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 배달말학회 > 배달말 > 66권 0호

배달말검색

Korean Languag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144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6권 0호 (2020)

백석 시에 나타난 음식과 그 의미

오성호 ( Oh Seong-ho )
배달말학회|배달말  66권 0호, 2020 pp. 287-318 ( 총 32 pages)
7,2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백석 시에 나타난 음식의 문제를 ‘영혼의 허기’를 끄기 위한 갈망이란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백석의 시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백석의 음식은 대부분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백석은 음식을 통해 다시는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행복한 ‘그때 거기’를 호명하고자 했던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그린 음식은 그를 행복한 유년 시절로 인도하는 매개체이자 그의 내면에 간직된 영혼의 상처와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년기의 체험을 통해서 발달된 감각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석의 시에서 사물과 세계에 대한 지각이 흔히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감각을 통해서 표현된 것은 그 증거이다. 동시에 백석은 음식과 관련된 경험을 통해 개별적인 것이 그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내는 조화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획득했다. 개별적인 것이 그 각각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내는 조화는 「여우난곬족」의 친족공동체를 통해서 아름답게 형상화된다. 여러 가지 균열과 갈등의 소지를 포함하고 있는 이 가족 공동체의 조화와 유대는 바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통해서 회복, 또는 유지된다. 그리고 이런 조화의 감각은 풍토와 음식과 인간 사이의 조화 문제로 이어진다. 그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자연과 소통하고 동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연, 그리고 자연에서 획득한 음식, 그리고 그것을 먹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질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행위로 백석은 음식을 먹는 이 행위를 통해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공동체에 접속되고자 했다. 그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가 개인의 육체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자기재생산을 의미하는 것이며 단순한 먹이를 음식으로 전환시켜 오는 전체 과정은 곧 공동체의 경험과 역사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석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지금 여기’서 그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와 수평적으로 접속하는 행위인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그것이 공동체 성원 모두의 음식이 되도록 만들어온 더 큰 역사적 공동체에 접속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일종의 축제, 혹은 제의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백석이 모밀국수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보인 것은 그것이 음식을 먹는 행위에 내재된 이같은 축제적, 제의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모밀국수는 흰 밀가루로 만들어진 국수의 매끄럽고 세련된 모습이 상징하는 근대적인 제 가치와는 상반되는 거칠고 투박한,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신뢰가 살아있는 공동체의 정신이 배어 있는 ‘소울푸드(soul food)’였다. 백석이 모밀국수를 통해 지금 여기의 공동체만이 아니라 아득한 조상의 역사에 통합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 시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 미각 추구와 민족적인 것의 행복한 조화와 통합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궁극적으로 민족적인 것과의 통합으로 수렴되지만 백석 시 어디에서도 이를 위해 개인의 욕망을 유보하거나 억압하려는 태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백석이 꿈꾼 것은, 개인과 전체가 조화를 이룬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거듭해서 음식을 통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을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이룩해야 할 미래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공동체는, 마치 그의 유년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속한 것처럼 아득한 미래, 혹은 ‘세상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백석 시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 미각 추구와 민족적인 것의 행복한 조화와 통합의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백석은 개인적 욕망의 유보나 억제가 없는 나와 공동체의 수평적, 수직적 통합에 대한 갈망을 노래했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진 과거(유년시절)이나 어떤 축제, 혹은 제의의 순간에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행복한 조화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오랫동안 영혼의 허기를 끌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