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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2권 0호 (2006)

『문심조룡(文心雕龍)』 『신사(神思)』편(篇) 일고(一考)

김성희 ( Sung Hee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7-3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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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협은 『文心雕龍』에서 마음이 문학의 中樞가 된다는 것을 力說하였는데, 여기서는 기존의 학자들이 ``神思``라는 개념을 정의하는데 있어 현대적인 문학용어를 활용하여 意譯으로 풀이한 것이 그 정확한 槪念定義로 도출하기엔 미흡했다고 보고, 유협이 문장 속에서 언급한 용어를 살려서 해석하고자 하였다. 유협은 「神思」편에서 문학을 창작해가는 마음의 기능으로 다음의 몇가지 용어들을 쓰고 있다. ``神思`` · ``思理`` · ``文思`` · ``意象``등이다. 이러한 용어를 길지 않은 문장을 통하여 창작으로의 發端과 要諦를 전하고자 했다. 즉, 神思는 외부의 사물과 현상이 작가의 눈과 귀를 통해 정신에 축적되어진 心象인 意象이 작가의 마음인 精神에 축적되어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작가의 정신은 志와 氣라는 장치를 통해 制御되고, 이 志와 氣로 조절된 精神의 思理가 오묘하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志와 氣를 虛靜한 상태를 통하여 조절해야 하며, ``意象 · 思理 · 言語``의 세가지가 긴밀하게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도 작가가 타고난 資質에 따라 나타나는 고충을 느리고 빠른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어느 것이던 훌륭한 문장을 완성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학문연마와 함께 문학을 구성하는 도구인 언어사용의 수련을 말하였다. 그리고 유협은 神思된 心力인 文思力이 일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至精``과 ``至變``을 體와 用으로 운용되야 함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문장 밖에서 느쪄지는 깊은 맛은 이루 다 표현 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힘으로써, ``神思``는 그토록 신비로운 것임을 재차 밝히고 있다.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시문학(詩文學) 연구(硏究)

이준희 ( Joon Hee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33-6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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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麗末 三隱의 한 사람인 陶隱 李崇仁(1347∼1392)의 詩文學의 특징과 文學史的 意義를 糾明하기 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던 碩學들과 性理學을 硏究 · 敎授하여 성리학을 일으키는 데 앞장섰고, 道學家 특히 宋代 朱子의 영향을 받아 文道合一의 문학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詩世界에서는 儒者的 삶의 追求와 節義, 佛敎에 대한 理解와 批判, 理想과 現實에의 葛藤과 挫折, 山水에서의 靜觀과 安身立命으로 나누어 당대를 대표하였던 문인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첫째, 儒者的 삶의 追求와 節義에서는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하여 道學者로서 大義名分을 중시하고, 기울어가는 고려를 위해 끝까지 節義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그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둘째, 佛敎에 대한 理解와 批判에서는 당시 고려 말 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도은 또한 儒學 뿐 만 아니라 佛敎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져 儒와 佛에 모두 도통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유자로서 불교를 이해하였으며, 불교의 폐해에 대해서는 과감히 지적하고 비판하는 崇儒排佛의 입장을 취하였다. 셋째, 理想과 現實에의 葛藤과 挫折에서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 현실에서의 乖離를 통해 彷徨하고 葛藤하며, 결국 挫折로 이어지는 불우했던 삶의 모습을 조명해 보았다. 넷째, 山水에서의 靜觀과 安身立命에서는 혼탁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써 산수에 묻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전원생활에서 觀照하는 가운데 安身立命하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소박한 삶을 통해 淸新하면서 平淡, 自然과 韻味가 감도는 그만의 독특한 詩의 風格을 이해할 수 있었다. 陶隱 李崇仁은 고려 말 국내외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成均館 학관으로서 性理學 보급에 힘썼고, 기울어가는 고려를 위하여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또한 文人으로서도 인정을 받아 淸新, 平淡한 풍격을 가지고 자신 만의 작품세계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陶隱의 詩文學의 특징과 文學史的 意義를 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麗末 鮮初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서예(書藝)의 형성적(形成的) 배경(背景)에 관한 소고(小考)

