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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교육연구검색

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education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1321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3권 0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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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漢字文化圈에서 공통적 표기수단으로 사용 되었던 漢字·漢文은 오늘날에도 각국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한다는 문화적 측면에 있어서도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동아시아 漢字·漢文敎育`을 이번 國際學術大會의 화두로 삼은 것은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자·한문은 그저 중국의 문자나 문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를 연관시켜 주었던 상징적·우주론적 도구였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韓·日·中 각국의 한자·한문교육 현황을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유의미하다. 특히 다양한 문화 전통과 언어 차이로 인해 날로 가속화되는 각국의 차별화 양상을 감안한다면 더욱 중요하고 시의적절한 발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한자·한문이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의 언어생활 속에서 오늘도 생동하고 있으며, 대대로 전수되어 온 전통 문화 속에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든 국가들이 동일하다. 그러나 각국에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한자·한문교육은 나라마다 그 처지를 달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육의 구체적 양상도 각각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일·중·대만 각국에서 한자·한문의 연구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자들이 `동아시아 한자·한문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각 연구자들의 양질의 연구 성과물이 한자·한문교육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며, 아울러 다양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각국 한자·한문교육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발전적 제언들이 보완되고 보다 구체화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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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은 처음 관직을 받은 문관들에게 모든 名物들을 중국의 한자음으로 말하도록 하였고, 李翼은 5품 이하의 문관과 각종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학습하도록 제안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 상층계급을 중심으로 지속된 한문 중심의 문자생활에서 한자의 뜻과 음에 대한 지식, 나아가서는 한문 문장속의 한자 어휘에 대한 주석적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한 예로 崔世珍이 편찬한 『訓蒙字會』에 수록된 3,360개의 한자 아래에는 한글 새김과 한글 음, 그리고 한문 주석이 실려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간행된 언해서들은 한문 원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문자 언어로서의 읽기와 쓰기 기능만 구현할 수 있는 직역 형태를 취하였다. 1894년 11월 21일에 공포된 칙령 제1호는 500년간 지속된 한문 중심의 문자생활이 한글 중심의 문자생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5년 2월 23일부터 『관보』가 한문에서 국한혼용문으로 바뀐 이후 당시의 문자 생활은 국한혼용문이 주조를 형성하였다. 개화기 교과서의 문체는 원문에 조사나 어미를 첨가한 懸吐體와 직역위주의 축자식 번역 형태를 갖춘 直譯諺解體, 그리고 학습자 중심의 의역 형태를 갖춘 意譯諺解體가 사용되었다. 현토체와 직역언어체는 읽기와 쓰기만 가능한 문자 언어이고, 의역언어체는 완전한 형태의 음성 언어에는 미치지 못한 형태로 한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개화기의 한문 교육은 국한혼용문의 부속품으로 활용된 한자와 어휘를 익히는 것이었다. 1948년 10월 9일에 공포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과 2005년 1월 27일에 공포된 『국어기본법』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한글 전용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글 전용이 정착되어 가는 시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자정책의 기본 방향은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한 한문 교육의 병행`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한문과의 도구적 성격을 국어 어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에서 찾았으나, 2007년에 개정된 한문과 교육과정에서는 한자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한문에서 찾았다. 이와 같이 한글 전용 시대의 한문 교육은 언어생활에서의 활용을 통해 실용성을 중시하는 한자어학습에서 문장의 독해를 통해 독자성을 강조하는 한문 학습으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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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初等學校에서 漢字, 漢文 교육은 1945년 이후 1969년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줄곧 시행되어 왔다. 초등학교에서 漢字 교육이 폐지된 것은 1969년 9월 개정되어 1970년 1학기부터 시행된 교육과정 부분 개정에서부터이다. 이후 현재에 이르도록 초등학교에서의 漢字, 漢文 교육은 정규 교과로는 더 이상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1992년 고시되고 1995년부터 시행된 제6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에 `학교 裁量 시간`을 신설하면서, 이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활동으로 `漢字, 컴퓨터, 勞作 등의 활동`을 예시함으로써 제한적이나마 漢字, 漢文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97년 고시되고 2001년부터 시행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이 예시 조항을 다시 삭제함으로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초등학교에서의 漢字, 漢文 교육은 교육과정 상의 어떠한 근거도 없이 일부 지역 교육청이나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파행적으로 시행되거나 私敎育 市場에 맡겨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中學校에서 漢文이 독립 교과로 교수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2학기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漢文이 국어 교육의 일부로서 부분적으로 교수되거나 아예 교수되지 못하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漢字 지도 要綱`이 제시된 것은 1951년 2월에 발표된 文敎部의 `戰時 學習 指導 要領`이다. 