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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3권 0호 (2006)

『옹정황제(雍正皇帝)』에 나타난 옹정제(雍正帝)의 치국지책(治國之策)

박노현 ( Ro Heyn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7-59 ( 총 53 pages)
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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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月河의 소설 『雍正皇帝』는 중국 13억 인구를 사로잡은 작품이다. 소설로의 인기뿐만 아니라 중국 중앙방송인 CCTV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이 역시 사상 초유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二月河의 제왕삼부곡인 『康熙大帝』, 『雍正皇帝』, 『乾隆皇帝』를 놓고 청대 역사적 사실과 곰곰이 비교해 살펴보면, 원래 康熙·雍正·乾隆은 청대에 가장 현명했던 황제들이었으며, 역사적으로 그들을 평가해 본다면 康熙帝는 청이 외세로부터 위협받던 시절에 외세들을 모두 평정하여 청의 발전의 기반을 다져놓았고, 雍正帝는 통치기간동안 그 청왕조의 굳건한 기반을 기초로 하여 더욱 발전시켜 청왕조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이에 乾隆帝때 청왕조가 극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수민족인 滿族의 왕조인 청조는 다수민족인 漢族들을 다스리려면 외세의 침범을 막기도 해야겠지만 아울러 인재등용에 있어서 지배계급인 사대부와 관료계층들을 확실히 통제할 방법내지는 수단이 필요하였고 이를 雍正帝는 人才登用原則으로 不拘滿漢 不限資格, 地方官의 保擧, 幕賓의 薦擧 등으로 응용하여 운영하였던 것이다. 또한 다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인재등용의 원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 전체의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雍正帝는 판단하여 國家制度의 新設·改善의 원칙으로 軍機處를 신설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였으며, 또한 密奏制의 活用, 科擧制의 개선, 議政王大臣會議 제도와 八旗制度의 개혁 등을 주도 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雍正帝 자신만의 統治策術으로 疑不用 用不疑, 朋黨의 打破, 公私分明 등의 원칙을 지킴으로써 청왕조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雍正帝의 治國之策이 이월하의 『雍正皇帝』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있는데, 본 연구자는 이 소설 속에 나타난 雍正帝의 治國之策을 역사적 사실과 비교 검토하여 보았다.

생태적 시각으로 교과서 읽기 -고등학교 『한문』을 중심으로-

권혁진 ( Hyuk Jin Kwo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61-86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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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생태계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에너지 자원의 과도한 낭비와 자연환경의 훼손, 그리고 이로 인한 기상이변과 공기오염 및 수질오염 등은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문교육은 선조들의 작품에 실려 있는 생태적 사유들을 발굴하고 교육함으로써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지구와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의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다고 인식하는 사상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物我의 동일성을 주장한다. 인간과 만물은 유기적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의미를 野鼠婚, 슬犬說, 醫山問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유들은 萬物에 대한 사랑이란 구체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윤회의 일화, 황희 정승의 일화, 六友堂記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만물에 대해 애정을 갖게 하는 생태교육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物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행태,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문명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시각은 物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자기가 제일이라고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이며, 거짓과 위선, 폭력과 야만에 물들어 있는가를 폭로한다. 곧 인간 위주의 관점을 탈피해 物의 눈을 빌려 反生態的 인간에 대하여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생태적 모습은 잔혹성과 약탈성, 물질욕, 편리함 추구 등으로 나타난다. 호질, 박제가의 글, 兄弟投金, 최영의 일화 등은 반생태적인 인간의 잔혹성·약탈성·물질욕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위 자료들을 활용하여 반생태적 인간에 대하여 비판을 가함으로써 생태적 삶으로 회복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다원주의 문학의 탐색 -변영만을 중심으로-

