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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ethe-Yongu


  • - 주제 : 어문학분야 > 독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712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9권 0호 (1997)

예술가의 존재. 괴테의 「 예술가시 」

전영애 (Young Ae Chon)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221-238 ( 총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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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판 괴테 전집 제 1권, 『시』에서 슈트름 운트 드랑 시기의 「대 찬가」들 바로 뒤에 수록된 「예술가시」의 시편들은 대부분 1993-1774년 찬가들과 같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프랑크푸르트 판 등에는 찬가들과 섞여 수록되어 있다. 예술가 실존 전반을 다루는 이 시편들에서는 삶과 예술에 대한 괴테의 기본 생각이 이미 청년기에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짧은 초기시편들이 보여주는 대작 『파우스트』와의 많은 유사성, 그리고 예술가의 삶의 놀랍게 사실적인 기술이 이루어내는 강한 현실연관은 정당한 주목을 요한다. 이 시편들에서 예술가는 우선 그 본질상 섬세한 감각을 지닌, 본성상 자연에 가까운 인물로 기술된다. "세계를 가장 내면에서 지탱하는 것"에 대한 인식욕, 자연의 힘을 보려는 열렬한 소망과 자연의 작용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지령을 불러내는 파우스트의 면모와 유사하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도 예술가는 무엇보다 하늘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별"을 원하는 충동을 공유한다. 이 충동으로 하여 파우스트는 "감각적 초감각적인 구혼자"로 나타나고, 「예술가시」에서 예술가는 "비너스 우라니아", 하늘에서 기원한 사랑과 미의 여신의 구혼자로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양자는 "신-자연"에의 도상이 있다. 그럼으로써 예술적 창조과정은 에로스적인 과정과 동일시된다. 예술가는 "신의 뜻과 인간의 손으로", "내가 내 아내곁에서 동물적으로 할 수 있고 해야하는 바"를 이룬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에서는 거꾸로 파우스트와 헬레나의 내적 결합이 운율예술의 실행으로 옮겨져 있다. 그리고 정신성의 총화로 창조된 호문쿨르스도 결국 비너스의 인간적 후계자인 갈라테아의 조개왕좌에 부딪쳐 흘러버린다. 예술가시편들은, 파우스트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무엇보다 예술가적 존재로 구상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 시편에는 지상의 "최고의 쾌락", 현실적 애정의 모험이 없고 메피스토펠레스가 없다. 그대신 예술가가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비참함이 대립축을 이루고 있다. 예술가의 위협받은 존재가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있는데, 예술가의 존재 자체가 후일 낭만주의자들의 예술관, "특별히 높이 서 있고 특별히 위협받은" 존재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존재가 현실과 직면하면서 부디딪치는 난관들, 타협과 적응의 가능성, 예술사업의 강자들에 의한 조종이 우화, 서정시, 대화시, 극시 등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술가와 전문가 문제는 『파우스트』의 바그너 문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바그너 같은 유형의 인물은 여기서 관용되는 것이 아니라("하나의 충동만 알거든 다른 것은 배우지 말라"), 예술가에게 가해지는 현실세계의 압력을 체현한다. "그 자를 때려죽여라, 그 개를. 그는 비평가이다. "라는 극언으로 비평가에 대한 견해가 마무리될 정도이다. 「예술가의 지상유전」, 두 편의 「예술가 신격화」에서 극화(劇化)로 첨예화된, 좌절을 주는 일상의 구체적 세부들이 매개된다. 또한 예술가의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가 파우스트적으로 탄식된다. 예술가는 그런 환경 한가운데서 비너스 우라니아를 그리고, 다른 젊은 예술가는 나중에 그 그림을 "뜨거운 열망으로" 모사한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보상은 거부되어 있다. 하늘에서야, 궁핍하고 괴로운인생이 끝나고서야 뮤즈가 예술가에게 자신의 사후의 명성의 현장을 보여준다. 예술가는 흡족해하기는 족하기는 커녕 지금 자신의 그림을 장식하고 있는 액자의 금 만이라도 생시에 있었기를 소망하며, 살아있는 젊은 예술가를 위하여 뮤즈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필요한 것을 제 때에 주십시오" "그 자신이 씹을 수 있고 입맞출 수 있을 때." 두 극시를 마무리 하는 비현실적인 장면Vision은, 앞서의 매우 사실적인 현실묘사와의 대조를 통하여 큰 `환상 깨뜨리기 효과`를 낸다.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기술은 예술가에 대한 근대적 견해, 현실의 정확한 관찰, "병신 감자 하나하나에 대한 존중"이라는 괴테 자신의 강령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게해서 이 기술들은 슬프면서도 위트있는 고도의 시사성을 얻는다. 뮤즈의 유일한, 무력한 충고("부유하지 않거든 용감하기라도 하라")와 예술가의 체념("내가 그토록 부르고 싶은 노래/누구나 듣고 싶어하는 건 아니네"는 예술가들이 자본주의 시장에 내맡겨져 있는 우리시대에 더욱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괴테와 횔덜린에 있어 정진하는 인간상