여기서 문교부는 일상생활에 긴요하다고 인정되는 漢字 1,000자를 골라서 國民學校 4·5학년 각 300자, 6학년 400자로 配當하여 가르치도록 하고, 이 1,000자의 制限 漢字를 中學校에도 적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1955년 8월 고시된 제1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국어과 교육과정 속에 `중학교의 漢字 및 漢字語 학습` 사항을 포함시켜 漢字, 漢文 교육을 국어과 교육과정의 하위 內容 領域 가운데 하나로 기술하였다. 1963년 2월 15일에 고시된 제2차 교육과정에서도 漢文은 중학교 국어과 교육과정 속에 포함되어 중학교 국어과 內容 領域의 하나로 기술되었다. 그러나 1969년의 교육과정 부분 개정에서는 중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漢字 및 漢文 指導` 조항을 삭제하여 중학교 한문 교육을 아예 폐지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72년 2월 고시된 교육법 施行令에 의하여 漢文 교과가 독립 新設되어, 이 해 2학기부터 漢文이 독립 교과로서 공식적으로 교수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73년 8월 고시된 제3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제5차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중학교 漢文은 1, 2, 3학년 각기 주당 1시간씩의 必修 科目으로서 교수되어 왔다. 그러나 1992년 6월 고시되고 1995년부터 시행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漢文이 선택 과목으로 되었고, 이후 이러한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한국의 高等學校에서 漢文이 독립 교과로 교수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漢文과 마찬가지로 1972년 2학기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國語 교육의 일부로서 고등학교 漢文이 교수되어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漢字, 漢文 교육을 폐지한 1969년의 교육과정 부분 개정 때에도 고등학교 漢文은, `國語Ⅰ`에서 漢字 교육 부분을 삭제하는 대신 인문계 고등학교 `國語Ⅱ`에 있는 漢文을 6單位에서 8單位로 증가시켰는바, 역시 國語 교육의 일부로서 漢文을 敎授하였던 것이다. 이후 1972년 敎育法 施行令에 의하여 漢文 교과가 독립 신설되고, 1973년 고시된 제3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제5차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고등학교 漢文은 독립 교과로서 사실상 필수 과목으로서 교수되어 왔다. 그러나 1992년 고시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漢文이 課程別 必修 科目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의 과정별 필수 과목이란 市·道 교육청이 선택해야 해당 교육청 소속 학생들이 이수하는 선택 과목이다. 결국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漢文 교과가 중·고등학교 공히 선택과목으로 된 셈이다. 제7차 교육과정 및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곧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漢文이 2, 3학년 선택과목으로서, 一般選擇 科目群에 `漢文⑹`, 深化選擇 科目群에 `漢文古典⑹`으로 개설되어 있고,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역시 2, 3학년 選擇科目으로서 普通 敎科 敎養 科目群(漢文, 敎養)에 `漢文 I⑹`, `漢文 II⑹`로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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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본 대학입시센터시험[National Center Test for University Admissions]의 한문 과목[Chinese Characters]을 분석하여 우리나라 대학수학능력시험[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출제에 관한 시사점을 얻고자 기획하였다. 이를 위해 시험의 구성(문항 수, 시험 시간, 문항당 소요 시간, 배점), 문항의 내적인 면(문항의 유형, 지문 내용 및 문항 배열, 평가 목표 및 난이도), 문항의 외적인 면(문항 형식, 문두 표현, 답지의 배열, 밑줄 표시, 문제지 면수) 등의 측면에서 양국의 시험을 비교 분석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문 과목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 포함되어 시행되기 시작한 2005학년도 6월 모의평가부터 2010학년도 9월 모의평가까지 총 17회에 걸친 모의평가 및 대학수학능력시험 문항을 검토 대상으로 하고, 일본의 경우 일본 대학입시센터 국어 과목이 하나로 통합된 2006년 시험부터 2007년 시험까지 총 4회를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지문 내용 및 문항의 배열, 평가 방향 및 문항의 유형 등과 관련하여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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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점 시기에는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아동들을 위한 조선어 교육에 부심하는 한편, 일제의 朝鮮總督府는 아동들에게 `국어`를 교육하고 부수적으로 조선어와 한문을 가르쳤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및 한문 교육은 `국어` 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방편이었지, 조선어 자체의 발전이나 한문 지식의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국어, 조선어, 한문 교육은 모두 식민지의 아동을 `忠良한 國民`으로 形成시키는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언어 교육은 조선총독부가 修身書를 편찬하여 아동의 정신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것과 상호 연관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어 혹은 `국어`를 교육하기 위해 편찬한 普通學校 語學讀本에서 한자어와 한문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일별하였다. 朝鮮總督府發行 韓國兒童用語學讀本이 韓國人의 韓國語와 漢文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고 개괄할 수 있다. (1) 朝鮮總督府發行 韓國兒童用語學讀本은 한국어와 한자, 한자어, 한문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식민지 아동에게 민족어인 한국어를 일정한 정도로 교육하기 위해 한자, 한자어, 한문의 교육을 병행했다. 