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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7권 0호 (2008)

신광한(申光漢)의 사부문학(辭賦文學) -찬송(讚頌),수신류(修身類)-

김성수 ( Sung Su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7-45 ( 총 39 pages)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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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光漢은 26편의 辭賦 작품을 남긴 유수의 사부 작가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을 연구한다든지 한국의 사부문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절감하였기에 미력하나마 용기를 내어 본 연구를 내놓는다. 당연히 적지 않은 잘못이 있을 것이나 이를 계기로 한국의 사부문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신광한의 작품이 많으므로 한 번에 다 싣지 못하고 여기서는 讚頌·修身에 해당하는 8편을 따로 소개하는 것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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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1569-1618)은 조선 사회가 임진왜란과 당쟁으로 인해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시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방달한 삶의 태도로 인해 당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의 辭賦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영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고는 許筠 辭賦 문학 연구의 일환으로서 『海東辭賦』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그 안에 형상화된 주제를 살피고, 그것을 토대로 許筠의 의식지향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본고에서 대상으로 한 작품들에 형상화된 주제의 양상은 세상과의 不和에서 오는 失志, 有限한 인간 삶에 대한 哀傷, 仙界에 대한 동경 등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이러한 양상은 그가 將相으로서의 삶과 그것과 대척적인 지점에 있는 神仙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의 주제들은 騷體賦와 抒情小賦, 그리고 六言 등 다양한 체제 속에 과장됨 없는 핍진한 표현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아울러 작품 전반적으로 서정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것도 그의 賦 작품이 지니는 표현상의 특징이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賦 작품에 형상화된 許筠의 思惟가 다른 장르를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들에서의 언급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許筠에게는 賦라는 양식 역시 형식적인 저작이 아니라 자신의 정회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매개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賦 작품이 지니는 중요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식산 이만부의 「금강산기(金剛山記)」에 나타난 문예미학

신두환 ( Doo Hwan Shi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73-102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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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 식산 이만부의 『地行錄』 중 「金剛山記」에 나타난 문예미를 연구한 논문이다. 식산의 「金剛山記」에는 다양한 기록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산수에 대한 표현은 아름다운 필치와 훌륭한 묘사로 창작되어 문체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배어나는 점이 주목을 끈다. 그의 「金剛山記」는 산수유기 산문의 문예미를 엿볼 수 있는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식산의 「金剛山記」는 그 문체가 유려하고 철학적이며, 문학적이며, 역사적이고, 민족적이고 예술적인 차라리 한권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서화집이다. 누가 우리 금강산에 대하여 이렇게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유람했고, 누가 우리의 산하를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했으며, 누가 우리 산하에 대하여 이렇게 민족적이었나? 이토록 가슴이 벅차고 혈맥이 동탕하는 그러면서도 독자를 아름다움의 늪에 빠뜨려 놓는다. 조선 산수유기의 걸작 「金剛山記」는 그가 얼마나 금강산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금강산의 절경들을 훌륭하게 묘사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기록에 나타난 문체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비유의 형상사유에는 그의 독특한 미의식이 함의 되어있다. 그 「金剛山記」의 특징은 회화적이며 문체의 아름다움과 비유가 생동감이 넘치는 데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산은 곧 사람이었다. 그의 「金剛山記」 문예미학에는 묘하게도 성리학적인 형상사유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식산의 금강산 유기에 표현된 문자는 빛과 색의 움직임과 변화가 오묘하게 들어있는 회화적인 언어이다. 식산은 통속적인 금강산 유기의 도식성을 극복하고 산수화에 대한 호사가로서 예리한 서화평론가의 필치로 금강산 절경을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식산은 서화의 창작적인 구상을 염두에 두고 자연미를 그대로 나타내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그가 경관을 묘사해낸 공간적 구성은 측면 부감의 수법이 들어 있고, 중심을 뚜렷이 처리한 집약적인 화면구도, 대상의 특징을 생략과 강조의 수법으로 진실하게 나타낸 섬세한 세부묘사, 수묵 담채화의 화폭을 의식한 담백한 묘사 등 그 서화 예술적 형상화는 그의 금강산 유기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한층 더 높여 놓았다.

