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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6권 0호 (2013)

눌재박상부문학(訥齋朴祥賦文學)연구 -주제 형상화 방식을 중심으로-

김진경 ( Jin Kyung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7-37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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訥齋朴祥(1474-1530)은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로 인해 후인들에게 호남시단의 祖宗으로 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訥齋가 남긴 賦작품은 모두 12편이고, 내용과 형식 모두 다양하다. 訥齋는 녹록치 않았던 그의 삶 속에서 형성된 개인의 心懷를 다양한 체제의 賦작품 속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그러므로 訥齋의 賦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작업은 그의 정신지향과 문학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어떤 서술방식으로 작품 속에 형성되는지에 주목하여 訥齋의 賦작품이 지니는 문학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訥齋朴祥의 心懷가 문학 작품 속에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究明하는 데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賦가 지닌 문학성을 개별 작품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訥齋가 賦작품 속에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주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서술방식은 抒情的표현, 敍事的구조, 議論的전개, 寓言의 運用등이다. 그리고 한 작품에 한 가지 방식만을 활용하기 보다는 이 네 가지 요소를 혼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일수록 한 작품 내에 서로 다른 요소들이 조화롭게 안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訥齋의 賦작품은 다양한 서술방식을 조화롭게 활용하여 시대를 불문하고 다른 문인들의 賦작품 들보다 작품의 성취도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인다. 이것은 訥齋가 지닌 뛰어난 문학적 역량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訥齋賦작품이 15-16세기 賦문학 전개과정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살펴보았다. 15-16세기에 창작된 賦작품들은 訥齋의 작품처럼 형식과 내용 모두 다양하다. 특히 주제의 측면에서 현실모순에 대한 고발과 풍자, 지배층 내부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개인의 慷慨.鬱憤등의 정조, 일상에서의 哀悼의 情恨, 道家的超越과 遊仙의 追求등 이전 시기보다 훨씬 다채로운 양상을 띤다. 訥齋賦작품은 그가 생존했던 시기의 이러한 賦창작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訥齋賦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검토는 그러한 창작경향을 실증적으로 밝힐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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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는 陽谷蘇世讓(1486-1562)의 燕行詩중에서 북경의 ‘會同館門禁’에 대한 인식 양상과 연행문학상 의의를 고찰하고자 했다. 양곡의 연행시는 전체적으로 7언 절구와 율시의 비중이 높데, 이는 외교상 응제와 수창에 대비하기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또한 작품에는 ‘門禁’과 ‘遊覽’의 상황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진솔하게 노정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문금에 대한 자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낸 작품들을 살펴보면, 먼저 양곡의 문금에 대한 인식은 한마디로 ‘無異於獺子’, 즉 ‘內服’이며 禮儀之邦인 조선을 辨髮한 오랑캐와 동일하게 홀대하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이는 조선이 주변국에 비하여 인정받았던 우월적 지위도 부정 또는 약화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양곡은 회동관에서 죄수나 다름없는 감금생활을 楚囚로 비유하면서 괴로워하면서, 문금에 비판의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다만 ‘人臣無外交’의 관례에 의해 적극적인 교섭에 한계를 느끼고 귀향에 대한 소망을 노정하는 것으로 체념하는 양상도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五日一出館’과 ‘皇都遊覽’의 興懷를 표현한 작품을 살펴보면, 유람을 통해서 직접 목도한 경물에 대하여 현장감과 다양한 소회를 표현하기 위해서 각 장소와 연관된 전고도 다양하게 사용하여 함축성과 상징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과 유람에 대한 자부심을 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문금 상황에서의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세계를 보이는데, 이원적 작품세계에는 회동관과 문금이라는 특수한 장소와 상황이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문금은 조선 연행사들의 외출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엄격히 제한했던 제도였기 때문에, 明代燕行錄에서 北京에 대한 묘사나 외국 인사들과의 교유가제한적이고 적게 발견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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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06년 12월에 소개된 .반계일고(磻溪逸稿). 원문의 한시작품을 읽고 분석한 결과이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은 한시를 잘 지으려고 노력한 전문 시인은 아니었다. 그때그때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여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진솔한 정서를 토로한 ‘학자의 시인’ 이었다. 하지만 반계가 은거를 결행했던 1653년에는 심리적 갈등이 매우 많았고 또 이를 한시 형식을 통해 집중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반동 은거를 결행하기 직전의 작품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느끼는 ‘感傷’의 정취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은거를 결행한 뒤의 작품에는 현실에 순응하는 ‘安性命’의 정취와 현실에 저항하는 ‘豹藏成章[표범이 숨어서 굶주림을 참으며 무늬를 완성시킨다는 뜻]’의 정신이 두 축을 형성하여 토로되고 있다. 반계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삶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가면서 발분저서(發奮著書)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갖가지 원인으로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이 넘쳐나는 오늘날에 있어 반계의 삶은 훌륭한 귀감(龜鑑)이 된다. 반계는 학문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강남효온(秋江南孝溫)의 부여회고(夫餘懷古)시 연구

