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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Japanese Language Education Association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005-7016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4권 0호 (2008)

倭玉篇における漢字音の系統 -文明本節用集との比較-

이승영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3-17 ( 총 15 pages)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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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세의 통속사전이라고 일컫어지고 있는 『倭玉篇』에 보이는 가나음주의 한자음 계통을 오음 한음의 대립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曾攝와 梗攝를 중심으로 당시의 오음 한음자료인 『文明本節用集』한자음과 비교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그 결과, 『倭玉篇』의 右音注는 『文明本』의 한음과 일치하는 한자음이 전체 162字(86.63)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오음과 일치하는 것은 16字(8.55)%로 매우 적게 나타났다. 그리고, 『倭玉篇』의 左音注의 경우 『文明本』의 오음과 일치하는 것이 전체 26字(66.6%)로 매우 많았고, 한음과 일치하는 것은 8字(20.5%)로 매우 적었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통속한화사전인 『倭玉篇』의 우음주 즉, 제1음은 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독서음인 한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倭玉篇』의 좌음주, 즉 제2음은 오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밝힐수 있었다. 한편, 당시의 한적을 읽기 위해 한음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던 『文明本』과 당시의 식자층에 널리 사용되어지던 일반적인 통속한화사전의 『倭玉篇』의 음주의 일치도가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양서에서 불일치하는 한자는 『倭玉篇』의 右音注는 8字(4.81%), 左音注는 5字(12.8%)정도 있었으며, 이것은 각각 통속음가 한적의 독자의 자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는 당시의 당음도 포함되어있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당시의 식자층에 널리 사용되던 일반음과 한적을 읽기위한 한적음이 달랐던 것도 알 수 있었다. 이상으로, 『倭玉篇』은 『文明본』과 같이 음주의 색으로 구분하는 표기는 없지만, 『倭玉篇』의 우음주에는 한음, 좌음주에는 오음이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혔다. 금후에는 당시의 다른 자료인 『字鏡集』『下學集 』와도 비교고찰을 향해, 당시의 고사전과의 상호관계도 명확하게 해 갈 것이다.