삽교(霅橋) 안석경(安錫儆)의 대일인식(對日認識)과 「강항전(姜沆傳)」

윤지훈 ( Ji Hun Yoo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103-125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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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안석경이 저술한 「姜沆傳」의 특징과 저술배경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강항전」은 안석경이 강항의 『看羊錄』을 읽고, 이를 생략, 통합, 재정리하여 `傳`으로 재구성한 것인데, 이는 그의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독서 체험이 어우러져 탄생한 결과물이며, 또한 그 속에는 시대적 위기위식에 대응하려는 조선후기 지식인으로써의 고뇌가 투영되어 있어 주목된다. 「강항전」은 여느 인물전과 달리 그 구성이 일본의 정세를 밝히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간양록』의 기록을 가공하여 강항의 전기를 간략히 기술한 뒤에, 소차의 형식을 빌려 일본 정세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주제별로 묶어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강항전」은 비록 `전`이란 장르적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문예성을 짙게 내포한 작품이라기보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조선이 대응해야할 방안을 모색한 실천문학으로써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정조(正祖)의 책문(策問)에 나타난 애민사상(愛民思想) 연구

김현옥 ( Hyun Ok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127-15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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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問은 漢 武帝 때 지방수령들의 추천으로 뽑힌 인재를 임용하려고 대책을 물은 데서 유래했다. 그 후 정치나 학문, 사회 관습 등 전반에 걸친 현안문제를 과거에서 출제하여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인재들에게 해결책을 구하는 하나의 형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책문은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인 時務를 제시하는 핵심이 된다. 물론 출제의 주체는 임금이다. 따라서 책문 속에는 그 출제의 주체인 임금의 사상이 가장 잘 녹아 있다. 따라서 本稿는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에 어느 임금보다도 백성을 사랑하였던 正祖의 愛民思想을 그의 개인 문집인 『弘齋全書』에 수록되어 있는 「策問」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조의 애민사상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如保赤子의 愛民觀이고, 둘째는 與民同樂의 君主觀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정조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였는데 이를 制度의 改革과 經世的 具現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制度의 改革에는 첫째 上言·擊錚의 改善을 들 수 있다. 정조는 백성의 삶을 살피고자 선대의 訴寃制度의 하나인 上言·擊錚 제도를 개선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이 왕에게 전달되는 통로를 열어 놓고자 하였다. 둘째 欽恤典則 頒布이다. 정조는 형벌의 남용과 악형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欽恤典則』을 반포하여 규정에 맞는 刑獄의 집행을 실시하였다. 다음으로, 經世的 측면에서는 첫째 賑恤 政策의 內實化이다. 정조는 진휼 정책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사업으로 다루었으며, 윤음의 말미에 諺解本을 첨부하여 윤음의 내용이 직접 백성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하였다. 둘째 官 主導의 鄕村統制이다. 정조는 향촌사회에 대한 국왕 통제강화의 수단으로 지방사족들의 세력약화와 수령권의 강화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수령의 재량권이 커짐에 따라 지방의 수령직이 치부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암행어사의 활동범위를 대폭 넓히고, 어사를 자주 파견하여 탐오한 수령과 부패한 아전의 횡포를 최소화하였다. 이상에서 정조의 愛民思想을 그의 策問을 통해 살펴보았다. 책문 속에는 이처럼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였던 정조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가 백성을 위해 현실적으로 추진하였던 많은 정책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 속에 시행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책문은 정치의 주체인 임금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최상의 근거자료가 됨을 알 수 있다.

