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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Oral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019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8권 0호 (2009)

제주도와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신화에 보이는 입도녀·토착남 화소의 비교 고찰

정진희 ( Jeong Jin-hee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8권 0호, 2009 pp. 241-271 ( 총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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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당신본풀이에는 입도녀와 토착남의 혼인 화소가 종종 등장하는데, 제주도와 유사한 지리적·종교적·역사적 환경을 지니고 있는 미야코지마의 신화에도 이러한 화소가 보인다. 입도녀와 토착남의 혼인이 결국 별거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 구체적 양상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인다. 미야코지마의 신화에서는 입도녀와 토착남이 각각 신과인간인 데 비해 제주도 신화에서는 입도녀와 토착남 모두 신격이라는 점, 미야코지마에서는 입도녀가 원래의 자리로 ‘귀환’하는 데 비해 제주도 신화에서는 입도녀가 제주도 내부의 신으로 자리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입도녀와 토착남의 혼인 화소가 중심이 되는 제주도의 신화는 제주도와 제주도 밖을 각각 내부와 외부로 구분하여 그 둘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하는 일종의 역사 담론적 성격도 간취된다. 이에 비해 미야코지마의 신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시원적 사건을 통해 설명하는 신앙 담론으로서의 신화라는 전형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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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장자못 전설>과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 설화를 비교함으로써, 비슷한 서사구조를 가지고도 앞의 것은 전국적으로 전승된 반면에, 뒤의 것은 일부 지역 전설로 그친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하나의 화소(금기)만으로 이 전설을 이해하고자 했던 선행연구들에서 벗어나, <장자못 전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화소(motif)의 의미 분석을 시도하였다. 비교 결과 두 설화는 악행을 일삼는 인물에 대한 懲惡의 의미로 그가 속한 마을이 호수로 변하는 ‘함호(陷湖) 전설’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화소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차이점들이 전파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 설화에서는 ‘금기’화소가 등장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노파는 ‘神’에게서 받은 ‘예언’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끝없이 넓은 善함을 베푼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으며, 결국에는 노파 혼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처럼 그는 ‘神’의 세계에 편입되는 기쁨을 맛보았을지 모르지만 사람(설화의 話者)들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였다. 이에 반해 <장자못전설>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화소가 등장한다. 이것은 며느리에게 ‘시아버지, 남편, 자식을 포함한 가족’을 버리고 ‘神’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테스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며느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혼자 ‘신’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을 포기하고 ‘뒤를 돌아봄’으로써 ‘돌’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서낭신’으로 모셔지기도 하는 등 큰 문학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며 전국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두 설화는 인물 화소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장자못 전설>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가족관계’로 설정된 반면에,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 설화에서는 ‘노파와 마을청년들이라는 이웃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길흉화복’을 모두 공유하는 ‘공생(共生)관계’이냐, ‘행복’만 함께 할 수 있는 관계이냐에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유교 사회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중시하던 우리 민족에게 앞의 인물 관계가 더 매력적 화소(motif)로 받아들여졌음은 자명한 일이다. 셋째, 주인공들의 上下관계에 轉位가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에 차이가 있다. <장자못 전설>에서는 종국(終局)에 기존의 세계(시아버지-上)와 새로운 세계(며느리-下)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 버림(轉位)으로써, 비록 며느리가 현시점에서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세계로 편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놓았다. 반면에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 설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 上下관계에 변화가 없어, 현실의 암울함을 해소할 그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즉 이러한 이유로 新世界로의 편입에 희망이 남아있는 <장자못 전설>이 <돌부처 눈 붉어지면 침몰하는 마을> 설화보다 더 큰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전국적으로 구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거짓말 딜레마와 이야기의 역설 - 설화 <거짓말 세 마디로 장가든 사람>의 이해

심우장 ( Sim Woo-jang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8권 0호, 2009 pp. 301-331 ( 총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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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류에 보면 설화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초점은 꾸며냈다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설화가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거짓말 세 마디로 장가든 사람>을 메타설화의 입장에서 이해하여, 거짓말과 이야기의 상관성, 궁극적으로 설화의 허구성에 대해 재검토해 보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진술 혹은 모든 이야기는 참과 거짓의 어느 한쪽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가’ 또는 ‘이야기가 창발되는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답을 구하려 했다. <거짓말 세 마디로 장가든 사람>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거짓말로 판별하는 사람의 불공정한 일방적인 관계가 한 총각에 의해서 이상한 고리의 형태로 바뀐 세 번째 거짓말에 주목하였다. 명확하기만 했던 참말과 거짓말의 관계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엉켜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역관계의 상위에 위치하고 있던 대감과 하위에 위치하고 있던 총각의 관계도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공명’의 관계로 바뀌게 되고 비로소<거짓말 세 마디로 장가든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창발하였다. 이 설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의 허구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창발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유의 틀을 마련해주고 있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짓말의 딜레마, 거짓말쟁의의 역설 등을 거치면서 거짓말과 유사하게 이야기에서도 이율배반적인 역설적인 공간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메타 설화가 대개 그렇지만 <거짓말 세 마디로 장가든 사람>도 이렇듯 이야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어 충분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침향산(沈香山) 조설방식의 특성과 연행양상

최윤영 ( Choe Yun-young )
한국구비문학회|구비문학연구  28권 0호, 2009 pp. 333-365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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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산대조설의 유풍 중, 침향산 조설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산대의 전통과 의의를 되짚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지하듯이 산대는 우리민족 고유의 산신신앙을 투영한 것으로서 현실 공간의 산을 허구의 산인 산대에 재현시켜 왕실의 권위와 존속을 꾀한 상징물로 자리해왔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봉래산, 수미산, 화산, 금오산, 만세산을 비롯해 대산대, 채붕, 헌가산대, 예산대, 산거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산대들이 가설되었다. 의례를 위해 설치된 산대에는 창우백희와 여악 등의 다채로운 가무희가 수반되었으며, 행사나 재회가 치러지지 않았을 경우에도 상설산대로 존재해 독자적 장치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이렇듯 행사의 주인공, 즉 특별한 어느 관람객을 위해 조설된 산대는 일상의 시공간을 비일상적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킬 뿐만 아니라, 이를 거점으로 행사장 일대를 축제의 장으로 전이시켰다. 무엇보다 침향산은 불교문화와 관계 깊은 산대로, 이에 장착된 중인형과 불탑 및 동물잡상들이 이를 부연해준다. 침향산은 주로 친경례·친잠례·알성·고묘친제와 같은 의례행사시 행사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오는 국왕(왕비)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가설되었다. 궁중과 사원 같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환궁로, 곧 길거리에 축조되어 환궁 행렬대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4개의 바퀴통을 지니는 이동식 산대로 제작되었다. 규모면에 있어서도 소붕에 해당되는 작은 산대이다. 또한 독자적으로 존재한 산대라기보다는 헌가산대, 대산대 등과 함께 축조되었다. 여기에는 학무와 같은 교방가요와 대산대, 헌가산대의 창우백희가 연행되었다. 이중 침향산 학무 같은 공연물이 지닌 상징적 신성함은 환궁로와 환궁행렬대의 정화작용을 담당하였다. 침향산대가 유희의 기능과 함께 정화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침향산은 산대의 전통이 사라지기 직전 산대조설의 대미를 장식했던 것으로 광해군 집권기에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산대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들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크기를 축조시키고 바퀴를 달아 그 효율성을 증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침향산대가 별도의 보관 장소에서 정기적인 보수작업을 받았던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침향산은 산대가 폐지되기 바로 전 가장 많이 사용된 산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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