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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1권 0호 (2015)

설교(雪橋) 안석경(安錫儆)의 시경론(詩經論)과 『시경(詩經)』 해설 방법의 특징

양원석 ( Won Seok Yang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7-39 ( 총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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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雪橋 安錫儆의 『識聞·詩傳』에 대한 검토를 통해 雪橋 詩經論의 주요 내용과 『시경』 해설 방법의 특징을 고찰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목표 아래, 먼저 雪橋의 經典과 文章에 대한 인식 및 『識聞·詩傳』의 구성과 내용 등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이어서 朱子註존숭과 朱子淫詩說 긍정 등의 詩經論을 확인하였고, 또한 經文해설 방법에 대한 고찰을 통해『識聞·詩傳』은 수사학적인 방법을 적극 활용한 『시경』 주해서라고 그 성격을 정리하였다. 雪橋는『識聞·詩傳』에서 朱子註외의 다른 주석은 언급하지 않았고 오직주자의 주석 특히 『詩集傳』을 인용하거나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을 진행하였다. 이처럼 삽교는 주자의 주석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었으며, 朱子의 註를 ‘聖譯’이라고 칭하는 등 그것을 매우 존숭하는 입장이었다. 雪橋는 朱子의 淫詩說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주자가 음시라고 판정한 상당 수 시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거나, 음시에 관련된 언급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삽교는 음시 판정의 문제보다는 시편의 문장 수사의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識聞·詩傳』에서 볼 수 있는 經文해설의 가장 큰 특징은 수사학적 방법론을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즉 『藝學錄』에서 찾아볼 수 있는 ‘篇章의 수사학’과 ‘字句의 수사학’을『識聞·詩傳』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처럼『識聞·詩傳』은 일반적인 경학 저술과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경서 연구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경학사에서 더 큰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雪橋) 안석경(安錫儆)의 시에 대한 인식과 시세계 연구

김근태 ( Geun Tai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41-74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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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삽교 안석경의 시에 대한 인식과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삽교는 특별한 스승 없이 부친 및 부친과 친분이 있던 名士들을 통해 학문을 익혔다. 또한 당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창흡과 이병연을 私淑하여 그들의 시의식과 작법을 수용하였다. 삽교는 학문적 역량의 배양과 수양을 기본 토대로 하되, 시인의 순수한 감정을 바탕으로 시적 대상에 대해 逼眞하게 묘사하는 것이 참된 시라고 생각하였다. 삽교의 시에는 속세를 초탈하여 자연에 은거하며 지내는 즐거움 및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다수를 차지하기에 超詣의 미감이 강하다. 또한 송시열을 삶의 좌표로 삼아 北伐論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위축된 조선의 氣槪가 다시 펼쳐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시로 표출하였다. 작법적인 측면에서는 가식 없는 경물의 묘사를 중시하였는데, 경물의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경물이 담고 있는 정신적인 측면에 대한 묘사에도 치중하였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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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雪橋安錫儆의 山水遊記를 그의 전반적 작품세계와의 연결 속에서 분석하고, 동시대 산수유기의 흐름과 연결시켜 이전에 조명되지 않았던 특징을 밝혔다. 삽교의 유기는 詩, 夢記, 筆記와 서로 연관을 맺으며, 산수유람체험을 총체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동시대 산수 문학이 유기와 함께 여타 장르를 종합하여 집대성되는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삽교는 시와 유기를 긴밀히 조응시켜 시와 유기에 동일한 표현을 함께 사용하고 유기의 서술을 촉매로 사용하여 시에서 서정을 증폭시키고 심화하였다. 다음으로 삽교는 몽기와 유기에서 산수의 형상화에 신이한 분위기를 더하고 현실인식과 삶에 대한 시선을 녹여내었다. 특히 삽교의 핵심 사상이라할 수 있는 조선중화사상을 산수공간에 투영하여 조선에 대한 자부심과 천하질서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이념적 이상을 드러내었다. 마지막으로 삽교는 필기에서 산수유람 중 견문한 인물 일화를 확장하여 윤색하고 유기에서 필기의영역에 속하는 산수 관련 정보를 체계화하여 각 장르에 맞게 내용을 분화하였다. 18세기 산수 문학은 다양한 장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정이 심화되고 사상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며 산수 관련 정보가 체계화되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해지는 양상을 보였고, 삽교의 산수문학은 그 흐름 중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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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안석경이 남긴 여러 성과들 가운데 『삽교예학록』 소재 산문 비평에 주목하여 비평의 특징과 산문 교육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삽교예학록』에 수록되어 있는 안석경의 산문 비평은 글의 주제를 찾고 그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단락 구성의 방법, 즉 편장 구성의 일관성과 연계성, 엄정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평 방식은 자구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 작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작품의 주제와 지은이의 의도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효과적이란 점에서 한문 산문 교육뿐 아니라 글쓰기 교육에서도 유용한 방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호시화(霽湖詩話)』에 나타난 조선중기 시론(詩論)의 특징과 비평사적 의미

