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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975-521x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성신한문학(~2003) → 한문고전연구(2004~)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5권 0호 (2017)

조현명 시에 나타난 ‘탕평’ 관련 의식 연구

이남면 ( Lee Nam-myo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7-35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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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조대 정치가이자 문인인 趙顯命(1691~1752)의 탕평 의식 및 추진의 배경과 아울러 ‘탕평’ 관련 의식의 시적 형상화 양상을 살핀 것이다. 조현명은 영조대에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까지 오르며 당시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조현명의 집안은 老少가 분기된 시점부터 소론에 가담했으나 노론 집안과 연혼 및 사우 관계를 형성하였다. 조현명은 특히 김창협·김창흡 계열의 노론 문사들과 깊이 교유하였고 또 노론 洛論系에서 주장했던 ‘人物性同論’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면모는 노론 인사들(특히 낙론계 문사들)과의 사상적 유대감을 형성해줌으로써 그가 노소간 대립을 극복하고 균형을 맞추는 ‘탕평’의 적임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로 추정된다. 또한 그가 人性과 物性을 차별하지 않은 것이나 홍세태, 정내교 등 여항인들과 격의 없이 소통한 것, 왕양명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 등도 대립과 차별을 극복하고 공존하려는 그의 의식과 일정 부분 관련성을 지닌다. 조현명의 ‘탕평’ 관련 시는 정치적 측면과 정치 외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조현명은 정계 진출 초기부터 ‘탕평’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지녔고, 이조판서 임명이 무산된 때에는 탕평을 추진하지 못하는 처지와 고충을 토로했으며, 탕평 추진 과정에서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탕평 추진을 위해 용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조현명은 정치적 측면외에 사람, 사물, 사상 등을 대하는 여러 상황에서도 ‘공평’, ‘평등’, ‘공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벗과의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우열 논쟁을 버리고 서로를 인정하자고 제안하였고, 불교의 ‘평등’ 사상에 호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종류가 다른 국화꽃이 서로 공존하는 모습을 예찬하는가 하면, 文人과 武人 둘 사이의 우위를 논할 수 없다는 견해를 펼치고, 지역의 송사 문제에서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옳다는 뜻을 드러내었다. 그의 ‘균형’, ‘공존’ 의식은 정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러한 조현명의 의식은 차별과 대립, 분쟁을 거부하고 화합과 상생을 추구하고자 했던 18세기 전반 소론계 지식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의 소동파(蘇東坡) 수용 양상

이태희 ( Lee Tae-hee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37-68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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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趙龜命의 인생과 문학에 蘇東坡가 끼친 영향을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18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산문 작가 조귀명은 이론과 창작에서 뚜렷한 성취를 남겼다. 그의 산문 이론과 작품이 宋나라 대문호 소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언급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여러 번 확인된다. 특히 19세기 중반에 宋伯玉이 편집한 산문 선집 『東文集成』에서는 조귀명이 산문 창작에서 큰 성취를 이루는데 소동파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대단히 강조하였다. 조귀명은 소동파에게서 達觀, 自得의 인생관을 수용하였는데, 이것은 조귀명의 인생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조귀명 산문 창작론의 핵심은 主意論으로, 이것은 소동파 문학론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意’는 작품의 구성요소 중에서 이념, 주장, 정서와 같은 내용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주의론은 작품 창작에서 작가 자신의 ‘의’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만드는 일이 선결과제로서 필수불가결하다는 이론이다. 조귀명은 당시 조선 문단의 창작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의론을 제기하였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散文史에서 특유의 이론으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조귀명의 산문 작품 중에는 소동파의 중요 작품을 변주하여 지은 것이 몇 편 있다. 이 작품들은 소동파의 원작이 가진 주제를 발전시킨 것으로, 조귀명 자신과 소동파의 이론에서의 주장, 즉 주의론을 창작에서 실현하려 한 사례로 거론할 수 있다. 종합하면, 동계는 소동파를 인생의 스승이자 문학의 典範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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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永湖 趙?(1719~1777)의 通信使 使行文學에 대한 二元的 文學世界를 분석하고 세부 내용을 고찰해 보았다. 通信使의 正使로서 使命 遂行에 대한 所懷로 먼저 永湖가 外交儀典에 대한 再認識과 國格의 正立을 위한 노력과 소회를 살펴보았다. 永湖는 외교의전에 대해서 ‘自侮의 방지’와 ‘國格의 정립’이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사소한 외교의 전도 자세히 기록했고, 조선의 禁酒令을 준수하도록 일본의 宴享儀典을 변경했으며, 傳命儀式에 대한 비판과 변경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永湖가 崔天宗 피살사건에 대한 대처와 외교적 해결 과정에서 永湖는 사건의 발생 직후부터 ‘爭桑의 故事’를 상기하고, 외교적 대응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사건의 발생 직후부터 범인인 鈴木傳藏의 처형까지 비교적 신속하게 해결되었으면서도, 朝日間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永湖가 譯官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을 살펴보면, 永湖는 崔天宗 피살사건의 해결과정을 통해서 외교에서 역관의 역할과 중요성을 재확인했고, 倭譯과 倭學의 쇠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知識人 旅行者로서 使行 體驗에 대한 所懷로 먼저 永湖가 朝鮮中華主意에 근거한 일본 인식과 비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永湖는 지식인 여행자로서 조선중화주의적 시각으로 일본의 풍습, 종교, 학문 등에 대해서 夷狄의 풍속이나 異端으로 규정하면서 비판적 시각을 노정하였다. 다만 일본의 조선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인식도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永湖가 日本 文物에 대한 受容 意志와 客觀的 認識에서 永湖는 民生中心 愛民觀을 견지해서 조선의 백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문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과 도입의지를 보였고, 이는 고구마의 전파, 水車, 竹夫人樣子 등에 대한 수용 의지로 확인된다. 또한 일본의 번화한 도시나 정돈된 시가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관찰자의 시각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永湖가 일본의 風光을 遊覽하면서 抒情的 美感을 노정한 내용에서 永湖는 일본의 절경을 만나면 그 서정적 미감을 자세히 서술하기도 하였고, 동료들과 적극적인 酬唱을 통해 壯遊의 興趣를 제고하였다. 또한 永湖는 일본과 조선 산수의 우열을 비교하며 鄕愁感을 노정하기도 했다.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의 교유 양상과 묵계산장(墨溪山莊)

