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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1권 0호 (2010)

고려(高麗) 다시(茶詩)에 나타난 탈속(脫俗)과 양생(養生)의 미학(美學)

박숙희 ( Sook Hee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7-35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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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는 고조선 때 유입되어 우리 민족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처음에는 신에게 올리는 제물로 사용되었으나, 삼국 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점차 생활에도 확산되어 궁중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의식 때에는 물론이요 일상적으로도 즐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차는 차도구의 필요에 의해 도자기의 발달은 물론이요, 다실의 필요에 따른 건축 양식, 차와 곁들여 먹던 茶食, 차를 마실 때 입던 茶禮服 등 우리 생활의 여러 가지 부문에 걸쳐 다양한 발달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지식층에 속하는 일부 우리 선조들은 漢詩를 짓고 즐기는 생활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차를 소재로 한 것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차를 소재로 한 茶詩는 다른 한시가 갖는 시대 정황이나 지은이의 사상 외에 시대별로 선조들의 차 생활과 차 정신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차를 즐겼던 수많은 유학자, 승려, 道學者들은 나름대로의 차 생활을 즐기면서 茶禮儀式, 茶禪一如 思想, 神仙 思想의 법도와 체계를 세웠는데, 이러한 사상들은 단순히 차 생활이나 차 정신의 바탕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과 철학, 예술, 종교 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이것은 충효 정신, 선비의 지조와 절개, 부녀자의 정절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통 문화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古代로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우리나라 茶詩의 시대적인 발달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사회적, 문학적 배경을 提高해 보고자 한다. 선비들의 높은 차정신의 세계와 기풍, 茶詩를 통한 벗과의 돈독한 교분, 자연과 합일하여 그 속에서 안정과 교감을 이루고 脫俗의 경지에서 자연의 이치를 즐긴 생활, 차의 약리적인 면을 귀중히 여겨 생활의 일부로 음용했던 지혜의 면모를 살펴봄으로써 茶詩의 특징과 내면의 멋을 되새겨 보는 계기로 삼아, 이들 속에서 茶詩가 갖는 문학적 가치를 논해봄으로써 우리 차 문화의 정신을 나름대로 정립해 보고자 한다.

조선 국왕의 한시에 나타난 천기(天氣)의 인식과 표현 양상

김남기 ( Nam Ki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37-63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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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국왕들의 한시 중에서 天氣와 관련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천기의 인식과 표현 양상을 고찰하였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2장에서는 『列聖御製』의 편찬 과정 및 국왕의 한시 중에서 天氣와 관련된 작품을 개관한 뒤 이들 시편의 창작 동인과 작품의 범주를 설정하였다. 『열성어제』에 실린 천기 관련 국왕의 시편은 성종·숙종·영조·정조·익종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천기 현상 중에서 비와 눈, 해와 달, 가뭄과 홍수 등을 제재로 하여 지은 시편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농업을 중시하던 사회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喜雨와 瑞雪, 가뭄과 홍수를 제재로 한 시편이 많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조선 국왕의 천기 관련 한시는 여러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천기와 관련된 국왕의 한시를 天氣의 조화와 驗豊에 대한 기원, 천기의 不調와 民苦에 대한 자성, 天道의 섭리와 物理에 대한 탐색, 천기의 변화와 物象에 대한 玩賞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조선 국왕의 한시에 나타난 천기 인식과 표현 양상을 살펴보았다. 위의 논의를 통하여 국왕의 천기에 대한 인식과 표현은 기본적으로 治者로서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의식이 강하게 개입하고 있고, 일부 작품은 개인으로서의 抒情을 토로한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국왕의 천기 관련 한시에는 天人感應 사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동시에 천기를 통하여 인간 사회의 질서 또는 도덕과 관련지으려는 의식이 개입되어 있음을 살폈다.