近現代小說の「てある」について

허재석 ( 許宰碩 )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19-36 ( 총 18 pages)
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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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てある」는 현대일본어와는 사뭇 다른 의미용법을 갖고 있다. 현대일본어의 「てある」와의 다른 점에 대해서 선행연구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근대문학작품에서의 「てある」중 일부는 현대일본어에서 「ている」로 표현되어야 한다. 통시적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てある」가 「ている」로 대체되어 가는 통시적 변화과정 속에서 근대문학작품 중에 양자가 공존하는 형태가 보이고 있다. 「てある」는 주격을 취하는가, 목적격을 취하는가에 따라 수동형과 능동형으로 나누는데, 1920년 이후, 태어난 작가들에게 19세기후반 출생의 작가들보다 수동형에 대한 능동형의 비율이 높다. 수동형「てある」가 존재동사「ある」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반해, 능동형은 「ある」의 영향으로부터 멀어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능동형의 증가는 「てある」의 문법화가 보다 더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일본어에서는 주로 장소「に」격을 동반하는 동사의 「されてある」가 주로 쓰이고 있는데 반해 근대문학작품에서는 「に」격을 동반하지 않는 상태변화동사의「されてある」도 보이고 있다. 또한 「に」격을 동반하지 않는 동사라도 「てある」형이 되면,「に」격과 공기할 수 있는데,「に」격과의 공기는 존재동사의 영향이 아직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に」격과의 공기관계는 「させてある」나「自動詞+てある」구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일본어와 달리, 유정명사 주어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공간적 존재문에 「~に人がいる」가 정착해 가는 변화 속에서 「てある」는 아직 존재문의 변화보다 다소 늦게 변화하기 때문에 유정명사 주어가 아직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능동형「てある」중에는 주격에 동작주가 아니라 대상이 오는 형태가 있는데, 이는 형태는 능동형이지만, 의미는 수동형에 가까운 구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てある」는 수동형과 능동형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수동형과 능동형이 각기 다른 문법적 의미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일본어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てある」가 보이는데, 동작주의 적극적인 의도성보다는 주로 장면 묘사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의미적으로 수동형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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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국어 형용사-게(ge)형과 일본어 형용사연용형의 수식기능상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히고, 상태기술이차술어(depictive secondary predicate;以下DSP)와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竹澤·金·金(2003)에서는, 형용사가 DSP로 쓰일 수 있는지의 가능성에 대하여 한국어와 일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순이가 음식을 짜게 먹었다]의 [짜게]가 음식을 먹을 때의 음식의 상태를 나타내는 DSP로서 사용되는 데에 비하여,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일본어로서 [*花子が料理を辛く食べた]와 같은 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한국어에서는 형용사DSP가 성립하는 데 비해 일본어는 형용사DSP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일간의 형용사DSP의 성립가능성의 차이는 한국어의 형용사-게(ge)형과 일본어의 형용사연용형의 수식기능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의 [순이가 가방을 가볍게 들었다]와 그에 대응하는 일본어[花子がカバンを輕く持った]의 [가볍게]와 [輕く]에서는 수식기능의 차이를 볼 수 있는데, 한국어의 [가볍게]가 [들었다]라는 동작이 [가벼운 듯이/가뿐하게]이루어지는 모습을 수식하는 양태수식과 함께, 실제 가방의 무게가 [가볍다]라는 [가방]의 상태를 수식하는 해석이 가능한 데 비해 일본어의 [輕く]는 양태수식의 해석만이 가능하고 [カバンが輕い(가방이 가볍다)]라는 상태수식의 해석은 불가능한데, 이러한 형용사연용형과-ge형의 수식기능상의 차이는 한일간의 형용사DSP의 성립가능성의 차이에 의해 초래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한일간의 형용사-ge형과 형용사연용형의 수식기능상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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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まで近松が世話物の中で片父,、片母、養父、養母という趣向をどの程度まで意識しながら設定したのかはわからないが、世話物の悲劇性の核心を極大化するのには十分な要素だと思う。また、近松はどうして父親が善人で、母親が惡人という設定で描寫したのだろうか?近松はどうして嚴父慈母という設定で描寫しなかったのだろうか?先行硏究ではその根處が明らかでなく、本硏究ではこの点に着目して考察を行う。まず始めに‘嚴父慈母という趣向’はきわめて常套的ながら儀禮的で、常識的なのでこの常識を覆すような設定で讀者あるいは觀客の反應を察しようとしたのではないか。二つ目に‘嚴父慈母という趣向でない’題材こそ近松の近代性が感じられる部分ではないか。すなわち、封建時代は頑固な父親と慈愛の母親が一般的で、特に武士の場合は家族の安慰よりも主君の安慰が優先視されて、いつでも家族の首が切られる狀況だった。町家の主人や奉公人達も一分を最優先視され、その一分が廢った時は心中したりした。このような實生活での‘嚴父慈母’の姿を近松は作品の中で優しくて慈愛の父親として再創造して母性の欠落を埋めようとしたのではないか。この点こそ近松の近代性が感じられる部分であり、またこういう近代的な題材は近松の父性愛という名で再誕生したとも言えよう。三つ目に河竹繁俊によると近松は幼い時から惠まれていない家庭環境で育ったので子供達に特別な愛情があり、やさしくて慈愛深い近松自分自身の投影だと思われる。つまり、近松の世話物で見られる父性愛は二つの類型で、そこには二つとも盲目的な愛がその根幹になっており、一見子供には冷靜で、頑固のように見えるが、內面的な愛情をもった父性愛的類型と纖細で思いやりがあって優しい父性愛的類型で分けて見ることができた。

