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시대와 철학검색

EPOCH AND PHILOSOPHY(A Semiannually Journal of Philosophical Thought in Korea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7-280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5권 4호 (2014)

총체적 완결체에서 카오스적 군집체로의 이행 전략

윤지선 ( Ji Sun Yun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5권 4호, 2014 pp. 339-364 ( 총 26 pages)
6,600
초록보기
정합적 완결체로서의 시스템은 다수의 항들을 이성의 질서에 따라 유기적으로 배치·종속시키는 종합-기계(machine synthetisante)에 의해 가동된다. 이러한 유기적 질서에 반하여 종합-기계의 중심축인 시스템의 메커니즘-수렴과 분류, 위계화와 배제작용 등-을 분쇄시키고자 우리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관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전체-시스템이라는 실체개념을 와해시키는 것을 표적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서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와 지젝의 ‘신체없는 기관’은 전략적으로 연동·탈골·재배열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유기체적 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다각적 항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규정적·비한정적 카오스에 주목하고자 한다. 종합-기계를 해체시키는 전략으로 다각적 항들을 창조적이고 변칙적으로 조합하고 분해시키는 비종합적 직관(intuition de-synthetique)을 종합적 이성의 대립항에 놓고자 한다. 이러한 비종합적 직관을 통해 생성된 카오스적 군집체(agregat chaotique)는 한데 수렴되거나 이성의 사유로 종속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 무의 과잉상태와 맞닿아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견딜 수 있음과 견딜 수 없음의 경계에서 비롯되는 도착적 쾌감-숭고와 괴물적 끔찍함의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카오스적 군집체들의 전개양상은 뿌리(racine)와 시원(origine)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리좀적방식으로, 이러한 분자적 다수성들은 여러 가지 마이크로 카오스모스를 여기저기에 양산해내며 수평적이며 내재적인 줄기-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것이야말로 총체적인 완결체로서의 수직적이고 초월적인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레닌과 카우츠키의 보편 논쟁을 중심으로-

이재유 ( Jae Yoo Lee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  25권 4호, 2014 pp. 365-396 ( 총 32 pages)
7,200
초록보기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이 두 가지견해 중 하나는 레닌으로 대표되는 볼셰비키의 견해, 다른 하나는 카우츠키로 대표되는 견해이다. 그런데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며 이율배반적이다. 둘 다 자본주의 독재(부르주아 독재)를 해체해야 한다는 회의론적 입장에 서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이라는 ‘보편’을 해체해야 한다는 회의론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의론적 입장은 다시 두 입장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자본이라는 보편 자체는 원래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상품 사회 내에서 여러 상품들의 ‘동의’를 거쳐서 존재했던 ‘일반적인 것’ 또는 ‘공통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다시금 새로운 ‘동의’를 거쳐서 새로운 일반적인 것 또는 공통적인 것을 도출해 내자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동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즉 자본이라는 ‘물신’을 가능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서의 실체로부터 다시 새로운 판을 짬으로써 자본의 ‘물신’(실체)성을 해체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전자의 입장은 흄의 경험론적(회의론적) 입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후자의 입장은 데카르트의 합리론적(신회의론적) 입장으로 이어진다. 이율배반이 생겨나는 철학적인 지점은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적인 것’은 철학사에서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카우츠키나 레닌 모두 형이상학적·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물신인 자본을 지양하고자 했다.그렇지만 이 둘 모두 이 보편적인 것을 넘어서고자 했지만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보편적인 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칸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칸트는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보편적인 도덕법칙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칸트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자본-노동이라는 관계로 묶여 있는 사회인데, 이 관계는 타자를 ‘수단’으로서만 다루고 목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거나, 오로지 목적으로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철폐하여 타자를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코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는 코뮤니즘 사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로운 각 개인이 서로 연대하는 사회.’ ‘자유로운각 개인이 서로 연대하는 사회’에서 각 개인은 서로를 자기동일화시키지 않지만, 또한 자기동일화시킬 수도 없지만, ‘공통감각’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서로에게 타자이며, 물자체이다. 예를 들면 가치형태에서 등가형태의 자리에는 항상 ‘자기동일화될 수 없는’, 하지만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타자가 온다. 이러한 타자는 공통감각을 가지고 있는 특정한 공동체에 대립하여 이 특정한 공동체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개인이다. 이 개인은 바로 맑스가 말한 ‘사회적 개인’이다. ‘사회적’이라고 할 때, 이는 각각의 개별적 개인의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관계 구조도 아니고, 이 개인들이 특수한 관계 체계에 속해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사회적개인’이라고 했을 때 이 ‘사회’는 특정한 관계 체계 또는 구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초월론적인 의미에서, 즉 일반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관계 체계 자체(즉 물자체)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사회적 개인이며 특정한 관계 체계(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코스모폴리탄’이며, 따라서 (특정한 공동체에 대하여) 물자체이다.
초록보기
왜 현대 도시민은 불안에 떠는가? 또 어떻게 불안을 견디는가? 이 물음들에 대답하기 위해 필자는 불안에 대한 정신분석적, 철학적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불안의 원형이 일차적 친밀관계나 의존적 대상으로부터 자아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 필자는 이 논의를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과 접합시키는 가운데 이러한 불안의 원형이 ‘개인’의탄생을 알린 근대도시의 사회문화적 조건 하에서 본격화되며, 불확실성과 파편화로 인해 지속적 친밀관계와 확실한 지식체계가 와해되는 현대도시의 사회문화적 조건 하에서 가장 첨예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대상관계 이론가 도널드 위니캇의 “충분히 좋은 엄마”와 자기탐색의 “놀이”, “문화 경험” 등을 분석하는 가운데 현대 도시에서 가능한 충분히 좋은 인문환경으로서의 친밀관계의 방향을 재구성하고, 현대 도시민이 핵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친밀관계를 형성하고 놀이로서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쉼의 장을 마련할 때, 불안을 견디어 낼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