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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8-128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4권 0호 (2016)

한국한문학사 서설 -국문학과의 통일적 인식을 위한 구상-

임형택 ( Lim Hyong-taek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7-29 ( 총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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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한문학사 서술의 제문제`란 주제로 열렸던 한국한문학회 제11차 전국대회 석상에서 기조강연으로 발표했던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국문학과 한문학의 통일적 인식을 주요 의제로 설정하였다. 시간대는 한국문학사의 상고에 해당하는 삼국시대의 출발 지점(기원전 1세기 무렵)에서 고려 이전 10세기로 잡고 있다. 한자의 도입이 언제인가를 검토한 다음, 한자문화의 수용과 한문학의 성립으로 단계를 구분지어서 고찰한다. 국문학계의 기존의 통설을 비판하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바, 시가와 산문두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시가에서는 종래 漢譯歌로 취급되어 왔던 몇몇 작품들이 원래 한시 형식으로 지어졌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산문에서는 국문학에 일찍이 도입되었던 설화란 개념을 해체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모두 자료 분석에 근거해서 실증적으로 논리를 세우고 있다.

한시사(漢詩史) 서술의 제문제

안대회 ( Ahn Dae-hoe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31-57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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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한시사를 새롭게 쓰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검토하였다. 먼저 그 동안 출간된 한문학사와 한시사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분석하여 한시사를 새롭게 써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라 요구되는 조건을 제시하여 한시사 전개의 큰 구도를 세워 서술하는 의의를 중점적으로 논하였다. 이때 한시사를 쇠퇴의 과정으로 본 시각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조선후기의 비중을 높여 서술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각 시대의 시대정신과 조류를 포착할 것과 한시사를 보는 문학사가의 독자적 史觀이 중요함을 주문하였다. 구체적으로 요구한 사항에는 斷代史 저술이 필요함과 대가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한계를 극복하여 논의 대상을 다양한 작가군으로 확장하는 것, 단조로운 작가론의 지양, 다양한 문학 현상을 부각시킴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잡아내는 것이 있다. 자료를 편집하는 기왕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21세기 독자가 기대하는 다양한 각도의 한시사를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국 한문산문사 서술의 제문제

심경호 ( Sim Kyung-ho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59-117 ( 총 5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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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은 문언어법의 한문을 사용하여 한국 민족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문학, 역사사실의 기록, 학문적 사색의 논술, 사대교린의 외교 관계나 공적, 사적 생활에서 작성한 한자한문 문건을 모두 포괄한다. 근대 이전에는 `문`이라 하면 학술과 문학을 포괄했고, 협의의 `문`이라 해도 순문학만이 아니라 공용문이나 실용문까지도 포괄했다. 한문학의 역사적 범주는 서구 문학이론의 시각에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전개 양상을 고려하여 실용문과 공용문도 포괄시켜야 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문언어법의 한문을 사용하되 한국어 어법을 준칙으로 삼아 이두를 붙여나가는 표기체계의 시문, 한자를 音借와 借字의 방식으로 사용한 시문도 한문학의 범주에서 다루어야 한다. 이 가운데 한국의 한문산문은 소설을 제외한 서사 갈래의 여러 양식들을 포괄한다. 서사(inscription) 양식을 보면 한국 한문산문은 秦漢 때 이루어진 經史諸家의 문언어법과 韓愈 이래 복고적 산문의 어법을 준용하는 `고문`이 주류를 이루었다. 단, 한국한문학 형성기부터 문언어법의 이 고문 이외에도, 한국식(이두식) 한문과 변려문이 함께 발전하다가 고려 중엽 이후 고문이 변문을 압도하여 한문산문의 주된 문체로 되었다. 또한 상고시대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한문학은 불교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도교사상도 담아내다가, 점차 유가적 사유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조선후기에는 교조적 사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글쓰기가 이루어졌다. 또한 명 복고파 문인들의 문학실천에서 영향을 받아 선진 문언을 모방하여 難句나 僻字를 나열하여 작성한 擬古文, 서정과 사유를 단형의 감각적 문체로 표현하는 小品文을 참조하여 한문산문의 行文 방식과 예술 미학이 다채롭게 발달했다. 한국 한문산문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박지원 산문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다가, 1980년대 말 이후 산문비평이론, 소품문, 의고문, 문체 분석, 문체반정(순정)의 역사적 함의 등등에 관한 연구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향후 한문산문에 관한 연구는 頂點의 經國 기능, 생활세계 내에서의 담론, 개인의 내면 표현 등에 초점을 맞추어 한문산문이 문자생활의 場에서 기능한 구체적 실상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기왕의 한국한문산문의 역사를 개관하고 향후의 연구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한문소설사 서술의 제문제 -한문학에서의 한문소설, 그 사적 전망-