일본 근대문학에 나타난 조선인식

윤명로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67-87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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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近代文學史上幾多の對朝鮮認識が見られるが、特に 森鷗外、夏目漱石、石川啄木、宮澤賢治における生存時代狀況と個人的趣向とがいかに朝鮮認識に影響したか、作品を通して比較檢討した論文である。森鷗外は卓越した知性で、日淸·日露戰爭中、朝鮮を直接?驗した軍人として彼の朝鮮人像を軍事、實務の立場で彼の從軍日記に書き殘した。知識人として世界史的意味から朝鮮の現實を把握していたが、過激な政治論理は排除し、客觀的立場にいた。彼は歷史小說という新しい分野への開拓をし、多くの資料を參考にした朝鮮と關連がある小說「佐橋甚五郞」もある。夏目漱石も當代の知識人として滿州、朝鮮を旅行をしながら、山野と民俗そして高麗磁器など、文化遺産に接しながら、文化的朝鮮觀の持ち主であった。日本の急進的西洋化には批判的であった彼が、比較的冷靜な態度から朝鮮をみているが、朝鮮での日本人高利貸しには顔をしかめたりする。その一方、朝鮮侵略の現場に立っていた日本人の積極性、經營能力、節制ある生活など、高く評價する一般の日本人と同じ姿勢を見せている。石川啄木の短歌「地圖の上 朝鮮國に くろぐろと 墨をぬりつつ 秋風を聽く」はあきらかに日本の朝鮮侵略を批判する歌と受け取られる。ところが、これに先立つ伊藤博文のハルビン驛暗殺事件については「誰ぞ我に ピストルにても 擊てよかし 伊藤の如く 死にて見せなむ」という伊藤の英雄的な死に對する追慕の歌を殘している。この二つの短歌の?む二律背反性は日本人の民族的特性、すなわち矛盾した思考方式にも見える啄木は異鄕を彷徨しながら、生活は貧困、社會主義への憧れ、特に大逆事件は彼を現實改造に專念するようしむけた。啄木の朝鮮觀は現實的で、政治的であったと思われる。一般に明治の作家は國家と個人が常に彼らの念頭にあったことが森鷗外、夏目漱石、石川啄木にも例外ではなったことがわかる。大正の作家宮澤賢治は1929年作と推測する口語詩「鮮人鼓して過ぐ」を發表し、次いで文語詩「鼓者」、さらに「いたつきてゆめみなやみし」に改作された。病床の身の賢治は一列の軍隊(朝鮮農樂隊)への關心を表明した。生まれつきの同情心、正義感、法華經精神による人間平等の思想、博愛精神がこれらの詩に迂められている。つまり、賢治の朝鮮觀は同情的、文化芸術的である。以上、部分的に四人の作家の例をあげたが、果たしてすべての日本人作家に擴大しても良いか。筆者はこれを肯定的に理解する。文人達の朝鮮認識それは一般の日本人のそれとほぼ同一だと思われる。