이 점은 한국어 형성의 역사를 고찰하고 한국어 발전의 방향을 가늠하고자 할 때 한 가지 주요한 관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2) 하지만 朝鮮總督府發行 韓國兒童用語學讀本은 한자와 한문에 대해 素養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기라도 한 듯, 어려운 漢字와 漢字語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다. 또한 朝鮮語讀本은 `卽하야, 因하야, ~하는 樣이` 등 「漢字+한글어미」의 語法이나 `如何, 勿論, 可謂` 등 한문어투의 표현을 溫存시키고 敎範으로 삼음으로써 韓國語의 自己醇化의 기회를 빼앗았다. (3) 開化期以後 日帝時代에 걸쳐 急造되거나 輸入된 한자어들을 사실상 標準語로 公認하고 널리 교육시킴으로써 韓國語 語彙의 구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4) 漢文의 교육은 개인의 修身(孝, 交友 등 포함)과 사회적 同和를 강조하는 원문들을 주로 선별함으로써, 학습자들이 민족주의의 저항 의식과 반봉건의 진취적 정신을 고양시킬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朝鮮總督府發行 韓國兒童用語學讀本의 한자, 한자어, 한문의 응용이 이후 한국의 한문 소양 형성과 한문 교육 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향후 고찰이 필요하다. 또한 朝鮮總督府의 한문 교육 방향이나 내용이 臺灣總督府의 한문 교육정책이나 일본 文部省의 교육 방침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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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문과 진실에 대해 조선 한문에서 김시습, 이순신, 김창협의 딸, 홍대용의 「의산문답」, 박지원의 「허생전」,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발췌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문 교재를 통하여 역사적 진실과 인간 진실의 양쪽을 다 배워야 하며, 조선에 대해서 역사와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상황에서 우선 대학 교과서를 이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활용하고 이를 토대로 차차 고등학교 중학교로 넓혀 가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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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대만의 華語와 일본어의 한자어의 공통 상황에 대해 잡지 『臺灣靑年』에서 볼 수 있는 접사 "的" 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일본에서에서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접사 "的"은 원래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메이지 시대의 서양어 번역 과정에서 서양어의 형용사를 번역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현대 중국어에서의 `的`은 구조조사로 일본어의 `的`과는 다른 용법으로 사용된다. 중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的`은 定語와 그 중심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여, 말하자면 定語의 문법적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的`은 定語의 뒤에 자주 사용되는데, 하지만 모든 定語가 뒤에 `的`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며, `的`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定語가 되는 語句의 성질과 定語가 나타내는 문법적 의미에 달려 있다. 그에 비해 일본어의 `的`은 본래 중국어에서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의미와 용법이 중국어와 크게 다르다. 일본어의 `的`은 명사에 붙어 사용되며, 그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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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은 소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는 「한문」 교육을 행하지 않고 있다. 한문 교육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접하는 과목이라는 것이 된다.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 진학률은 99퍼센트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일본인이 한문(漢文)에 친숙해져 있다고 일단은 말할 수 있겠지만, 일본의 교육제도는 매우 복잡다기(複雜多岐)하다. 향후 일본의 교육제도는 동아시아의 우호 관계라는 측면, 혹은 문화라는 측면에서도 똑같은 한자문화권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한자교육, 한문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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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의 대학의 한문교육의 소개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그 전제로 중·고교의 한문교육의 실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교재화된 시문은 한국의 국정을 잘 반영하고 한국한문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한·일 양국이 중국의 고전 이외에 서로의 고전을 취급한 교재도 만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종래 한·일 사이에 한문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교류가 없었으나, 이제부터의 과제로서 다시금 실현될 것을 바란다. 또한 한자문화권인 베트남 한문을 배워, 우리 한자문화권의 공동의 재산목록에 넣는 것을 제안한다. 베트남의 문화전통과 역사 환경 속에서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베트남의 한문세계를 아는 것은, 우리들의 한문세계를 보다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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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과 `誠`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이 선진 시대의 사상전개에 있어서 `仁義`나 `禮` 등에 떨이지지 않은 가치를 가져 왔으며, 후세의 여러 사상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주로 후세에는 그들 두 개념에 대한 일면적 이해가 일반화되어, 각각의 개념이 선진시대에 갖고 있었던 풍부한 의미내용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본고는 선진시대의 전세 및 출토문헌에 나타난 `忠(信)`과 `誠`의 용례를 분석하고, 보고자의 고대 정치사상의 이해를 가미해서 이들 두 개념이 보유하고 있었던 정치 이론 상의 "잊어버린" 다이나미즘(dynamism)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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