염승섭 (Syng S . Yom)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239-255 ( 총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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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8세기 말, 특히 독일고전주의 시인인 괴테와 횔덜린의 작품세계에서 `정진(精進)하는 strebend` 인간상(像)과 그 함축된 의미를 추출하고자 하는 바, 그 시발점으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타나는 두 명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즉 그 하나는 "인간은 정진하는 한 방황한다"함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나 정진하며 노력하는 인간을 우리는 구제할 수 있다" 함이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주인공 파우스트의 인생행로에 적용함에 있어 지금까지의 괴테연구는 두 상반된 견해를 피력해 왔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주된 해석방향이었던 `완성가능론적 perfektibilistisch` 입장에 대해 종전 후 강한 반기를 든 빌핼름 뵘에서 시작된 `완성불가론적 anti-perfektibilistisch` 입장은 1990년 독일통일을 전후하여 다시금 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베르너 켈러는 나치의 범죄와 동독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 양상과 그 엄청난 폐단에 주목하며 주인공 파우스트의 모습과 행동에서 우리시대에 경고를 주는 괴테의 `메세지`를 읽고자 한다. 즉 그룻된 `전체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근래에 몰락한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의 `허위적` 성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본 논문은 `완성가능론적` 입장의 출발점을 찾기 위하여 18세기에 팽배하였던 `완전` 또는 `완전가능성`의 사고방식을 그 당시 영국의 도덕철학 전통과 그것을 받아들인 불란서의 계몽주의자들(쉐프츠베리, 아담 퍼거슨, 콘도르세 등)의 입장과 루쏘를 비롯하여 괴테, 쉴러, 횔덜린에서 나타나는 자연철학 -특히 자연을 전범으로 삼으려는 사고방식을 개관한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개체와 전체가 조화될 수 있다는 신념, 완전성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 전체가 완전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즉 인도주의적 노력이 개인의 행복을 가능케 한다는 구상이다. 괴테와 횔덜린에 있어서 우리는 그 각 시인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연관관계에 주목한다. 개인이 어떻게 발전하며 완전해지고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괴테와 횔덜린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완전지향적 인물을 부각하였다면, 같은 시기에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는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에서는 그 주인공이 한 전문기술을 습득함에 비중을 둠으로써 `완전한 교양인`이 되고자 했던 바 그 처음 목표를 수정한다. 반면 횔덜린의 경우에는 그 `전체`를 목표함으로써 그 전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등식관계에서 그의 시인적 사명을 찾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시인은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정진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들의 삶과 작품에서 공히 보여주고 있다.