용담선사(龍潭禪師)의 시세계(詩世界)

김미선 ( Mi Seon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155-191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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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潭조冠(1700-1762) 禪師의 존재는 그동안 한국불교사 또는 불교문학사에서 연구가 되어 지지 않았고 그리하여 뚜렷하게 불교사상과 문학사적 위상이 자리매김 되어진 인물이 아니었다. 용담은 출가승이면서도 이미 유가의 법도를 지키고 유가서를 공부한 儒佛不二의 실천과 공부를 두루 갖추어 탕탕한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익혀둔 인물이다. 19세에 출가하여 청허 휴정과 편양 언기의 법맥을 계승하였으며, 영남과 호남 등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영해 낙엄, 설봉 남악, 회암 호암 등의 화상을 만나 공부함으로써 禪의 묘처에 이르게 되어 명성이 빛났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수행의 과정을 禪語로 엮은 시가 『용담집』에 200여 首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 용담의 시세계 고찰에서 먼저 연구방향에서 제시된 문제제기를 통하여 생애와 법맥을 살펴보았고 작품 개관을 통하여 용담시를 선리시·선취시·인사시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에 용담의 수행과정과 작품 내용을 고찰하며 큰 특징으로 返觀을 통한 空思想의 체득을 발견 할 수 있었기에 그의 返觀의 문학관이 드러난 작품을 정리하며 그가 선시사적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에 용담의 문집을 통해 그의 불교 사상사적 특성을 조명하며 返觀의 수행관 및 문학관을 찾을 수 있었다. 용담의 수행 결과 빚어낸 선시가 불교사상과 문학 분야에서 연구하여 그 위상을 정립시킬 필요가 있는 귀중한 자료로 매김하기에 충분하다고 사료되어진다. 본고에서 지면상 다하지 못한 용담의 사상과 선시의 내용을 후고에 남겨둔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축성(築城) 작업에 나타난 민(民)의 개체성 연구

천영미 ( Young Mi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193-223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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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 民은 有德者의 통치로 보호받아야 될 수동적인 존재로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좌전』이나 『논어』에는 民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民은 통치자의 교화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군주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불합리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하며, 통치자의 다스림을 공고하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인 `신뢰`를 제공하는 존재로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수동적 존재로서만 부각되어 왔던 民이 개체적 존재로서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부당한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면모를 밝히고자 하였다. 民의 개체성 양상은 욕구 충족적인 특징을 지녔다. 民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군주를 찾아 `떠남`으로써 개체성을 표출하였다. 民의 개체성은 春秋時代까지 이어져서 사회전반의 현상에서 불합리한 정책에 직면하였을 때, 民은 일탈하는 행동을 통해 개체성을 표출하게 되었다. 춘추시대는 각 제후국들 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축성작업이 자주 진행되었고, 民으로부터의 부역을 부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지배층의 과도한 축성작업은 民의 일탈현상을 초래하였다. 民은 과도한 축성작업을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기도 하였고, 과도한 부역으로 지친 民은 축성작업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民은 고된 부역에 자신들을 징발하는 위정자를 풍자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고, 축성작업 중에 民을 부당하게 대우한 감독관을 죽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보면 축성작업에 동원된 民은 위정자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개체성을 표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西周時代에 태동한 욕구충족적인 民의 개체성이 春秋時代로 이어지면서 부당한 정책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이러한 民의 개체성 표출은 戰國時代에 이르러 여러 사상가들이 `民`을 국가의 근본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보고, 그 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기(史記)』와 사마천(司馬遷)의 평가(評價),사상(思想)에 대한 일고(一攷)