안영길 ( Yeong Gil Ah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87-105 ( 총 19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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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지적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山康齋 卞榮晩(1889-1954)을 주목하여 다원주의를 탐색해 보았다. 초년에 그는 지극히 인습적인 유교적인 삶을 담으려 했다. 즉, 당대의 학문에 맞추어 修堂 李南珪(1855-1907)에게서 한문을 배웠다. 또 개화 과정에서 법률양성소를 졸업하고 20세에 판사가 되었다. 다음 해에 사법권이 일제에 넘어가자 곧장 사직하고 이후 8년간 중국 등지를 유력하며 일제하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했다. 그리고 조선의 몰락과 민족의 쇠멸을 절감하며 이에 대한 고심과 극복이 평생 그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독서와 포괄적인 사유를 통해 나름대로 민족의 특질을 파악하고 가능성을 열기 위해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영어를 독학하여 서양의 사상과 시를 널리 보급하려 했고, 한문, 국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틀에 얽매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민중의 무지를 벗어나게 하려 했다. 이런 그의 다양한 지적 편력을 두고 제국주의적 질서에 따른 근대 국가적 개념을 부정한 아나키스트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사상가로서 조명하기도 하였다. 모두 산강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면모를 규명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히 나타난다. 먼저 한학자의 불삭발, 지식인의 언어유희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 불교, 유교, 기독교, 노자, 묵자에 이르는 거대한 종교와 사상까지도 비판을 했다. 유학을 존중했지만 이에 머물지 않으려 했고, 또 객관화하려 했다. 그리하여 한문소설 『施賽傳』을 한글로 풀어 『이상한 동무』로 발표하기도 했으며 형식에 얽매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당대 조선인이 갖고 있던 저속성을 해학적으로 전개하면서 ``俗``을 비판하였다. ``俗``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靈``이 뛰어난 민족의 특성을 자각하여 일본에 ``勿協``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지적 유력을 통해 서양의 시와 사상을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는 동양의 李白, 杜甫, 蘇東坡, 曾南豊 등과 서양의 튜르겐예푸, 아나톨 푸랑스 등과 같은 낭만적 정감의 문학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포괄적이고 다원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구현하려 했다. 이런 가운데 간결한 구성 속에 상징적이고 깊은 사려를 담는 문학의 양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특히, 그의 문장 전개상의 특징을 보면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핵심만을 집어 논지를 끌어가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아마도 이런 것이 두드러져서 그를 아포리즘의 문학가로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강의 문학이 갖는 아포리즘은 종교적 관점에서부터 제반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즉, 보편적인 시각을 고려하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멋과 관점에서 전개한 논지들이 많다. 적어도 공감대를 끌어갈 논리적이며 설득적인 서술보다는 다양성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파편적으로 흩어 놓았다. 이 때문에 그의 학문적인 浩瀚性과 독특성을 인정하지만 학문적인 공감을 확보하는 데는 미흡한 점이 있다. 한편 그는 大心을 견지하여 민족의 갱생을 갈구하였고, 呂覽과 鴻烈같은 문장가로 살기를 희망했다. 그는 ``路上之學``을 주창하여 현실에 대응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평생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시도하여 잡문가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런 그의 지적 노작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상과 한국동란에서 발전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던 다원성의 대표적인 전형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신광한(申光漢)의 사부문학(辭賦文學) -낭만(浪漫) 추모류(追慕類)-

김성수 ( Sung Su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107-14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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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光漢은 『企齋集』에 26편의 辭賦 작품을 남긴 한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사부 작가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는 그의 문학을 연구한다든지 한국의 사부문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企齋의 사부문학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신광한의 사부 작품 중 감상적인 성격이 강한 사부 작품 9편을 낭만·애상·추모로 분류하여 소개하였다. 낭만에서 소개된 세 작품은 사대부 정신에 입각한 도가적인 田園閒靜이나 隱遁放逸의 가치관이 자연스레 발휘된 작품이다. 이러한 도가 문학은 여타의 사대부 문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수단이었을 뿐 진정 도가에 심취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유학사상에 편중되어 있던 신광한의 사부 문학 세계를 다양화 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애상류의 작품은 中正을 중시했던 유자들에게서는 지양되어야 할 정서이기에 해당 작품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애상이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애상류가 오히려 문학적 속성과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내용의 사부를 남기지 못한 다른 辭賦家들과 비교할 때 신광한 사부 문학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추모에서는 모두 네 작품을 소개하였다. 일반적 추모와는 달리 신광한의 추모 대상은 주로 전설상의 중국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추모 대상을 통해 유가적 도리를 찬송한 이념적 사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추모류에서 소개한 <先春嶺賦>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우리의 역사 인물을 추모한 것으로 신광한의 주체적인 민족의식의 일 단면을 볼 수 있어 그의 사부 작품 중 가장 높은 문학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상과 같은 분류 방식과 분류 내용에 적지 않은 잘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이를 계기로 한국의 사부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어서 균형 있는 한문학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에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죽림고회(竹林高會)의 시학(詩學) 연구

