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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6권 0호 (2008)

권근(權近) 『시천견록(詩淺見錄)』의 호현(好賢),호덕론(好德論)

진예숙 ( Ye Suk Ji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7-3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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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末鮮初의 역사적, 사상적 전환기에 처하여 관계와 학계, 양쪽에서 활동하면서 유학적 이상을 펼치고자 노력했던 陽村 權近의 『詩淺見錄』은 역대 詩經論의 핵심적인 쟁점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조선 詩經論의 성장과 발달에 밑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權近개인을 넘어 麗末鮮初의 경학사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權近은 『詩經』이 인간 심성을 개발하는 敎化的機能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자신이 처한 당대의 현실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시대정신을 갖춘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신과 士大夫가 그 인재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詩淺見錄』을 저술하였다. 본인은 이 점에 주목하고, 『詩淺見錄』의 <淇奧>과 <緇衣>, <關雎>와 <兎저> 등의 詩篇에 나타난 陽村의 好賢ㆍ好德論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陽村은 爲政者개인의 修己段階가 사회적 영역인 治人段階로 확대되는 구도에서 爲政者의 好德이 고리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이로 인해 이상사회 건설의 기폭제가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는 民을 주체로 한 好賢論을 전개하여 백성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詩淺見錄』에 나타난 陽村의 好賢ㆍ好德論은, 쇠망해 가는 고려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단지 亡國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에서 詩經에 수록된 中國上古史에 대한 詩解釋을 통해, 정치ㆍ사회ㆍ사상적 격변기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조망하고 好賢ㆍ好德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陽村의 好賢ㆍ好德의 논리는 자체적으로 終始論的循環構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民을 주체로 한 好賢의 논리는 지도자의 好德의 결과[終]로 산출된 것이며, 이와 반대로 지도자의 好德논리는 民의 好賢 意識을 촉발하는 원인적 요소[始]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陽村의 好賢ㆍ好德의 논리는, 유학적 이상 사회 건설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둘이 아닌 하나의 전체적 논리 구조로 볼 수 있다. 즉 好德은 好賢意識을 촉발하고, 好賢 意識은 지도자의 好德 意識에 영향을 끼치는 循環論的 構造를 가지는 것이다. 결국 陽村은 새로운 세계의 신질서를 확립하려는 의지를 詩解釋에 담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文王의 교화를 강조하면서 이를 자기 시대에 이식하려 한 것이며, 이러한 교화를 바탕으로 한 인륜의 도덕을 중시하면서 麗末鮮初의 급변적인 시기에 백성들의 인륜 도덕적 교화의 좌표로 삼고자 한 것이다. 『詩淺見錄』에 언급된 여러 詩篇의 解釋들에는 그의 정치, 사회적 이념이 녹아 있으니, 變을 正으로 회복하여 새로운 질서를 이룩하려는 陽村의 성리학적 이념과 전환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가 엿보이며, 이는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홍귀달(洪貴達) 교유시(交遊詩)에 나타난 15세기 후반 관인(官人)의 형상(形象)