러일전쟁 "전후(戰後)"의 문학과 애국 -일본자연주의문학을 중심으로-

강우원용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89-109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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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權的な?制をもって國家を成立しようとした日本は、その意志の實行となる日露戰爭を起こし、勝利とともに戰後をむかえる。しかし民衆は、旅順から歸還する兵士たちを熱狂的に迎える反面、政府への不信と不滿を日比谷燒き打ち事件のような行動であらわした。戰爭には勝利したものの、戰爭のために强いられた苦しみに比べて、ポ一ツマス條約の代價は屈辱に近い內容に思われたからだ。これは當時の日本の民衆が「帝國」の觀念と愛國心にどれほど强く捉われていたかを物語っている。それと同時に、日露戰後社會の基本が、勝利と屈辱、喜びと虛脫、國家への愛情と政府への反感など、相反するものの交差する、二重的な構造の上に成立した事實を象徵している。百姓、町人、武士が完全なる「國民」として生まれ變わったのはこの時期で、文士も例外ではない。ペリ一の來航以來芽生えはじめた「日本」という「國家」の槪念と「日本人」という「國民」の自覺は、日淸戰爭を通して强く意識され、日露戰爭という直接の動機によって確立した。日本の自然主義文學はこの「國家」成立の眞只中で、「國民意識」とともに生まれたのだ。なかでも〈眞面目(しんめんもく)〉な態度を戰後文壇の第一條件とし、その實行を〈人生に對する深刻なる考究、眞摯なる態度〉に求めた戰後の決意は(上田敏)、そのまま日本自然主義文學の本質として定着する。無技巧を强調する花袋の「露骨なる描寫」(一九零四)は最初、イブセン、トルストイ、ゾラ、ドストエフスキ一などからの感化にすぎなかった。しかし日露戰後になってそれは〈自己が人生の中から發見したある事實、それを讀者の眼の前にひろげて見せ〉(『小說作法』一九零九)る方向に發展し、『蒲團』に結實された。西毆から移入された新しい文學氣運は、人生に對する深刻かつ眞摯な態度を要求する戰後日本の「眞面目」な姿勢とあいまって、人生の眞實であるなら「美」でも「醜」でも誠實かつ露骨に書く日本の自然主義に生まれ變わったのだ。日本における自然主義文學の行方、つまりフランスの自然主義文學が日本の自然主義文學となったのは、西毆文芸の「誤解」ではなく、當の時代性、「日露戰後」という社會的背景による當爲的な「屈折」だったのである。『破戒』と『蒲團』がそろって「逃げる結末」に終ったのは、日露戰後の二重的な社會性の、文學におけるあらわれだったと解される。戰爭を通して愛國心を有する普遍的な「國民」であった藤村と花袋は、勝利と屈辱、喜びと虛脫、愛情と反感といった戰後の二重性に同じく困惑した。彼らの內部で個人の感情と社會の現實が衝突し、自己矛盾を露呈したのである。しかし彼らは、そこから新しい可能性を切り開こうとはしない。むろん戰後的な要求の眞面目な態度で人生を考究した結果、瀨川丑松のような、あるいは竹中時雄のような、苦惱にゆれる人間を發見することはできた。ところが、苦惱を押し付ける社會の根本問題に觸れ、それを取り壞す代わりに、困惑する狀態をありのまま「眞面目」に描くだけに終った。當の社會を維持している舊習俗に對して眞正面から否定することを、純粹な愛國心によりかかった彼らの國民意識が許さなかった。本稿では主に自然主義文學者を中心に、日露戰爭の影響と、日露戰爭の直後に日本社會を支配した‘國民の記憶’を取り戾そうとした。日本の文學史のなかではあまり意識されることのなかった文學者の‘國民’的な道程はこれからも徹底して檢?されるべきである。

「개화의 살인」론 -명치 문명개화기의 사랑과 도덕-

최정아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111-131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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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論文は、「開化の殺人」において、主人公北?議一郞が明治文明開化期の知識人として追求した精神の具體的な內容を彼の愛との關連のもとで考察することで、彼の悲劇的な生の原因と意味を再檢討してみたものである。そして、その結果、芥川が主人公北?議一郞の悲劇的な生を通じて傳えようとした主張とメッセ一ジを究明し、また本作品で明治文明開化期がどのような特性と意義で捉えられているかを確認することを目的とした。芥川は、明治文明開化期を時代背景とする本作品で、外在の權威と價値を超克しつつあくまでも自己本來の願望に充實だった知識人の生涯を描出している。主人公北?は、自己の內面から自ずと發露する自己本來の欲望として愛(戀愛)に目覺め、まだ道德的に白眼視されていたその愛(戀愛)の價値を新時代の道德として樹立すべく命を捧げた、先驅的な近代的知識人である。芥川は特に、北?が自己の愛を自己犧牲的無償の愛へと昇華させ、またこれを新時代の道德として樹立するための生を完遂し得た原因を、彼の自己本來の欲望、つまり愛の價値への强烈な信念と愛着に求めることにより、自己本來の欲望と愛(戀愛)の價値をさらに强調し鼓吹する。同時に、北?の自己犧牲的無償の愛に殉じた生をもって彼の眞なる愛(戀愛)を?明させることにより、眞の愛(戀愛)としての自己犧牲的無償の愛の崇高さを浮彫りし、これこそが芥川自信の追求する道德でありまた理想であることを傳えている。芥川は明治文明開化期の特性と意義を、ようやくにして可能となった個人の自己本來の欲望と愛の價値への目覺めに認めていることが確認できる。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연구 -정사(正史)와 개인적인 체험 사이-