이동재 ( Dong Jae L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97-12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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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추강 남효온의 역사 회고시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한 선행 연구로써 그가 지은 『부여회고』 시를 살펴보았다.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그가 사위인 李摠과 함께 1491년 전국을 떠돌다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를 유람하며 지은 前後각각 10수씩으로 된 연작시이다. 이 시는 독립된 詩題가 따로 없고 각 시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서 10수가 한 편의 백제사에 대한 회고시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백제사에 대한 회고시는 서거정과 같은 훈구문인들은 단순히 弔古의 감정만 들어낸다. 반면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단순히 패망한 백제의 유허지인 부여를 찾아 인간사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보다는 과거의 패망한 역사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지은 시이다. 따라서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백제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詩化한 것이다. 그의 백제사에 대한 이해는 비록 『삼국사기』와 『삼국사기』 의기록을 넘지 못했지만, 史書의 기록을 충실히 따르고 자신의 감정 개입보다는 객관적 진술을 통해 후대의 교훈을 남기려고 하였다. 둘째,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역사를 단순히 지나간 일을 기록한다는 차원을 넘어 현재를 돌아보고 나아가 미래의 시대에도 어떻게 정도를 걸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즉 그가 成忠과 같은 충신들의 충절에 대한 동일시는 자신의 절의의식과 자신의 희생을 통해 현실의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조선의 새로운 문인상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셋째,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그가 백제사에 대해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은 시이다. 즉 그는 백제의 멸망을 전적으로 의자왕의 황음무도함에만 두지 않고 당시의 국정을 책임진 신하도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백제부흥운동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초기에 지어진 백제 회고시에서 보이는 유일한 새로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추강의 『부여회고』 시는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교훈을 찾으려고 지은 寓意詩라고 할 수 있다.

호소지(湖蘇芝)의 시문학연구(詩文學硏究) -당시풍(唐詩風)을 중심(中心)으로-

조희창 ( Hee Chang Cho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125-167 ( 총 43 pages)
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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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초의 시문학은 崇文政策으로 世宗이래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어 사림파와 사장파간의 대립을 초래하여 한때 문약을 거치기도 하였으나 宣祖朝를 거치면서 穆陵盛世의 개화를 가져왔다. 그 중 海東江西詩派의 일원으로 宋詩와 唐詩를 함께 아우르면서 漢詩史에 족적을 남긴 이가 ‘湖蘇芝’라 지칭되는 湖陰鄭士龍(1491-1570), 蘇齋盧守愼(1515-1590), 芝川黃廷彧(1532-1607)이다. 이들에 대한 지칭은 대체로 ‘湖蘇芝’, ‘館閣三傑’, ‘海東江西詩派’로 불리워지고있다. 許筠은 위 3인을 唐風을 지닌 시들을 창작하고 진작시켰음을 치하하면서‘湖蘇芝’라 호칭하였고, 정사룡은 孫谷李達에게, 盧守愼은 白光勳과 崔慶昌에게 唐風을 전수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위 사실에 비추어 ‘湖蘇芝’는 宋詩를 唐詩로 전환시키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으며 ‘三唐派’에게 唐風을 연수시킨과 도기적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湖蘇芝’ 3인의 唐詩구사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을 한 연구가 거의 없다. 여러 연구들은 3인의 개별적 연구에 한정하였고 몇 편의 연구논문에서 湖陰정사룡과 蘇齋노수신 간의 작품 성향에 대하여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논자들은 허균의 시평(惺?詩話)을 근거로 호음은 7언에 장하고 소재는 5언에 장하다고 두 사람을 견주고 있다. 그러나 소재보다 17년 아래인 황정욱에 대한 연구는 兩人과 상견하여 볼 때 미미한 편이다. 허균은 惺?詩話에서 “우리나라의 시는 宣祖朝에 크게 갖추어졌으며 盧蘇齋가 두보의 법을 얻었고 黃芝川이 대를 이어 일어났다. 崔孤竹[崔慶昌]과 白玉峯[白光勳]이 唐詩를 배우고 李益之[李達]가 그 흐름을 밝혔다”고 하여 지천이 소재의 뒤를 이어 唐風을 구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던 ‘호소지’ 문학의 특질들을 상호 비교하고 지금까지 ‘湖蘇芝’라고 호칭하면서 가설이나 문제 제기에 머물러 있었던 사안들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문집과 그들을 연구한 선행 논문들을 발췌하고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과 시문 문구를 찾아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였다.

