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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3권 0호 (2011)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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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족산본 『朝鮮王朝實錄』의 漢字 異體字形연구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진행한 기초 작업이다. 『實錄』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찬된 歷史書인 만큼 時代나 편찬시기에 따라 여러 자형이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정족산본 『태조실록』 권1, 『태종실록』 권1을 대상으로 검토를 진행하였다. 본고에 열거한 유형은 『韓國文集叢刊』에 나타나지 않은 자형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표제자와 동일한 원리의 자형이 있을 경우 예시하였다. 본고에서 검토한 1. 기존 筆劃이 추가되거나 변형된 유형에서 ``臣`` ``幹`` ``□`` 3種, 2. 글자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중복되는 필획이나 일부 필획을 생략한 유형에서 ``□`` ``□`` ``□`` ``兜`` 4 種, 3. 유사한 構件으로 변하거나 새로운 형태로 변한 유형에서 ``□`` ``□`` ``留`` ``助`` ``□`` ``擒`` ``□`` 7種의 자형은 中國의 字書와 日本의 『難字異體字典』, 韓國의 『高麗大藏經異體字典』에 나타나지 않았다. 『太祖實錄』에서는 ``□`` ``□`` ``□`` ``□`` ``著`` ``□`` ``草`` ``□`` ``黃`` 등의 윗부분에서 ``□-□``의 변화현상이 자주 나타나며, 『太宗實錄』에서는 ``價`` ``貢`` ``須`` ``實`` ``殃`` ``□`` ``資`` ``積`` ``頁`` 등의 아랫부분에서 ``貝-貝``의 형태의 자형이 자주 나타났다. 中國字書와 비교 검토한 결과 주로 碑文과 隸書에 관련한 책에 『實錄』과동일한 자형이 나타났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15件의 字形은 中國과 日本의 字書에 나타나지 않았다. 漢字文化圈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지 않았지만 『實錄』의 일부를 검토한 결과 他國의 字書와 『文叢』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형과『실록』만의 독특한 자형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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企齋 申光漢(1484-1555)은 1507년 宦路에 들어서서 1554년 致仕할 때까지 30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文衡을 장악하여 당대 문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이다. 본고는 신광한의 삶의 여정을 따라 그의 시세계를 분석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의식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신광한이 明使를 접대하면서 수창한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신광한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지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敍用되자마자 연이어 明使의 접대를 담당했던 이력은 신광한의 삶의 여정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며, 그의 시문에 대한 동시대인의 인정을 반증하는 것이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에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기재집』에 소재한 시 작품들 중에서 신광한의 외교술과 사장 능력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권11과 권12를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황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신광한의 작품들인데 접반 업무의 특성 상 明使의 先唱에 唱和하는 과정에서 지어진 시들로 대부분 次韻詩의 형식을 띠고 있다. 본고는 明使 장승헌의 원운시와 신광한의 차운시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황화집』 소재 작품들을 텍스트로 하여 明使 장승헌과의 교유 양상을 밝히고, 그 唱和詩에 속에 투영된 신광한의 의식세계를 고구하였다. 신광한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세 차례의 사행 중에서 1545년(인종 1)에 행해진 사행에 논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황화집』 수록 작품들은 비록 특수 문학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신광한의 경우 자신의 작품 안에서 국가의 체모를 지키고자 하는 관료의식과 시인의 자존심을 온전히 지키려는 시적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기에 사환기의 그의 내면세계를 엿보는데 유의미한 연구 자료가 된다. 또한 명나라 장승헌의 작품과 조선의 신광한의 작품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신광한의 작시 배경을 좀 더 세밀하게 검증하고 양국 문사의 시각을 함께 드러낸 것 또한 본 연구가 가지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사임당 「초충도」 의 미의식 연구

유정은 ( Yu Jeong Eu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69-96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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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의 목적은 신사임당 「초충도」 의 미의식 연구이다. 아름다움이라 하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우리들의 조화된 느낌이며, 아름다움은 우리의 생활에서 떠난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으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귀함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온 감정이 모두 예술의 핵심이며, 주변에 있는 자연과 사물들이 각각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500여 년 전 성리학 사상이 팽배해 있던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편 詩·書·畵에능한 예술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특히 畵에서 사임당의 仁과 德으로 완성된 예술작품이 바로 「초충도」 이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는 생활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은 대상의 소재에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불어 넣은 생명력이 담긴 그림이다. 본 논고의 전개는 시대적 배경과 「초충도」 를 설명하고, 「초충도」 에 나타난 미의식으로 자연미, 소박미, 여백미, 유가적 미의식, 미의식의 함양을 다루었다. 신사임당의 그림들은 소박하고 꾸밈없는 한국적인 미를 나타내주고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에는 너무 작아 잘 볼 수도 없는 미물과 보잘 것 없고 흉해 결코 미적 대상물이 아닌 소재가 등장한다. 이는 미물에까지 남다른 애정을 지닌 사임당만이 가질 수 있는 ``仁의 마음``인 것이다. 이 ``仁의 마음``은 만물을 감싸고 배려하는 사단지심의 본체이며 사랑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美의 근원은 ``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는 이렇게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박미, 그리고 여성다운 섬세함이 살아있는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특별했던 것이다. 또한 사임당은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을 그려 한국적 특성을 지닌 독립된 회화양식으로 초충도를 발전시켜서 중국의 영향을 벗어났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렇게 소박하고 보잘 것 없는 소재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요란하지 않게 화폭에 그려 내어 고귀한 예술로 승화시켰기에 그녀의 작품이 한국의 대표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석(李景奭)의 「풍악록(楓嶽錄)」삽입시의 두 가지 양상

