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으로서 여성영웅소설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단일한 유형성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기에 그 특징들을 살피고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산출된 19세기 소설사의 양상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보인다. 첫째, <옥주호연(玉珠好緣)>이라는 표제명은 남녀 주인공의 결합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장편국문소설의 관습에 가깝다. 이 소설이 속한 단편군담 영웅소설 유형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을 빌어 ‘-전’ 형식의 제명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 세 명의 쌍둥이 여주인공과 이들의 천정배필로서 세 명의 남주인공을 설정하여 복수주인공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 역시 장편국문소설의 서사 관행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단일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단편군담영웅소설의 관습과는 차별화된다. 셋째,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서 내면을 포착하고 상대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세 명의 복수주인공을 통해 인물의 내면 심리를 복합적으로 그리는 가운데 선악의 이분법이나 출세지향의 사고가 약화되고 절대주의적 사고에 대한 반성이 그려진다. 넷째, 시련의 제거나 혼사과정의 확대, 후기나 서찰의 활용 등을 통해 구조적 차원에서 장편국문소설의 요소들을 차용함으로써 유형적 습합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유형 간 혼효 양상이 빈번해진 19세기 소설사의 양상을 고찰할 수 있다. 대중적, 상업적 맥락에서 주로 단편군담영웅소설이 장편국문소설을 모방하면서 이루어진 이러한 착종 현상은 관습적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속적 경도로 인해 19세기의 진지한 문제의식을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했다는 한계 역시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활자본 고전소설의 총량에 대한 연구

최호석 ( Ho Suk Choi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253-294 ( 총 42 pages)
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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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필자가 작성하고 있는 ‘활자본 고전소설 서지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활자본 고전소설의 총량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먼저 활자본 고전소설을 정의하고, 그것의 범위를 한정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자료를 ‘실물’과 ‘기타 목록’, ‘각종 광고’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그 결과 381종의 작품이 3000여 회에 걸쳐 활자본 고전소설로 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실제 발행된 것이 확실한 것은 328종이며, 나머지 53종의 작품은 광고나 기타 목록 등의 관련 기록에서 제시되었다. 그리고 작품 별로 발행 횟수가 기록되면서 각 작품에 대한 당대 독자의 선호도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활자본 고전소설 전체의 서지 사항을 입력한 대용량 데이터에 대한 분석은 차후에 전개될 활자본 고전소설의 총체적 이해에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18세기 마병(馬兵)의 한글일기 <난리가> 연구

정우봉 ( Woo Bong Chung )
한국고전문학회|고전문학연구  43권 0호, 2013 pp. 295-326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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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亂離歌)>는 1728년에 발생한 무신란(戊申亂) (일명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관군(官軍)으로 참전한 훈련도감(訓練都監) 소속의 한 마병(馬兵)이 산문으로 기록한 한글일기 작품이다. <난리가>의 작가가 누구인지 그 정확한 정보는 알기 어렵다. 다만 작품내 몇몇 단서를 통해 <난리가>를 쓴 작가는 훈련도감(訓練都監) 소속 마병(馬兵)이며, 가족들과 함께 수도 한양에 거주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난리가>는 무신란이 끝난 이후 1728년 12월 무렵에 원고를 완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난리가>는 하층 병사에 의해 창작된 한글일기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현존하는 한글일기가 많지 않아 자료적 희소성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무신란에 직접 참전한 한 하급 병사의 손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이 조선시대 일기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더욱 의미 깊다고 하겠다. 현존하는 한글일기는 대부분 상층 사대부층, 특히 남성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 향유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난리가>의 존재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무능한 지휘관의 부정적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 점, 하급 병사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군영 생활의 단면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그들의 전투 상황과 활약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점, 아이러니의 기법, 시조 작품 등에서 항용 사용되는 돈호법의 수사기교 그리고 천근한 일상 구어를 적절하게 운용한 점 등은 <난리가>가 보여주는 독특한 면모이다. 그리고 이같은 작품적 특징은 도시 하층민으로 살아가던 훈련도감 소속 병사들의 정서와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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