김창호 ( Chang Ho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35-58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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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世祖~燕山君시기에 활동했던 洪貴達(1438~1504)의 교유시에 나타난 官人의 形象을 규명하는 데에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이 작업은 홍귀달 시의 含意의 일면을 밝히는 작업이지만, 이를 통해 15世紀 後半시인들의 時代 認識과 志向의 일면을 살피는 작업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홍귀달은 世祖朝에 嶺南에서 진출한 士人으로, 함께 영남에 기반을 둔 金宗直 및 新進士類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종직과 달리 출사 이후 순조롭게 입지를 확보해나갔으며, 徐居正이 맡고 있던 文衡을 이어받기도 했다. 신진사류와도 교유했지만 보다 이른 시기에 진출하여 京華社會에 적응과정을 거쳤던 선배 세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勳舊 對 士林으로 인식되어온 기존의 構圖에서 그는 개성적인 연구 대상으로 보이기 어려웠던 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의 특성은 오히려 다른 면을 주목하게 한다. 1504년 죽음 이전까지 그는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며 폭넓은 교유를 나누었고, 文衡을 맡을 정도로 당시 문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점에서 교유를 바탕으로 한 교유시는 그의 시대 인식 및 지향만이 아니라, 당대 문사들의 그것에 대해서도 탐색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포착할 수 있는 제재가 바로 교유시에 나타난 官人의 形象이다. 홍귀달의 교유시에 나타난 15世紀後半관인의 형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治世의 根幹으로서의 循吏型 官人이다. 그는 당대가 태평성세라는 인식 아래, 태평성세의 지속을 위해서는 백성의 삶의 문제에 절실하고 任地의 難題를 적절히 헤쳐 나가는 循吏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당대에 필요한 관인형의 하나로 循吏型관인을 제시하였다. 둘째, 修養의 主體, 敎化의 담당자로서의 官人 形象이다. 이 무렵에는 新進 士類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조정에 새로운 긴장감이 형성되었고, 『小學』, 『家禮』의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律身, 自己 檢束등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성장하며 수학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수양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敎化에 책임을 다하는 地方官의 像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관을 수양의 주체이자 교화의 담당자로 강조하는 내용이 김종직 관련 작품에 한정되어 나타난다는 점은 중요한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듯하다. 말하자면 김종직 및 신진사류와 비교할 때, 홍귀달의 교유시에는 이 같은 면모가 그리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속성의 관인형은 당시 신진사류의 진출과 함께 변화를 겪어가던 관인사회에서 공감의 폭을 넓혀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太平烟月 속에 餘裕와 自適을 즐기는 閑人의 형상이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성종 연간은 대체로 안정과 평온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교유를 바탕에 둔 많은 작품에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관인의 形象은 여유롭고 自適한 생활을 즐기는 閑人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神仙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관인의 형상은 각각 당대 문사들이 느끼는 정치 현실에 서의 필요, 새롭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官人像에 대한 고민, 시대를 謳歌하는 餘裕와 自適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C 기묘사림(己卯士林)의 기몽시(記夢詩) 연구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59-84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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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년 중종반정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16C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이들의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치적 입장은 결국 기묘사화로 많은 사림파 문인들이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 때 희생된 사람들을 己卯士林이라고 한다. 그동안 16세기 사림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결과 이 시기 載道文學에 대한 연구는 상당 부분 진척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향은 이 시기의 사림 문학 전반을 재도 문학으로 아울러 내는 거시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 작품의 개별적 분석을 통한 미시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미비하였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 하여 이 시기 사림 문인들에 대한 개별적 작품 분석을 통해 그들의 의식 세계를 탐토해 보고자 하는 큰 연구 목적의 한 작업으로서 16세기 기묘사림들의 記夢詩를 분석한 것이다. ‘記夢詩의 淵源및 定義’에서는 기몽시의 연원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몽시의 개념을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記夢詩 分類’에서는 16C 己卯士林의 記夢詩를 出仕에의 의지 표출ㆍ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ㆍ至親에 대한 그리움ㆍ절망적 상황에의 신세 한탄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한 記夢詩의 분석은 기묘사화 후 개인 작품의 산일과 그들의 짧은 생애로 인하여 그들의식의 내면을 고찰할 방법이 적은 당시 사림 문인들이 유배기의 심리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으며, 또한 이들의 記夢詩가 16C 후반의 다양한 형태의 기몽시가 창작되는 데에 일정정도의 기여를 하였음을 밝히는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본고는 시작품의 분석 대상을 일부 기묘사림의 작품에 국한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記夢詩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의식세계의 일단면을 엿보는 데에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추후 이 시기 개별 작가들의 시작품 분석 과정에서 더 많은 기몽시 작품들을 보완하여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생애와 시문학적(詩文學的) 성향