조광조(趙光祖)의 현실인식(現實認識)과 정치개혁(政治改革)

서인희 ( In Hee Seo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65-9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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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정암이 4년간의 정치행위에서 보여준 개혁운동이 성리학적 정치이념에 의거한 이상정치의 실현 과정이었음을 전제로 당대 정치 현실의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정암이 지향했던 道學에 근거한 至治의 이념은 廢朝時의 정치이념과 정치주체의 不在라는 문제인식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전대의 虐政으로 나타난 국가의 기강과 법도의 붕괴, 민생의 피폐가 부른 사회적 여건의 변화는 개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게 하였다. 이에 정암은 성리학적 정치이념이 一世紀 동안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치이념으로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대부분은 理想的 정치의 失踪期로 진단한다. 그리하여 道學의 정립을 통한 至治의 實現이라는 개혁적 정치이념의 정립과 聖君賢相의 새로운 정치체제의 확립을 통한 이상정치의 목표를 수립한다. 出治의 根源者인 군주와 德治의 중심기능의 修行者인 大臣,즉 재상의 道學에 근거한 至治가 이루어질 때 이상사회의 건설은 당연한 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암은 賢人君子의 정치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이를 위해 군주의 用賢政治를 역설하였다. 이렇듯 이념과 체제의 정립을 기반으로 정암이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한 것은 크게 言路의 開放과 利源의 根絶이었다. 언로의 개방 여부는 民本理念을 토대로 民衆의 뜻이 실현되는 정치이상의 실현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公論의 보장이 필요하며 또한 언로가 개방되어야 한다. 정암이 朴祥과 金淨의 愼氏復位上疏를 계기로 언로의 開放과 언관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것은 또한 民意의 上達者로 自任하는 士類의 정치참여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였다. 정암에게 있어 民意의 上達여부는 國家存亡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이를 위한 제도적 측면에서의 언로의 개방과 사류의 정치참여의 기반 강화는 前代未聞의 개혁안이었던 것이다. 또한 전통 유가에서 군주나 대신의 私利 추구는 유가의 民本政治 실현에 가장 근원적인 장애물로 인식된다. 公道를 실행해야 하는 爲政者에게 私心이 아닌 `與民同樂의 公心`의 요구는 기본전제가 된다. 그러므로 정암은 義利와 公私의 분별을 통하여 정치 전반에 누적된 부조리를 전반적으로 개혁하여 民生을 돌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士類부터 君主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게 公人意識을 갖기를 요구한다. 反正時 濫獲된 靖國功臣의 改正 문제는 利源의 塞絶을 통해 公道를 실행하고자 하는 현실적 개혁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己卯士禍가 일어났으며 정암은 죽임을 당하고 정치이념은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정암이 정립한 士類에서부터 君主에 이르는 爲政者의 公人意識의 고취와 이를 통한 言路開放이라는 인간적, 제도적 장치는 조선조 中·後期의 政治史와 士林政治文化속에서 民本政治理念의 시행이라는 역사적 전통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정암은 조선 中·後期의 정치사상가들이 지향하는 바가 되었으며 유교정치사상사에 泰山北斗와 같은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옥봉(玉峯)의 시세계(詩世界)

천부성 ( Boo Sung Chu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95-12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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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16世紀 韓國 漢詩史上 宋詩風이 주류를 형성하던 詩風이 唐詩風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그 중심에 있던 三唐詩人 중 湖南 제일의 시인으로 꼽히며 五言絶句의 風格이 千年 속에 가장 위대하다고 定評이 나 있는 玉峯 白光勳의 詩世界를 다루고자 하였다. 이에 서론에서는 三唐詩人의 정의와 玉峯 白光勳의 詩에 대한 기존 연구자들의 연구방향과 내용을 제시하고 본 논고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는 玉峯의 시세계에서는 作品의 槪觀 및 內容別 作品을 통하여 玉峯의 시세계를 分析하였다. 作品의 內容에서는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나,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孤獨의 情恨, 그리고 역사적 현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연상하면서 느끼는 감회를 읊은 無常의 懷古, 산수를 벗하며 자연에 심취 또는 계절의 정취를 읊은 自然의 景物, 마지막으로 世俗을 떠나 山寺에서 짓거나 여러 승려들과 주고받으며 느낀 것을 표현한 交遊의 脫俗으로 분류하여 作品을 분석해 보았다. 玉峯詩의 特徵에서는 修辭的 측면과 內容的 측면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修辭的 特徵에서는 經史 및 故人古事·名人名句에서 詩意와 詩語를 통하여 표현하는 用事性, 자연의 뛰어난 景物을 통해 얻은 시인의 정감을 눈앞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듯 묘사하는 繪·性, 觀念化한 사물을 詩를 통하여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삶을 나타내는 象徵性으로 분류해 고찰하였다. 또한 內容的 特徵에서는 淸新한 內容과 古淡한 內容으로 분류해 고찰하였다. 이상과 같이 玉峯의 詩는 기존의 詩가 까다로운 修辭와 난해한 典故를 사용하며, 文學을 과시 혹은 心性修養의 도구로 생각하던 主理的 성향에서 탈피하여 聲律의 생동감 및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언어로 표현하는 主情的 성향의 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玉峯詩가 관념적이지 않고 개인의 情緖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生活的 情感을 詩化하여 文學의 獨自性을 확립한 점과, 唐詩의 詩法을 수용하면서도 우리의 풍토에 맞는 개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던 自主性은 특히 玉峯詩를 韓國 漢詩史的 측면에서 조명해 볼 때, 그 位相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허균(許筠)이 지향하는 삶 -허균(許筠) 「전(傳)」을 중심으로-