김근태 ( Kim Geun-tai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119-151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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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세기 조선의 勢道政治에서 한 축을 담당하였던 雲石 趙寅永 이 교유한 인물과 교유 장소로 활용된 墨溪山莊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인영은 정치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동시에 金石學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자 시문에도 능한 문학가이다. 그는 金正喜 및 成大中 父子와의 교유를 통해 性理學만을 추숭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李止淵과는 정치적인 입장을 같이 하는 정계의 동반자로서 안동김씨의 전횡을 막는 데 힘썼다. 아울러 趙秀三, 姜? 등 중인 신분의 시인들과도 신분과 나이를 초월하여 詩友로 지내며, 정치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에서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젊은 시절 사절단의 일원으로 北京에 가서 淸나라의 금석학자인 劉喜海와 인연을 맺어 조선의 金石文을 청나라에 전파시켰다. 마지막으로 당시 北京에서 근무하던 比丘林이란 러시아 학자와도 교유하였는데, 두 사람의 교유는 현재 남아있는 기록으로 볼 때 조선 학자와 러시아 학자와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인영이 여러 인물들과 교유하였던 장소인 墨溪山莊은 도성의 南山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풍양 조씨 가문의 별장인 동시에 여러 문인이나 관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연회와 유흥을 즐겼던 대표적인 도성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보한재 신숙주의 문예사상과 서예