김성진 ( Sung Jin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85-11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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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호남 지방에서 학문과 절의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하서 김인후는 漢詩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논문은 그의 시의 특질 및 시세계의 실질을 문학적 배경, 시관 등의 예비적 고찰을 토대로 하여 고찰하였다. 문학적 배경에서는 시적 특질과 시세계의 실질을 형성하는 요인에 주목하여, 먼저 조정 戚臣의 不義와 士禍에 대응하고 인종을 향한 절의로 일관한 삶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慕齋 金安國의 문하로써 崔山斗, 宋純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실과 孔子ㆍ朱子의 학문을 탐구하고 濂洛의 理學을 공부하는 학문자세를 볼 수 있었고, 호남의 樓亭을 중심으로 모인 당시 문사들과 교유하며 돈독한 友誼를 나누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그의 시세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당시의 성리학자들이 그러했듯이 김인후의 시관은 道本文末, 詩本性情에 근거하였다. 무엇보다 성정을 중시하고, 이치를 탐구하며, 天眞을 지향하는 면모를 보여 주었다. 시가 지녀야 할 본질은 바로 성정의 正과 眞이며, 이러한 正과 眞을 시를 통해 얻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관은 시세계의 실질이 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자아와 자연, 학문, 현실 세계가 일치하는 全一的세계관에 기초하였다. 그리하여 자연세계는 자신의 성정을 도야하는 道體로써 현존의 실질적인 삶의 이치를 제시하고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대상이며, 초월적 이상을 지닌 의식 공간이었다. 학문 및 사상세계는 主敬, 主理에 입각하여 인간 본원적인 사랑과 人道的인 정의와 도덕적인 진실을 강조하였으며, 학문을 연마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과 대응 양상은 질박하고 광명정대한 `古`를 표준으로 하여 현실세계의 진실을 강구하였다. 忠ㆍ義를 중시하고 적절한 표상어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풍속과 인륜의 교화를 강조하고 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전달하였다. 信實한 교의 실천이 교유시를 통해 피력되었고, 역사를 읊조리며 현존의 표준을 제시하는 등 본연의 순수한 자아를 발현하고 있었다. 김인후 시의 수사적 특성은 措辭의 精緻的 묘미를 이루고, 意象의 회화적 성향을 지니며, 詩想전개에 있어서 理趣가 지배하는 시적 경계라는 데 있다. 결국 載道的시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理勝으로써 흥취를 通御하여 시의 미감을 축소시켰으며, 시적 대상인 자연경물을 예술적으로 형상화 하기보다는 오직 道를 밝히고 理를 탐구하는 구현체로 인식하였다. 明道的 探理的 선입견을 갖고 자연 경물을 바라보는 데서 초래하는 묘사의 미흡함을 배제할 수 없었다. 내용보다 외형, 정신보다 형식의 꾸밈을 추구하는 당시 사장학파의 작태를 배격하고 시문을 오직 存心과 內向의 방편으로 인식한 김인후는 당시의 호남시단에서 점유했던 위치나 시작품의 量ㆍ質로 보아 漢詩史에서 소홀히 여길수 없는 존재였다. 宋純에서 鄭澈로 이어지는 중간에 위치하여 한시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단지 中宗朝의 唐風을 지녔던 시인이라는 잘못된 이해를 시정하고 올바른 내린 뒤 시사적 위상을 정립해야 함을 절감하였다. 비록 젊어서 唐域에 드나들었지만 결국 朱子를 비롯한 濂洛의 시풍에 의존하고 그러한 詩境을 지향했던 것이다.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시문학(詩文學)