김춘희 ( Choon Hee Kim ) , 김선희 ( Sun Hee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225-25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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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접어들면서 `文化`가 국가 경쟁력의 하나로 주목 받기 시작하였고, `문화콘텐츠`의 附加價値에 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다. 이때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가 축적해온 문화 원형으로서 문화콘텐츠로 변형되기 이전에 가공되지 않은 재료인 인문학 분야의 각종 古典이다. 그 중 司馬遷의 『史記』는 문화원형으로서 동양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인문학의 寶庫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불멸의 역작의 저자 司馬遷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냐하면 司馬遷의 삶 역시 그가 남긴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독특한 한편의 이야기로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가 살았던 독특한 시대적 의미와 『史記』를 집필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司馬遷이 추구하던 사상의 근간을 추적하였는데, 지금까지 사마천은 儒家思想家 혹은 黃老思想家 등으로 인식 되어왔었는데 이유와 근거가 타당한지 살펴보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정신을 통해 그의 진정한 사상의 면모를 찾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사마천은 當時 社會나 制度에는 걸맞지 않는 時代를 뛰어넘는 人間의 普遍性을 自覺하고 追求했던 대단히 早熟하고 成熟한 自由主義者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모멸당한 자존심에 대해 거듭 새로운 자존심을 갖는다. 사마천은 그의 개인적인 비극을 통해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하나의 영웅적인 예를 보여주었고 그 결과 동양 최고의 인문학의 보고인 『史記』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사마천이 추구하던 사상의 근간은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본주의에 근거한 자유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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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지의 氣哲學은 기본적으로 明末·淸初의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의식과 경세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즉 明왕조의 멸망 원인을 空疎한 학문풍토로 인한 사상적 혼란 때문이라고 본 왕부지는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을 강조하는 이론체계를 구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왕부지의 철학사상은 經學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 과정에서 그는 漢代와 宋代의 학문풍토를 비판하고 張載의 氣哲學을 계승하였다. 왕부지는 張載의 一物兩體說을 계승하여 陰陽이라고 하는 두 가지 운동·변화를 강조하며 陰陽二氣를 상호 대립적인 존재가 아닌 一氣로의 통일을 전제로 한 하나의 본체로 보았다. 또한 왕부지는 一物兩體說을 통해 자신의 철학체계의 골간을 이루었던 기일원론적 역학관을 정립하였다. 즉 氣의 두 가지 존재양태인 陰陽이 『주역』에서는 乾·坤卦가 되어 모든 현상의 두 가지 변화를 상징하게 된다는 것이다. 왕부지 기철학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주학의 도덕수양 중심의 학문관 뿐만 아니라, 道家의 虛無說과 佛敎의 寂滅說 등을 부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념적 추상세계로부터 구체적 현상세계로 관심을 전환하여 사대부로서 明왕조의 멸망에 대해 반성하고, 보다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학문을 지향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程朱學的 理學體系의 역사적 한계를 인식하고 張載의 氣哲學을 계승하여 氣一元論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즉 漢代·宋代의 철학사조에서 정통 유학의 명맥은 오직 장재의 一物兩體와 易學思想에 있다고 평가하고, 기일원론을 중심으로 유학적 원리를 확고히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왕부지의 氣哲學은 도덕수양과 理중심의 程朱學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易學思想을 `理的易學에서 氣的易學으로 旋回`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왕부지의 기철학은 이후 道器一貫으로 집약되어 `천하에는 오직 器뿐이다[天下惟器]`라는 명제로 정립되면서 氣一元論的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은 思想史的으로 볼 때, 淸代 氣學과 實學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한 선언이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가신신앙(家神信仰) 연구(硏究)

송재용 ( Jae Yong Song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17권 0호, 2008 pp. 277-310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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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기의 가신신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자료가 매우 빈약한 실정에서 논의도 쉽지 않았다. 유형별로 논의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종합하여 요약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의 가신신앙은 유형별로 지속되거나 변용되었다. 성주신은 함경도지방을 제외하고는 지역마다 큰 변모없이 지속되었고, 터주신·제석신은 지역마다 별로 변용되지 않았으며, 업신은 지역마다 대개 변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조왕신은 일부지역만 전승 변모된 것으로 보여 지며, 문신은 변용된 모습을 보였고, 측신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변모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삼신은 지역마다 변용되어 전승되었으며, 구신은 변형 없이 전승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개화기 이전의 것을 대체적으로 큰 변모없이 전승 지속하였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그 중 일부 유형에서는 변용의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민속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바 근대화와 민족문화말살정책, 그리고 조사방법상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제강점기 가신신앙의 지속과 변용에 대한 유형별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개화기 전후와 해방 이후의 지속과 변용도 연계시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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