허남욱 ( Nam Wook Heo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145-172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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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의 목적은 12세기 후반에 형성된 ``죽림고회``의 詩學을 밝히고자 함에 있다. 죽림고회원들은 당시의 잘못된 文風으로 인하여, 그들의 문학적 역량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문풍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학관을 내세웠다. 즉 당시 만연되어가는 문학에서의 功利主義를 부정하여 정치와 분리된 文學 獨自論을 주장하였다. 가문이 몰락하여 힘든 생활 속에서 詩的 성취를 기리고 가문의 부흥 및 사회적 진출을 위해 氣의 함양 및 氣의 변개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자기 통제와 도덕적 수련에 의해 문장 성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養氣說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진출을 위한 자기 통제가 불가피하여 현실적인 창작의 단계를 중시하다보니 자연 用事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用事의 궁극적인 목적은 詩才의 한계를 극복하고 新意에 도달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文學觀에 의거하여 죽림고회원들의 당시 文風에 대한 비판은 결국 古文復興運動으로 나타난다. 고문부흥운동은 중국의 역대 고문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불우한 처지에 의한 부정적 현실관에서 출발하였다고 하겠다.

원교(員嶠) 서예론(書藝論) 연구 -서예 본질론과 심미론을 중심으로-

이진선 ( Jin Son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173-195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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員嶠 李匡師(1705-1777)는 18세기 최고의 서예가이다. 또한 그는 霞谷 鄭齊斗 이후 강화학파를 이끈 사상가이며 문인으로서 역사·문자학·음운학·그림 등에도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나 원교하면 역시 조선조 후기 사대 서예가의 한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이처럼 최고의 서예가로 일생을 보낸 그가 시대적 사명 의식을 갖고 후배들을 계도하고자 보다 전문적이며 체계적으로 서법의 이론을 정리한 『書訣』을 편찬한다. ``執持檢束``을 배격하고 ``優游活潑``을 주장하는 江華學의 인간 내면 중시의 實質的 學問만을 따르는 원교의 사상은 『서결』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특히 書藝論의 본체적 근거가 되는 書藝本質論과 審美論을 추론해 보면, 원교는 글씨의 기준을 生活(氣韻生動)에 두고 蒼勁拔俗함을 추구함으로써 方板一律的인 글씨를 배격한다. 그것은 서예의 본질이 개개인의 天機造化의 妙를 다하는 데 있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書家의 意氣가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결국 원교가 글씨를 통해 추구하는 최고의 미적 경지는 造化無定의 生命美와 筋骨妙理의 力動美로서 쓰는 이의 意氣에 따라 그 글씨가 다르고 變化無窮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익필(宋翼弼)의 문학관(文學觀)

이상미 ( Sang Mi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197-218 ( 총 22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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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翼弼(1534~1599)은 비록 서얼이었지만 도학자로서 조선중기 시풍전환기의 문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16세기 시문학사에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문학 방면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이 논문은 송익필의 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인식 기반을 마련하고자 그의 문학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첫째, 송익필은 유교적 문학관에 입각하여 詞章의 浮華無實한 虛文을 비판하였다. 또한 文質合一을 강조하여 내용과 형식의 完美를 이상적인 문학으로 여겼다. 둘째, 그는 朱子의 시를 學詩의 전범으로 삼아 배울 것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문학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閑``의 문학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게다가 직접 창작한 시들을 남겨 놓았다. 특히 그가 시를 지을 때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자신의 감흥을 써내는 것을 중시한 것을 통해 시의 自然美를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감흥을 위주로 시를 짓는 그의 唐詩的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 사변적 성리학자들이 시의 내밀성을 의도한 것과는 다르다. 셋째, 그는 신분적 한계로 治人의 길이 막히자 다만 詩文을 통하여 世敎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그의 현실참여 의지를 대신하였다. 실제 그는 詩敎를 중시하여 직접 무능한 조정을 비판하는 내용을 시로 썼으며, 문에 있어서도 효용성을 인식하고 손수 <銀娥傳>을 지어 風化를 창도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볼 때 그가 기본적으로 유교적 문학관의 바탕 위에서 사장을 비판하고 문학의 교화적 기능을 중시하였던 점은 당시 도학자들의 문학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고 직접 창작활동을 통해 다수의 작품을 남겨 놓고 있는 점은 당시 일부 도학자들이 作文害道論에 입각하여 시문의 창작을 배척한 것과는 다른 점이라고 사료된다.