이기범 ( Lee Gi-bum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153-192 ( 총 40 pages)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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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閑齋 申叔舟는 15세기 조선의 문화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정치, 역사, 문학, 외교사, 음운학 등에서 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그가 남긴 80여 수의 제화시를 통하여 회화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어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축적이 되었다. 본고에서는 보한재 여러 서적에 명필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에 대한 書藝분야의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라 그의 문예사상과 서예작품을 검토해 보았다. 그는 15세기 대표적인 관학파 문인으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공효를 인정하고 이를 현실에 적극 활용하였다. 그래서 그는 시·서·화를 심성도야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이 하나의 일치된 境界를 추구해야 한다고 시화일률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시화일률은 심성도야를 통한 천지자연의 조화[天道]와 합일되는 경지를 요구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증조부 申德麟으로부터 부친 申檣으로 내려오는 대대로 名筆의 전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후손이 잘 계승해 주기를 희망하였다. 보한재의 유작 중 1442년에 제작된 『匪懈堂瀟湘八景詩帖』중의 예서 작품은 증조부의 德隣體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1447년에 안견의 그림과 安平大君을 중심으로 22명이 합작한 『夢遊桃源圖卷軸』에 실린 20수의 절구시를 쓴 行書작품은 조맹부의 송설체를 매우 정교하게 쓴 것으로, 실린 작가들 중에서 上位의 풍격을 나타내고 있다. 1450년에 명나라 사신으로 온 예겸에 의하여 제작된 『奉使朝鮮唱和詩卷』 중의 작품은 근엄한 해서로 서사되었으며, 이전의 작품에 비하여 개인의 개성이 좀 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이외에 간찰과 시고의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하여 한층 개인의 개성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말년의 작품은 무심하게 써내려간 필치가 오묘한 경지를 이룬 것으로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라 할만하다. 근대에 발간된 『槿墨 』에서는 이를 보한재의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있다.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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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창강 김택영이 중국 체류기에 지은 한시 작품 중 그의 중국 생활을 도운 후원인과 문인, 실생활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과 수창한 교유시를 대상으로 고찰하였다. 김택영은 한국 한시문학의 마지막 세대로서 유서 깊은 한국한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한문학의 명맥을 이어간 시인이다. 특히 그의 시세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문학이 몰락하는 시기 중국에 체류하는 상황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문집을 간행하였고 특별한 시대상황을 담은 것에 있다. 김택영은 나라의 패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남달랐다. 그는 조선이 망하고 왜적이 나라를 차지할 것이 분명해지자 결연히 나라를 떠나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 체류하였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김택영은 자신의 문집과 역사서를 출간하고, 계속 시문을 지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인들과 교유하며 시를 수창한 사실은 김택영의 시문 창작 능력이 중국인과 대등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김택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조선 문인들의 수준이 그러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다. 김택영이 중국체류기에 지은 교유시는 작품의 질적, 양적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김택영을 후원하거나 교유한 문인은 장건, 장찰, 유월, 도기, 정효서, 비범구, 주진기 등이다. 김택영이 후원인이나 문인들과 수창한 교유시는 형식적으로는 교유시의 전형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진정한 인격적 만남과 신문물에 대한 인식, 끝내 동화될 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숙명 등이 드러나 있어 시세계의 깊이를 더했다는 점에서 김택영 문학의 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실생활의 주변에 있던 인물들과의 교유시는 김택영의 따스한 시선이 이웃을 향해 있었으며 그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시로 형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교유시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었다. 이영역의 작품들은 후견인이나 동료들과 수창한 작품보다 인간적 진실성이 더욱 드러나 있으며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김택영은 한국 한시문학사에서 특별한 한 영역이 되는 디아스포라문학을 남겨놓았다. 이 시기에 김택영이 창작한 한시는 한국한시문학의 지평을 확대했으며, 한국한문학의 국제화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맹자요의(孟子要義)』에 나타난 다산(茶山)의 경학관(經學觀) 연구

김조영 ( Kim Jo-young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233-261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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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실학자로 알려진 茶山 丁若鏞의 『孟子要義』를 통해 茶山이 經學에 있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본 것으로, 「自撰墓誌銘」에 나타난 9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다산은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1938년경 『與猶堂全書』라는 이름으로 편찬되었다. 『여유당전서』 중에서 『맹자요의』는 다산이 『孟子』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주석을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으로 『맹자』 전체에 대해 주석한 것이 아니고, 『맹자』 經文 260章 중 153章을 선별하여 주석하였다. 또한 다산이 자신의 방대한 저술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지어진 「자찬묘지명」을 살펴보면, 본인이 저술한 각각의 경전에 대해 간략한 자신의 소개가 함께 서술되어있다. 이는 다산이 저술하는 경전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서술한 것으로, 『맹자』에 대해서는 9가지 논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본고는 다산이 「자찬묘지명」 에서 언급한 9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맹자요의』를 살펴봄으로써 다산이 『맹자』라는 경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다산의 經學觀이 어떠한 특징을 갖는지, 다산의 경학관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다산이 「자찬묘지명」 에서 언급한 9가지 논점은 첫째, 萬乘之國과 千乘之國의 分田制祿에 관한 부분. 둘째, ‘不嗜殺人’의 의미. 셋째, 夏나라와 殷나라의 井田制. 넷째, 浩然之氣와 道·義. 다섯째, 性嗜好說. 여섯째, 本然之性과 氣質之性. 일곱째, ‘萬物皆備於我’의 의미. 여덟째, 맹자가 性을 논하면서 理만 언급한 문제. 아홉째, 氣質의 淸濁과 善惡간의 관계 등이다. 이에 대해 『孟子要義』에 나타난 다산의 인식을 살펴보면, 첫째, ‘만승지국과 천승지국의 분전제록’에서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수학적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주자의 견해를 비판하였고, 둘째, ‘不嗜殺人’의 의미에서는 맹자가 양혜왕을 설득하는 논리적 어법을 통해 『맹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체적으로 연관해서 살펴야 한다는 점을 말하였고, 셋째, ‘하나라와 은나라의 정전제’에서는 다른 경전의 내용을 비교하여 근거로 삼고, 경서의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넷째, ‘호연지기와 義·道’에서는 철학적 용어의 개념에 엄격하고 맹자가 말하고자하는 본질적 의미에 충실하려는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 다섯째, ‘性嗜好說’과 여섯째,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서는 기존 성리학적 개념과는 다른 본인의 독창적인 학설과 개념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일곱째, ‘萬物皆備於我’의 의미를 ‘一貫忠恕’로 보고 있으며, 여덟째, ‘맹자가 性을 논하면서 理만 언급한 문제’에서는 맹자가 말하려는 본의에 충실하고 경서의 의미를 확대 적용하여 인식하고 있고, 아홉째, ‘氣質의 청탁과 선악간의 관계’에서는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여 思考의 전환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실학자라고 알려진 것과 같이 다산이 『맹자』를 주석함에 있어, 현실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며 실용적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창적인 인식을 실학적 경학관이라 이름하고, 이러한 실학적 경학관은 학문의 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경학관이라 하겠다.

