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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1권 2호 (2000)

경험 - 형식적 개념과 그 사회적 뿌리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김성우(Seong Woo Kim)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1권 2호, 2000 pp. 223-245 ( 총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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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논리학자나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 인식론자는 개념을 감각자료로부터 추상해낸 결과물로 간주한다. 개념에 해당하는 사물이나 현실적 존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을 나타내는 일반 명사는 단지 말소리에 지나지 않는다(오캄과 로크의 유명론). 개념은 관념성만을 지닌다. 따라서 개념으로 지어진 체계는 현실성을 결여한 환상의 건물이다. 개념이 현실성을 인정받으려면 분석과 경험의 검사(검증 또는 반증)를 통해 감각자료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개념의 경험성이다. 또한 개념은 형식성을 지녀야 한다. 수학은 근대 학문관의 `모델이자 교사` 이다. 수처럼 개념도 계산되려면 형식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개념이 추상적인 단위가 되어야만 덧셈과 뺄셈을 통해서 단순 개념이 복합 개념으로 합쳐지고 복합 개념이 단순 개념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 개념의 경험성(종합)과 형식성(동어반복)이 논리 실증주의자나 비판적 합리론자 등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의 색깔을 지닌 학자들의 개념관을 형성한다. 이러한 개념은 `경험적-형식적 개념` 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처럼 수처럼 계산될 수 있거나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검증될 수 있거나 반증 될 수 있는 경험적-형식적 개념은 그 현실성을 인정받아 참과 거짓의 차원(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반면 계산되거나 반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 더 나아가서 변증법적 개념이나 정신분석학적 개념은 과학의 차원이 아닌 감정과 상상의 차원으로 격하된다. 이는 신화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상(世界像)을 대신하여 나타난 철학적 이성적 세계관(世界觀)이 인간 정신을 탈마법화한 것처럼 이러한 탈마법화는 다시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과학이 형이상학을 제거하고 인간 정신을 탈마법화한다. 경험-형식적 합리성은 처음부터 배제의 논리를 구사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역사와 (실천) 이성이 여기에서는 배제된다. 형이상학을 신화로 해체한 경험-형식적 합리성(계몽주의)은 자신이 다시 신화가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개인주의 외에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이 신화와 탈마법화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듯이 자유주의는 자유와 지배(자유의 지배)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 개념의 애매함의 진리이다.

『 도덕경 』 논리와 자본 논리의 구조적 유사성 - 새로운 소통의 논리를 꿈꾸며

강신주(Sin Joo Kang)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11권 2호, 2000 pp. 246-272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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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道德經』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 사이에 어떤 구조적 유사성이 있는지를 연구해 본 것이다. 그 결과는 `무한성 /무한한 유한성/유한성` 이라는 구조가 『道德經』의 논리와 맑스가 분석한 자본주의 논리에 공통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무한한 유한성=일반성`의 위상학적 자리인데,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화폐`가, 『道德經』에서는 `上德`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논리의 구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논리 사이의 차이점 을 명쾌하게 보게 된다. `화폐` 는 대상의 형식으로 현상하지만, `上德` 은 `주체` 의 형식으로 현상한다는 것이 아마도 그 중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화폐`나 `上德` 은 모두 개체들을 환원시키고 매개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인간 개체의 삶을 소외시키고 개체와 개체간의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화폐` 와 `上德` 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 반드시 `화폐`나 `上德` 을 매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논리는 결국 검열의 논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검열의 논리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러나 본 글은 `사전에 미리 결정된 일반성` 의 논리를 넘어서는 논리의 모색을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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