조희창 ( Hee Chang Jo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111-152 ( 총 42 pages)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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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宦路에 들어선지 3년 만에 乙巳士禍에 연루되어 22년의 세월을 謫居地에서 보냈다. 그의 전반 생애가 본인의 삶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外變으로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오히려 척박하고 불우한 환경을 새로운 삶으로 승화시켜 불후의 문학과 철학을 정립시키는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유배지에서 杜甫에 침잠되어 두보의 詩法을 얻었고 白光勳, 崔慶昌등과도 사우관계를 맺어 三唐派출현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그가 남긴 1,449수의 시중에는 유배지에서 창작된 시가 1,023首로 대부분에 속하여 유배시인으로 통한다. 그의 시를 분석해보면 내용에 따라 `離別의 情恨과 至親에 대한 그리움`, `知己와의神交를 통한 삶의 위안`, `拘束된 自我와 학문에의 침잠`, `사물에 투영된 君子的삶의 지혜`, `流配客의 고뇌와 憂國憐憫의情`으로 요약된다. 소재의 시풍을 대체로 `萬鈞之勢`와 같다고 평하며 `雄拔, 淵宏` 하다고 말하고 있다. 解配후에는 湖陰鄭士龍, 芝川黃廷彧등과 함께 湖蘇芝로 지칭되어 조선후기 官人文學을 최고조로 올려놓음으로서 `館閣三傑`로 칭송되었다. 선조 조에는 宋詩, 특히 江西詩派를 배우려는 시적지향이 계속되는 가운데 道學詩가 활발하게 창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宋詩의 散文性, 技巧主義에 반발하여, 음악성과 서정성, 형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詩的지향으로 唐詩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소재는 이의 향도적 역할을 했던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노수신 시의 특징은 人名, 地名, 官職名등의 고유명사를 시어로 적극 활용 하였고 俚語와 接續詞를 적절히 배치시켜 탁월한 시적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수사적 기교와 표현에서는 重義法과 反復法, 對話體등을 적절히 구사하는 시적 기교를 확인 할 수 있다. 소재는 유배지에서 『夙興夜寐箴解』 및 『人心道心辨,』, 『執中說』등을 저술하고 退溪李滉, 河西 金麟厚, 一齋 李恒등과 논변하였다. 이 논문들은 주자학과는 이질적인 心性論과 工夫論을 제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대와 후대의 사류들로부터 異端에 물든 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소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문학과 함께 陽明學者로의 위상을 함께 살펴야한다. 또한 선조16년(1583)에 『改正大學』을 찬집하였는데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蘇齋先生大學集錄』을 지칭하는 것이다. 소재는 유배의 좌절을 초극하여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승화시켜 왕성한 창작력과 비장함으로 격조 높은 작품세계를 이루어 내었다. 性情을 주로 하는 唐詩風을 적극 수용하여 學杜의 지평을 열었고 세칭 館閣三傑로써 또는 湖蘇芝로써 조선 중기문학의 큰 획을 이룬 것이다.

이달(李達)의 시연구(詩硏究)

박노현 ( Ro Heyn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153-189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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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達의 신분이 當時에는 천시 받는 庶孼이었기에 後代에 내려오면서 그의 문학적 가치에 비해 그리 큰 각광을 받지 못해왔으나 그의 詩作品이 당시에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詩人으로 불리웠을 정도로 높은 것이었다. 또 當時에 三唐詩人으로 불리울만치 한국한문학사에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다. 첫째, 李達詩속에 담긴 사상들을 儒ㆍ佛ㆍ道家思想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李達의 학문적 근원은 물론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儒家가 기본적인 중심이 되었으나 유가 이외에도 佛家ㆍ道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이는 당시 시대적으로 차별 받는 庶孼이라는 신분 때문에 儒家에서 최종 목표인 立身揚名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공정하게 갖지 못하는 이유로 말미암아 修道的이고 幻想的인 禪과 道를 추구하여 현실의 괴로움을 超脫하고자 하였고 또한 이를 현실적인 도피처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둘째, 李達의 詩作品의 內容을 感情移入, 自然描寫, 現實批評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感情移入에서는 李達자신이 이 삶의 세계 속에 느끼는 좌절감, 정착을 향한 희구, 이별에 대한 아픔 등을 묘사하고 있다. 또 自然描寫에서는 다음과 특성이 있다. 一生을 流落生活로 보낸 李達에게 있어서 自然은 그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즉 李達의 思惟와 感覺樣式을 通하여 自然을 묘사, 그리고 詩化하고 있는데, 마치 한 폭의 山水畵내지는 文人畵를 보는 듯하게 아주 섬세하고 깔끔한 필치로 自然을 객관화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세 번째 現實批評이 있는데 東西分黨을 상징적으로 詩化한 것이나, 또 아이들의 입을 통하여 관가의 수탈을 노래한 것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여기저기로 피난을 다녀야 하는 고통과 가족들 離散에 대해 현실적 상황을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비평하고 있다.