레싱 G. E. Lessing 의 문제희극 『 유대인들 Die Juden 』 연구

윤도중 (Do Chung Yun)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257-275 ( 총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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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einer Problemkomo¨die Die Juden stellt Lessing das Thema Antisemitismus zum erstenmal in Deutschland zur o¨ffentlichen Diskussion, was er 30 Jahre spa¨ter mit seinem letzten Drama Natan der Weise wiederholen wird. Der Titel la¨bt eine Komo¨die erwarten, in der auf Kosten der Juden gelacht wird, was aber nicht der Fall ist, denn es tritt kein komischer Jude auf. Statt dessen wird viel von Juden geredet, was darauf zuru¨ckgeht, daß die Ra¨uber als Juden vermummt waren. In diesen Reden erscheinen die Juden als bo¨se, unmoralische und geizige Leute. Das ist eben das antisemitische Vorurteil, das Lessing darstellt. Im Verlauf der Handlung zeigt sich aber, daß der edle und groBmu¨tige Reisende, der den Baron gerettet hat, ein Jude ist, und die Ra¨uber als Juden vermummte christen waren. AuBerdem haben die anderen christlichen Figuren fast alle antisemitische Vorurteile. Damit zeichnet sich eine Grundthese der Aufkla¨rung ab, daß die Moral unabha¨gig von der Religion ist. Die Diskriminierung der Angeho¨rigen einer anderen Religion oder Nation ist folglich ungerechtfertigt. Das Bekenntnis des Reisenden, das alle Christen u¨berrascht, stellt ihre antiju¨dische Haltung bloß. Der Baron, der aus Dankbarkeit und Achtung vor dessen Edelmut seinem Lebensretter seine Tochter zur Frau geben will, nimmt sein Angebot zuru¨ck und schiebt es nicht seinem Vorurteil, sondern dem Schicksal, d. i. dem Gesetz zu, das die Mischehe verbietet. Die Christen erkennen nun zwar, daß es gute Juden gibt, aber behalten ihre antisemitische Haltung bei, daß eine generelle Gleichstellung des ju¨dischen Volkes nicht akzeptabel sei. Sie sind in ihrem Vorurteil irritiert, aber nicht bekehrt. Da die Zuschauer wesentlich fru¨her als die dramatis personae Hinweise bekommen, daß es sich bei dem Reisenden um einen Juden handelt, distanzieren sie sich trotz ihrer Vorurteile von ihren unaufgekla¨rten Glaubensgenossen auf der Bu¨hne und akzeptieren die vernu¨nftigen Ansichten des Reisenden. Sie erkennen an den widerspru¨chlichen Haltungen der Figuren die Unnatu¨rlichkeit und Ungerechtfertigkeit der Judendiskriminierung. Lessings Absicht ist es, die Zuschauer durch diese Erkenntnisse zur U¨berwindung ihrer Vorurteile zu fu¨hren. Dadurch, daß die Heirat zwischen dem Reisenden und dem Fra¨ulein nicht zustande kommt, wird das ideele Ziel dieser Komo¨die, die Vorurteile zu u¨berwinden, im Stu¨ck selbst von den Figuren nicht erreicht. Auf der einen Seite setzt sich Die Juden die U¨berwindung der Vorurteile zum Ziel, zeigt aber auf der anderen Seite, daß das Ziel im Deutschland der Mitte des 18. Jahrhunderts nicht realisierbar ist. Die Diskrepanz zwischem dem Ideal und der Wirklichkeit kann die Zuschauer nicht zufriedenstellen, sondern la¨ßt einen unangenehmen Nachgeschmack zuru¨ck, der sie erkennen la¨ßt, daß zur U¨berwindung der Vorurteile den gedanklichen Bemu¨hungen auch die Tat folgen muB.