이규운 ( Kyu Un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123-153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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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1569년, 선조 3년-1618년, 광해군 10년)은 시대를 초월한 삶과 문학적기행을 보여준 작가이다. 본 논문은 허균이 지향하는 삶을 許筠「傳」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허균은 현실 세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을 갈구하고 있었다. 「嚴處士傳」은 「學論」에서 비판한 僞學者들에게 경계가 될 만한 참된 儒者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許筠은 엄처사는 뚜렷한 출처관과 역사 인식을 가지고 孝와 敬을 실천한 선비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蓀谷山人傳」은 許筠에게 시를 가르친 스승 李達(1539-1618(?))에 대한 인물전이다. 허균은 이를 통하여 뛰어난 시적 재능과 노력, 시인으로서의 숭고미, 현세를 초탈한 시인의 삶을 입전하고자 했음 알 수 있다. 또한 「南宮先生傳」에서는 삶은 끝없는 좌절과 고뇌의 연속이라는 진리를 보여주고자 했다. 주인공 남궁두는 좌절과 고뇌 속에서 현실 세계를 떠나 신선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찾지만, 終局에는 인간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는 인생이 가장 즐거운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허균은 잦은 浮沈에 괴로워했던 자신의 삶을 남궁두라는 주인공을 통해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책문(策問)」에 나타난 정조(正祖)의 학문관(學問觀)

김현옥 ( Hyun Ok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155-176 ( 총 22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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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를 통틀어 학문적 군주를 손꼽으라 하면 거의 예외 없이 世宗과 正祖를 떠올릴 것이다. 그 만큼 학문적 군주로 이름이 높았던 정조는 君師를 자처하였고, 抄啓文臣制度를 통해 젊은 관료들을 교육할 만큼 학문적 자신감 또한 있었던 군주였다. 따라서 정조의 學問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다각도로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그의 학문관을 연구함에 있어 策問이라는 하나의 형식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였다. 그의 學問觀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宋學에 근거한 漢學受容 樣相이다. 정조는 당시의 학문을 `衛正闢邪`라는 관점에서 正學과 邪學(俗學)으로 나누어 보호하고 배척하였다. 그가 말하는 정학은 朱子學을 근간으로 하는 經學을 말하는 것이고, 속학은 西學과 明末淸初의 고증학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조는 학자군주답게 西學과 考證學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그 나름의 비평을 가하였으며, 漢學의 성과에 대해서는 상당히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둘째는 經學의 內實化에 보이는 實學 追究의 精神이다. 정조는 당시의 학문 풍토가 心性論에만 매달려 經學에 어둡다고 비판하면서, 경학을 근거로 한 실질적 학문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경학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물에 대한 식견도 체득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경전의 가르침을 터득하면 城이나 수레의 제도까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당시 관심 밖의 학문이었던 지리와 천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처럼 정조는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이상에서 正祖의 學問觀을 그의 策問을 통해 살펴보았다. 책문 속에는 이처럼 정조가 지향하고 조정에 참여하는 관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던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策問은 그의 학문적 성향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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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해 조종진이 北評事의 신분으로 관북 지역을 기행하고 남긴 『東海北遊錄』을 통해 관북 기행과 『동해북유록』 저술의 의의 및 관북 기행의 시세계를 고찰하였다. 동해는 관북 지역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자신의 가문 이력을 `北遊의 世家`라 지칭하고, 북평사라는 직책을 대대로 물려받는 가업으로서의 `疇官`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동해는 북평사에 임명된 것을 관직은 낮지만 `淸宦`으로 인식하여 명예롭게 여겼고, 遠遊를 통한 豪放한 기상의 배양과 표출을 기대하면서 관북 지역을 순회하는 동안 북평사의 임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피력하였다. 북평사로서의 동해는 兵馬節度使를 보좌하는 일반적인 임무 외에도 開市 감독 및 敎養官을 겸하여 상업의 유통을 살피고, 지역 유생의 교육과 文武科의 試材 및 과거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관북 지역의 전체적인 실상을 체험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체험은 동해로 하여금 단순한 개인적인 경험을 떠나서 직접 체험한 관북 지역의 실상을 기록으로 남기게 하였고, 그 결과 여러 시문들을 정리하여 『동해북유록』을 저술하였다. 한편, 동해는 공자의 `述而不作`과 사마천의 `實錄`이라는 저술태도를 전범으로 삼아, 관북 지역의 실상을 文으로 형상화하여 천지자연의 道를 조화시킨다는 載道論的 문학관을 바탕으로 『동해북유록』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동해는 자신의 『동해북유록』에 대해 `臥遊의 자료`로 삼는다는 개인적인 효용성과 관북 지역에 대한 소개서나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효용성을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동해는 당대에 있어 관북 지역을 이역시하고 그 지역민을 타자로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을 전환하여 보다 긍정적으로 관북 지역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는데, 이러한 점이 『동해북유록』이 지닌 의의라 할 것이다. 동해의 관북 기행시는 첫째로 가업의 계승과 왕실 사적의 찬양, 둘째 관북 지역인과의 교유 및 文敎 진흥, 셋째 관북의 생활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넷째 遠遊를 통한 豪放한 기상의 배양과 표출 등의 면에서 그 시세계의 내용과 문학적 특징을 지닌다.