정환국 ( Jung Hwan-kuk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119-158 ( 총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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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한문학에서 한문소설의 설정과 그것의 史的 구성에 관한 몇 가지 지점들을 탐색한 것이다. 한문학에서 한문소설은 그 위치가 애매하나, 唐代에 유가 문인지식인들이 창작한 傳奇를 볼 때 한시와 한문산문을 교직한 중요한 글쓰기였다. 따라서 한문학의 차원에서 한문소설사는 작자층과 이들의 세계관의 흐름 및 변화를 고려한 속에서 구성되어야 할 듯하다. 이런 전제에서 한국한문소설사의 논의는 「崔致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봄직하다. 이후의 흐름을 짐작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전중기에는 傳奇와 夢遊錄이 공존하면서 士계층의 자의식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17세기로 접어들며 큰 분기가 일어나는데, 전반기의 전기소설과 후반기의 국문장편소설로 대별된다. 비록 한문과 국문이라는 표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모두 당대 지식인 집단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이후 野談은 조선후기 한문단편소설로 기능하며 국문소설과 이원구도를 형성하였다. 마지막 19세기 세태소설은 시대의 변화와 작자층의 하향화를 통해 다기한 양태를 보이는데, 이는 한문소설사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문제적 사인이기도 하다. 이런 한문학 작가와 한문소설사의 구도에서 관건이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雲英傳」이다.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작품성에서 소설사의 큰 매듭이 되는 「운영전」은 현재작품미상이다.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의 작가가 許筠일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즉 몇 가지소재와 仙趣와 怨情, 그리고 「운영전」의 구도와 지향을 허균의 다른 작품 및 기타 문제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이 시론을 통해 「운영전」의 작자가 확정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앞으로 이것이 한국한문소설사를 서술하는데 주요한 논점이 되기를 기대하며,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한국(韓國) 한문학비평사(漢文學批評史) 서술의 방향 모색

정우봉 ( Chung Woo-bong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159-185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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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가 출간된 이후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문학사를 개인이든 분담집필이든 새로운 형태로 시도한 사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문학연구가 궁극적으로 문학의 역사에 관한 체계적인 이해로서의 문학사를 지향한다고 하였을 때에 한문학 분야를 포함하여 각 부문별 문학사 서술의 방향을 현단계에서 점검해 보는것은 앞으로의 한국문학사 서술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문학비평사 서술의 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의 서술 방향을 모색해 보았다. 첫째, 상호 병존의 서술 방향이다. 이것은 동아시아, 서구문학비평과의 비교, 한문학비평사와 국문문학비평사의 상호 연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는 작업이다. 둘째는 장르개념사와 비평용어사 연구의 방향 모색을 들었다. 비평사의 관점에서 장르개념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시, 소설, 희곡 등의 근본적인 구조 원리, 다시 말하면 장르의 내적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문`에 관한 개념 이해를 둘러싼 변화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는 작업은 일종의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일기, 自傳, 필기잡록 등의 전통적인 한문산문 장르로부터 근현대 일기, 수필, 자서전 등의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장르 개념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작업 또한 장르개념사로 본 문학사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는 문예학과의 연계에 주목하여 한국문학사의 근본 원리와 본질에 관한 탐구로서의 측면을 강조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기존 비평사 서술의 공백에 해당되는 시기별, 영역별 연구 주제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21세기 한국한문학사 서술의 여러 문제 -여성문학사의 입장에서-