쉴러의 유골문제

장상용 (Sang Yong Chang)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277-291 ( 총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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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ieser Arbeit wurde versucht, Schillers Tod, Bestattung und sogenannt Scha¨delproblem zu untersuchen, und deren Ergebnisse koreanischen Germanisten bekannt zu machen. Dabei wollte ich die damaligen Sitten und die Traditionen wenn mo¨glich ausfu¨hrlich beschreiben. Schiller ist im Jahre 1805 in Weimar gestorben und wurde in dem "Kassengewo¨lbe" auf dem Jakobsfriedhof beigesetzt. Im Jahre 1826 hat C. L. Schwabe, der bei der Beerdigung den Sarg Schillers getragen hatte und Bu¨rgermeister der Stadt Weimar wurde, aus den Scha¨delund Knochenresten einen Scha¨del und einige Skelett-Teile herausgefunden, die er als die von Schiller identifizieren zu ko¨nnen glaubte. Ein Jahr spa¨ter wurden der Scha¨del und die Knochen in den Sarg gelegt und schließlich in die "Fu¨rstengruft" beigesetzt, wo auch Goethe im Jahre 1832 seine letzte Ruhesta¨tte fand. Aber im Jahre 1883 verglich der Anatom Prof. Dr. H. Welcker den Gipsabguß des im Schiller-Sarg ruhenden Scha¨dels mit der Totenmaske, die Ludwig Klauer unmittelbar bei dem Sterbebett gemacht hatte. Welcker gelangte schlieBlich zu dem Ergebnis, daß die beiden nicht identisch waren. VeranlaBt durch das Forschungsergebnis Welckers setzte der Anatom Prof. August v. Froriep im Jahre 1919 durch, das abgerissene Kassengewo¨lbe erneut nachzugraben, und fand unter den 63 ausgegrabenen Scha¨deln einen, den er als den von Schiller identifizieren zu ko¨nnen glaubte. Im Jahre 1950 wurde aber die Hypothese von Froriep von einem Berliner Zahnarzt F. L. Hildebrandt negiert, denn er behauptete durch die sorgfa¨ltige Untersuchung der Za¨hne Schillers und seiner Zahnkrankheiten, daß der im Schiller-Sarkophag ruhende Scha¨del mit hoher Wahrscheinlichkeit doch Schillers Scha¨del sei. Der Streit, welcher Scha¨del von den beiden der richtige Scha¨del Schillers sei, war ein langes und ernstes Problem. Als ein Wissenschaftler ausßerhalb Deutschland bin ich nicht in der Lage, zu einem Schlußergebnis zu kommen, wie der Streit abgeshlossen ist. Aber es wa¨re durchaus von Bedeutung, wenn diese Arbeit den Germanisten bei der Schillerforschung hilflich sein ko¨nnte.