「운영전(雲英傳)」과 「동선기(洞仙記)」 속 악인(惡人) 탄생의 의미

김정숙 ( Jeong Sur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221-242 ( 총 22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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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고전소설에 대해 선악의 상투적 대립을 지적하지만, 고전소설에서 선악의 대립이 일반화된 것은 주로 18세기 이후 한글 통속소설에 와서의 일이다. 傳奇小說에서 갈등은 단순히 선악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금오신화 나 몽유록에서 현실이라는 추상적 惡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17세기 전기소설은 장편화, 통속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이 증가하고 공간도 확대되며 인물간의 갈등도 구체화되어 이 시기 전기소설에 악인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발점에 「운영전」과 「동선기」가 자리한다. 「운영전」에서 안평대군으로 상징되는 질서를 天理라고 한다면 이에 대항하는 운영의 욕망은 성리학적 이념에 위배된다. 바로 이 지점, 개인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 안의 대립과 주저, 개인적 삶을 공동체적 삶보다 선한 것으로 인식하려는 욕망이 싹텄으나 결국 공동체의 가치를 넘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운영전」이다. 그런데 안평대군조차도 정치적으로 소외된 인물이기에 그의 소설적 기능은 악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허물을 특(特)이라는 악인에게 돌리고 하늘이 벌을 내려 악인을 벌하는 완결된 구성을 갖추었고, 운영과 김진사가 천상에서 해후한다는 보상을 설정하기도 하였지만 「운영전」전체의 비감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전」에서 선과 악의 대립은 있으나 그 경계가 모호하며 악인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통속소설적 악인의 모습과는 다르다. 「동선기」에는 안기와 호손달희라는 두 명의 악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동선의 열녀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존재로 끝날 뿐 더 이상의 소설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운영전」과 달리 동선의 사랑은 공동체의 가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속 두 악인은 동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존재이다. 다만 한문소설인 「동선기」에서는 한글통속소설과 달리 권선징악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는 한글본 「동선기」에서 동선과 유씨 부인은 갖은 고생 끝에 서문적을 구한 뒤 충렬부인과 숙부인에 가자(加資)되고 서문적은 항주 자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결말과 구분된다. 즉 신구서림판 「동선기」는 한문본 「동선기」에서 훨씬 더 통속소설로 진행한 것이다. 「운영전」과 「동선기」두 작품에서 악인은 고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대안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을 통해 고전소설이 통속화되는 과정에서 한문소설 속에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한 갈등이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악인이 완벽한 존재감을 갖지 못하거나 그 조차도 소외된 인물로 묘사되면서 선악의 대립이 모호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작품에서 조선후기 본격적 통속소설로의 이행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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賈誼는 한초 혼돈기에 儒敎政治理念과 改制論을 제시한 개혁지향적 사상가였다. 荀子의 학통을 계승한 賈誼는 春秋를 修學하고 春秋左氏傳을 訓고한 바 있는 유학자였다. 