박무영 ( Park Moo-young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187-214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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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새로 쓰게 될 21세기 한국한문학사의 서술에 여성문학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탐색해본 논의이다. 한국한문학사와 여성문학사는 쉽게 제휴하기 어려운 태생적 기반을 지닌다. 한국한문학의 자료와 역사는 남성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 여성배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여성문학사에 대한 관심은 한국한문학사에서도 여성의 흔적을 찾는 일을 진행시켜왔고, 무시하기 어려운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문학사의 성과를 기존 한국한문학사에 단순히 기입해 넣는 방식의 제휴는 문학사의 기본 성격을 간과한 것이라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문학사란 무엇보다도 사관의 산물이고, 사관에 따른 전적으로 새로운 구성과 논의의 장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국고전여성문학사와 한국한문학사의 병립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각각 남성젠더적, 여성젠더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상호 참조하는 방식으로 병립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덜 폭력적인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상호참조를 통해 젠더적 균형감각을 획득하는 것은 남성젠더로서의 한국한문학사의 서술에서도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점이 한국고전여성문학사가 21세기 한국한문학사 서술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는 것이 본고의 잠정적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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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문소설 가운데는 『시경』 및 다른 텍스트와 관계를 맺으며 풍부한 文化性을 띄거나 전아한 詩性을 갖거나 文化性에 대한 戱化를 시도한 경우가 많다. 이 양상을 심도 있게 고찰함으로써 그 생산성의 맥락 및 작가와 시대 의식을 조망하는 것 또한 연구의 한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시경』이 지닌 `작은 이야기`[`小說`]적 성격을 원문텍스트와 주석텍스트로 구분해 살펴봄으로써 『시』와 소설 간의 거리를 좁히고, 소설에서 直引 또는 化用한 사례 등을 확장 조사함으로써 조선시대 한문소설에 보이는 주제별·시대별 인용 양상에 대해 다각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주제나 서술 내용을 중심으로 『시경』 인용 양상을 파악할 경우,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소설에서 『시경』 인용이 특히 빈번하며 작가에 따라 『시경』 詩篇의 원전텍스트의 의미를 과감히 노출하거나 인용 방식 상의 다양한 변용을 시도하는 경우가 확인되었다. 반면 天君小說과 같이 심성윤리를 주제로 하거나 논변을 중심으로 한 경우 논거의 설득력이나 표현상의 권위 확보를 위한 『시경』 인용이 특징적으로 포착되었다. 소설의 구성요소나 서술표현 측면에 포착한 『시경』 인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먼저, 작품의 복선ㆍ명칭ㆍ인물형상 등에서 문화적으로 원용되는 사례를 고찰하였고, 賦『詩』言志의 형식을 모방하거나 『시경』의 四言體형식을 중심으로 『시경』시편을 다양하게 원용한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아울러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나 산문 서사의 미적 볼륨감을 풍부히 하는 작용의 인용 양상을 살펴보았으며 『시경』 인용의 난해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들을 일견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후기로 갈수록 권위성을 지향하던 『시경』 인용이 희화화 내지 풍자화된 성격으로 인용된 경향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관찰은 한문소설에서의 『시경』 인용에 대한 역사성을 살피는 데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8세기 유산기 「김강은유록(金剛恩遊錄)」 연구

정학성 ( Chung Hak-sung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261-293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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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恩遊錄」은 18세기 후반 제주 출신 문인 張漢喆(1744 :영조 20년~?)이 쓴 장편의 금강산 遊山錄이다. 본고에서는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의 작가 및 서지, 저술 연대와 경위, 구성 체재와 기술 방식 등에 대해 살폈다. 다음, 작품에 기술된 여행의 내용과 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으며,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산수 취미와 금강산관 및 산수관을 살폈다. 그리고 유산기로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문예적 특성으로서 간결·평이한 서술과 사실적 묘사 방식, 인상을 描出하고 서사적 흥미를 고취하는 기교를 살피고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이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를 논했다.