" 천재 Genie " 의 역사적 의미론과 탈현대이론들에 의한 상대화

조경식 (Kyoung Sik Cho)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293-313 ( 총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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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Begriff "Genie", der im 17. und 18. Jahrhundert in Europa auftaucht, und vor allem die Bedeutung "Scho¨pfertum" entha¨lt, hat seinen Ursprung in damaliger Anthropologie, die in der bu¨rgerlichen funktionalen Gesellschaft die herrschende Position der Theologie in der feudalen stratifikatorischen u¨bernimmt. Da tritt der "Mensch" an die Stelle "Gottes", indem jener einerseits bei der Erkla¨rung seiner Differenzen zu Tieren sick "Perfektibilita¨t" zuschreibt, und andererseits mit der Selbstbechreibung sich als "Individuum" bzw. "autonomes Subjekt" bezeichnett, das von sich aus Gesetze schafft. Der "Mensch", autonomes Individuum, wird nun von dem Begriff "Genie" assilmiliert, der den Ku¨nstler dazu berechtigt, die einzige und selbsta¨ndige Instanz bei der Hervorbringung der "Scho¨nheit" zu sein. Außer dieser Anthropologie verdankt der Begriff "Genie" dem "Genius" seine Bedeutung. Als ein Halbgott spielte dieser im ro¨mischen Zeitalter die Rolle eines Schutzgeistes fu¨r jeden einzelnen Menschen. Jeder Mensch hat also einen "Genius". Dieser la¨ßt jeden Menschen denken und handeln, und fu¨hrt ihn durch sein Leben. Diese Vorstellung von "Genius" war weiterhin in das 18. Jahrhundert u¨berliefert. Dabei erfa¨hrt die Vorstellung von "Genius" eine Vera¨nderung. Vor allem im Zusammenhang mit der Kunst ermo¨glicht "Genius" nun einerseits dem Ku¨nstler den Zugriff auf die ihm fremde Welt. Andererseits beweist "Genius" die spezifisch a¨sthetische Qualita¨t, indem sich der Ku¨nstler auf ihn als go¨ttlichen Wahn bzw. go¨ttliche Eingebung beruft. Hier ist "Genius" nicht nur dieser Genius oder jener Genius fu¨r einzelne Individuen, sondern "der Genius" u¨berhaupt. Er verko¨rpert damit die Exklusivita¨t des Kunstbereiches von allen anderen außera¨sthetischen. Die Funktion des "Genie" in der Fru¨hmoderne ist nur im Zusammenhang mit der traditionellen Kunst festzustellen. Die Kunst bis dahin sollte nicht allein "scho¨n", sondern auch "wahr" und "gut" sein. Sie war unter dem Verdikt des "aptum" zur Repra¨sentation der hierarchischen Gesellschaftsordung verpflichtet, was vor allem in der "Regelpoetik" ihren Ausdruck fand. Ku¨nstler gab es also nicht, sondern nur noch Handwerker, die Kunstwerke nach dem "Rezept" produzieren sollten. In der Fru¨hmoderne, wo die Gesellschaft in verschiedenen Kulturbereiche auszudifferenzieren beginnt, postuliert die Kunst eine solche autonome zu sein, die allein die "Scho¨nheit" als ihren eigenen Bereich hat. In dieser Zeit ist daher der Begriff "Genie" ohne Zusammenhang mit der Autonomie der Kunst unvorstellbar. An dieser Stelle erfu¨llt das "Genie` dieses moderne Bedu¨rfnis nach der Selbstlegitimation der Kunst als einer autonomen, d.h. einer scho¨nen. Ein moderner Ku¨nstler braucht nun nicht mehr der "Regelpoetik" unterworfen zu sein. Denn er ist selber der Scho¨pfer der Kunst, indem er sich Kunstregel schafft. "Genie" identifiziert Kant daher mit dem "ingenium", das a¨sthetische Ideen produziert, und daher weder Wissenschaft noch Handwerk noch Moral, sondern allein zur Kunst geho¨rt. Mit der rasanten Entwicklung und Spezialisierung der Gesellschaft vera¨ndert sich der Erfahrungsraum: Die Gegenwart war in der stratifikatorischen Gesellschaft aus der Vergangenheit abgeholt. Die Zeit wiederholte sich. Vergangene Historien waren "Magistra Vitae" fu¨rs gegenwa¨rtige Leben. Der Prozeß der Spezialisierung und Funktionaliserung in der Gesellschaft la¨ßt aber der Vergangenheit nicht mehr die Rolle der Grundlage fu¨r heute und morgen. Er macht die Zukunft unsicher, und um die Unsicherheit von morgen zu limitieren, lebt die Gegenwart von der Antizipation der Zukunft. Somit ero¨ffnet die Zukunft von morgen einen neuen Erfahrungshorizont der Gegenwart, na¨mlich die Perspektive fu¨r das Neue. Das wird nicht mehr ignoriert, verdra¨ngt und beka¨mpft. Das wird der Oreintierungspunkt fu¨r die Moderne. In diesem Zusammenhang bedeutet die Kunst nach der Regelpoetik ewige Wied