이진선 ( Jin Son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61-93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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員嶠 李匡師(1705-1777)는 18세기의 대표적 서예가이다. 그는 비록 家門的 참화로 벼슬길에도 나가지 못한 채 23년의 긴 세월을 보낸 궁벽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삶을 살았지만 서예가로서는 누구보다도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던 인물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의식과 관념으로 ``假`` 와 ``虛``를 배격하고 ``眞``과 ``實``을 숭상하는 문예기풍이 진작되었던 18세기에 태어난 것이며, 더욱이 名書家 집안의 자제로 학문적으로는 江華學을 이끈 霞谷 鄭齊斗와 당대 제일의 서예가였던 白下 尹淳을 스승으로 모심으로써 최고의 학문과 예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서법적 자료를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는 서화 수장가 尙古堂 金光遂를 비롯 18세기의 새로운 문예기풍을 주도적으로 이끈 차川 李秉淵, 謙齋 鄭敾 등과 같은 문사들과의 神交的 관계는 그가 18세기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하며 새로운 서풍과 서예론을 개진할 수 있게 한 최고의 배경이 되었다.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는 江華學의 虛學을 반대하며 實學만을 따르는 학문적 자세로, 오직 實心으로서 ``任眞不作爲``를 강조한다. 한편 그의 기질적 성향으로 나타난 ``好奇立異``는 ``任眞不作爲``의 또 다른 모습의 표출로서 독창적이고 개성을 중시하는 원교 서예의 형성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교유시 고(交遊詩 考)

박경신 ( Kung Shin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95-12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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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이 일생을 통하여 교유하였던 인간관계는 그의 교우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인생까지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본고에서는 율곡의 交遊詩를 친구, 스님, 사신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율곡은 스스로 친구가 별로 없다고는 했지만 학문적, 정치적, 문학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벗들과 끊임없이 교유하면서 수많은 시를 지었다. 때로는 먼 길을 마다 않고 친구를 찾아가서 만난 즐거움을, 때로는 곧 다가올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 만날 기약을, 또 때로는 서로에 대한 염려와 고민을 털어놓으며 끈끈한 우정을 그린 시들은 율곡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율곡이 사귀었던 주요 인물로는 당시 성리학의 대가였던 우계, 구봉을 비롯하여 뛰어난 정치가였던 송강, 사암, 순수 문인이었던 손곡 등이 있으니 벗을 통해 반증되는 율곡의 삶과 인품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입산하여 인연을 맺게 된 스님들과의 교유는 성리학자인 율곡에게 있어 학문은 물론이거니와 인생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문적으로 잠시 外遊를 하게 되지만 결국 참된 진리는 성리학에 있다는 깨달음으로 성리학에 더욱 매진하고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山水自然을 즐기며 자유로운 정신과 생활 속에서 만났던 스님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小時的 한때의 삶을 함께했었던 동반자로서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게 된다. 지정대사, 참요상인, 보응스님, 이름 없는 노승 등 다양한 스님들과 교유하며 스님의 인품에 감동하기도 하고, 함께 산수를 즐겼던 시절을 회고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학문에 대해 논쟁도하면서 지어진 이 시들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율곡이 한 때의 방황으로 얻어진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율곡은 49세라는 그리 길지 않은 생애 중에 내외 重職을 두루 역임하게 된다. 그 중 47세엔 遠接使가 되어 明使인 翰林院編修 黃洪憲과 工科給事中 王敬民 두 사신을 맞이하여 강직하고 너그러운 자세로 詔使들을 접대하여 실리와 존경을 모두 얻으며 나라의 위상을 높였다. 일생을 出仕하여 나라에 봉사하였던 율곡은 문장이 가지는 중요한 효용 중 하나로 華國을 위한 문장을 들고 있다. 율곡이 원접사가 되어 중국 사신들과 주고받았던 시들은 華國을 위한 시로써 율곡의 문학관을 증명하는 시라고 할 것이다. 본고는 율곡의 시세계를 연구하는 일환으로 그의 시 중에 일부인 교유시를 고찰한 것이다. 율곡 시의 총체적인 조망은 이후를 기약한다.

『대학(大學)』 읽기의 전통적 관점과 한문 교과서 수용 양상 연구

김은경 ( Eun Kyung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125-15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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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대학 읽기의 전통적 관점을 검토하고 그 관점이 현재 한문 교과서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대학(大學)』은 본래 『예기(禮記)』에 속해 있다가 『중용(中庸)』과 함께 독립된 책으로, 주자(朱子)에 의해 사서(四書)로 받들어 졌다. 이러한 대학의 재조명 뒤에는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전에서 찾아보려는 남송 학자들이 고민이 담겨있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학문의 길을 위한 안내서로서, 수기치인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침서로 읽혀왔으며, 그 내용은 이상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3강령 8조목과 위정자의 덕목인 혈구지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대학을 읽는 방법으로 숙독과 정독을 추천했는데, 다산 정약용은 경전이 기록된 당시의 본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주석을 이용한 훈고학적 고증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 대학은 무엇보다 생활에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대학 읽기의 관점은 현재 한문 교과서에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내용면에서는 3강령과 8조목은 수록되었으나 혈구지도의 내용은 누락되었으며, 개인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촉발해내려던 대학 본래의 목적은 수용되지 못한 채 3강령과 8조목의 순서를 암기하는 방식의 단순한 교수 학습 방법만 사용되고 있어서 이 부분의 개발이 필요하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시문학 연구(詩文學 硏究) -그의 충정시(忠情詩)를 중심으로-