허균(許筠)의 문학론 연구 -「문설(文說)」을 중심으로-

이규운 ( Kyu Un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191-22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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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1569년, 선조 3년~1618년, 광해군 10년)은 시대를 초월한 삶과 문학적 기행을 보여준 작가이다. 본 논문은 「文說」에 드러나는 許筠의 개성적 문장론을 살펴, 그의 문학론의 일단을 고찰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許筠은 당시의 시대적 사상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문학의 새로운 이론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이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문학이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것이 「文說」과 「詩辨」등이다. 許筠은 공자의 문학론을 제시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의 목표가 `辭達`에 있음을 밝히고 文章이란 `通上下之情`과 `載其道而傳`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通上下之情`과 `載其道而傳`은 기존의 유가적 문학이론에 바탕한 고문론의 논리와는 다른 것이다. 許筠은 민중의 정감을 바탕으로 하고,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곧 文章이 지향하는 민중성과 현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허균은 이러한 고문에 대한 원론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當世之常語를 통한 자신만의 개성적인 문장을 지향하였다. 當世之常語는 허균의 문학론을 이해하는 중요지점이기에 세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常語를 작품 속에서 확인하였다. 첫째 민중들의 삶과 소박한 감정이 담긴 문장이다. 둘째 시대를 반영하는데 알맞은 문장이다. 셋째 상대방의 의론을 중시하는 문장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고, 이것이 드러나는 許筠의 실제 문장을 예로 제시하여 논증하였다. 결국 許筠은 이러한 當世之常語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문장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許筠이 주장하는 法古에 대해 살펴보았다. 許筠이 사용한 편법, 장법, 자법에 관한 수사적 표현은 개별 문체의 특징을 고려한 분별적인 논의가 아니라 산문전반에 대한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논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사적 층위에 대한 고려는 文以載道라는 文學認識이 팽배했던 朝鮮前期의 文學家들의 입장과는 상반된 것으로 文章에서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 반면에 法古의 연원이 당송파 문학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진명(震溟) 권헌(權헌)의 회화관과 문학론 비교 고찰

최유진 ( Yoo Jin Choi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227-260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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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溟권헌은 조선후기 서울의 서화를 수장하고 감상하는 인물들과의 교유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회화에 대한 비평 감식안을 기르게 되었다. 그는 대상의 외면에 치중하는 形似보다는 내면을 곡진히 표현하는 傳神을 더욱 중시하였다. 傳神을 강조한 이유는 남들과는 다른 개인의 고유한 본성을 전달해야 하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외형에 대한 기교적 측면을 전혀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외형에 대한 배려가 있고 난 뒤에 傳神을 논할 수 있다고 하여, 形과 神의 변증법적이고 통일적인 조화가 선행적으로 요구될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傳神의 조건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사람의 심적 태도 및 수양의 양상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즉 대상의 내재된 정신을 파악하여 그것과 간극이 없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심적 상태가 순수하고 깨끗해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권헌은 傳神을 이루는 과정에서 趣를 얻을 것을 강조하였다. 권헌이 사용하는 趣의 용례를 검출해본 결과, 산수의 趣, 莊子的사유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는데서 오는 趣, 物我相忘의 경지에서 느끼는 趣등 다양한 의미 범주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화론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趣는 興, 樂, 快라는 정서적 반응과 그것의 고양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神은 회화에서 담아내야 할 사물의 본질적 면모라 한다면 趣는 감상자에게 느껴지는 미적 울림 내지 심리적 쾌감이라고 볼 수 있다. 회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장르는 다르지만 각기 글과 색채를 매개로 주제내용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서도, 차이점 또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즉 회화와 달리 詩는 같은 주제를 형상화하면서도 표현의 곡진성, 情調, 분위기, 여운, 상징성, 서사성 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일정하게 詩의 역할을 더욱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옥(李鈺) 유기(遊記)의 미적 특성