채지수 ( Jee Soo Cha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97-127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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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軒 李景奭은 조선 선조 28년(1595)에서 현종 12년(1671)까지 살았던 문인으로, 국가가 두 차례의 전란을 겪는 과정에 관리로서 ``삼전도비문``의 찬술과 중국 백마산성 유배 등의 고난을 경험해야 했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에의 억류에서 풀려난 1651년 9월에 약 10일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고 「楓嶽錄」을 남겼다. 「풍악록」 은 산문과 52수의 시가 함께 있는 작품으로, 유람 여정에 따른 산문 서술 중간 중간에 시를 삽입한 시와 산문의 복합적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본고는 이경석의 「풍악록」 을 중심으로 하여 그 성격을 검토하고, 본격적으로 작자가 금강산 기행문 안에서 한시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으며, 이것이 산문 서술과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어떤 효과를 지니게 되는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풍악록」 은 이경석의 문집인 『백헌집』 권10의 ``詩稿``에 실려 있는데, 기존연구에서는 이를 금강산 유람시가 중심이 되고, 시마다 산문의 시서를 부기한 형태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 「풍악록」의 산문은 독립적인 ``유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람의 여정과 견문을 유기적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내용을 이끌어간다는 측면에서 이를 시서로 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산문이 주가 되는 가운데 중간 중간 시를 삽입한 ``시삽입형``의 ``산주운종``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풍악록」 의 산문 서술은 비교적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어 다른 유산기들이 보여주는 서술방식과 공유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산문 서술 중반에 서술을 잠시 멈추고 한시를 통해 금강산 유람 도중 경험했던 특정 상황에 대한 기쁨과 아쉬움·교유의 정 등을 표출하였다. 이는 산문을 통해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작자의 감정을 한시라는 장치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한편, 이경석은 「풍악록」 에서 ``상상력을 통한 낭만적 묘사``의 성격을 지닌 시를 다수 삽입하여, 금강산의 경물과 그 속에서 느낀 자신의 흥취를 환상적인 시구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풍악록」 의 산문 서술과 매우 대조적이다. 즉, 「풍악록」 에서는 산문과 삽입시가 각각 ``객관적 정보``·``환상적 분위기와 흥취``의 제공이라는 구별된 기능을 맡은 채 상호보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풍악록」 은 시와 산문을 한 작품 안에 함께 수록함으로써, 각각의 장르가 지니는 저마다의 특성을 상보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금강산 기행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농암(農巖)의 애사(哀辭)에 나타난 문장기법 연구

오석환 ( Sok Hawn Oh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129-152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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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사는 눈물을 짓지 않고 애도하는 글이며 어려서 일찍 죽은 사람을 위해서 짓는 글이니, 혹 재주가 있는데 쓰이지 못함을 애상히 여기고, 혹 덕이 있는데 장수하지 못함을 애통히 여긴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농암의 대표작으로 제시한 작품은 그의 제자와 재종형제에 관한 글인 만큼, 농암이 심혈을 기울였으리란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문장기법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슬픔에 젖어들게 하고 있다. 먼저 감정과 논리를 연결하여 情으로부터 논리를 세워나가거나[由情立理]논리에 정을 깃들이는[寄情于理] 방법을 사용하였고, 논증의 방법으로 고사를 빌려 지금을 증명하거나[借古證今] 허구를 가지고 사실을 증명하는[以虛證實]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정신적인 품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겉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내면의 모습까지 담아내는 기법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슬픔이 몰려오게끔 하고 있다. 산문의 일반적인 기능은 실용에 있다. 특히 애사는 죽은 사람의 영전에 고하는 글이다. 따라서 그 주안점은 당연히 슬픔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문장가의 아름답고 화려한 글 솜씨가 있다 하더라도, 내용에 슬픔이 결여돼 있거나 죽은 자와 산 자로 하여금 절실한 슬픔을 느끼게 할 수 없다면, 이는 죽은 글이다. 그렇다고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슬픔을 표현한다면 이는 글이 천박해질 뿐이다. 농암의 애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철저히 슬픔에 그 주안점을 두었고, 다양한 문장기법을 통하여 슬픔에 대한 노골적이거나 사실적인 표현이 없으면서도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어 함께 흐느끼며 슬픔을 주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심익운(沈翼雲)시의 구현양상 분석