도덕성(道德性) 회복(回復)을 위한 ‘대장부론(大丈夫論)’의 현대적(現代的) 의미(意味)

정미선 ( Jeong Mi-sun )
한국한문고전학회|한문고전연구  35권 0호, 2017 pp. 263-289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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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도덕적인 삶, 가치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식욕, 성욕, 권력욕 등 기능적인 욕망들로 인해 修養을 度外視하고, 스스로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禽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인간상실, 가치관 몰락, 물질 만능 등으로 인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本性에 대한 性善의 自覺, 擴充,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맹자의 도덕적인 마음을 보존하는 存心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求放心의 방법과도 통한다. 이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양하고 확충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위한 寡慾, 浩然之氣, 大丈夫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儒家의 학문은 실천을 중시한다. 따라서 진정한 도덕적 수양은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확충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도덕적 실천행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맹자의 도덕성 회복과 그 실천은 더욱 필요하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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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문과 교육과정에서 기술한 품사의 한 갈래인 ‘感歎詞’의 정의와 문법적 의미범주에 관한 연구다. 2007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에서 ‘품사’를 상정한 이래로 ‘感歎詞’는 ‘介詞’, ‘接續詞’, ‘語助詞’에 비하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감탄사’들이 구어에서 두드러진 어휘로 문언문인 한문에서의 표현은 상당히 한정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며, 또한 통사적으로 문장구성성분과 직접적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쓰여 문언문법에서 관심이 소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感歎詞는 여타의 虛詞와는 달리 話用論이나 談話분석 상에서 다용되어 나타나며, 문장 밖에 단독으로 쓰여 문장 내의 성분과 통사적 관계를 맺지 않는 문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 정의를 내리면, ‘感歎詞’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적 성질을 지닌 것으로 같은 성음이라도 다른 형태로 나타낼 수 있고 같은 형태라도 다른 문법적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그 의미는 선후행문장의 전체적 언어환경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기쁨, 슬픔, 놀람, 분노, 한탄, 찬미 등의 感情感歎詞와 應答詞로 나눌 수 있다. 다만 여타의 허사와는 달리 문장 밖에 독립적으로 쓰여 통사적 관계를 맺지 않는 허사 중 하나의 품사라 할 수 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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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국어 교과에서 한문고전인 유학사상의 수록 변천과 교육적 함의를 고찰한 논문이다. 국어 교과에서 전통의 유학사상은 단절과 계승의 부침을 겪었다. 유학사상은 제3차 국어과 교육과정부터 2009개정 교육과정까지, 대략 36년간 수록되지 않았다. 본고에서 그 원인을 제3차 교육과정부터 한문 교과의 성립, 한국적인 민족문화의 지향, 대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유학 가치의 변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 가치의 도입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유학사상이 36년의 시간이 흐른 2009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다시 수록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경제 성장을 제1목표로 질주하던 산업화 과정의 결과, 우리 사회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반인륜적인 사회 문제가 대두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반인륜적인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인간성의 회복은 제도권 교육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보인다. 이러한 교육가치의 변화는 과학주의와 실용주의 일변도에 대한 교육의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2009개정 고전 교과서에 수록된 유학사상은 제2차 고전 교과서에 수록된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제2차에서는 유학에서 가르치는 ‘효’ 사상을 바탕으로 도덕적 자기 수양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2009개정에서는 ‘인간의 본성[仁義禮智]’을 중심으로 유학사상을 재해석하거나 평가하여 적용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18년부터 고등학교에 적용될 2015개정 교육과정에도 ‘고전읽기’가 선택 과목으로 설정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의 계승이라는 테제는 유학 사상의 현대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유학이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철학적 반성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사상으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2009개정 고전 교과서가 보여준 ‘지금-여기’에서 유학사상 적용의 실제는 유학의 현대화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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