추사(秋史) 김석학(金石學)의 성과와 의의

이은혁 ( Eun Hyuk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219-241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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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학문방법은 옳음을 추구한다는 입장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전제하며, 훈고와 고증을 방편으로 이해하였다. 김정희의 학문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 목표가 설정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한 것은 일면 실사구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다분히 복고적이지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단계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김정희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바탕으로 치밀한 고증학을 자신의 학문에 적용하고 있다. 본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금석학의 경우도 청학으로 대변되는 고증학의 일단면에 다름 아니다. 이 논문은 조선후기 선진학자로서 열린 사고를 가진 추사의 학문과 사상이 단지 북학을 통한 사대주의였다는 견해를 불식하고, 추사가 청학을 수용하여 우리 학계에 기여한 측면이 무엇인지를 금석학적 측면에서 논하였다. 이에 추사 금석학의 성립배경과 성과를 살펴보고, 거기에 내포된 추사의 학문적 의의를 서예적 입장에서 찾는 것으로 결론을 삼았다.

한국선시(韓國禪詩)의 발달사(發達史)

김미선 ( Mi Seon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243-27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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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에서 禪宗이 성립된 이후 독자적인 많은 문헌을 갖게 되면서부터 문학이 활짝 꽃 피웠으며, 이러한 禪 文學의 가장 중요한 분야는 禪詩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불교의 禪이 印度에서 發源하였듯이 禪詩의 연원도 인도에서 비롯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발전은 역시 중국에 와서 이루어졌음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中國의 선시를 受容한 한국 禪詩의 淵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禪 文學의 意味·槪念·範圍·方法論·歷史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중 본고에서는 禪詩의 槪念 및 韓國의 禪詩의 발달 경로에 대해 고찰하였다. 禪詩의 槪念을 통해 禪과 詩의 그 相關性을 밝혔다. 詩의 相關關係로 禪의 槪念이 文字를 떠나[不立文字] 오직 마음과 마음에 의한 전수방법[以心傳心]에서 나온 것이라면, 人間과 自我와 그 觀照에 있어서 경이의 세계를 詩的인 靈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바로 禪詩이므로 相好發生論的으로 相關關係가 있음을 선시 개념에서 알 수 있었다. 또한 韓國 禪詩가 中國 禪詩를 어떻게 受容하여 發展되어 졌는가를 禪詩 發達史的 側面에서 考察하였다. 禪詩은 바로 中國的인 文化와 歷史的 背景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매우 뛰어난 文學思想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禪詩가 中唐·晩唐에 접어들어 크게 성함을 보였고, 韓國 高麗때 慧諶이 본격적으로 受容하여 朝鮮 後期 마지막 인물로 艸衣 意恂이 등장하여 韓國 禪詩의 脈을 잇고 있음을 밝혀 냈다. 本考의 남는 과제로는 이러한 禪詩史의 産物인 高格한 禪詩作品의 世界를 後考의 課題로 期約한다.

독서층의 새로운 지평, 방각본과 신활자본

류준경 ( Jun Kyoung Ryu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3권 0호, 2006 pp. 271-302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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坊刻本과 新活字本을 동일한 지평에서 바라보는 데는 많은 난점이 존재한다. 서적의 내용적 연속성, 출판 방법의 연속성, 출판 목적의 연속성이 쉽게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방각본과 신활자본의 특징과 새로운 독서층의 지평으로서의 문화적 의미를 개별적으로 짚어보고, 이어서 방각본과 신활자본의 관련을 문화사적 맥락에서 연속과 단절의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았다. 坊刻本은 민간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된 목판본 서적을 말하며, 新活字本은 근대식 연활자 인쇄술로 만들어진 서적을 말한다. 방각본은 기존 지식의 요약적 재생산의 성격을 띠기에, 상층 문화의 하층적 자기화과정으로 이해된다. 비록 새로운 지식 창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으나, 상층의 집단적 전유물인 문자문화를 자기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顯現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신활자본의 문화사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서적의 대량생산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보급 및 새로운 독서층의 형성에 있다. 하지만 교과서 위주의 출판과 일본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신활자본의 출현이 뚜렷한 출판운동으로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만다. 이에 따라 전근대적인 성격이 강한 고소설이 1920~30년대에 주류적인 출판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의 독특한 서적문화를 보이는 바, 곧 ``내용적 전근대성과 제도적 근대성의 얽힘``이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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