심의식 ( Eui Shick Sh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153-175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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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문인 芝山 沈翼雲(1734-)의 한시의 구현 양상을 살핀 글이다. 심익운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조좌랑에 임명될 만큼 재능이 뛰어났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先系문제에 대한 잘못된 처신으로 인륜을 어지럽혔다는 심한 질책과 함께 관직을 파직당하고 형의 죄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일생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집으로는 유배 이전인 34세 때 詩·文만을 모아 엮은 2권 2책의 『百日集』이남아있다. 현재 『百日詩集』에 남겨져 있는 詩작품은 300여 편에 불과하지만 작가적 성취와 위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身廢流離의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되어 이로 말미암아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내적인 고통과 번민을 주변의 다양한 대상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내면세계를 진정 어리게 표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추구 할 수 있었다. 또한 한시의 작법의 이른바 규범, 법의 준수, 聲病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됨을 자각하고 주변의 소재를 이용해서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우의적 수법을 통하여 비판하였다. 沈翼雲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추구했으며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맑고 흠뻑 젖어 넘치며 문장이 줄줄 풀리는 유창한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한 그는 ``문학은 진리를 담아야 한다.``는 문학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범한 삶 속에서 훌륭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상해박초간 『주역』의 망(亡)(무(无))망(忘)(망(妄))괘(卦)고찰

원용준 ( Yong Joon Wo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177-207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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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4년 홍콩의 문물시장에서 발견된 上海博楚簡『周易』의 亡(无)忘(妄)卦를 고찰하여 선진시기 『주역』의 모습을 복원하고, 당시의 사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규명한 것이다. 상해박초간 『주역』 亡(无)忘(妄)卦는 제20호간과 제21호간 2매의 죽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제20호간은 부러져서 13.7cm 정도가 없어졌는데 이를 복원하면 "□, [物又□逵. 六晶, 亡忘之□, 或繫之牛, 行]"의 16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괘의 卦名 ``无妄``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는데, 馬王堆帛書『易傳』 「昭力」, 통행본 「序卦傳」, 『周易正義』 및 기타문헌자료에 의하면 선진시기 『주역』의 ``无妄``의 의미는 ``거짓이 없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상해박초간 『주역』 亡(无)忘(妄)卦의 六二爻辭에 "不耕而穫"이라는 문장이 보인다. 이 부분은 통행본 『주역』은 "不耕穫"으로 되어 있지만, 馬王堆帛書『易傳』 昭力, 馬王堆帛書『易傳』 易之義, 통행본 『禮記』 坊記등의 인용문을 통해 선기시기 『주역』에는 "不耕而穫"으로 쓰여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농경사회에서 생겨나 추상화, 일반화가 진행되어 전국시기-전한초기 사회에 널리 사용되던 전쟁 관련 속담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주역』 효사에는 고대 사회의 속담에서 유래한 것이 있다는 선행 연구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된다. 또 그 내용이 불노소득을 긍정하고 있기 때문에 漢代유가들은 불노소득을 하면 흉하다는 교훈적 의미로 경전 구문을 바꾸려는 시도도 하였다. 이것은 유교사상과 아무 관련이 없던 괘효사가 『주역』이 유교경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유교사상에 의해 해석되었으며, 때로는 이를 수정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징(論語徵)』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荻生조徠]의 도(道)인식