가의는 漢初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儒家와 法家를 겸용하는 절충주의적 경향을 띤 면도 있지만, 그의 사상적 기저에 내재하는 법가적 성격은 『周禮』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지 않다. 賈誼의 政論의 요체는 禮樂과 仁義로서 모두 유가의 가르침을 宗旨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가의가 형벌에 의한 법치보다는 예의에 바탕을 둔 덕치를 강조한 데에서 그가 지향한 理想社會는 바로 儒敎的 禮敎社會였음을 알 수 있다. 賈誼는 君臣 관계에 있어 四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孔子와 마찬가지로 管仲을 容認하고 있다. 관중은 孟子에 의해서는 覇道 君主를 도운 인물로 비판되고 있지만, 가의에 의해서는 왕을 도와 사직을 보전한 공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儒敎的 賢能政治論과 重建諸侯論을 주창한 가의는, 제도나 관료의 근거와 목적은 국가와 백성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賈誼는 독창적인 사상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시한 것은 아니며, 당대까지 온축되어 온 儒敎의 정치이념을 再照明한 思想家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그 理念의 뿌리는 바로 『周禮』였다. 賈誼는 한초의 사회상황이 혼란기를 벗어나 안정적 기운이 형성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하여 文帝에게 儒敎的 改制政策을 진언하기에 이른다. 荀子의 학통을 전수받은 賈誼의 현실적 정치의식의식은 급진적인 개혁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太子敎育의 중요성을 역설한 가의는, 군주로 하여금 禮敎 中心의 敎化政策과 함께 儒敎의 禮敎理念에 입각하여 鑑古戒今의 歷史意識을 바탕으로 한 知時識勢의 구체적인 실현을 개진하였는데, 이것은 創業期에서 守成期로 진입하기 위한 하나의 理念的 정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先秦儒學에 있어서 孔子와 孟子, 그리고 荀子로 이어지는 儒敎政治理念의 변화양상은 時代的 狀況에 적합하게 그 이론이 공고화되고 구체화된 것이지만, 그 본질은 君臣의 역할을 분담하고 宰相 중심의 정치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周禮』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특히 荀子의 정치사상 가운데 `禮敎思想`과 `改制論`은 그의 學統에 속한 賈誼의 사상에 상당 부분 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周禮-孔子-孟子-荀子-賈誼-董仲舒`로 이어지는 儒敎理念의 轉變過程을 구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漢 文帝와 景帝期까지는 道家·法家·儒家가 공존했지만, 당시의 사회, 정치상황에 대한 賈誼의 분석과 정론은 정확했고 또 時宜에 부합하였으므로 儒敎의 復興은 사실상 賈誼의 思想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주희의 『대학』 해석에 관한 연구

고재석 ( Jae Sur Go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1권 0호, 2010 pp. 277-30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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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장구』는 주희가 당대는 물론 후대 학자들의 서슴없는 비판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신감과 신념을 지니고 온 힘을 기울여 저술한 저작이다. 그는 明明德·新民·止於至善이 『대학』의 핵심강령을 통론한 것이고, 格物·致知·誠意·正心·脩身·齊家·治國·平天下가 구체적 공부 방법으로 보았다. 또 여덟 가지 조목 가운데 격물치지는 명덕을 밝히는 공부의 핵심이고, 성의는 몸가짐을 참되게 하는 실천공부의 근본이며, 수신 이상은 명명덕의 공부이고, 제가 이하는 신민의 일로 여겼다. 사실, 『대학장구』는 그의 사유체계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 핵심 경전이다. 그는 마음 본체인 明德에 대한 해석을 통해 心과 性의 不離不雜의 관계를 설명하였고, 修身 공부에 해당하는 明明德의 관점을 통해 知와 行의 합일구조를 조명하였으며, 명덕을 외부로 확대해 가는 과정인 新民의 해석을 통해 나와 주변이 합일 될 수 구조에 대해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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