손유경 ( Yoo Kyung Soh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153-183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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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齋 金安國은 성종 9년에서 중종 38년(1478∼1543)까지 살았던 조선 중기의 학자요 문인이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사림파와 훈구파의 갈등으로 인해 기묘사화까지 발생했던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사림파 문학의 맹아기인 15세기 후반과 사림파의 성향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16세기 중기 사이에 자리한 과도기적인 시기였다. 지금까지 진행된 모재 김안국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그의 방대한 시편에 비하여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사림파라는 집단적 성격 속에 함께 묶여 김안국 개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또한 기묘사화와 관련된 정치적인 상황, 성리학자로서의 학자적 태도 등이 부각되어 정작 그의 문학 세계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에 모재의 시세계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관료로서의 의식과 삶에 시선을 고정하여 고찰하였다. 온건적인 개혁 성향으로 인해 관료로서의 忠情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세간에서 煩碎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 모재 김안국의 시세계속에서 드러나는 忠情의 다양한 면모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그의 충정은 모재의 삶과 정신세계에 있어서 자신을 지탱해 주는 중심축이었으며 詩作活動에 있어서의 중요한 모티브였기에 ``忠``으로 일관한 그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라 할 수 있겠다. 1. 出 · 處間의 葛藤, 2. 官僚的 自省意識에서는 모재의 忠情이 뿌리하고 있는 의식세계를 살펴보았고, 3. 戀君之情의 表出, 4. 愛民意識의 發現에서는 모재의 충정이 外的으로 드러나 보여지는 구체적인 면모를 추출해 보았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었던 모재의 관료로서의 진면목을 밝히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며, 아울러 모재의 문학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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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地應用作文法』과 『文章指南』을 지은 저자 崔在學은 구한말 艮齋 田愚의 제자로서 주자학에 전념하였던 학자였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에 처하여 스승의 입장과 달리 현실 참여를 결심한 후 을사조약 반대 상소에 참여하고 각종 학회와 학교 건립에 간여한 계몽 운동가이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崔在學의 저서를 교열한 朴殷植과 李沂 역시 동일한 이념과 실천 운동 선상에 있던 인물이었으며 이들은 한문의 지속 사용을 반대하고 국문 애호를 주장하되 현실적으로 국문전용이 불가함을 들어 國漢混用을 주장하였던 인물군이었다. 『實地應用作文法』은 당시에 國漢混用이 처음 본격 도입,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은이마다 서로 다르게 창작되는 혼란한 창작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집필된 책으로서 國漢混用의 규범서가 되어야 한다는 의도하에 집필된 도서이다. 『文章指南』은 『實地應用作文法』과 연계하면서 한문 글쓰기 전통의 승계를 목적으로 하였다. 『實地應用作文法』의 구성은 전반부에 이론 및 개념 설명 부분을 두고 후반부에 각 글의 종류별로 예문을 싣는 전통적이면서 이후에도 계속된 구성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론의 소개나 개념 설명이 모두 國漢混用文으로 이루어졌으며 『文章指南』과 같은 분류로 상호 연계하고 있다. 교재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애국계몽 운동의 성향을 농후하게 담은 글들로 일관하고 있으며 간혹 전통적인 한문 글쓰기의 방식을 닮은 것도 있다. 『實地應用作文法』은 그때까지 있어 온 한문으로 글쓰기 방식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혼재하고 있어 전형적인 과도기적 양상을 띠고 있다. 때문에 고래로 이어져 온 글쓰기 이론과 먼저 간행된 국내외의 저술을 참고하되 특히 일본의 저술을 참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의 종류 부분은 종래의 양식을 답습한 면이 강하지만 각종 수사법에서는 새로운 서구 수사법 이론을 적용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다. 물론 오랜 고민과 연구를 통한 정제 과정이 없어 거칠고 비체계적인 점이 상존하기는 하지만 그 당시 작문법 서적이 전무한 불모지에서 이러한 책을 집필하여 새로운 글쓰기의 전범의 시금석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文章指南』과 『實地應用作文法』의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