대산강진(對山姜晉)의 삶과 시(詩) -검서관(檢書官)및 외직(外職)시절의 시를 중심으로-

김영죽 ( Young Jook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169-204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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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山姜晉(1807-1858, 字는 進汝, 號는 對山)은 19세기의 문인으로 그의 증조부는 詩?書?畵三絶로 잘 알려진 표암 강세황(1713-1791)이다. 강진 역시증조부의 문예적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받은 뛰어난 문인 지식인이다. 가문의 학적 연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의 대산은 학계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대 벌열 관료들은 소위 三檢書로 일컬어지던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을 이을 만한 인물로 對山姜晉을 꼽았다. 하지만 詩人姜晉과 그의 시들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거의 주목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본고는 대산 강진의 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근거 있게 접근하기 위해 『대산집』 및 필사본 『대산시초』를 교감하고 대조하였다. 또한, 『내각일력』과 실록 등 관찬자료를 참조하여 그의 행력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의 한시를 분석, 검토하면서 연행과 검서관 임용, 흥양 감목관과 안협 현감 시절의 시들에 주목했다. 이 시기들의 시는, 검서관으로서의 得意한 표현, 학예적 분위기에 대한 자부심과 신분적 한계에서 오는 현실적 자괴감 등이 표리를 이룬다. 아울러, 일상의 소소함을 담담하게 필치로 그려내기도 한다. 연구가 일천하여, 그의 삶의 궤적을 살피느라 작품 개개의 정치한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후일, 동시대 문인들의 작품과 함께 견주어 면밀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때문에 본고는 대산 강진의 시작품을 연구하기 위한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여기며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 무게를 실었음을 밝힌다.

근대한문학의 진정성 시론(試論)

김진균 ( Jin Kyun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205-229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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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문학은 근대계몽기 이래 근대 문명의 중심권에서 소외된 자리에서 전개되었다. 소외된 한문학을 추구하는 지식인으로서 한문지식인들은 일정한 범주 안에서 서로 골육과 같은 표현을 쓰며 강력한 연대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근대한문학의 중심을 이루는 정인보와 변영만도 일정한 연대 의식 속에서 근대한문학의 가치를 발견하여 소멸의 길을 되돌리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진정성의 가치를 발견한다. 진정성은 공동체의 삶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여 다시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다. 진정성을 표현하는 형식은 소외되고 소멸되어가는 한문학이었다. 한문지식인 자신의 변화와 강고한 연대감을 갖는 한문지식인 사회에 우선 변화의 임무를 부여하였던바, 근대 계몽담론이 요구하는 동원되는 국민과 같은 단계가 설정되는 대신에 전통 한문 지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가능했다.