`호생악사(好生惡死)`와 `낙사악생(樂死惡生)` -조선 문인이 본 일본 무사-

박상휘 ( Park Sang-whi )
한국한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64권 0호, 2016 pp. 295-332 ( 총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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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은 1592년이다. 그 약 400년 전에 일본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무가정권을 세웠다. 그 200년 전에 조선왕조가 건국되었다. 200년 평화를 유지해온 나라의 문인이 400년 이상 전쟁을 반복해왔던 나라의 군인을 보았을 때 큰 충돌이 일어났다. 본고의 제목에 보이는 `好生惡死`와 `樂死惡生`이라는 말은 그 충돌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인식에서 큰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본고에서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어떠한 생명관의 충돌이 일어났는지를 검토하였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문인들은 일본인을 `輕生`(삶을 가볍게 여긴다)이라고 하였다. 즉 쉽게 사람을 죽이고 쉽게 할복자살하는 일본인을 삶을 가볍게 여기는 존재로 본 것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확고해졌다. 趙憲은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 무사들에게 `輕生`이 얼마나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인지를 역설하였다. 에도시대 초기에 일본에 다녀온 사행원들은 다메시기리와 할복의 풍습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죽음이 일상화된 일본 사회에 혐오감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어 일본에서 오랫동안 평화로운 사회가 이어지면서 사행원들의 인식도 변화하였다. 1763년에 일본에 다녀온 원중거는 “삶을 가볍게 여긴다”는 일본인에 대한 이미지를 비판하였다. 그는 일본이 `輕生`의 풍토를 벗어나 `好生`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음을 포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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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淸 문인 黃爵滋(1793~1853)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고, 그의 自撰年譜인 『仙屛書屋初集年記』에 수록된 조선 문인들의 서신과 필담의 내용을 살핀 것이다. 황작자는 19세기 전반기에 청조 문단을 이끈 인물로, 북경을 방문한 조선 문인과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양국의 교류에 있어 가장 큰 중개자 역할을 하였다. 『선병서옥초집연기』는 1816년부터 1846년까지 황작자의 관직과 교유의 행적을 정리한 책이다. 연도순으로 卷次가 나뉘어 있으며 각 권의 첫머리에는 벼슬에 임명된 날짜와 조정에 올린 奏疏 등이 기록되어 있고 지인들에게 받은 詩文과 手札, 筆談 등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문은 대체로 벗과 선후배들이 황작자의 유람, 그림, 건물 등에 대해 쓴 記·銘·詞·題詩·題辭, 황작자의 생일을 기념한 贈詩, 황작자가 주관한 시회에 관한 詩·賦·序·跋 등이 많으며, 수찰에서는 정치, 문학, 학술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황작자의 행적과 정치 행보를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교유 과정과 교제한 인물들의 성향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권21~25에는 1836년부터 1840년까지 황작자가 교유한 조선측 인사 9명의 手札 27편, 筆談 3편, 詩文 5편이 수록되어 있다. 1834년 동지 정사 李翊會의 자제군관李時敏(1797~?)과 李曦(1782~?), 1835년 동지 부사 趙斗淳(1796~1870), 1836년 동지 정사 申在植(1770~1843)과 수행원 李鳳寧(1793~1871), 1837년 동지 정사 朴綺壽(1774~1845), 1838년 동지사 서장관 李時在(1785~1852), 1839년 동지사 서장관 李正履(1783~1843)와 자제군관 李正觀(1792~1854)이 그들이다. 이들은 상대국에 자기나라의 문인과 문학 동향을 소개하고, 漢學과 宋學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서적과 금석문을 주고받는 등 활발히 교류하였다. 이후 황작자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조선의 李裕元·權大肯·徐念淳 등과 계속해서 교유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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