하정승 ( Jung Seung Ha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123-166 ( 총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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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慶遇는 조선중기 선조조에서 광해군 때까지 활동했던 문인이다. 그가 지은 『제호시화』는 17세기에 간행된 시화집들 중에서도 의미 있는 저작이다. 우선 비평의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기존의 시화비평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았던 한시의 형식적인 부분과 운율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의 한시비평사에서 한시의 형식이나 운율을 다룬 시론은 18세기 신경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제호시화』는 매우 선구적인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16세기 후반 이후로 유행했던 시풍인 당시풍 한시에 대한 심도 있는 비평을 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시기적인 면으로 볼 때에도 『제호시화』는 조선전기인15~16세기와 조선후기인 18~19세기의 중간에 위치하여 한시비평사의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제호시화』는 양경우 當代의 시인들과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일반적인 다른 시화집들이 前代의 시인들 중심으로 기술된 것과 매우큰 차이점이다. 이로 보면 『제호시화』는 한국한시비평사에서 본격적인 當代批評의 출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제호시화』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보면 용사의 문제, 시의 격률, 압운법,평성·측성의 사례, 詩體, 작시에서 시어의 중요성, 개별 시인들에 대한 시평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여기에서 개별적인 작가들에 대한 시평을 제외하면 용사론, 시어론, 시체론, 격률론, 음운론, 성조론으로 내용이 요약된다. 기존의 시화집들과 비교해 보면 용사론과 시어론, 시체론 등은 기존 비평집의 체제를 계승한 측면이 강하고, 격률론, 음운론, 성조론 등은 기존의 시화집에서는 많이 다뤄지지 못했던 이례적인 비평방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제호시화』에 나타난 양경우 시평의 특징을 ①시적 형용과 시어의 강조, ②點化와 剽竊과 같은 용사론에 대한 문제, ③시의 格調와 聲律論,④唐風에 대한 강조와 심미비평 등 몇 가지 측면으로 세분하여 고찰해 보았다. 이상의 논의들 중 상당 부분은 사실『동인시화』등 기존 시화집들에서 주요하게 다뤄져 왔던 쟁점들이다. 하지만 당시와 용사의 문제, 송시의 대표자인 소동파 시의 失處, 향렴체 등 당시풍 시의 특징에 대한 사항은 기존의 시비평과 비교했을 때 논의의 수준이 상당히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압운법, 격률론, 평성·측성에 대한 논의 역시 기존의 논의들에 비하여 훨씬세분화되고 구체화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요컨대 『제호시화』는 전통적인 시비평의 방법을 계승하고 그 위에 저자 나름의 안목과 식견을 더하여 새로운 비평의 방법까지 창출해 내었다는 비평사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사룡(李士龍)의 춘추대의에 대한 가치와 시대적 의미