주역(周易)의 인간학적(人間學的) 고찰(考察) -소인(小人),군자(君子),대인(大人)을 중심으로-

진성수 ( Sung Sung Chi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215-24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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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자연원리[易理]를 인간 내면화[道德]하는 특징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와 질서 및 화해의 입장으로 보는 유가적 인간관의 전통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역』의 인간이해가 가지고 있는 인간학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의 실용주의적 사고가 외부 대상세계를 인식하고 일방적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유기적 상응관계로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이해의 출발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도 화해의 입장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인이 물질적 소유에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주역』은 小人, 君子, 大人 중에서 자기존재를 자각하고 끊임없이 자기수양을 하는 人間型인 君子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편, 『주역』에서의 吉凶은 단순히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숙명론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 스스로 삶의 원리를 찾고 나아가 吉凶을 선택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인가?``라고 하는 ``立命``의 입장에 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도록 인간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끊임없는 자기수양을 통해 완전한 인격을 완성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주역』의 인간학적 의의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孔子)의 예사상(禮思想) -『논어(論語)』를 중심으로-

선우미정 ( Mi Jeong Seonu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243-268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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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孔子의 禮思想에 대해서,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論語』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孔子는 孔子가 살던 당시 춘추 말기의 혼란한 사회의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周禮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옛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損益을 가한 것이었다. 그것은 형식뿐인 禮의 실천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의 완성으로서의 禮였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仁하여야 하고 그 仁을 행하기 위하여 禮라는 구체적인 형식이 필요하며 그 禮가 합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는 데는 義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禮義도 仁이 바탕이 된 후에 있는 것이지 禮義가 仁보다 먼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듯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 완성으로서의 禮를 통하여 인격을 완성하고 그러한 禮를 통한 사회질서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자기 신분과 위치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하며 法과 刑罰에 위한 다스림보다 禮와 德으로 다스리는 정치를 하여야 함을 주장하였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하는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爲政者가 善하지 않고서는 백성은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爲政者가 바르게 지도하면 백성들은 따라서 바르게 되고 반대로 爲政者가 포악하면 백성들도 포악하게 된다는 말은 윗사람일수록 모범을 보이면 刑罰과 法으로 억지로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말한다.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도덕적인 수치심이나 도덕적인 제어력이 분명히 있다고 보고 그러한 면을 의식적인 계발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율곡의 인성론 연구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장연 ( Jang Yun Cho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2권 0호, 2006 pp. 269-293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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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율곡이 정의한 사단과 칠정, 그리고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 윤리적 당위성 확보의 근거를 모색하였다. 본 논문의 사전 작업으로 사단 · 칠정과 인심 · 도심의 유래와 그에 대한 주자 인성론을 요약하였으며, 조선조에서 본격적인 인성론 논의라 할 수 있는 퇴계와 고봉의 논변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율곡의 인성론 전개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자가 완성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일적인 이론체계에는 인간의 심성에 대한 상이한 이론전개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形而上의 원리로서의 理와 形而下의 존재로서의 氣로 설명되던 자연과는 달리, 인성에서는 도덕적 가치의 부여라는 의미에서 理 범주가 채용되었고, 여기에서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선에 대한 당위성이 확보되었다. 결국 이 범주가 확대되고 나아가 이의 기능에 대해서 명료하지 않은 오점을 남기게 되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율곡은 인성을 기질의 범주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虛靈不昧한 心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에서는 서로를 포함관계로 보고 있지만, 인심과 도심은 개념상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관계는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다른 성격의 심을 규정한 것일 뿐 一心에서 유래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율곡 인성론의 특징이라면 주자가 전개했던 인성론에서 보이는 상호 모순된 견해들을 현실적 측면을 바탕으로 보다 정합성 있게 정리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율곡은 사단이 칠정에 포함된다고 말함으로써 비롯될 수 있는 선에 대한 당위성의 확보 문제를 인심과 도심의 정의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인심과 도심을 사단 · 칠정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情과는 별도로 意가 인심 · 도심에는 첨가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인심을 도심화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본 것이다. 인성에 대한 탐구는 그 실천적 수양을 위한 이론적 뒷받침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물리적으로 정합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륜과 마찰을 빚게 되는 경우, 이 물리적인 정합성에 대한 의심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그러한 경향성을 충분히 설명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율곡이 인심과 도심을 사단 · 칠정의 정의와 달리 해석하는 이유도 이러한 경향성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그토록 열성적으로 변론하고 비판하는 과거 조선조성리학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측면을 배제하고서는 그저 관념적인 논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가치를 지향하는 성리학은 어떠한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惡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대처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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