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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대의 악장 개찬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Revision of Akjang in the Reign of King Yeonsan

김승우 ( Seung U Kim )

- 발행기관 : 우리어문학회

- 발행년도 : 2013

- 간행물 : 우리어문연구, 47권 0호

- 페이지 : pp.29-67 ( 총 39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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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본고는 연산군대 이루어진 악장 개찬의 성격과 그 배경 및 주요 내역을 검토함으로써 조선전기 악장의 제작과 향유 양상을 보다 정교하게 도출해 내는 데 목적을 둔다. 조선조 들어 악장의 편수와 쓰임에 관해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된 시기는 태조에서 성종대에 이르는 기간이었고, 악장이 새로 지어지는 빈도도 성종대로 갈수록 점차 잦아들게 되지만, 유독 연산군대에만은 종래의 악장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시도되었다. 이는 연산군이 선대 임금들의 치세기에 정립된 전범이나 제도에 구속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특히 갑자사화를 전후하여 예술 일반에 대한 취미와 애호가 현저하게 표출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더불어 연산군은 악장의 개찬을 통해 자신의 재위기에 달성된 일련의 성과들을 대내외에 현창하고자 의도하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갑자사화 이후 중종반정까지 약 2, 3년의 기간 동안 다수의 악장 작품이 새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조선왕조 개창 이래 음악은 흔히 고려조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되 그 가사만을 개변하는 방식으로 악장을 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산군대의 악장 역시 대개 종래의 작품 가운데에서 연산군의 기호에 부합하는 곡목들, 예컨대 ?봉황음?, ?납씨곡?, ?상대별곡?, ?천권곡?, ?감군은? 등을 취택한 후 거기에 노랫말을 새로 지어 붙이는 방향으로 개찬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연산군대 악장 개찬의 성과들이 중종반정 직후 모두 폐기되고 악장의 곡목과 연행 방식 역시 이전 시기의 것으로 회귀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악장은 선대의 전례에 대한 존숭이 다른 어떤 영역보다 중시되는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은 종래의 악장을 개찬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가사를 완연히 새로운 내용과 취지로 뒤바꾸는 방식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그 변개의 폭 또한 상당했다. 이처럼 연산군대의 신제 또는 개찬 악장은 악장 일반의 존립 기반을 갖추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연산군대의 악장이 칭송 일색이라는 점 또한 문제시 될 만하다. 악장은 표면적으로 군왕과 왕조에 대한 칭송을 앞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군왕의 근신을 당부하고 군왕의 책무를 상기시키는 이른바 규계의 지향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연산군대의 악장 개찬은 규계의 지향을 소거하고 칭송의 지향만을 부각해 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칭송의 대상 역시 연산군 자신이나 연산군 당대에 이루어진 업적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 같은 자기만족의 수사만으로는 악장이 존립하기 어려우며, 이 때문에 중종반정 직후 연산군대의 악장은 남김없이 폐기해야 할 우선적인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연산군대의 악장 개찬 양상과 중종대의 수습 과정은 선초 악장의 소통·향유 방식 및 악장의 갈래적 특성과 관련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초록(외국어)
This paper is aimed at looking into how and with what intent a number of former lyrics of akjang(樂章) were revised in the reign of King Yeonsan. Basically, King Yeonsan paid little regard to almost every precedent established under the reigns of preceding kings. His addiction to art including music and poetry and desire to show off his regime grew in intensity especially after Gapjasahwa(甲子士禍). All of these factors led King Yeonsan to have his retainers revise many akjang works for the last two or three years of his reign.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most lyrics of akjang were newly composed according to the Confucian ideal while its music from Goryeo dynasty were continuously used. Similarly, King Yeonsan just indicated several lyrics which he wanted to revise such as Bonghwang-eum(鳳凰吟),Napssigok(納氏曲), Sangdaebyeolgok(霜臺別曲), Cheon-gwongok(天眷曲), and Gamgun-eun(感君恩), and showed his retainers certain ways to revise them without any concrete comments on the music. Meanwhile, it is notable that all the revised akjang in the reign of King Yeonsan were abrogated right after he fell from power. It is not only because he felt no compunction to change the lyrics of akjang although the accumulated precedent is regarded as the most important with akjang than any other genres of literature in the medieval age, but also because he wanted to display only the praise for himself and his achievement in the revised lyrics although akjang usually consists of both the praise for king and retainers` warning for king not to be arrogant. In conclusion, the prompt abolition of King Yeonsan`s revised lyrics after his dethronement clearly shows us the feature of akja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논문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발행기관 : 우리어문학회
  • - 간행물 : 우리어문연구, 47권 0호
  • - 발행년도 : 2013
  • - 페이지 : pp.29-67 ( 총 39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4-700-001478184
저널정보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7341
  • - 수록범위 : 1985–2021
  • - 수록 논문수 :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