김동석 ( Dong Suk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167-192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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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사신의 일행들이 북경에 갈 때 심양을 거쳐 산해관으로 가면서, 영원성과 금주성에서 있었던 명청 교체기의 전쟁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 했다. 이곳 전투 현장과 연관을 지어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인물은 李士龍이다.조선 병사 李士龍은 1641년 청나라 용병이 되어 금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사람이다. 전투를 하다가 희생된 것이 아니라 전투에서 총[精砲]에 총알을 비운 채 명나라 군사에게 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숙종과 현종, 정조, 송시열, 남구만, 박지원, 홍대용, 이긍익 같은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회자된다. 특이한 것은 이사룡은 송시열과 정조에 의해 춘추대의의 화신으로 까지 크게 부각된다는 점이다. 이사룡이 운명하고 나서, 죽음과 관련하여,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조선시대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박지원은 이사룡이 중화사상에 빠져 청나라에 저항하다가 스스로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것처럼 묘사하였지만, 남인인 남구만과 이긍익은 조선 병사들이 명나라 군사들에게 총을 쏘려고 하지않자, 청나라 측에서 이를 문제 삼아 이사룡을 희생양으로 처형했다고 기록하였다. 이사룡의 고사를 두고 빗어진 춘추대의는 이처럼 남인과 노론의 견해가 달랐다. 노론 쪽이 대의명분에 좀 더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숙종과 정조는 춘추대의를 강조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숙종 때에는 당쟁이 자주 발생하였고, 정조 때에는 천주교가 전래되어 남인을 중심으로 천주교도들이 늘어났고, 이에 대한 노론 벽파의 비난이 거세졌으며 정조가 노론의 문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금주성 전투의 전후 과정과 당시 조선 병사의 분위기, 이사룡이 처했던 상황을 근거로 하여 이사룡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오랜 동안 이사룡이 춘추대의의 상징인물로 부각된 원인에 대하여서도 분석하려고 하였다. 숙종은 이사룡을 추증하고 후손에게 벼슬을 내렸으며, 정조도 후손에게 벼슬을 내렸다. 정조는 이들에게 묘지명을 써줄 정도로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사룡을 이순신 장군에 비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조 이후 이사룡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왕조가 쇠퇴기로 들어서자 국왕을 비롯하여 위정자들이 춘추대의에 대하여 집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춘추대의는 조선 왕조의 권위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국왕과 집권세력들 사이에서 중요한 명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사룡은 이런 시각에 의하여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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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분석 대상인 秋齋趙秀三, 對山 姜진, 冬郞韓致元은 19세기 경화벌열의 磁場안에 있던 중간 계층 지식인들이다. 19세기 이후 서얼 계층과 여항 문인 등을 중심으로 ‘신분’이나 ‘계층’의 소속감을 넘어 교양을 공유하고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신분과 職域을 넘어선 추재, 대산, 동랑 세 사람의 만남과 우정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그 교유의 실제를 재현하는 것은 일정의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이들의 만남 시점은 벌열의 세력이 점점 약화되어지는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는 계층을 넘어서 일상적인 것들을 공유하면서 순수한 ‘同好人’의 형태를 띤 詩緣이 종종 목격되는데 추재와 대산, 동랑의 교유 역시 그 범주 안에 속한다. 때문에 사대부 계층 외의 중간 계층이 남긴 시문들을 천착해 고구하고 그윤곽을 잡아주는 작업은 18, 19세기 문화지도의 점과 점을 이어주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본고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에 있다.

