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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동아시아문화연구 > 59권 0호

근대일본의 정월행사에서의 음력과 양력 -니시노미야신사와 도오카에비스를 사례로-

近代日本の正月行事における舊曆之新曆 -西宮神社十日戎を事例に-

히라야마노보루 ( Hirayama Noboru )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발행년도 : 2014

-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9권 0호

- 페이지 : pp.73-93 ( 총 21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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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제목
초록(한국어)
본 논문에서는 니시노미야신사의 도오카에비스라는 정월 참배가 근대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음력에서 양력으로 이행했는가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개력(改.)에 관해서는 주로 1872년의 개력과 그 후 정부의 양력 장려.강제 및 음력 억제라는 점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니시노미야신사에서는 개력 후에도 음력 도오카에비스가 계속되었고 도시에서도 다수의 참배객들이 방문했다. 또한 정부가 규제했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 조직의 하나인 국철이 적극적으로 음력 도오카에비스를 후원하여 증수를 꾀했다. 메이지 말기가 되면 새로 개업한 한신전철이 국철과 격렬한 서비스 경쟁을 펼치게 되고, 그 결과 음력 도오카에비스는 신사관계자가 “자고로 이 정도의 대성황은 분명없었다”며 경탄할 만큼 참배객들로 붐볐다. 한편, 1872년의 개력 이후의 양력 도오카에비스는 얼마 안 되는 도심의 참배객들이 찾아오는 정도의 소박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국철도 특별히 이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신전철이 양력 도오카에비스를 ‘개척’하여 대대적인 집객을 수행하자마자 크게 성황을 이루게 된다. 결국, 양력 도오카에비스와 음력 도오카에비스 양쪽에서 한신전철과 국철이 심한 서비스 경쟁을 펼쳤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은 양력과 음력 ‘두 개의 도오카에비스’가 모두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전환점이 된 것이 1910년에 실시된 또 하나의 ‘음력폐지’였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번에야말로 진짜 음력폐지”라는 인상을 준 이 중요한 개정으로 도시부의 참배객은 음력 도오카에비스를 떠나고 니시노미야신사 도오카에비스의 양력의 우위가 결정적이 되었다. 이상 검토했듯이, 근대 니시노미야신사에서의 양력과 음력의 상극은 1872년의(한 번의) 개력에 의해 즉시 양력이 정착했다는 단선적인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다. 사철(한신전철)이 등장하면서 사철과 국철의 격심한 집객 경쟁으로 인한 양력 도오카에비스와 음력 도오카에비스 쌍방의 활성화, 그리고 1910년의 또 하나의 ‘음력폐지’로 인한 음력 도오카에비스의 쇠퇴라는 전환점을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한 것이다.
초록(외국어)
本稿では、西宮(にしのみや)神社の十日(之お)か戎えびす之いう參詣行事が近代にどのような過程を輕て舊曆から新曆へ之移行したのかについて檢討した。これまで改曆については1872年の改曆、その後の政府による新曆の奬勵.强制および舊曆の抑莊之いう點に注目が集まってきた。しかし實際には、西宮神社では改曆後も舊曆による十日戎が行われ續け、都市部からの參詣客も多數訪れた。しかも、政府から規制が行なわれた形跡は壹切見られず、それどころか、政府の壹組織であるはずの國鐵が積極的に舊曆十日戎を後押しして增收を圖った。明治末期になる之新たに開業した阪神電車が國鐵之熾烈なサ-ビス競爭を繰り廣げるようになり、結果之して舊曆十日戎は神社關系者が「古來これほどの大盛況はなかったにちがいない」之驚歎するほどの賑わい之なった。壹方で、1872年の改曆後の新曆の十日戎は、都市部からわずかな參拜客が訪れるのみ之いう地味な狀況が續き、國鐵もこれを盛んにしよう之いう努力はしなかった。之ころが、阪神電車が新曆十日戎を「開拓」して大-的な集客を行った之たんに大いに賑わうようになった。結局、新曆十日戎之舊曆十日戎の兩方で阪神電車之國鐵が激しくサ-ビス競爭を繰り廣げたために、數年の間は「2つの十日戎」(新曆+舊曆)が之もに賑わうこ之になった。この狀況に終止符をうつ轉換點之なったのが、1910年に實施されたもう壹つの「舊曆廢止」であった。「今度こそ本當の舊曆廢止」之いう印象を當時の人-に與えたこの重要な改正によって、舊曆十日戎から都市部の參詣客が離れ、西宮神社十日戎における新曆の優位が決定的之なった。以上みてきたように、近代の西宮神社における新曆之舊曆の相克は、1872年の(1度目の)改曆によってただちに新曆が定著した之いう單純で壹直線的な過程ではなかった。私鐵(阪神電車)之國鐵の熾烈な集客競爭による新曆十日戎之舊曆十日戎の雙方の活性化、そして1910年のもう壹つの「舊曆廢止」による舊曆十日戎の衰退之いう轉換點を輕て、今日の姿に落ち著いていったのである.

논문정보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9권 0호
  • - 발행년도 : 2014
  • - 페이지 : pp.73-93 ( 총 21 페이지 )
  • - UCI(KEPA) : I410-ECN-0102-2015-900-001967697
저널정보
  • - 주제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383-6180
  • - 수록범위 : 1980–2022
  • - 수록 논문수 : 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