『太平廣記』 未來豫知譚에 나타난 중국 전통시기의 가치관념

박미애 ( Mi Ae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231-26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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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廣記』 500卷은 중국 宋代太平興國연간에 李昉등 12명이 太宗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중국의 설화집으로, 위로는 先秦兩漢시대부터 아래로는 宋代초까지 장장 7,000여 편에 달하는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내용과 수량방면에 있어서 매우 방대한 분량의 서사 텍스트로, 당시 중국의 삼라만상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太平廣記』를 ‘소설의 바다[小說的淵海]’라 부르고 있다. 한편, 『太平廣記』 텍스트는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로 유입이 되어 당시는 물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설화문학의 생성과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로서 중국은 물론 한국의 소설문학연구에 있어서 『太平廣記』 텍스트의 사료적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본고는 『太平廣記』 텍스트의 위와 같은 사료적인 가치에 주목하여 이야기향유계층의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문화적인 의의가 가장 잘 드러나있는 ‘未來豫知譚’을 통해 그 속에 묻어 있는 당시 이야기 향유계층의 삶에 대한 인식태도와 문화적인 함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특히, ‘未來豫知譚’은 중국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여러 가지 인식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다각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未來豫知譚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豫知內容’은 그들의 숙명론적, 현세주의적, 순환주의 적인 ‘世界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豫知過程’은 그들의 도덕관념, 행복관념, 가치관념 등을 전반적으로 포함한 총체적인 ‘社會人生觀’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豫知方式’은 자연, 지리, 산술, 의학에 대한 전통시기 중국 사람들의 ‘科學技術觀’을 선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未來豫知’와 관련된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들은 未來豫知譚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이야기의 향유계층인 전통시기 중국 사람들의 가치관과 신조, 논리 등의 의식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고는 위에서처럼 『太平廣記』 未來豫知譚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통시기중국 사람들의 인생과 운명에 대한 다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정서, 그리고 더나아가 서사문학으로서의 전통적인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한자문화권 국가의 한자 표준 자형 선정 기준 고찰

김영옥 ( Young Og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26권 0호, 2013 pp. 267-29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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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자문화권 각국의 한자 자형이 지니는 차이점의 원인에 대해 검토하고, 또 각국 한자 표준 자형 선정 기준에 대하여 고찰하여 그 특징과 의의를 살펴본 것이다. 중국은 1909년 이후 간화자 사용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이후, 1922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간체자’, ‘현재 통용되고 있는 간체자’, ‘널리 통용되고 있는 글자’, ‘사용 정도가 가장 높은 한자’ 등 현재 중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한자 자형을 한자의 표준 자형 선정 기준으로 정하였다. 대만은 ‘통용성’, ‘字源’, ‘간단한 구조’ 등을 한자 표준 자형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특히 자원을 표준 자형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홍콩은 ‘보편성’, ‘학술성’, ‘규율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중에서도 ‘보편성’이 가장 중요한 자형 선정의 기준이었다. 일본의 한자 표준 자형 선정 기준은 본래 ?康熙字典?의 자형이었으나 현재는 점차 간략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고 있다. 또 허용하는 자형을 명시하여 한자 사용에 있어서 허용되는 범위를 밝혔고, 자형 표기의 구체적인 원칙을 세세하게 제시하였다. 한국은 2000년 이전까지는 주로 ‘빈도수’와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자형’이 자형 선정의 기준이었고, 2000년 이후에는 ?康熙字典?의 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통용성도 고려하여 한자 자형을 선정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문화권 각국의 한자 표준 자형 선정 기준에 대한 검토 결과는 향후 우리나라의 한자 표준 자형을 선정하고 검토하는 데에 일정 정도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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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2007개정 교육과정에 의하여 편찬된 고등학교 『漢文Ⅰ』 교과서에서 ‘한문지식’ 영역에 대한 서술상의 문제점을 교육과정해설서와 함께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개사’의 문법의미 규정과 범주설정의 문제, 개사와 접속사구분의 혼란, ‘빈어’와 ‘보어’의 개념에 대한 구분기준의 모호성, ‘단어의 짜임’과 ‘어휘의 유형’에 대한 서술상의 혼돈, ‘문장의 유형’과 ‘글의 서술방식’에 대한 서술상의 혼돈, ‘문장의 수사법’에서 ‘도치’에 대한 설명의 불명확성 등을 보이고 있었다. 한문교과에 대한 관심이 타 교과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을 생각해 볼 때, 교육과정해설서에 따른 교과서 서술에 통일성이 있어야 하며 교수자나 학습자가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야 한다. 따라서 본고는 2007개정 교육과정에 의하여 편찬된 고등학교 『漢文Ⅰ』 교 과서에서 서술상의 문제들을 살펴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서술에서 再考되어야 할 점과 통일되고 규범적인 한문과 學校文法제정을 제언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교수?학습내용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습자의 성향에 따라 敎授法이 결정되어야 하므로, 文法敎授에 대한 다양한 敎授?學習方法의 개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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