함현찬 ( Hyun Chan Ha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209-240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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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본 애도 시대 고문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에 나타나 있는 道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논어징』은 주희의 해석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주희의 도에 대한 인식과 소라이의 도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 소라이의 도에 대한 특징을 드러내었다. 소라이는 『논어』를 ``先王의 道를 傳한 孔子의 말 가운데 가르침이 될 만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논어』를 해석할 때 기본적으로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을 말한 것으로 해석하지 말고 天下를 다스리는 일을 말한 것으로 해석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는 주희가 『논어』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에 대해 사물의 당연한 이치 내지는 추상적인 우주의 원리, 혹은 인간의 도덕적 법칙이나 우주 만물의 본질로 파악하는 인식 태도와 배움의 방법을 비판한다. 소라이는 도를 사물의 당연한 이치로 파악하는 것은 우선 선왕의 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고문사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어둡기 때문에 생겨난 잘못이며, 또한 그러한 인식 태도와 학문방법은 불교와 노장으로부터 온 것이지 선왕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였다. 소라이가 말하는 ``도``는 공자가 배운 ``선왕의 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예악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제도적 장치 전반을 지칭한다. 소라이는 유학이 수양보다는 타인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제도의 학문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수양론 보다는 정치론에 비중이 크다. 그는 유학의 목적은 성인군자가 되는 도덕수양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치기술이나 문예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주자학파나 고의학파는 도덕수양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으나 소라이는 학문이란 사회의 복지증진을 위한 도구로 보았다. 그런데 소라이의 이러한 『논어』 해석은 너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소라이는 주자와 성리학을 배척하는데 오로지 외면의 사물만을 위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道는 반드시 禮樂으로 해석하고, 仁은 安民으로 해석하며, 禮는 儀制로 해석하는데, 각 개념이 갖는 다의성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주자학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 『논어』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고대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활용은 그가 동아시아의 차원에서도 보통의 학자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論語徵』은 中國 淸나라 시대의 고증학자인 유보남(劉寶楠, 1791-1855)의 저서 『論語正義』에 인용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의 성리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역시 그의 저서를 입수해 인용하기도 하였다.

『상한창화훈지집(桑韓唱和塤지集)』에 관한 연구 -구성 및 내용 검토를 중심으로-

김진경 ( Jin Kyung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241-263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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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桑韓唱和塤지集』은 1719년(己亥)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일행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주고받은 筆談과 시작품을 일본인 瀨尾維賢이 모아 그 이듬해에 京都에서 간행한 필담창화집이다. 기해년 사행과 관련한 현전하는 자료 가운데 가장 방대한 양으로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구체적인 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관한 연구는 매우 영성한 상태이다. 이에 본 연구는 『桑韓唱和塤지集』의 간행 경위 및 편찬 원칙을 밝히고 구성과 내용을 검토하여, 그것이 통신사 사행 관련 자료로서 18세기 韓日 문화교류의 다양한 양상을 구명하는데 지니는 가치를 소개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桑韓唱和塤지集』의 구성은 통신사 일행의 여정에 따라 필담을 나누었던 장소별로 이루어져 있다.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필담과 唱酬한 시들은 日本 本州로 들어갈 때와 사행의 임무를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올 때의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한 데에 묶어 편집하였다. 내용 중에는 京都보다 지방의 지식인들과 나눈 필담과 창화시가 많다. 필담의 내용을 통해 기해년 이전에 사행을 다녀간 조선인들의 근황, 조선의 주자학과 주자학을 신봉하는 유학자들, 조선 문단의 창작 경향, 조선에서 유통되고 있는 서적들, 서법, 조선의 문물, 조선의 예법, 조선의 의학 관련 지식 등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관심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고, 그 관심의 정도가 매우 진지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통신사들에 의해 대부분 일기 형식으로 쓰인 사행 기록과 비교하여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실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桑韓唱和塤지集』의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시(漢詩) 감상에 있어 부사어(副詞語)의 중요성 -"유(唯)", "지(只)", "독(獨)"의 경우-

이의강 ( Eui Gang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3권 0호, 2011 pp. 265-286 ( 총 22 pages)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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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작품의 문예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한시 작품에 농축되어 있는 시인의 감정을 여실하게 느껴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야 작품의 미적 구조를 논할 수 있다. 한시 작품을 감상할 때 시인의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열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작품에 구사되어 있는 부사어(副詞語)의 어감(語感)을 읽어내는 일이다. 작품 안에서 부사어가 발휘하는 작용을 정확히 이해하면 작품에 스며있는 시인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 연구의 첫걸음으로 ``唯``, ``只``, ``獨`` 의 세 부사어가 작품 안에서 발휘하는 작용에 대해 분석하였다. 한시를 감상할 때 가장 자주 출현하는 부사어들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찰해 본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주어 또는 서술어 앞에 놓여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자체의 단일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었다. 한시 작품을 감상할 때 이들 부사어의 작용에 주의하여 찬찬히 음미하면, 작품의 창작 시기를 추정하는 내적 증거를 발견할 수도 있고, 풍부한 여운과 함축을 느끼면서 시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도 있었다. 반면에 이를 대수롭게 보아 넘길 경우 작품 이해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도 있음을 실제 작품 속에서 확인하였다. 한시를 감상할 때 부사어의 역할이 이와 같이 지대하다면, 한시를 번역할 때 부사어를 함부로 생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崔致遠)의 대표작 가을밤 빗소리에[秋夜雨中] 의 제1구인 "秋風唯苦吟"의 번역문을 살펴보면, 부사어 ``唯``를 애초부터 생략해버리거나 일개 토씨[助詞]로 가볍게 처리해 버리고 있었다. 한시를 번역문으로 읽을 경우 원문으로 읽는 것처럼 작자의 감정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서 유래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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