우연희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134-150 ( 총 17 pages)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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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後文學の代表作品である大岡昇平の『부虜記』は、1948年2月に初の章にあたる『捉まるまで』が短編小說として發表され、1952年12月に創元社で現在の完結な形として出版された。この作品は1944年に徵集されてフィリピンのミンドロ島で體驗した作家の戰爭經驗をもとにして書かれている。<私>は米軍の上陸によって、1945年1月25日ミンドロ島南方山中において?虜となった。부虜になってから米軍の포虜收容所の中での<私>と<他者>の生活が、作品內の語り手である<觀察する私>の眼を通して描かれている。本稿では、敍述者が自分の?驗を正史とは區別して書いたのを<强調>している点を捉えて、このような語りの意識はどこから發生されたか、その結果大岡の文學の方法的展開にどんな關連性を持つかを考察してみた。大岡の語りの方法は全體性·抽象性を個人性·具體性に取り替える作業によって成り立っているのを捉え返したかったからである。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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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ing good bye before a dawn" is the poetry to which a turning point in the time from the Taisho last years to the Showa beginnings and Shigeharu Nakano`s adolescence were announced time intermingled in all. I`d like to reconsider about the time like circumstances and social phenomenon through this poetry by this publication. His Proletarian lyrics were published, and were compared with common Proletarian poems that expressed infertility and a dry cry. They were not just an exclamation of ideology. With regard to the history of poetry in modernity, they heighten contemporary sufferings to a fulfillment of emotion that common Proletarian poems ignored. His literary small adolescence sprouts up at the literary ground where the feeling poetry party in the Taisyo period is made the center, and is that it grew naturally. He connects with Marxism thought and practice while coming into action by "Sinzinkai New Man Society" and "Marxism art workshop" in college days, and a poetic word starts to touch description of feelings and a thought gradually. He comes to be advancing towards the world of proletarian poetry further. On the other hand, the maturity process of his poetic word piles up and is repeating it in multistory way. A new poetic word is being created through various experience in his growth process. "Good bye." "flower", "celluloid toy" a poetic word of etc. looked for a symbol about the time aspect which is being done and a social aspect. Shigeharu Nakano had the interest to something subtle truly as a proletarian Poet. He finds out that a matter is being drawn valuably by the form of some level. His Proletarian poems that have lyrical, satiric and beautiful poetic words will always remind us of NAKANO, who has played a chief role in social intercourse literature, and has been familiar with readers as a Proletarian poet.

三好達治の 敗戰 -『故鄕の花』『砂の砦』-

박상도
한국일본어교육학회|일본어교육  44권 0호, 2008 pp. 177-191 ( 총 15 pages)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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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미요시타쓰지의 패전에 대한 고찰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미요시의 패전직후에 쓰여진, 수필과 시를 중심 고찰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패전 그 다음해인 1946년에 간행된 두 시집 『故鄕の花』(創元社刊、1946年4月)、『砂の砦』(臼井書房、同年7月)을 중점적으로 고찰을 실시하였다. 먼저 패전의 의미에 관하여서는 미요시는 어떠한 명확한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패전자체를 수긍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 미요시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패전이 주는 미요시개인의 의미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패전에 대해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전후의 사회에 감도는 자조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적하는 미요시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미요시의 자세는 두 시집에도 여실하게 들어났다. 미요시는 이 시집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것과 일본의 재건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근면히 앞으로 전진하면서 나아가자고 국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시인적인 미요시의 모습은 전쟁기간의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전쟁기간에 전쟁시를 쓰며 똑같이 국민을 독려하였다. 다만 전쟁중인가 전쟁후인가 하는 시점만 달리할 뿐이다. 패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서 미요시가 보인 이러한 행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혼동을 가져오게 한다. 그의 전후의 작품활동의 기반이 이러한 근거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아무리 그의 서정시가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기반이 연약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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