횔덜린의 후기시에서의 현대성 - 자아의 상실과 문체 현상을 중심으로 -

장영태 (Young Tae Chang)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315-359 ( 총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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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ieser Arbeit geht es darum, die Modernita¨t bzw. die literarische Moderne in den Spa¨tgedichten Ho¨lderlins von 1802 bis 1806 besonders hinsichtlich der Stilmerkmale zu untersuchen. Eine Reihe von Publikationen zu Ho¨lderins spa¨ter Lyrik haben sich bereits mit charakteristischen Stilzu¨gen von Modernita¨t wie harte Fu¨gung, Parataxis, Beladung des Wortes und Fragmentarismus bescha¨ftigt. Der vorliegende Essay stellt sich die Aufgabe, solche Zu¨ge von Modernita¨t im einzelnen konkret zu untersuchen. Er mo¨chte beantworten, inwieweit und in welcher Art diese Stilzu¨ge in den Spa¨tgedichten Ho¨lderlins realisiert sind und unter welchem Aspekt diese Stilzu¨ge modern genannt werden ko¨nnen. Diese Stizu¨ge muß man als modern bezeichnen, weil einerseits das gleiche Phano¨men in den Texten der anderen Dichter in seiner Zeit wie Goethe und Schiller gar nicht festzustellen ist und anderseits dieses Stilpha¨nomen aus einem tiefen mudernen Bewußtsein entstanden ist. Dies ist die Triebkraft fu¨r Ho¨lderlins Modernita¨t in den Spa¨tgedichten. Der Verzicht auf das Ich ist zwar schon in der fru¨heren Dichtung Ho¨lderins festzustellen und doch auf seine religio¨se Dichterauffassung vor 1802 zuru¨ckzufu¨hren. Diese Entthronung des Ich entwickelt sich aber im Lauf seines spa¨ten Schaffensphase daru¨ber hinaus zum Verlust des Ich in den Spa¨tgedichten, der als Grundlage der schon genannten Stilzu¨ge der Modernita¨t spielt. Der Dezentrierung bzw. dem Verlust des Ich und der damit verbundenen Entperso¨nlichung entspricht ein sta¨ndiger Wechsel der lyrischen Perspektive. Wenn die durch das Ich bestimmte Einheitlichkeit des Blickpunktes aufgegeben wird, kann die Perspektive beliebig wechseln. Durch den Wechsel der vom absoluten Subjekt befreiten Perspektive wird die Parataxis in den Gedichten konsequent hergestellt, so daß das Verha¨ltnis von Ich und Welt und auch das Verha¨ltnis des Dichters zur Sprache sich vera¨ndern. Parataxis als ein Stilmerkmal in den Spa¨tgedichten Ho¨lderlins, begleitet von Simultaneita¨t, hat auch viele Parallelen in den Texten der Dichter im 20. Jahrhundert. Die Parataxis bezeugt die Skepsis Ho¨lderlins gegenu¨ber der Mo¨glichkeit eines abschließenden Sinnzentrums. Und somit verla¨ßt Ho¨lderlin den Boden des klassischen Idealismus. Gleichzeitig lo¨st sich Ho¨lderlins koha¨rente poetische Welt allma¨hlich auf, und dieser Auflo¨sungsprozeß erfaßt auch die Fu¨gung der Gedichte. Die von der gewohnten Wortstellung abweichenden expressiven Inversionen und syntaktischen Verschra¨nkungen in den weitgespannten Satzbo¨gen lo¨sen Befreiung und Auratisierung des Wortes und Satzes aus. Diese harte Fu¨gung destruiert die Schemata des Syntax und fu¨gt die Wo¨rter unabha¨ngig von der gewo¨hnliche Folge. Damit gewinnt das Wort zusammen mit der Dunkelheit kompensatorisch eine maximale Suggestivita¨t. Die Freisetzung jener virtuellen Wortbedeutungen, die nicht durch den syntagmatischen Bezug aktualisiert Bind, erzeugt den intendierten Effekt suggestiver Vieldeutigkeit. Diese Dunkelheit und Vieldeutigkeit der Spa¨tgedichte Ho¨lderlins ist auch ein konstitutives Merkmal der modernen Lyrik bekannt. Parataxis und harte Fu¨gung kulminieren in der Fragmentierung, die einen Bezirk zu schaffen bezweckt, in dem die isolierten Wo¨rter und Sa¨tze ihre Urspru¨nglichkeit und Besta¨ndigkeit zuru¨ckgewonnen haben. Zertru¨mmerung des Satzes zu Fragmenten und Diskontinuita¨t in dieser Fragmentierung, die die modernen Stilmittel des franzo¨sischen Symbolismus sind, sind doch das Stilzeichen eines Sprechens an der Grenze zum Unmo¨glichen. Das zwischen Spru¨ngen der fragmentierten Sa¨tze verborgene Schweigen in den Spa¨tgedichten Ho¨lderlins ist Ausdruck des BewuBtseins der Moderne vom falschen Zauber seiner Sprache und von der No¨tigung zu schweigen, wo das Wort die Wahrheit nicht mehr zu fassen vermag. Skeptizismus gegenu¨ber Sprachvermo¨gen bzw. Vermo¨gen der Spra