황아영 ( Ah Young Hwang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261-296 ( 총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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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文無子 李鈺(1761~1812)의 遊記를 중심으로 하여 그 특징을 살피고, 이를 기반으로 이옥 유기의 미적 특성을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옥이 살았던 당시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으로 조선왕조가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특히 문학적으로는 正祖가 추진한 문체반정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이옥은 문체반정으로 문제시되었던 인물로서, 정조의 엄중한 문체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소품체 산문을 고집하였고, 개성적인 필치의 소품체 유기를 창작하게 되었다. 이옥의 유기는 전체성에 대한 거부, 일상의 포착이라는 미적 특성을 보인다. 이는 탈중심적이고 일상에 몰두하는 이옥 자신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전체성에 대한 거부는 3가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첫째로는 기존의 유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탈중심적 소재를 다룬 점, 둘째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한 점, 마지막으로 일반적 시선과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고 분해하여 이옥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점이다. 당시의 중심적 가치관인 성리학과 古文에 대한 저항과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이전의 유기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의 유기를 창작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옥은 중심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각각의 차이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가치관과 관점으로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여, 전체적 이미지를 이옥의 기준으로 분해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부여함으로써 재구성하게 되었다. 이옥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현재 보이는 것 또는 상황을 포착하고 기록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옥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과 사건들을 객관적 시각으로 보았으며, 상황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포착하여 그것들을 하나하나 글로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일상의 언어를 유기에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대화체를 사용하여 장면에 생동감과 사실성을 더하면서 장면을 극대화하였다. 본고는 이와 같이 이옥 유기의 미적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이옥의 유기의 의의와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옥의 유기는 일반적 유기처럼 산수의 풍광을 감상하기보다는 현재 이옥을 사로잡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에 몰두, 묘사하였다. 그렇기에 어느 곳을 가던지 이옥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무엇을 그리건 그것 자체가 놀이가 되었다. 이옥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위안을 삼았기 때문에 산수는 이옥에게 다른 의미의 안식처요, 구도처가 되었으며, 산수를 그리는 행위는 자기 위안이며 오락적인 놀이가 되었다. 이처럼 체재와 규범에서 벗어나 개성적이고 탈중심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유기를 지었다는 점에서 이옥은 조선 후기 문단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으며, 이는 더 나아가 조선후기 사회에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곧 이옥 유기의 의의이자 가치이다.

시승(詩僧) 정호선사(鼎鎬禪師)의 시세계

김미선 ( Mi Seon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6권 0호, 2008 pp. 297-330 ( 총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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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 論考는 근대 한국불교의 크신 지도자 鼎鎬 禪師의 시세계를 다루었다. 먼저 연구 방향은 정호선사의 시문이 형성된 배경과 과정을 정호선사의 대략적인 생애 및 법맥을 짚어보면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정호선사의 전반적인 작품을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에서 분석 하고 그 특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정호시의 작품 내용에서 본고의 연구 범위는 禪家詩와 詠物詩로 한정하였으며 정호선사의 시문학이 우리 한국 선가시사에 어떠한 위상을 가지는지 考究해 내는 것을 본고의 연구 범위로 한정하였다. 鼎鎬는 映湖 朴漢映(1870~1948)스님을 말한다. 법호는 영호 법명는 정호 속명은 박한영이다. 또는 석전이라는 아호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韓龍雲(1879~1944), 白龍城(1864~1940)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를 적극적인 현실인식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로 살았던 근대 불교계의 거목이다. 정호는 일제에 의해 정체성을 잃어 가는 민족불교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으며, 조선후기 배불정책의 후유증에 휘청거리는 불교계의 유신을 위해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불교유신론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특히 영재교육을 통한 불교계의 불교 개혁과 민족갱생을 위해 한평생 혼신의 힘을 바쳤던 선지식인 이었다. 이처럼 근ㆍ현대 불교계의 講ㆍ禪ㆍ律ㆍ詩를 겸비한 대표적인 物外道人이라 할 수 있는 정호에 대한 소개는 그간 간헐적으로 있어 왔으므로 그 편린이 다소나마 알려져 있지만, 詩人으로서의 정호, 특히 禪詩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나 연구는 ``전무하다함``이 필자의 과문의 탓만은 아닐 줄 안다. 정호는 우리나라 선시의 맥을 계승 발전 시켜 萬海 韓龍雲등 후대 詩僧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줌으로써, 鼎鎬詩가 禪詩史를 포함한 佛家文學및 韓國漢詩史에 끼친 영향과 그 詩史的위상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매김 되어진다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 다룰 ``鼎鎬禪師의 시세계`` 논의로 이후 정호의 시문학에 대한 활발한 연구의 필요성 제고가 되기를 기대하며, 그것만으로도 보람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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