19세기 성호학파(星湖學派) 문인의 문물 고증과 기록, 『동사일지(東事日知)』

정은주 ( Eun Joo Jung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223-252 ( 총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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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事日知』는 李學逵가 김해에 유배된 지 19년째가 되는 1819년에 지은 저술이다. 이 책은 모두 123조목에 걸쳐 우리나라의 역사·지리·문물·제도·풍속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여러 문헌을 종횡으로 참고하여 고증하고 기록한 저술이다. 『동사일지』에는 저자인 이학규의 방대한 지적 세계와 독서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어 학계에서 그동안 주목받아 왔던 현실주의적 한시가 창출될 수 있었던 동인은 물론, 그의 실학적 사고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저작이다. 이학규는 外家인 南人家에서 생장하면서 가학적 전통을 깊이 흡수하였다.『동사일지』의 창작 배경에는 성호학파의 가학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성호학파의 학문적 계보를 잇는 것으로 파악된다. 李瀷의 『星湖僿說』과 李家煥의 『貞軒쇄錄』이 각각 17세기와 18세기를 대표하는 성호학파 문인의 백과전서적 저술에 해당된다면,『동사일지』는 19세기 성호학파 문인의 백과전서적 저술인 것이다. 곧 『성호사설』-『정헌쇄록』-『동사일지』로 이어지는 저술창작은 성호학파의 백과전서적 학풍이 시대별로 계승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본고는 『동사일지』의 특징적 면모를 살피고, 아울러 성호학파의 저술 전통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상의 『동사일지』의 내용과 특징을 밝히는 연구는 이학규의 실학파 문인으로서의 면모를 확보하는 데에서 나아가, 성호학파 문인의 백과전서적 학풍과 시대별 전승의 양상을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학(大學)』의 인용(引用) 시(詩) 연구(硏究) -집주(集註)와 소주(小註)를 중심으로-

진예숙 ( Ye Suk Ji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1권 0호, 2015 pp. 253-28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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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大學』에 인용된 『詩經』의 시들에 대해 集註와 小註를 중심으로 考察하고, 이 시들이 『大學』의 修己治人的논리 구조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먼저 新民章에서는 修己治人의 典範이라 할 수 있는 文王을 찬양한 詩를 引用하여 ‘明明德’과, ‘新民’, ‘止於至善’의 三綱領이 자연스럽게 상호 연결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임을 言明하고 있다. 다음으로 止於至善章은 별도의 주장이 없이 모두 詩句만 인용해서 修己治人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그 논리가 매우 정밀하며, 단계적으로 세밀하게 제시되어 있어 『大學』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중요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齊家·治國章은 세 편의 시를 연속적으로 인용하여 治國은 齊家를 전제로함을 밝히고 있다. 敎化는 안에서 밖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니, 齊家가 修身에 달려 있고 治國이 齊家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治國·平天下章은 지도자의 .矩之道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며, 『大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章句로, 세 편의 『詩經』詩를 인용하여 治國이 平天下의 전제가 됨을 비유적으로 밝히고 있다. 『大學』의 논리적 체계는 明明德의 문제가 가장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결국 修身論으로 귀착된다. 또한 이 修身論은 明明德과 不可分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新民, 止於至善의 治人論과 하나로 맞물려 있다. 결국 『大學』에 인용된 『詩經』의 시들은 修己治人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용되었으며, 몇몇 핵심적인 의미 강화가 필요한 章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인용시들이 『詩經』의 본의와 달리 斷章取義하여 인용되고 있다. 이들은 文王을 修己治人의 典範으로 보는 전통적 聖人觀을 계승하고 있는데, 朱子의 集註와 小註는 이런 목적들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그 의미를 분석하거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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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幾體歌는 고려후기에 발생하여 조선중기까지 이루어졌다. 27수가 남아있는 경기체가 중에 「翰林別曲」과 더불어 安軸의 『關東別曲』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宋詞의 고려 유입, 宋詞와 『關東別曲』의관계를 살피고,『關東別曲』과 宋詞를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 경기체가의 근원과 형성과정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宋詞는 송나라에 盛行한 장르이다. 宋詞는 고려 때에 한국에 유입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宋詞의 곡조나 가창은 고려문인들로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난관이었다. 宋詞의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지만 그 난관의 대안으로 경기체가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宋詞의 對案인 경기체가를 통해서 속요와는 차별화된 品格詩歌를 과시할 수 있었고, 宋詞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음악적 욕구를 고려의 곡조로 즐길 수 있었다. 본고는 형식과 수사를 통해서 「關東別曲」과 宋詞를 구체적으로 비교한다. 형식에서 長短句와 前後兩節을 통해서 양자의 유사성을 파악한다. 장단구와 전후 양절에서 유사한 원인은 양자의 음악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 수사에서 用典과 對偶를 통해서 양자의 유사성을 파악한다.『關東別曲』과 宋詞가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비교 문학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 연구로써 경기체가의 근원과 형성과정에 宋詞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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