Heinrich von Kleist 의 " Michael Kohlhaas " 에 나타난 시간적 공간

진일상 (Il Sang Jin)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361-376 ( 총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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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bisherigen Untersuchungen zu dieser Erza¨hlung zeigen, wie verschieden der Charakter der Hauptfigur beurteilt werden kann. Ebenso kompliziert ist die zeitliche Ebene der Geschichte, in der sich die Figuren bewegen. Die Erza¨hlung gru¨ndet auf der historischen Geschichte des Hans Kohlhase, die vom fiktiven Chronisten in Kleists Zeit berichtet wird. In dieser Abhandlung wird versucht, die zeitliche Ebene unter historischem Aspekt zu beleuchten, anders formuliert, danach zu fragen, wann eigentlich Michael Kohlhaas lebte. Dafu¨r werden die drei Elemente betrachtet, die Kohlhaas mit seiner Zeit verbinden, na¨mlich die Fehde, das Luther-Bild und die zwei Staaten, Sachsen und Brandenburg. Zum ersten Punkt, der Fehde, la¨ßt sick feststellen, daß Michael Kohlhaas den Regeln der Fehde in gewisser Hinsicht folgt, doch mit der Verfolgung auf den Junker u¨berschreitet er die Grenze der Fehde. Ob er als Bauer - er besitzt einen Maierhaf in Brandenburg - die Waffen u¨berhaupt ergreifen darf, obwohl die Bauern durch den Ewigen Landfrieden la¨ngst entwaffnet worden sind, wirft ein kritisches Licht auf seinen Kampf. Besonders auffa¨llig ist seine Kampffu¨hrung. Die Kampfzu¨ge erinneren an den Guerilla-Krieg, der in Kleists Zeiten die preußischen Reformer faszinierte. Genauso fremd ist das Bild Luthers. Luther ist in dieser Erza¨hlung das einzige authentisches Element, das die Geschichte mit der Chronik verknu¨pft. Anders als historische Luther, zeigt sich Kleists Theologe als ein Vermittler zwischen Kohlhaas und Sachsen. Im Dialog mit Kohlhaas repra¨sentiert er die Ansicht des Staats, daß außerhalb des Staats keine Form von menschlicher Gesellschaft existiert. Dies widerspricht dem historsichen Luther, der die weltliche Ordnung als eine Gott untergeordnete versteht. Die Zweistaatlichkeit, die erst in der zweiten Fassung konzipiert worden ist, ermo¨glicht ein harmonisches Ende der Erza¨hlung. Im Verglich zu dem sa¨chsischen Kurfu¨rsten, der zwar menschlich wirkt, aber kein Souverra¨n ist, greift der brandenburgische Kurfu¨rst als eine gerechte Rechtsinstanz in die Auseinandersetzung ein. Damit, daß er den tu¨chtigen Stadthauptmann selbst ins Amt beruft, entsteht das moderne Beamtentum. Aus dieser Betrachtungen ist zu erschließen, daß die Erzahlung viele Elemente aus Kleists Zeit in sick hat. Dies ist wiederum ein Zeichen dafu¨r, daß sich der Autor nicht von seiner eigenen Zeit distanziert.

Goethe als Dramatiker

Theo Buck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377-405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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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Weimarer Goethe - Ausgabe

Herbert Kraft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407-425 ( 총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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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제 괴테 학회 참관기

전영애 (Young Ae Chon)
한국괴테학회|괴테연구  9권 0호, 1997 pp. 427-433 ( 총 7 pages)
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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